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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펜의 유희 1권(25화)
7 외전-에스메랄다(2)
덥석!
응?
“유모, 뭐야?”
내 유모가 내 팔을 붙잡았다.
“자, 결혼하시기 전까지는 신랑이랑 따로 있으셔야 해요.”
“에? 뭐라고?”
“결혼식 전, 남편과 아내가 따로 떨어진 채 잔치를 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그래?”
나는 여자들만 있는 잔치하는 곳으로 갔다. 다른 잔치장과 격리시키기 위해 천으로 벽을 만든 곳이었다.
거기서 부족의 여자들에게 꽃이나 수제 향수 같은 선물을 받고 온갖 덕담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술을 마시는 게 금지되었다.
오늘 밤에 있는 거사 때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리면 안 된다고 유모와 주위 여자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놀고 마신 지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 갈 때였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유모가 다시 내 팔을 잡아서 이끌었다,
마을 처녀들이 내가 지나가는 길에 하얀 종이를 뿌렸다.
난 그것들을 밟으며 지나갔다.
누군가가 내 머리 위에 화관(花冠)을 씌워 주었다.
저쪽 너머로 단상에 있는 아버지랑 아지벤이 보였다.
우리 둘은 팔짱을 끼고 아버지 앞에 섰다.
“신랑 아지벤은 신부인 나의 딸을 받아 차기 부족장으로서 이 부족을 이끌어 나갈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좋아, 이것으로 둘은 자정이 지난 내일서부터 부부가 됐음을 선언한다.”
땡∼
마침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기 부족장 아지벤에게 영광을! 부인 에스메랄다에게 축복을!”
잔을 높이 들며 사람들이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자, 신부 먼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들어가고 신랑은 신부가 준비하는 동안 우리랑 좀 더 잔치를 벌이자!”
커다란 술잔을 들며 아버지가 외쳤다.
“와아아아!”
난 유모의 안내를 받으며 특별히 준비된 파오로 들어갔다.
“일단 신랑에게 잘 보이려면, 몸부터 씻으셔야지요.”
유모가 내 옷을 벗기며 말했다.
“좋은 향유를 부은 목욕통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자칭 ‘문명국가’라고 부르는 로메르 사람들에게 얻은 거야?”
“네, 그들 상인들은 신기한 물건을 잘 가져오지요.”
“난 그들이 싫어. 그들은 초원에 성이나 담을 쌓아서 우리가 그쪽으로 못 들어오게 하면서 자신들의 땅이라고 하잖아. 덕분에 우리들의 소나 양, 말들에게 줄 풀이라든가 강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잖아.”
“그것도 그래요. 제가 씻겨 드릴게요. 온몸 구석구석 향이 배도록 해야 해요.”
“그래, 부탁해.”
향유가 담긴 목욕물로 목욕하고, 난 속이 훤히 다 비치는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상처가 날까 봐 손톱도 바짝 짧게 깎았다.
그리고 이불 위에 누웠다.
“에스메랄다 님! 요염한 자세로 보여야죠! 자, 저를 따라 하세요.”
“유모! 그렇게 할 것까지 없잖아!”
“그래야 신랑을 유혹하죠!”
“그게 그거야. 이제 수고했어. 물러나 줘.”
“하지만…….”
“신랑 들어가요! 캬하하하! 잘해!”
“우씨, 그런 말은 하지 마! 우왓!”
“우리들의 공주님을 네 녀석이 차지했으니 잘 모셔!”
남자들에게 떠밀리며 넘어져 들어온 아지벤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시뻘겠고 말끔히 입었던 옷은 넘어지면서 약간 더러워졌다.
“아이고, 이런! 옷이 더러워졌네.”
옷을 털며 아지벤이 일어났다.
검투에서 보여 줬던 표정과 다르게 서글서글하고 매우 착해 보였다.
“여기 젖은 수건이에요. 이걸로 얼굴 좀.”
아직 나가지 않았던 유모가 아지벤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오! 고맙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파오를 나가려다가 유모가 날 보았다.
“에스메랄다 님.”
“응?”
“파이팅!”
그리고 나가는 유모.
“뭔, 파이팅이야, 파이팅은.”
“그러게나 말입니다.”
스륵.
겉옷을 벗으며 아지벤이 내 옆에 누웠다.
흠칫!
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난 지금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겁이 나나요?”
그가 내 옆에 붙어 다정하게 말했다.
“솔직히, 응.”
