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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6화)
3. 대기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틀 로얄(1)
계울역.
계울시는 서울에서 전철로 1시간 30분, 버스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 경기도 변두리에 위치한 소도시였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간이 시험 한국 지부가 있는 곳으로 때 아닌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이었다.
“사람 많네.”
천일이 중얼거렸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간이 시험 한국 지부가 들어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계울시에 몰려들었다. 지구인들을 약하다며 자격 운운하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 간이 시험에 사람이 이렇게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간이 시험.
진짜 시험이 아니다. 진짜 시험을 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하는 면접 같은 것이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간이 시험에는 두 가지 합격 기준이 준비되어 있었다.
실력과 가능성.
실력은 지금 당장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고 가능성은 DNA 검사를 뜻했다.
개인의 DNA를 검사하여 그들이 정한 기준 이상의 강함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본격적인 시험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각 나라 정부는 응시자를 늘리고 미래를 위해 UN과 동조하여 기사 자격 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다.
기사(Knight).
한국을 기준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면접에 합격한 자를 갑종 기사라고 했고 가능성을 인정받아 면접에 합격한 자를 을종 기사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7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봉급과 면책특권,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프리패스 여권 등이 지급되었다. 하나하나가 파격적인 것이었다. 사람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발 디딜 틈이 없네. 에휴.”
천일은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크리스마스의 명동거리도 아니고 진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어쨌든 간이 시험을 보러 왔으니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대기번호 8,912번. 현재 진행 중인 숫자는 5,211. 대기표가 파기되거나 소유자가 계울시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대기자 명단에서 이름이 빠져?’
천일은 대기소에서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간이 시험을 보기 위해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는지라, 정부는 간이 시험 대기소라는 것을 만들었다.
대기소에는 발을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이상입니다. 그 외 주의사항은 준비되어 있는 책자를 참고해 주세요. 그럼 다음.”
대기소 직원이 말했다.
“네.”
천일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기가 무섭게 다음 사람이 천일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한 가닥 희망을 건 사람들이었다.
‘후우.’
밖으로 나온 천일의 손에는 소책자가 들려 있었다.
소책자에는 간이 시험의 절차, 긴이 시험을 통과했을 때 주어지는 특수한 신분 등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말썽을 피우는 사례에 관한 설명과 함께 민주 시민으로서 질서를 지킵시다, 라는 문구도 있었다.
‘보아하니 싸움도 일어나는 모양이네. 하기야,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니. 조금이라도 빨리 시험을 치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천일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익스퍼트 상급에 도달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검술도 늘어났다. 그것들을 모두 활용하면 어지간해서는 지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떤 놈이지 몰라도 시비를 걸면 혼구멍 내주겠다는 생각 말이다.
“문제는…… 돈인데. 아버지께 전화해서 이야기를 해둘까. 반대하면…… 음. 그땐 그때겠지.”
천일은 핸드폰을 꺼냈다. 계울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먹고 마시려면 돈이 필요했다.
“아버지? 응? 어. 응. 열심히 할게. 떨어질 리는 없어. 응. 자만 같은 거 아냐. 알았어.”
달칵.
통화는 간단했다. 아버지도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계울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간이 시험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쾅.
갑작스레 충격음이 울렸다. 천일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고 거기에는 남자 하나가 피를 흘리며 건물 벽에 기대어 있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날려져서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충격음이 날 리 없었다.
‘무, 무슨 일이?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는 않아. 구급차를 불러야 할까?’
천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내를 예의 주시했다. 망설이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 사내를 데려갔다.
“부를 필요는 없나 보네.”
천일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다. 겁을 먹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이후.
천일은 먼저 현금지급기로 가서 돈을 인출하고 숙소를 잡기 위해 돌아다녔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확은 제로였다. 호텔이고 모텔이고 여인숙이고 여관이고 방이란 방은 전부 임자가 있었다.
‘노숙…… 지구에서 노숙을 해야 할 줄이야. 썩을.’
천일에게 노숙은 낯선 단어가 아니었다. 이전의 삶에서는 이가 갈리도록 노숙을 했다. 그래서 도구를 구매했다.
