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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1화)
1. 외계인 선포하다(1)


그 일은 평온하던 어느 날 갑자기 발생했다.
서울, 런던, 도쿄, 워싱턴, 상하이 등.
세계 주요 20개국 수도 위에 직경 100㎞가 넘는 거대 비행물체가 떡하니 등장했다. NASA를 비롯한 지구의 천문 시스템은 그들의 등장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일도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천일, 나이는 17세.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
누가 봐도 한국인다운 평범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그도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칠판에 적힌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UFO다!”
라고 누군가가 외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UFO?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학생들도 선생도 멍청한 얼굴로 소리 지른 학생을 바라보았다.
남수는 벌떡 일어나 놀란 얼굴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놀람은 10초도 가지 않아 반 전체로 퍼졌고 곧 전교가 들썩였다.
하늘에…… 하늘에 있는 저거 뭐야! 터무니없이 크잖아! 깜깜해! 밤이 됐어! 일식일 거야! 바보. 넌 저게 지구 그림자로 보이냐?
각종 외침이 난무하여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학생들은 잠자코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떠드는데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없는 것은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UFO? 외계 지성인의 비행물체? 이제 침략당하는 건가?
대…… 대체 뭐냐고!
선생들 중 반수 정도는 패닉에 빠졌다. ‘외계 문명의 침략으로 인한 지구 문명의 멸망!’ 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
천일은 기가 막혔다.
세상에는 가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대낮에 UFO라니.
“모두 조용! 조용!”
패닉에 빠지지 않은 선생들 중 하나가 교실에 들어와 소리쳤다.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는 머리를 감싸 쥐고 교탁 아래로 숨은 상태였다.
결국 학교는 이른 하교를 선택했다. 서울시 전역에 사이렌이 울렸다. 정부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천일은 가족과 함께 대피소에서 숨어서 TV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긴급 특보.
노바 스페이스 연맹 연합군 11함대 대표, 울라히와의 좌담회.
울라히라는 자는 서울 상공에 떠 있는 우주선의 책임자였다. 직경 100㎞가 넘는 거대 비행물체의 주인이라는 소리다. 그는 지구인과는 달리 이마에 눈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외계 종족과 첫 대면이라니, 이거…… 영광입니다.」
사회자가 인사치레를 했다.
「영광. 큭.」
울라히가 두 눈을 감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마에 있는 눈은 깜빡임 없이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꿀꺽.
사회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제일 먼저 잡아먹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행성 지구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 연합군 휘하의 요새 행성으로 거듭난다. 지구인들에게는 새로운 행성을 지급할 것인즉, 떠날 준비를 하도록.」
울라히가 말했다.
「네?」
사회자는 놀란 얼굴이었다.
「너희 같은 연약한 종족은 프로페스와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 우리는 너희들의 전투 능력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 하이퍼 드라이브도 가지지 못한 천박한 문명으로는 프로페스 전함 1척도 상대할 수 없다. 남자들은 그들의 먹이가 되고 여자들은 그들의 새끼를 낳는 기계가 되겠지. 대신, 너희들에게 지급될 행성은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보호하에 있는 안전한 후방이다. 약간 곤혹스러운 환경이긴 할 테지만 지금 너희들의 문명으로도 충분히 개척할 만한 환경이다. 표면적은 지구의 약 1.9배. 물도 산소도 충분하다.」
울라히는 독선적이었다.
「저, 실례지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지.」
사회자가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했다.
「달에 콜로니도 건설하지 못하는 얼간이 종족이 감히, 우리 로도니엘의 말에 토를 다는 건가? 죽고 싶나? 내 말 한 마디면 서울은 한 줌의 재가 된다. 핵과 같은 천박하고 저속한 무기에 안달복달하는 녀석들이 어딜 감히.」
울라히는 그런 말을 하며 사회자의 멱살을 잡았다.
「윽.」
사회자가 신음을 터트렸다.
「잘 들어라. 너희들 인간은 약하다. 과학 문명에 의존하지 않으면 강철을 벨 수도 없고. 우주 공간에서 살 수도 없고. 총알 한 방에 죽어버리는. 그런 정도의 어처구니없이 약한 하등 생물이다. 하지만 지혜를 짜내 우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그걸로 지구를 향하는 프로페스 함대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지구가 녀석들의 목적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너희들이 스스로 자멸하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알겠나!」
울라히가 소리쳤다.
이어.
사회자의 멱살을 놓고 카메라 반대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기합을 토했다.
쾅.
좌담회를 진행하는 배경에 구멍이 뚫렸다.
「내 힘의 천 분의 일도 견디지 못하는 이런 외벽에 의존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ESP도 사용할 줄 모르는 천한 것들이 감히. 힘이 없음을 탓해라. 너희들은 약하다! 알았으면 떠날 준비를 하도록.」
울라히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그냥 스슥 하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TV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몸을 떨었다. 상상치 못한 내용에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천일만은 달랐다.
