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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마대제 1권(25화)
Chapter 9 게리오스의 선공(3)


국경 기사단장들이 막 영주 성이 있는 영토에 접어든 순간.
제라드가 이상을 확인받고자 영주 성으로 뛰어가는 날 밤. 게리오스는 호거스 여관의 숨겨진 방 안에서 마법구들을 보고 있었다. 빛이 뿜어지는 마법구들에는 저마다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게리오스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일 밤이라고?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프하하. 굳이 가르쳐 줄 이유가 있었나. 자네는 후작령만 맡으면 되잖아?”
“그래, 우린 중앙 귀족들을 제거하는 몹시 심각한 일을 맡았다고.”
앞에 놓인 7개의 수정구 중 2개에서 조롱하는 어조가 흘러나왔다.
으득.
어금니가 깨어질 만큼 꽉 깨문 게리오스가 말했다.
“조금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아아, 우리가 섭외한 공작님께서 힘을 써 주셔서 말이야. 내일이 절호의 기회란 걸 알았지.”
“그래, 끼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말게나. 자네는 우리의 퇴로를 아니, ‘위험 변수’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나. 프하하하.”
특유의 웃음소리가 게리오스를 비웃었다.
더 이상 수정구가 있는 방에 있지 못한 게리오스가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자신이 집무를 보는 공간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쾅!
“제길!”
자신을 빼 두고 침공 계획을 세우다니 그럴 순 없었다.
더군다나 침공은 자신의 영지를 시작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이미 그 모든 것이 소용없기에 게리오스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멍청한 어린 영주의 온다는 한마디에 생각 없이 기다리다가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물론, 소문과 펠리스의 보고만으로 그가 얼마나 위험한 요소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고자 기다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기다림이 어떤 결과가 되었는가.
다른 후작령을 맡았었던 6명이 내일이면 침공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로 내일이면 베론 왕국의 핵심들을 장악하고 얼마 후면 황제에게 선사할 영지를 장악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이 맡은 영지로 인해 계획이 미루어졌으나 결과가 좋았기에 그 점은 용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지금 기여도는 거의 바닥에 있을 것이다.
만약 ‘선공’조차 자신이 하지 못한다면 기여도는 완전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망할!”
우리 측으로 돌아선 공작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다.
공작을 믿을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빠르게 해결된 모양이었다.
훨씬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레이얀이 오기를 기다렸거늘.
그 후 이곳에 온 레이얀을 제압하고 그를 빌미로 후작 성의 기사들을 진두지휘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같은 왕국의 기사들끼리 싸움을 붙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기사들이 쉽사리 따를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레이얀이 필요했던 것이다. 레이얀을 제압하고 그에게 기억 마법을 걸던 강제적으로 공격 명령을 내리게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마음 놓고 기다린다면 레이얀이 직접 올 것이다. 그럼 계획이 틀어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선공’이 뺏기게 된다.
그것만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계획이 자신 때문에 늦추어진 만큼 반드시 시작은 자신에 의해 일어나야 했다.
어차피 지금 병력의 상태는 만반의 준비, 그 자체였다.
굳이 끝까지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펠리스!”
보고를 한 후 줄곧 펠리스는 게리오스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펠리스가 들어왔다. 그를 향해 게리오스가 내뱉듯이 말했다.
“지금 당장 전투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
펠리스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게리오스는 부과 설명보다 다시 명령을 전달하였다.
“내일 영주 성으로 우리가 직접 간다.”
“알겠습니다.”
간결하게 대답하고 방을 나선 펠리스가 암살자들과 기사들을 깨우는 소리가 게리오스의 귓가로 들려왔다.
이제 남은 것은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마법구가 있는 방으로 다시 돌아온 게리오스는 여전히 계획을 짜고 있는 마법구들에는 시선조차 보내지 않고 자신의 것만 들고 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마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급하게 한 연락이었기에 또 기다려야 할 것이 분명했다.
게리오스의 예상처럼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황제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갑작스레 들려온 황제의 목소리에 게리오스가 다급히 부복 자세를 취했다.
“아, 예. 내일이면 공격을 시작할 것임을 보고 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습니다.”
“오호, 알겠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보고 후 짧게나마 현재 상황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간 후 마법구의 빛이 사라졌다.
꺼진 마법구를 보는 게리오스의 두 눈은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결전의 날을 앞둔 밤은 순식간에 떠오른 햇살에 사라졌다.
좁은 호거스 여관과 달리 그 지하에는 꽤나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넓은 공간에는 100명의 두건을 뒤집어쓴 암살자들과 50명의 엑스퍼트 상급 기사들이 있었다.
50명의 엑스퍼트 상급.
일개 왕국의 후작령이 꿈꿀 수 있는 병력 규모가 아니었다.
게리오스는 그들을 살피고는 짧은 손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150명에 달하는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한곳.
루스펠드 후작의 성이었다.
꽤 먼 곳일 수도 있지만 성을 향하는 동안 커다란 마찰은 없었다.
일개 평민들은 그들의 모습에 겁부터 집어먹고 문을 걸어 잠갔다.
간혹 등장한 후작가의 기사들은 제대로 한 마디조차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아무런 막힘없이 게리오스가 후작 성의 사정거리에 들어섰다.
그러자 앞장서 걷던 게리오스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양손에 불길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성을 향해 손을 뻗자 생성된 불이 긴 잔상을 남기며 성문과 부딪혔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성채가 뒤흔들리며 성문이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다.