마트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해가 졌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있었다. 이따금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낮에 비할 수는 없었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 골목의 건물과 건물 사이.
천일은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포를 깔고 그 위에 앉았다. 식사는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과 음료수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라면 같은 것을 먹고 싶었지만 그런 것을 먹다가 적이라도 나타나면 선수를 빼앗길 우려가 있었다.
간단하고 재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야! 저 새끼 잡아!”
퍽퍽, 쿠쿵.
“으악.”
“크어헝.”
“오호호호.”
“꺄아악.”
“아― 우우우.”
갖가지 소음이 시간을 두고 천일의 귀를 파고들었다. 여기저기서 싸움 같은 것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 묘했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는 그렇다 치고. 늑대 울음소리? 호랑이 포효 같은 소리도 있는 것 같은데. 새소리도 나고. 농담이겠지? 아닐 거야. 동물원도 아니고.’
천일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부정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궁금해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적이 무기를 들고 덤비거나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한다면 모를까, 멀리서 총을 사용한다면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쾅.
근처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는지 땅이 흔들렸다.
“이거…… 안 되겠는데.”
결국 천일은 일어났다. 근처에서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난 듯했기 때문이었다. 준비 없이 당할 수는 없었다.
팔락.
천일은 청살검을 감싸고 있던 보자기를 풀었다. 전투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였다.
골목의 입구.
천일이 있던 곳은 기역자 형태의 골목에서 모퉁이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천일이 그 모퉁이를 돌자 거리가 보였다. 그리고 골목의 입구에는 갈색 체크무늬 양복 마이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새하얀 색의 굳어 있는 얼굴.
가면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천일은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는 천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에 검을 들고 있군요. 검도 유단자 나부랭이 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배지를 잃어버린 겁니까? 어쨌든 당신. 대기표를 가지고 있군요. 스스로 파기하고 돌아간다면 봐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싫다면?”
“싫다면 목숨까지 빼앗지는 않겠지만 팔이나 다리 하나는 없어진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남자는 그런 말을 하고는 낮게 자세를 잡았다. 언제 뽑았는지 양손에는 단검이 한 자루씩 들려져 있었다.
“해봐. 무리일 테지만.”
천일도 청살검을 뽑았다.
스걱.
천일은 반사적으로 청살검으로 빛살검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남자는 매우 빠르게 덤벼들고 있었고 그런 탓에 천일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펑.
남자의 모습이 잘려진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뭐야?’
천일은 순간 당황했다. 손의 감촉으로는 보면 살짝 벤 정도였다. 그런데 남자는 양쪽으로 분리되는 것처럼 나누어져서는 사라졌다.
‘위?!’
천일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거기에는 남자가 두 자루의 단검을 무기 삼아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소드 임팩트!
천일이 새롭게 얻은 검술을 사용했다.
쾅.
충격음이 울리고 충격이 주변을 흔들었다. 그에 하늘에서 떨어지던 남자의 모습이 부셔져 사라졌다.
그리고 가루 같은 것이 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저쪽에서 소리가 났다!”
“잡아!”
“놓치면 안 돼!”
소란스럽게 사내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골목 입구에 4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손에 야구방망이나 각목, 쇠사슬 따위를 들고 있었다.
“조져 버려!”
사내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들은 조금 전 등장했던 사내와는 달리 무척이나 평범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소드 임팩트!
천일이 검을 한번 휘두르자 강력한 충격파가 녀석들을 날려 버렸다.
“뭐야?”
천일이 시답잖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골목을 벗어나니 남녀 한 쌍이 천일에게 다가왔다.
‘또냐!’
천일은 질린다는 듯이 검을 치켜들었다. 문답무용으로 덤빈다면 문답무용으로 날려 버릴 뿐이었다.
“응? 아니다. 달라. 배지가 없다.”
남자가 그런 말을 하면서 걸음을 멈췄다.
“아냐?”
여자가 물었다.
