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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7화)
3. 대기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틀 로얄(2)


빠직.
천일은 혈압이 올랐다.
진심으로 이게 뭐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골목을 나와 걸음을 옮겼다. 편의점에 들러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아, 거기요. 거기는요.”
편의점 점원은 상냥하게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거리.
수많은 가로등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굉음이 울리긴 했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다 불쑥.
천일은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 순간적으로 걸음을 빨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
천일은 다시 등 뒤에서 살기를 느꼈다. 이전의 삶에서 단련된 위기 감지 능력은 명중률이 매우 높았다.
스슥.
천일은 다시 한 번 옆으로 이동하여 곁눈질로 자신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히죽.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히죽 웃고는 단검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천일은 즉시 검을 휘둘러 소드 임팩트를 시전했다.
쾅.
굉음이 울리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휘리릭.
검은 그림자는 공중제비를 하여 뒤로 물러났다. 그에 천일은 적을 바라보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무언가가 있었다. 눈과 입 정도는 검지 않았다. 허깨비 같기도 했다.
“넌, 뭐냐?”
천일이 물었다.
“그냥 죽어!”
그것은 그런 말을 하고는 천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일은 침착하게 청살검을 휘둘러 공격을 막고 빛살검을 사용하여 그것을 베어냈다.
서걱.
손에 감촉이 있었다. 빛살검이 만들어낸 선을 따라 붉은 피가 솟구쳤다.
“크아악. 이 자식!”
그것은 분하다는 듯 소리치고는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대체 뭐야? 아까부터. 이상하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천일은 굉장히 의아했지만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적었다.
휘이익!
돌연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천일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조금 전에 베어낸 허깨비 같은 녀석이 있었다.
‘설마 동료를 부른 거?’
천일은 일단 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면을 박찼는데 몇 걸음 가지고 못하고 배후에서 몰려오는 살기를 느껴야만 했다.
소드 임팩트!
천일은 뒤로 몸을 돌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허깨비 같은 것 세 개가 주르르 밀려났다.
“기습하면 이길 수 있을 줄 아냐? 오냐. 싸워주마. 덤벼!”
천일이 그렇게 말하며 살기를 드러냈다.
전투는 동이 틀 무렵이 돼서야 끝났다. 천일은 그들 하나하나를 압도 하였지만 그들은 수가 많았다.
없애면 또 나타나고 없애면 또 나타나고.
어쨌든.
아침이 되니 천일은 휴식을 취할 수가 있었다. 거리는 금방 사람들로 메워졌고 밤에 있었던 굉음이나 비명,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평온한 일상.
천일은 조금 쉬고 싶었다. 밤새 설친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미친 척 포스트잇에 적힌 곳으로 가볼까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2개의 세력이 있으면 중간지대가 있는 법.
주희는 한국 여자 양궁 국가 대표 후보로 국궁을 수련한 활의 고수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훌륭한 스승과 좋은 집안을 배경으로 재능을 키웠다. 올림픽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고 동료들조차 적수가 아니었다.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선배들뿐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출현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올림픽에 나가 공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유 있고 느긋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였는데, 바뀌고 말았다.
xx 호텔 1032호.
주희가 머물고 있는 방이 다섯 개의 스위트룸이었다. 천일은 그렇게 돌아다녀도 방을 잡을 수 없었지만 세상에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딩동 딩동.
벨이 울렸다.
“다녀왔어.”
혜미가 왔다.
마법사로 마법 목소리의 친구였다. 중간지대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주희와는 다르게 빛의 진영에 속해 있었다.
공손한 목례.
혜미의 파트너 명진이 뒤를 이었다.
“잡았어?”
주희가 물었다.
“허탕이야. 미꾸라지 같은 놈. 흡혈귀면 흡혈귀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란 말이지. 아, 짜증나.”
혜미가 성질을 부렸다.
흡혈귀라고 하면 대개 어둠의 진영에 몸을 담고 있었다. 빛의 진영에서는 적이었다. 혜미는 녀석을 치기 위해 빛의 진영을 선택했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다.
