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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5화)
2. 라이벌 출현?(3)


잠시 후.
재운은 오뚝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 이하의 모든 부위가 밧줄로 꽁꽁 묶인 뒤, 또 묶이고, 칭칭 감겨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 그럼 이 머저리를 어디다 좀 묶어놓고 올까. 하루나 이틀 정도로 죽지는 않을 테고.”
천일은 재운을 들쳐 메고 검도부 도장 뒷문을 나섰다. 거기에는 작은 숲이 있었다. 재운은 대충 아무거나 택해 재운을 매달아놓고 그 앞에 푯말을 꽂았다.

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풀어주는 것도 금지!
―이천일.

이라는 내용으로.

밤.
인간에게는 손과 발 말고도 이빨이라는 훌륭한 원시적인 흉기가 존재한다. 정신을 차린 재운은 한동안 버둥거렸지만 곧 상황을 파악하고는 고개를 숙여 밧줄을 물었다.
근성과 오기, 인내와 끈기 그리고 재능.
끈질기게 밧줄을 이로 갉아내던 재운은 우연히 이빨을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드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천일은 오늘도 등교하자마자 검도부 도장에 왔다. 언제나 그렇듯 구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마나 써클을 단련하며 빛살검리에 적혀 있는 깨달음을 떠올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다.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이상한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빛살검리는 하나의 검술을 3권의 책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원리가 1권, 형태가 2권, 마음가짐이 3권.
3권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내용이 갈라지는데, 전반부는 검을 대하고 적과 싸우는 데 있어 검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에 관한 내용이었고, 후반부는 엉뚱하게도 검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검의.
검에 의지를 담아 베고 싶은 것만을 베어내는 최고의 원리이자, 검기와 검강을 거쳐 도달하는 궁극이었다.
빛살검리에는 어디에도 소드 마스터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관한 설명이 없었다. 천일이 이전에 살았던 세계와 마나의 질감이 다른 만큼, 소드 마스터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가 없다고 해도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3권 후반부에는 빛살검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검의가 설명되어 있었다.
때문에 천일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지 않아도 검의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았다.
‘모르겠어. 그저 검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이치를 설명해 두고 싶었던 걸까? 그건 1권 머리말에 적혀 있는데.’
천일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시간이 흘러, 오후.
천일은 여전히 마나 써클을 단련하며 빛살검리에서 얻어낸 깨달음들을 떠올리며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재운을 생각했다. 이 시간이 되면 꼭 나타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쾅.
때마침 검도부 도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천일, 나와 이 자식아! 넌 오늘 죽었어. 비겁하게 이 몸이 무서우니까, 밧줄로 묶어서는 나무에 매달아놔? 남자 맞냐? 치졸하고 비열한 자식아. 다리 사이에 있는 그거 떨어지게 만들어주마.”
재운이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다.
‘오늘은 조용할 줄 알았더만.’
천일은 진심으로 귀찮았다. 매번 지면서 왜 저렇게 덤벼드는 걸까? 살인죄를 쓰더라도 죽여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에야 말로 네 제삿날이다. 네 덕분에 터득한 새로운 기술로! 이 승부에 마침표를 찍어주마! 이천일.”
재운이 소리쳤다.
번뜩.
새로운 기술이라는 말에 천일이 눈을 떴다. 놀라서?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재운의 차림새를 보고는 곧 흥미가 사라졌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헤드기어와 국부 보호대.
어제와 완벽하게 똑같은 차림새였다. 말과는 다르게 두들겨 맞을 준비가 충분히 된 모양이었다.
“…….”
천일은 말하기도 싫었다.
“나오지 않겠다면, 좋아. 이 몸이 신기술을 보여주마.”
재운이 그런 말을 하더니 다짜고짜 천일을 향해 덤벼들었다.
“멧돼지 같은 놈.”
천일이 중얼거리며 재운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슬금슬금 위치를 바꾸어 재운을 피해 검도부 도장을 빠져나왔다.
“멧돼지? 네가 지금 멧돼지라고 했냐? 비열한 자식아! 너 거기 안 서! 서!”
아니나 다를까, 재운이 천일을 따라나왔다.
그리고 엎치락뒤치락.
오늘도 검도부 도장 앞뜰은 지형이 바뀌었다. 결과 역시 어제와 같았다. 천일은 서 있고 재운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자, 그럼 오늘은 묻어버리자.”
밧줄로 묶어서 하루도 버티지 못했으니 묻으면 적어도 하루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었다.
검도부 도장 후문에 위치한 숲.

