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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2화)
1. 외계인 선포하다(2)
검의 경지라고 하는 것.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익스퍼트.
검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마스터.
검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랜드 마스터.
천일은 전생에 검의를 사용하는 절대의 고수였다. 검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일반적인 철검으로 검강을 이길 수 있게 된다.
그쯤 되면 허공을 밟거나 수면 위를 뛰어가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드래곤과 1:1로 맞붙어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 드래곤에 따라서는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천일은 전생에 검의를 사용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했었다.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이니 난해한 것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도달하고자 한다면 시간이 필요했다. 지구는 천일이 전생에 걸었던 세계보다 마나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질감이 달랐다.
전생의 세계에서의 마나가 물과 같다면 지구의 마나는 얼음과 같았다.
액체와 고체.
어째서 성질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모른다고 검을 수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천일은 어렵지 않게 익스퍼트 중급에 도달했다.
익스퍼트 중급이라 함은 검기를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를 말했다. 상급이 되면 검기의 크기가 변했다. 한층 단단해지고 고체화되며 떨어져 있는 물체를 벨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저러니 학교는 가야 해. 하지만 상급이 되려면 수업 시간이 아까워. 학교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한다는 거겠지. 후우. 어떻게 선생님을 설득한다. 운동부에 가입해서 적당히 실력을 보이고 사정을 설명하면 되려나. 아마 되겠지. 상황이 상황이니.’
천일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일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로 검도부, 태권도부, 육상부, 사격부를 특별활동으로 두고 있었다.
말이 특별활동이지 저기에 속한 학생들은 대회에서 순위권에 드는 것을 목표로 수업을 자유자재로 빠질 수 있었다. 공부보다 운동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중간해 보이더라도 보통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이길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특히 검도는 검도 삼배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검이나 그와 비슷한 막대를 손에 쥐면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검이 없으면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겠지만.
“검도부에 가입하고 싶다고? 학년은?”
검도부 도장에는 체구가 좋은 사내가 한 명 있었다.
3학년, 검도부 부주장 한승철.
“1학년 7반 이천일입니다.”
천일이 자신을 소개했다.
“경력은?”
“그게 말입니다. 아마 없습니다.”
“아마?”
“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검도부에 가입하기 싶긴 한데요. 간이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라 이름과 공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뭐라고? 크하하하.”
승철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제가 제일 강할 겁니다. 이 학교에서는 말입니다.”
천일이 말했다.
뚝.
승철이 웃음을 멈추고 천일을 노려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한번 훑어보고는 인상을 한번 찌푸리고는 호기 있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승철이 보기에는 개그가 따로 없었다.
“진심입니다. 뭣하면 한번 도전해 보시겠습니까? 저는 나뭇가지 하나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천일은 자신의 말이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승철이 욕설을 뱉으며 손을 뻗어 천일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야가 빙글 돌았다.
쾅.
승철이 지면을 나뒹굴었다.
“검으로 하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맨손으로는 제 상대가 아닙니다.”
천일이 말했다.
벌떡.
즉시 일어선 승철은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천일에게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도장의 한가운데.
승철은 호구를 전부 입고 죽도를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천일에게도 예비 호구와 죽도를 주고는 말했다.
“입어. 이 새꺄. 1학년짜리가 건방지게.”
승철은 머리에 열이 올라서인지 입이 험했다.
“호구를 입습니까? 제가? 죽도만 빌리겠습니다. 일격이면 끝납니다.”
천일은 그런 말을 하고는 죽도를 들고 승철의 맞은편에 섰다.
“조심해라.”
승철은 그런 말을 하고는 몇 걸음 물러서서는 지면을 박찼다.
“머리!”
승철의 목소리가 울렸다.
펑.
뭔가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천일과 승철의 위치가 바뀌었다. 승철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천일은 코웃음을 쳤다.
후두둑.
승철이 입고 있던 호구의 상의, 그러니까 갑이 산산조각 나서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제 일격, 보였습니까?”
천일이 물었다.
“아니.”
승철이 답했다.