“너무 쉽군! 당장 영주를 잡아 와라!”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성 내부에 기사 태반이 영지 순찰을 나갔음을 알고 있었다.
150명이 순식간에 불타는 성문을 넘어 성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문 앞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갑작스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침착하게 침입자를 상대해 갔다. 국경에 접한 기사들은 항시 전투태세이기에 빠른 반응이 가능하였다.
곧이어 폭음에 의해 달려온 성 안의 기사들 또한 전투에 끼어들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뛰쳐나온 기사들 중 단연 록펠이 눈에 띄었다.
눈이 부실만큼 푸른빛이 서린 검을 막힘없이 휘두르며 적을 베어 갔다.
몇몇의 암살자들이 부질없이 죽어 갔다.
그들의 특기는 암습이지 정면 대결이 아니었기에 상대가 될 리 없었던 것이다.
록펠의 검이 막 다른 암살자를 베려고 할 때 다른 검이 끼어들었다.
챙!
록펠의 검을 막은 검 또한 푸른빛이 서려 있었다.
검을 떼고는 한 걸음 물러선 록펠이 상대를 살폈다.
그 또한 자신처럼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불사조가 새겨져 있었다.
“케, 케이안트 제국군?”
록펠이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부딪히는 병장기 소리와 게리오스가 종종 기사들을 향해 쓰는 마법 소리에 파묻혔다.
그때 록펠의 검을 막은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챙!
“윽!”
한 발짝 밀려난 록펠이 자세를 가다듬고는 상단 베기를 시도했다. 상대 또한 살짝 밀려나며 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수십 번의 공방이 오고 갔다.
그리고 드디어 기사가 빈틈을 보였다.
‘기회다!’
록펠이 눈을 번뜩이며 빈틈을 향해 검을 뻗었다.
그 순간!
“큭!”
암살자가 날린 표창이 록펠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자연스레 검로는 흐트러졌고 기사는 정비를 하였다.
정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상급이란 실력은 역시나 그 짧은 시간에 정비를 하고 찌르기를 가했다.
확연히 드러난 록펠의 목을 향해 검이 빠르게 쇄도했다.
일순간 제국 기사의 눈에 승리감이 서렸다.
“크으윽!”
챙!
몸에 남은 온갖 힘을 다해 억지로 근육 방향을 뒤틀어 검끝이 느껴지는 거리에서 간신히 막아 내었다.
처음과 달리 록펠의 검에 서린 푸른빛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오러 나이트가 아닌 다음에서야 오러 블레이드를 길게 쓸 수는 없었다.
역시나, 록펠보다 약한 다른 기사들은 눈에 띄게 성채 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실력 면도 있지만 그들이 압도적으로 패하게 된 이유는 절호의 순간에 들어오는 암살자의 공격 때문이었다.
암살자들은 빈틈을 정확히 캐치해 내고 그 틈을 향해 표창을 날렸다.
혹은 위기에 처한 기사들을 구해 내기도 했다.
암습에만 쓸모 있는 전력으로 구분되던 암살자들이 전투에서 궁수 이상의 효과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이 한꺼번에 밀리지 않은 이유는 의외의 오러 나이트들 때문이었다.
즉, 국경 기사단장들이 전투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담했더라도 엑스퍼트 상급 50명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성채로 밀려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전부였다.
오러 나이트에 이른 기사단장들 또한 상처가 여기저기 자리해 있었다.
도저히 참지 못한 테스가 막 날아온 형상 없는 불덩이를 검으로 쪼개 버리며 소리쳤다.
“크윽! 대체 무슨 목적이냐!”
“후후후, 너희 왕국이지.”
예상보다 더욱 일이 수월하게 풀리자 게리오스가 웃음을 지었다.
게리오스가 다시금 생성한 화염을 테스에게 날렸다. 이렇게 오러 나이트 5명 중 1명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봉쇄되었기에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퍼억!
타격음과 함께 마나가 서린 검이 불덩이를 갈랐다.
푹.
“큭!”
불덩이를 막느라 한순간 보인 틈으로 또다시 표창이 날아들었다.
거칠게 그것을 뽑아낸 테스가 암살자를 향해 달려들자 다시금 제국의 기사가 검을 막았다.
이런 식이었다.
게리오스는 소모전을 통해 후작의 기사들을 죽여 나가고 있었다.
본 계획은 후작가의 기사를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선공을 택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소모전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게리오스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주위의 소리가 꺼진 것 같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소리만 안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멈춘 것마냥 모두의 행동이 멈추었다.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멈출 수도 없을 것만 같던 공수도 뚝 멈추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공포가 서려 있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죽을 것이란 터무니없는 공포가 그들을 장악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모두가 겪고 있었다. 공포를 참지 못했을까?
이 어이없는 상황이 더욱 공포를 불러왔을까? 한 기사가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이, 이게 무슨?”
그 순간 그들의 귓가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먼 곳에서 아니, 머릿속에서 울리듯이 들려온 발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 발소리는 성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으며, 그것을 깨닫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성문으로 향했다.
밖이 태양빛으로 인해 밝기 때문에 성문 안은 지독하게 어두웠다. 도무지 안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장막을 찢고 나타나듯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두려움과 공포로 물든 모든 이의 시선이 향한 그곳에는 창백한 레이얀이 오롯이 서 있었다.


<『진마대제』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