“손님은?”
명진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고 보니 한 명 안 왔어?”
혜미가 말을 보탰다.
“온 사람 없어. 누구 보냈어? 어떤 사람인데?”
주희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에 명진이 안으로 들어와 스케치북에 천일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만 가지고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귀엽게 생겼네. 솜씨는?”
주희가 천일의 초상화를 들고 물었다.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보통은 아냐. 검기도 사용할 줄 모르면서 검 들고 설치는 얼간이들과는 레벨이 달라. 자세한 건 언니가 직접 확인해. 잘 되면 밥이나 사.”
혜미는 귀찮다는 투였다.
“그래? 그런데 제대로 알려주긴 한 거야? 밤에 아무도 안 왔어.”
주희가 물었다.
“제대로 알려줬어. 포스트잇에다 적어서.”
“하아.”
“웬 한숨? 그거면 됐지. 뭘 더 바라. 우린 바빴다구.”
“그래그래.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찾아볼게. 초상화가 있다면 사람 하나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니.”
주희가 한발 물러났다.
딩동.
벨이 울렸다.
“이제 왔나 보네. 어이없어.”
혜미가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다.”
주희가 희망사항을 말하며 현관으로 갔다.
“저, 소개를 받아서 왔습니다. 좀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누가 좀 덤벼서 상대해 주다 보니. 하하.”
천일이었다.
“몇 살?”
주희가 물었다.
“열일곱 살입니다.”
천일은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상대가 묻는 것이 대답을 해 주었다.
“열일곱? 혜미랑 동갑이네. 나는 열아홉이야. 주희라고 해. 들어와.”
주희가 말했다.
“아. 예.”
천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혜미는 또 누구?’라고 생각하며 주희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밤에 만났던 소녀와 명진이라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양반은 못 되는구나.”
소녀, 혜미가 중얼거렸다.
“하하.”
명진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런데 누구랑 싸운 거야?”
혜미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천일은 간밤에 상대했던 허깨비 같은 녀석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혜미와 명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것과 싸우며 아침까지 견뎌냈다고? 어이없어. 좀 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혜미는 기가 막혔다.
천일이 상대한 자는 허무라는 특성을 손에 넣은 흡혈귀 마욱선이라는 남자였다.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껄끄러운 특성을 가진 자였다.
“천일이랬지? 내 이름은 혜미. 임혜미. 잘 부탁해.”
혜미가 씨익 웃으며 천일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 응. 나는 천일. 이천일.”
천일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혜미가 청하는 악수를 받았다.
“밤새 싸웠다면 피곤하겠군, 씻고 뭐라도 먹고 쉬게.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는 것이 좋겠군.”
보고 있던 명진이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천일이 말했다. 그리고 주희는 천일에게 방 하나를 주고 식사를 준비했다. 천일은 호의에 감사하며 휴식을 취했다.
오후 2시.
잠에서 깨어난 천일은 2시간 정도 명상을 통해 마나 써클을 단련했다. 마음 같아서는 남은 시간 전부를 수련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기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주희, 혜미, 명진 그리고 여자애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천일이 나오자 이야기를 멈추고 자리를 권했다. 그들도 천일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새벽 2시까지.
명진과 혜미는 해가 떨어지자 밖으로 나갔고 천일은 주희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천일이 만난 적들에 관한 정보부터 해서,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주 옛날부터 시작되었던 빛과 어둠의 전쟁에 대한 내용, 외계인들의 시험에 관한 내용, 주희 자신에 관한 이야기 등등.
천일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들이었다. 충격이 연달아 뒤통수를 때렸다. 나중에 가서 주희는 천일에게 팀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주희에 의하면 노바 스페이스 연맹 시험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되는 온라인 게임 같은 느낌의 것이었다.
그들이 만든 도시가 있고, 그들이 풀어둔 괴물이 있고, 그들이 준비해 둔 퀘스트가 있고, 그들이 준비한 보상이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었다.
