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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3화)
1. 외계인 선포하다(3)


하지만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조용했다. UFO의 위협과 지금까지 숨죽이며 살고 있었던 기인들의 태도가 기존의 상식으로 구축된 세계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묘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완수는 천일을 예의 주시하던 끝에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늘을 날거나 장풍을 사용하거나 인간이 아니거나 하는 자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지금, 가전 검법서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는 천일에게 나아갔다.
“컷흠. 잠시 괜찮을까?”
완수가 말했다.
스르륵.
눈을 뜬 천일이 완수를 한번 바라보고는 공손하게 일어나서는 ‘네, 괜찮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이걸 읽어보렴.”
완수는 그런 말을 하며 가전의 검법서 빛살검리 1, 2, 3권을 내밀었다.
“아. 네.”
천일은 ‘빛살검리’라고 쓰여진 한국 현대어 붓글씨에 잠깐 놀랐지만 곧 마음을 수습하고 첫 장을 넘겼다.
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천일의 눈동자에 빛이 번뜩였다. 천일은 모르는 검의 이치와 깨달음이 줄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밌다. 재밌어. 검술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다니. 이거야, 원.’
천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검술의 이치를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이해했다. 천일이 전생에 살던 세계는 지구와 마나의 질감이 다른 세계였다. 마나의 질감이 다르다는 것은 마나를 다루는 법도 다르다는 뜻이다. 전생에 했던 방법 그대로 수행을 해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깨달음을 활용하여 이 세계에 맞는 검술을 창안했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뿌리가 다른 세계에서 얻은 깨달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빛살검리라는 책에는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죽은 검사의 깨달음과 지식이 적혀 있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천일은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천일은 빛살검리 1, 2, 3권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완수는 몇 번이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책에 빠져 버린 천일은 완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완수는 그런 천일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선조들의 고생은 고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완수는 빛살검리의 내용을 대수롭지 않은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할아버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대를 이어 책을 보관하고 필사하고 읽고 깨우침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모든 것은 그것이 단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이유.
용납할 수 없는 이유였기도 했다.
턱.
천일이 책을 덮었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면서.
“이거 정말 대단한 책이네요. 이거, 제가 봐도 되는 것이었는지.”
라는 말을 했다. 민망함과 미안함 그리고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천일은 보물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 없는 것 싹싹 긁어서 가지고 나온 도둑 같은 심정이었다.
“대단해? 대단한 거 맞냐?”
완수가 물었다.
“조금 보여 드릴까요?”
천일이 말했다.
“으. 응? 그. 그래. 보여줄 수 있다면 보고 싶구나.”
완수가 답했다.
“그런데 죽도나 목검으로는 조금. 진검 전에 가지고 계셨죠? 잠깐 써도 될까요?”
천일이 말했다.
“어. 그래 가져오마.”
30분 후.
천일이 진검을 들고 검도부 도장 한가운데 섰다. 관람객으로 완수와 백기, 그리고 몇몇 부원들이 있었다.
“먼저 기본이 되는 빛살검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천일이 말하며 검을 뽑았다.
우웅.
검신이 떨렸다. 이어 천일이 검으로 원을 그리자 궤적을 따라 빛살이 나타났다 사그라들었다.
“이것이 기본 형태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빛살검 발검술 문틈햇살!”
천일이 자세를 잡고 검을 휘둘렀다.
슈앙.
빛살이 번쩍 하고 검의 궤적을 따라 도장의 벽을 베었다. 대각선으로 길이 2m 폭 1㎝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멀쩡한 벽에 바람구멍이 생기고 만 것이다.
“어라? 하하. 이거 생각보다 강력한데요. 죄송합니다. 벽 부수었습니다.”
천일이 완수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하하하.”
완수는 웃었다. 천일이 보여준 빛살검과 문틈햇살이 빛살검리에 적혀 있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력은 빛살검리에 적혀 있는 설명이 더욱 강했다.
“죄송합니다. 이거 어쩌면 되죠?”
천일이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런 구멍쯤 막으면 돼. 신경 쓸 것 없다. 대신, 빛살검리에 관해 설명 좀 해 주라.”
완수가 부탁을 했다.
“네? 뭐, 그 정도라면야. 알겠습니다, 선생님.”
천일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물질이 어쩌고 검이 어쩌고 마나가 어쩌고 기(氣)가 어쩌고 도(道)가 어쩌고.
설명이 시작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완수와 앉아 있던 사람들은 머리에 쥐가 났는지 먼 곳을 바라보는 얼굴로 백기를 들었다.
분명 한국어로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천일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깨달음이라도 완수와 그 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당연했다.
천일은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빛살검리의 지은이가 그랬듯이.
그렇기에 완수들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완수도 백기도 앉아 있는 부원들 중 누구도 검에 생사를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일은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빛살검리에 관한 설명을 하게 되었다. 쏟아지는 질문들에 상세한 설명과 예제를 곁들여서.
몇 날 며칠 동안 계속되는 중노동이었다. 시간이 아까운 짓이었지만 천일은 손해라고 생각지 않았다. 빛살검리를 읽어보았고 진검도 한 자루 얻었기 때문이었다.
청살검(淸殺劍).
완수가 보관하고 있던 몇 자루의 진검 중 하나로 우연찮게 완수의 손에 들어온 녀석이었다. 날이 약간 무딘 것이 특징으로 절삭력은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천일은 만족했다. 고수는 검을 탓하지 않는 법이고 청살검은 그리 나쁜 검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천일의 눈에는 그랬다.