“근데 저랑 결혼하는 거 싫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건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이번 검투대회에서 나온 전사들은 전부 다 멋있었거든. 넌 그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해서 뽑힌 거야. 난 그런 남자를 원했어.”
“하아∼ 그런가요?”
쑥스러운지 볼을 긁적이는 아지벤.
“전 솔직히 당신을 원해서 검투대회에 참전한 게 아니랍니다.”
뭐라구?
“그러면 왜?”
“부족장배 소 20마리 걸고 하는 검투대회인 줄 알았죠. 친구들이 속인 거랍니다.”
“허, 허…….”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학수고대하면서 최고가 된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데 그 남자는 나랑 결혼하기 싫었단 말이야?
“이, 이럴 수가…….”
난 사랑받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아지벤이 날 안았다.
“이렇게 된 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만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우∼ 뭔가 믿음이 안 가는데?”
“그래요?”
“응.”
그가 천천히 내 옷을 천천히 벗겼다.
“뭐, 같이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
“우욱!”
아직 해가 안 뜬 새벽 난 일어나자마자 파오에서 나와 말의 구유에 있는 물로 세수를 하였다.
“…….”
정말 어제는 잠들기 힘든 밤이었다.
“에스메랄다 님!”
“응?”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유모가 다가왔다.
“어떠셨어요?”
“우∼ 그런 말 하지 마 잠을 별로 못 잤어.”
“우훗훗훗훗!”
“그런 웃음도 짓지 마.”
“오! 일어났군요.”
아지벤, 이제 내 남편인 그가 파오에서 나왔다.
“좀 더 자지 않고?”
“이 정도면 됐죠. 우리 같이 말 타지 않을래요?”
“말?”
“네.”
그는 나에게 여전히 존칭을 쓰고 있었다.
“좋아.”
“네, 그러면 금방 씻고 말안장을 준비하죠.”
척!
말 위에 올라탄 아지벤.
“어? 근데 내 말은?”
“내 손을 잡으세요.”
“뭐라구? 같이 타는 거야?”
“그렇지요.”
왜?!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부부니까요.”
그가 내 팔을 잡아 올렸다. 내가 그의 앞에 앉게 되었다.
“모포 좀 주세요.”
“네.”
모포로 우리 둘을 둘러맨 후 그는 출발했다.
서쪽 하늘이 있는 곳으로.
다그닥! 다그닥!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뭐하려고 가는 거야?”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우리는 맞이하는 것은 새벽의 차가운 바람이었다.
차가운 바람에 양 볼이 빨개지고 귀도 빨개졌다.
“해가 뜰 겁니다.”
“응?”
“우리가 부부가 된 후 처음으로 뜨는 해입니다. 당연히 봐야죠.”
아…….
뭐, 뭔가 너무 멋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점점 밝은 빛이 보였다.
“이제 우리의 태양이 뜨고 있어요. 사랑하는 나의 아내 에스메랄다. 우리 행복하게 살아 봅시다.”
“그래.”
뭔가 아름다워 보였다.
저 어느 때나 떠오르고 지는 태양이 유난히 크고 아름다웠다.
눈이 부셨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나중에 해 떨어질 때 우리 황혼도 보러 갈까요?”
“좋아.”
그와 내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와 결혼해서 산 지 어언 3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우리들의 사랑의 결실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과 스스로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로메르가 계속 우리들의 초원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전운이 감돌아요.”
단단한 가죽 갑옷을 입으며 아지벤이 말하였다.
“뭐라구?”
“그들 때문에 다른 부족들의 전사들이 우리 부족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어요. 매일 부족장 회의가 있고 매일 이렇게 훈련을 나가고. 말은 안 해 주지만 이제 전쟁을 할 듯해요. 그들은 우리를 아무것도 없는 사막지대로 몰아내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살아야지요.”
“그래, 그들은 우리를 말살하려는 건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의 군대는 강력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걱정 마요. 그들은 보병이고 우리는 대부분이 기병이에요. 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것보다 전쟁은 안 했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응, 나도 그러길 바라. 전쟁을 하면 서로 피를 흘리게 되니까. 그럼 다녀와.”
“다녀올게요. 이럇!”
히이잉!
다그닥! 다그닥!
멀리 있는 부족장 회의실로 가는 그의 뒷모습에 왠지 걱정이 되었다.
전쟁이다. 우리 부족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날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남편 아지벤이 걱정되었다.
“제발 그가 무사하기를. 하늘이시여, 그를 보살펴 주소서.”
그렇지만, 그와 나의 미래는 밝지 못했다.
<『샤펜의 유희』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