“그것이 저와 선배의 실력 차입니다. 제가…… 아마도라고 생각하지만 검도 대회에 나간다면 우승은 보나마나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엔 흥미가 없습니다. 적으로 삼을 사람도 없고 그래서요. 노바 스페이스 연맹인지 하는 것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
천일은 그런 말을 하고는 발을 돌렸다.
“큭.”
승철이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천일의 죽도는 분명 호구갑 위를 스치고 지나갔을 터인데, 갑을 부순 것으로 모자라 갈비뼈가 두 대 정도 나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 검도부에서 최고로 강한 사람이 누굽니까? 한번 겨루어보고 싶습니다.”
풀썩.
승철이 정신을 잃었다.
“어라? 조금 심했나. 호구를 부수는 걸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천일은 입맛을 다신 후 승철을 들쳐 메고 양호실로 향했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천일은 담임에게 갔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주관하는 시험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당분간 검도부에 가입하여 수련에 집중하겠다는 말을 했다.
“네가?”
담임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사정이 있어 드러낼 수 없었지만 저는 검술에 능합니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수준이 아닙니다. 검기를 동반한 참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일은 담담하게 자신의 경지를 밝혔다.
“검기? 검기라고 했냐?”
담임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무협지나 판타지에 나오는 그 검기입니다. 원하신다면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천일은 자신만만했다.
“이거야, 원. 좋다. 가서 한번 보자. 그 검기라는 것을 네가 진짜 쓸 수 있다면. 수업에 나오라고 말할 수는 없지.”
담임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검도부 도장.
천일에게 쓰러진 부주장 승철을 대신하여 주장 강백기가 있었다. 승철에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천일은 강백기에게 이름을 말했다.
“승철을 쓰러뜨렸다는 게, 너냐?”
강백기가 물었다.
“네. 사정이 있어서. 그건 그렇고 혹시 진검 있습니까? 검기를 시현해 보이고 싶어서요. 이왕이면 물이 가득 든 드럼통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천일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검기? 검기? 검기라고?”
담임과 차이는 있지만 강백기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면 압니다. 검기가 무엇인지.”
천일은 약간 귀찮다는 투였다.
“검기라. 잠깐 기다려라. 선생님을 불러오지.”
강백기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30분 후.
검도부를 담당하고 있는 체육교사 검도 7단의 박완수 선생님이 왔다. 연령은 40대 후반으로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인상이었다.
“너로구나.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녀석이.”
박완수가 천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천일이 답했다.
“보여봐라. 여기 검이다. 백기야, 드럼통을 가져다 물을 채워라. 창고에 가면 있을 거다.”
박완수는 검도부 부장 강백기에게 지시를 내리고는 천일에게 검을 내밀었다.
길이는 1.3m 정도. 외날검으로 약간의 휘어짐이 있었다. 무게는 다소 무거운 편이었다. 검신은 두껍고 날은 예리해 보였다.
‘이건…… 좋은 검이다.’
천일은 한눈에 물건을 알아보았다.
30분 후.
준비가 끝나고 천일은 드럼통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지점에 섰다. 검을 뽑아 마나를 주입하자 푸른 기운이 검신을 타고 피어올랐다.
육안으로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무슨 기술로 베면 되나. 형질 변화를 이용한 기술은 아직 무리고. 그런 것보다는 깔끔하고 화려한 느낌인 것이 좋겠지.’
천일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검을 비스듬히 옆으로 누이고 땅을 박찼다.
“라인 컷팅(Line Cutting) 크로스(Cross)!”
천일의 외침이 울리고 십자 형태의 푸른 선이 만들어졌다.
텅.
한 번의 울림.
직후 물이 가득 든 드럼통은 십자 형태로 쪼개졌다. 사방으로 물이 튀고 드럼통 조각이 지면을 뒹굴었다.
“대충, 이 정도입니다.”
히죽.
천일은 웃으면서 검을 검집에 회수하였다.
“와하하하하하. 저거. 저거. 저거. 아하하.”