2. 라이벌 출현?(1)


태권도부 도장.
천일이 검도부에 쳐들어갔다면 태권도부에는 재운이 있었다. 자칭 실전 태권도 스트리트 파이터로 태권도 부원 전체를 1분도 걸리지 않아 쓰러뜨렸다.
재운은 천일과는 달리 전생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싸움을 했을 뿐이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노인을 만나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
스포츠로써의 태권도가 아니다.
적과 싸우고 쓰러뜨리고 죽이기 위한 태권도였다. 그랬기에 대회 같은 것에는 나갈 수 없었지만 불량한 양아치나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유단자들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하고는 했다.
나이나 성별을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족했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도 고수들은 재운을 꼬마 취급하며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고 조금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싸움을 피했다. 그래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차였다.
양아치나 사범 자격이 없는 유단자 정도로는 기분이 차지 않았다.
더 강한 자와 싸우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강림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기회였다. 재운은 이것이 바로 기회라며 자신도 시험에 응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천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검기를 사용하여 벽을 벤다?
고수였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몸 풀기로 태권도부에 들러 태권도부 부원들을 쓰러뜨렸다.
“그럼, 슬슬.”
재운은 태권도부 도장을 나서 검도부 도장으로 향했다.
마침 천일은 검도부 도장 구석에서 빛살검리를 수련하고 있었다. 새로 얻은 깨달음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텅.
“천일이라는 놈 있나? 도전하러 왔다!”
재운이 주먹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
검도부 도장에 있던 부원들은 미쳤냐는 얼굴로 재운을 바라보았다. 검기를 사용해 벽을 베어내는 인간에게 도전? 바보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재운은 상관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원에게 달려들어서는 발을 날렸다.
슈슈숙, 연속 3번.
2번의 발차기로 죽도가 부서지고 마지막 한 번의 발차기가 호구갑에 명중했다. 콰직 하는 소음이 울리며 호구갑이 움푹 파였다.
“빨리 나와. 겁먹은 건 아니겠지?”
재운이 말했다.
“호오.”
짧은 감탄사를 뱉은 천일은 알겠다며 재운의 앞에 섰다.
“너냐?”
재운이 물었다.
“내가 천일인데, 나에게 도전?”
천일이 답했다.
“문답무용!”
재운이 천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점프를 뛰어 5연속 발차기! 위력은 멀쩡히 들고 있는 죽도를 산산조각 낼 정도였다.
빡.
천일의 죽도가 재운의 이마를 후려갈기는 소리였다.
“끄악.”
괴성을 지른 재운이 뒤로 물러나서는 이마를 움켜잡았다.
“무턱대고 덤벼들다니. 뭐야? 갑자기.”
천일이 중얼거렸다.
“헤헤.”
“웃어?”
“그래. 바로 이거야.”
“뭐?”
“이런 걸 원했어!”
“…….”
“하압!”
재운이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재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바뀌었다. 무쇠 같은 느낌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 그런데 무언가가 바뀌었어. 혹시 이게 빛살검리에 적혀 있던 기를 활용하여 강화한다는 거? 그렇다면.’
천일은 그런 생각을 조심스레 죽도를 치켜들었다.
“질풍!”
재운이 놀라운 속도로 달려들어서는 한 번의 발차기를 날렸다. 천일은 가까스로 그것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고 재운은 간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연속해서 앞차기, 찍기, 옆차기, 돌려차기, 앉아 다리 후리기 등을 시전하며 달려들었다.
슈캉.
순간적으로 그런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재운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천일은 찌르기 자세를 하고 있었고.
없는 빛살 천둥.
빛살검리에 적혀 있는 기본 3검 중 찌르기였다. 죽도로 시전한 만큼 날카로움이 없어 몸이 뚫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충격이 재운의 몸을 강타했다.
“크.”
재운이 바닥을 뒹굴며 신음을 토했다. 하지만 10초도 지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맷집 좋구나.”
천일이 중얼거렸다.
“하압.”
재운이 자세를 잡았다.
“어이, 무슨 짓을.”
천일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멧돼지 멱살 찌르기!”
재운이 주먹을 내질렀다. 겉모양만 보면 그냥 정권 찌르기였다. 그런데 쿠앙 하는 소리가 울렸다.
‘소드 실드(Sword Shield)!’
천일이 급히 목도를 가로누이며 기술을 전개했다. 검을 중심으로 검기의 막을 만들어 물리적―마법적 충격을 막아내는 기술이었다.
쾅.
폭음이 울리고 소드 실드가 부서지고 죽도가 부서졌다.
“헤헷. 어떠냐. 이것이 이 몸의 필살기! 멧돼지 멱살 찌르기다!”
재운이 잘난 척을 했다.
“했겠다.”
천일이 중얼거렸다.
“뭐?”
“했다, 이거지. 좋아.”
“죽도 들 시간 정도는 줄 테니, 그렇게 열 내지 말라구. 이제 시작이야. 우리의 승부는!”
재운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하지 않아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좋아. 죽지마라. 너.”
천일은 그런 말을 하고는 손잡이만 남은 죽도를 앞으로 뻗었다. 그러고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으며 외쳤다.
“구름햇살!”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한 날. 가끔 우리는 먹구름의 틈을 타고 쏟아지는 빛살을 볼 때가 있다.
마치 그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빛살 기둥이 쏟아졌다. 개수는 3개. 그에 재운이 위기를 느끼며 서둘러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