천일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외계인, 너네 정말 한가하구나. 별짓을 다하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희는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생활을 위해서는 혼자보다 여럿이 낫고 그렇다면 자신이 대장이 되어 팀을 이끄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천일은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주희의 생각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다만 누군가의 부하가 될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깨달음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잘난 척하는 외계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친 주희는 천일의 실력이 궁금하다며 대련을 신청했다. 혜미에게 대단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천일에게는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이전 삶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인 지구의 강자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텔의 옥상.
보통 때에는 출입금지였지만 혜미가 한마디 하자 바로 열어주었다. 나름대로 지위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양측의 거리는 5m 남짓.
옥상은 운동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넓었다. 천일이 청살검을 뽑아 자세를 취하고 혜미는 각궁을 꺼내 들었다.
명인의 손에서 만들어져 특별한 힘이 부여된 녀석으로 진천궁(眞天弓)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떨어져서 시작해도 돼. 너무 가깝지 않아?”
천일이 말했다. 활을 쓰는 사람은 근접전에 약하기 때문이고 검을 쓰는 사람은 근접전에 강하고 원거리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래도?”
주희가 의문을 표했다. 동시에 주희가 12명으로 늘어났다.
“……!”
천일은 놀랐다. 12명 중 하나는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인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주희는 마스터급으로도 보이지 않았고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간해 낼 수 있을까?”
주희가 의문을 표했다.
“쉬운 일이지.”
천일이 땅을 박찼다. 검을 휘둘러 소드 임팩트를 시전하니 청살검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12개의 분신을 덮쳤다.
슈― 캉.
대기를 찢고 날아드는 한 대의 화살. 천일은 12명의 주희 중 하나는 진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12명의 주희는 전부 허상이었다.
소드 실드!
천일이 재빨리 방어 기술을 시전하였다. 그러나 파직 하는 소음이 울리며 소드 실드가 꿰뚫렸다.
“한번, 봐줬다. 이해하지?”
천일의 귀를 파고드는 주희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근원지를 알 수 없었다. 메아리치듯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전 위주로군. 생각 이상으로 까다로워. 방심하면 진다.’
천일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단순한 베기였지만 검의 끝에서 검기가 흘러나와 반월의 형상으로 뻗어나갔다.
점점 커지는 천일의 검기.
익스퍼트에 도달한 검사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라인 커터라는 기본기의 응용버전이었다.
슈― 캉.
대기를 찢고 날아오는 한 발의 화살이 있었다. 그리고 미세하지만 지면을 박차는 소리가 울렸다.
보통이라면 들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소리였다.
‘잡았다!’
천일은 반걸음 옮겨 화살을 피하고는 나이트 차지라는 기술을 사용하였다.
나이트 차지.
익스퍼트 상급 정도가 되면 100m 이내의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돌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장에서 적의 원거리 전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기술로 때로는 공중으로 시전되기도 했다.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0m에서 20m 정도였다. 높이는 고작 해봐야 7m 정도가 적정 한계. 그 이상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우웅.
천일의 발밑에서 푸른 기운이 바람을 일으켰다.
“간다!”
천일이 소리쳤다.
쾅.
옥상 바닥이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발돋움을 시작으로 천일은 탄환이 되었다.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한줄기 선이 되었다.
“……!”
이번에는 주희가 크게 놀랐다. 주희는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눈속임용으로 12개의 분신을 남겨두고 자신은 옥상 가장자리 구석으로 이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하면 옥상에서 떨어질 테고 가만히 있자니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고민은 찰나지간에 시작되어 끝났다.
툭.
주희는 옥상 밖으로 뒷걸음질을 했다.
“……!”
천일의 안색이 변했다. 지기 싫어서 추락사할 생각인가 싶은 것이었다.
스르륵.
떨어지는 주희의 모습이 환영처럼 사라졌다.
‘뭐?’
천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주희의 위치를 잘못 파악할 리 없고, 떨어지고 있던 주희가 가짜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딜 봐. 여기라구.”
주희는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특성 신기루.
원리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희를 비롯한 어떤 사람들은 사람인 채로 개념의 힘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것을 특성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마다 달랐고 일반적으로 1인당 한 가지의 특성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