남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였고 여자는 천일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둘은 천일을 앞에 두고 천천히 천일을 뜯어보았다.
“덤빌 거냐?”
천일이 물었다.
“너, 소속은?”
소녀가 물었다.
“소속?”
천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소속 어디야? 빨리 말해. 시간 없어.”
소녀는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천일은 황당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되도록 침착하게 ‘그런 거 없어. 소속이라니, 무슨 소리야?’라고 물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남자가 말했다.
“진짜? 진짜야? 명진 아저씨. 다시 한 번 살펴봐.”
소녀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남자에게 물었다.
끄덕.
“야, 너 진짜 소속 없어? 스승 같은 것도?”
소녀가 천일에게 질문을 했다.
“없어.”
천일이 답했고.
“확실히. 거짓말이 아니다.”
명진이라고 불린 아저씨가 답했다.
“아, 그래. 그럼 됐어. 진짜 소속도 없는 것이 이 밤중에 이런 곳에서 뭐 하는 거야. 애써 달려온 보람이 없잖아.”
소녀가 화를 냈다.
“…….”
천일이야 말로 기가 막혔다.
“야, 너. 이런 곳에 얼쩡거리지 말고 집에 가. 보통 사람이 밤중에 돌아다니면 죽어.”
소녀는 꽤나 건방졌다.
“집? 나 간이 시험 볼 건데? 대기표 발급받았어. 노숙할 거야. 호텔이고 모텔이고 전부 방 차서. 갈 데가 없어.”
천일은 화내고 싶은 기분을 꾹 참았다.
“하아.”
소녀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고는 품에서 포스트잇 한 장을 꺼냈다. 그걸 받으라는 듯 내밀고는 입을 열었다.
“이리 가. 오늘 밤은 지낼 수 있을 거야. 내일 밤에는 이런 호의 베풀지 않을 테니, 얼쩡거리지 말고. 지금 이 동네의 밤은 보통 사람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해. 알았지?”
“…….”
천일은 어이가 없었지만 소녀가 주는 포스트잇을 받았다. 노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뭘까 싶었다. 소속이라니? 게다가 둘은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리고 말이야. 혹시 이 근처에서 울린 폭발음 같은 거, 그거 뭔지 알아?”
소녀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천일이 소속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기대는 없어 보였다. 이에 천일은 잠깐 고민했지만 쓸데없는 일에 머리를 들이밀기로 결정했다.
“내가 했어.”
“네가?”
소녀의 눈이 커졌다.
소드 임팩트!
천일은 허공에 대고 기술을 시전했다. 충격파가 주변을 흔들고 폭발음과 비슷한 충격음이 울렸다.
“크윽.”
명진이라고 불린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반보 물러났다.
“윽.”
소녀도 조금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 걸음 물러났다.
“이 소리였지.”
천일이 말했다.
“위험하잖아! 무슨 짓이야!”
소녀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아, 미안. 이거 범위가 생각보다 넓네. 하하.”
천일은 웃고 말았다.
“하아.”
소녀는 맥 빠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명진 아저씨를 노려보더니 인상을 구겼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야. 쟤 소속 없는 거 맞아? 거짓말 아냐?”
소녀가 물었다.
“소속이 없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지 그 여부일 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까지는 모른다.”
명진이라는 아저씨가 말했다.
“하아. 말을 말아야지. 가요, 아저씨.”
소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명진의 옷자락을 잡았다. 천일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눈으로 배웅하고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뭘까? 하면서.
그리고 천일은 걸음을 옮겼다. 잘은 모르지만 포스트잇에 적힌 곳으로 찾아가 볼까 생각한 것이다.
xx 호텔 1032호.
문제가 발생했다. 천일은 포스트잇에 적힌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걸까? 택시를 타면 간단하겠지만 도로에는 달리는 차가 없었다. 택시든 자가용이든 버스든. 도로를 달리는 것은 어떤 종류도 없었다.
결국 천일은 귀찮은 관계로 그냥 노숙을 하기로 했다.
골목으로 들어가 모포를 깔아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모포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천일의 물건들을 슬쩍 집어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