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구해 주는 것도 금지!
―이천일

푯말 하나가 재운의 머리 옆에 꽂혔다.
탁탁.
손을 턴 천일은 ‘그런데 무슨 신기술을 터득했다는 거지?’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겼으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천일은 어제 재운을 묻었다. 죽으면 곤란하니 얼굴은 묻지 않았지만 그 이하는 전부 땅에 묻었다.
그래서 하루는 조용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운은 나타났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나타나서는 천일에게 시비를 걸었다. 결과는 어제와 같았다.
오늘 재운은 밧줄로 묶인 뒤, 땅에 묻혔다.
작업을 끝낸 천일은 조금 지나쳤다 싶었지만 재운의 끈질김을 떠올리고는 ‘이 정도는 해둬야지.’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도 다음날은 조용했다.
밧줄에만 묶였거나 땅에만 묻혔을 때와는 달리 손도 발도 꼼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운은 묻힌 채였다. 정말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죽었냐?”
천일이 재운에게 와서는 물었다.
때는 저녁.
재운은 만 24시간 이상을 묻혀 있었다.
“살아 있다! 이 비겁한 자식아.”
재운이 소리쳤다.
“팔팔하구나. 죽어 가면 꺼내주려고 했는데, 내일 보자.”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재운은 밧줄에 묶였기에 효과적인 이빨 사용법을 깨달았고 땅에 묻혔기에 기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밧줄에 묶인 뒤 땅에 묻히니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천일. 이 빌어먹을 녀석! 반드시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재운이 이를 악물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대로 시도하고.
실패, 실패, 실패의 연속.
다음 날, 늦은 오후.
천일이 삽을 들고 나타났다. 나른한 얼굴로 풀어줄 테니 내일 다시 도전하러 와도 좋다고 말했다.
“꺼져! 빌어먹을 자식아. 네 손에 구원받느니, 죽어버리는 게 낫다!”
남자의 오기란 걸까? 재운은 심하게 지쳐 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너, 진짜 튼튼하구나. 아직도 팔팔할 줄이야.”
천일은 질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벗어나기만 해봐. 네놈을 철사에 묶은 뒤 밧줄로 묶어 땅에 묻어주마!”
재운이 소리쳤다.
“아, 그래.”
천일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매점에 가서 피자빵을 사왔다. 조금 전에 구워져서 냄새가 아주 좋았다.
“이, 이 자식!”
재운이 분함에 소리쳤다.
“먹고 싶냐?”
천일이 물었다.
“우, 웃기지 마. 배 안고파. 맛없는 피자빵 따위, 너나 많이 처먹어라.”
재운의 오기는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아, 그래.”
천일은 재운이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맛있게 피자빵을 먹어주었다.
그리고는 퇴장.
재운은 오늘도 밤새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 밧줄만 없었더라도, 땅에 묻히지만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텐데…… 정말이지 분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벗어나기만 하면 천일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시 해가 지는 저녁.
천일이 왔다. 오늘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냄새가 정말 죽이는 크림빵과 우유를 몇 개 가져왔다. 잔뜩 가져와서는 재운 앞에서 하나씩 먹어치웠다.
꿀꺽.
재운이 침을 삼켰다.
“먹고 싶냐?”
천일이 물었다.
“머, 머, 먹고 싶지 않아. 이 멍청아! 네놈이 주는 것 따위, 내가 먹을 것 같냐? 죽어버려! 이 비열한 자식아!”
재운이 소리쳤다.
“너, 진짜 굉장하구나. 며칠째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했을 텐데. 소리도 지르고.”
천일은 그런 말을 하고는 재운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우유를 하나 열어 재운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
재운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천일이 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라도 먹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하아.”
천일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우유를 한쪽에 내려놓고 물러갔다. 재운의 기력이 떨어져 정신이라도 잃으면 구해 주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하늘이 재운을 도왔는지, 비가 왔다. 버둥거리다 지친 재운은 때마침 쏟아지는 빗물로 배를 채우고는 기운을 얻었다.
그러고는 오늘도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인간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깨달음을 얻는 모양이었다. 재운은 실력을 한 단계 상승시켜 줄 무언가를 손에 넣었다.
털썩.
하지만 기력이 다했다. 재운은 지면에 누워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천일에게 덤비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가다듬은 후에 하자고.
천일이 그동안 봐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 버리고 만 것이다.
보름 후.
재운은 천일에게 도전하기 위해 검도부 도장을 찾았다. 언제나 구석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천일이 오늘은 없었다.
그래서 검도부 부원들에게 천일의 위치를 물었다.
“천일? 아, 걔. 이제 됐다면서 시험 보러 갔어.”
부원들 중 하나가 답했다.
“시험?”
재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서 주관하는 그거.”
“……!”
“며칠 됐어.”
“이, 이 자식! 뭐가 어째? 비열하고 치졸하고 재수없는 자식이. 감히 이기고 도망쳐? 크아아아! 용서 못해!”
재운은 있는 힘껏 분노했다. 그러고는 검도부 도장을 떠났다. 천일을 찾아내 다시 한 번 승부를 청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절대로 이길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