담임은 당황했는지 말은 하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 완수의 안색은 굳어졌고 백기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그렇게 천일은 검도부에 입부하였고 정식으로 수업을 면제받았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지구인을 우습게보고 있었다. 그들의 영역에서도 변경 지역이고 쓸 만한 행성도 없는 외지였다. 프로페스 함대가 지구를 전략적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는 첩보가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지구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발단은 자칭 마왕의 출현이었다. 마왕이 강해서가 아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관점으로 자칭 마왕의 전투 능력은 1만 6천 갤런이었다.
갤런은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사용하는 전투력 측정 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최대량, 소유한 에너지의 최대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만 6천 갤런.
노바 스페이스 연맹을 기준으로 하면 하급 장교 수준의 전투 능력이었다. 지구의 일반적인 성인 남성이 10갤런에서 50갤런 사이임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였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였다.
지구에는 60억이 넘는 인간이 있고 그만큼이나 있다 보면 상식을 벗어난 이레귤러가 한둘 정도는 있기 마련이었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지휘부의 인식은 그 정도였다.
그런데.
10만 단위의 전투 능력 소유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마왕처럼 언론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0만 갤런이라고 해야, 중급 장교 수준이었다.
그게 한 100명 정도.
이후.
20만, 30만, 50만, 80만, 100만.
점점 더 강한 자들이 튀어나와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도전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는 영웅 등급이라고 하는 1천만 갤런 이상의 존재가 함선마다 한 명씩 있었기에 패배하는 일은 없었지만 지구인들의 도전은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현재, 그들이 파악한 지구인 최강자의 전투 능력은 112만 갤런.
그는 자신이 지구 최강이 아니라며 지구에는 아직 자신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는 말을 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간은 아주 많이 강해질 수 있을 거라는 말도 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그에 관점을 바꾸었다. 인간이 그렇게나 강해질 수 있다면 별 볼일 없는 종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태평양 한가운데의 해저 지형을 끌어 올려 대륙으로 만들었다.
아틀란티스 대륙.
지구의 설화를 참고하여 지어진 명칭이었다. 그리고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그곳 전체를 시험장으로 할 것을 선포하였고 그들이 선발한 최강의 열두 지구인에 관한 정보도 공표했다.
검도부를 맡고 있는 교사 박완수는 틈만 나면 천일의 행동을 주시했다. 주장 강백기의 눈에는 천일이 사고라도 칠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박완수는 검도가 7단이나 되지만 검기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아지랑이가 맺히고 그것이 허공을 날아 무언가를 베어 조각낸다는 것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만 박완수의 세계가 평화로웠다.
천둥 박씨.
사연이 있어 완수의 아버지가 세운 가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문에는 검술서 한 권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책으로 대가 바뀔 때마다 필사본을 만드는 것이 가문의 업이었다.
빛살검리.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권에는 명상법이고 내용의 태반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2권은 검형에 대해 적어두고 있었고 3권은 마음가짐과 이치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검법서는 조상 대대로 적힌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구름이나 강을 베었다거나 검을 휘둘렀더니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졌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딴에는 선조들 중 누군가가 장난을 쳤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2권을 중심으로 수련하였다. 완전히 깨달은 것도 아니다. 2권에서는 절반 정도, 3권에서는 1/3도 안 되는 부분 중 이해가 되는 부분만을 골라 얼마간 활용했다. 그랬더니 검도 7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완수의 앞에 천일이 등장하여 검기를 사용하였다. 사기인가 싶어 드럼통의 단면을 살펴보거나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쿵저러쿵 물어보았지만 답은 ‘아마, 진짜겠지.’라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선언 이전에는 있을 수 없는 결론이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선언을 시작으로 숨죽이고 살던 기인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내며 외계인들의 간이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침이면 인사를 주고받는 친절한 옆집 아주머니가 알고 보니 장풍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로 남몰래 동네 치안을 지키고 있었다거나, 연약하기로 소문난 TV 여성 아이돌 가수가 알고 보니 흡혈귀와 비슷한 특이 체질로 혈액을 마시면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거나, 하는 비밀들이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최강의 12인이라며, 지구인들 중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12명에 관한 상세 정보를 공표했다.
그렇게 절대 상식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