‘ESP? 저거 바보 아냐. 지구인은 그런 거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해. 과학 문명은 확실히 조금 문제가 있지만.’
천일은 진심이었다.
천일은 전생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절대의 경지에 올라 광룡 카르세우스를 쓰러뜨린 영웅이었다.
그 기억에 따라 천일은 수련을 하여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커녕 소드 마스터도 아니고 그 밑의 단계 중에서도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익스퍼트 중급 정도의 수준이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었다.
“오빠, 우리 이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거야?”
여동생 연이가 물었다.
“몰라. 될 대로 되겠지.”
천일이 대꾸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지구에는 국가가 있고 국가에는 정부가 있고 국민이라면 정부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오빠, 무서워.”
연이가 천일의 소매를 잡고 중얼거렸다.
“바보.”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말았다.
다음날.
학교는 휴교이고 직장은 임시 휴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번에는 마왕이라는 자가 TV에 등장했다.
「흥. 외계인 주제에 어쩌고 어째? 인간들이여. 걱정할 것 없다. 나, 121대 마왕 로즈 마이벨은 지금까지 조용히 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두려워하고 경배하라. 음하하하. 내가 너희들의 영웅이다.」
자칭 마왕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가슴과 이름을 보면 틀림없이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워싱턴 상공에 떠 있는 UFO를 향해 날아갔다.
날아갔다. 인간 주제에.
‘헤. 하늘을 나네.’
천일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칭 마왕은 UFO에서 튀어나온 인간형 로봇 3대를 파괴하고는 물러나 사라졌다. 그 이상은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
천일은 말문이 막혔다.
다음날.
울라히가 TV에 나왔다. 그는 자신들이 지구인을 얕잡아 보았음을 인정하고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힘이 있는 자여, 우리들의 시험을 받아라. 너희들 중 한 명이라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전투 능력을 보인다면 우리들은 지구를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너희들이 모르는 기술을 제공하고 지구의 소유권을 인정하겠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가 전파를 타고 전 세계 곳곳으로 흘러나갔다. 이후 UFO들은 태평양 상공으로 이동하였다.

UFO가 등장하고 1주일.
세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일상이 재개되었다. 학생은 학교에 가고 직장인은 직장에 가고 멈춰 있던 공장 기계들이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정부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시험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새로운 터전이 될지도 모르는 행성으로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되었다는 발표를 했다.
며칠 후.
TV를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들이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시험에 관한 정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번거로운 짓을 하는구나. 외계인 녀석들 의외로 한가한가 보네.’
천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시험 정보를 훑어보았다.
튀어나오는 한숨.
하지만 천일의 눈빛은 번뜩였다. 사실 천일은 무료했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지만 공부만 잘하면 인생의 대부분을 보증받는 지구에서 전생의 기억이란 쓸데가 없었다.
천일은 전생의 대부분을 음모와 싸우며 검을 휘두르고 적을 베는 입장이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학, 물리, 화학, 역사.
그런 것들이 다 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잡는단 말인가.
다 바보 같은 짓이다. 쓸데없다. 인간은 의외로 강하고 자연은 풍요로웠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일은 간단했다. 낚시를 할 줄 알고 밭을 갈 줄 알고 검술의 경지가 높으면 살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천일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신분 구조에서 아래에 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왕이면 미녀들을 거느리며 잘난 척 살고 싶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여자들에게 가족들에게 업신여김 받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타인을 업신여기지는 않더라도 타인까지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술도 조금은 해두었다.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여차하면 죽이고 싶은 놈 한둘 정도는 죽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무대를 준비하고 그 무대에서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여 프로페스 놈들과 싸울 수 있는 전사임을 증명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준비한 간이 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참가가 가능했다.
‘간이 시험. 어떤 형식으로 벌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개망신이다. 익스퍼트 중급으로 통과할 수 있으려나. 3개월 내로 통과하면 된다니, 그 시간이면 상급까지 끌어올릴 수는 있어. 그전에 문제는 부모님이지. 허락해 주시려나.’
천일은 걱정을 품에 안고 부모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외계인이 준비하는 시험에 참가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안 돼. 안 된다. 안 돼.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니.”
어머니는 당연히 반대했다.
“여보, 조용히 좀 하구려.”
아버지가 어머니께 주의를 주었다.
“여보, 하지만…… 나는 천일이.”
어머니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외계인과 관련된 사태는 지구인이면 피해갈 수 없는 대사건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자신 있는 거냐?”
아버지가 물었다.
“네. 자신 있습니다, 아버지.”
천일이 답했다.
“하지만 학교는 가야 한다. 알았지?”
“네?”
“아버지도 관심이 있어 대충 훑어보긴 했다. 간이 시험도 쉽지 않을 거야. 통과하면 정부에서 이런저런 지원을 해 준다더구나. 하지만 떨어지면 알지?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공부.”
아버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절충안을 내놓았다.
“아버지, 하지만.”
“학교는 가야 한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상.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네.”
천일은 불만이었지만 시험을 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