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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8화)
3. 대기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배틀 로얄(3)
슈― 캉.
주희가 화살을 쏘았다. 천일은 그 즉시 뒤로 주르륵 이동했다. 검사라면 근거리에서 궁사를 상대할 때 손 모양과 자세를 보고 화살의 목적지를 파악한 후 움직이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주희의 허상에 말려들 것이 뻔했기에 무작정 피하고 본 것이다.
퍽.
아니나 다를까, 주희의 손 모양과 자세는 실체와 허상이 뒤섞인 속임수였다. 그걸 믿고 움직였다가는 천일은 어깨를 꿰뚫렸을 터였다.
“헤. 피했구나. 솜씨 좋은데.”
주희는 어찌 된 일인지 주르륵 하고 화살이 박힌 곳으로 이동했다. 화살의 끝에 가늘고 질긴 실을 매달아둔 것이었다. 그것을 끌어당겨 옥상에 착지했다.
“여기까지 하자. 더는 위험해.”
천일이 말했다.
“위험? 내가? 네가? 겁먹은 거야?”
주희가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겁먹기는 누가. 옥상은 좁아. 내 기술은 활과 달라서 요령이 좋지 않아. 본격적으로 하면 옥상이 어떻게 될지. 졌다고 해줄게.”
천일이 패배를 선언했다. 주희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희가 다치거나 호텔이 망가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련으로 그런 소란을 피우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인 이야기.
“에이, 시시해. 알았어. 대충 실력은 봤고. 그걸로 만족하기로 할까.”
주희 역시 한발 물러났다. 대신 히죽 웃으며 ‘나도 꽤 괜찮지? 어때? 내 팀에 들어와라. 누나가 잘해 줄게.’라고 말을 보탰다.
“…….”
천일은 입을 꾹 닫고는 듣지 못한 척 발을 돌렸다.
“야. 그러지 말고 응? 남자가 너무 튕기면 여자 친구 안 생긴다. 이 누나가 잘해줄게. 지금 우리 팀에는 원거리뿐이라서 전열에 서서 방패 역할을 해줄 검사가 꼭 필요해. 그러니 들어와라. 응? 응?”
주희는 어떻게 해서든 천일을 팀에 받을 생각인지 콧소리를 내며 천일에게 달려들었다. 괜히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이고 머리야. 제발 좀 봐줘.’
천일은 속으로 절규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더 신세를 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영부영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었다. 주희는 틈만 나면 천일에게 팀에 들어오라며 미끼를 던졌고 천일은 그때마다 웃어 넘겼다.
오늘도 그랬다.
천일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방에 앉아 마나 써클 단련에 힘을 쏟았다. 익스퍼트 상급 위에는 프리 익스퍼트라는 경지가 있었고 그 경지를 넘어야 소드 마스터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프리 익스퍼트는 익스퍼트 상급과 소드 마스터 사이에 있는 경지로 익스퍼트 최상급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익스퍼트 최상급이라고 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소드 마스터를 포기하고 매직 나이트나 챔피언 등으로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드 마스터가 정석이었다.
프리 익스퍼트는 하나의 경계이자 한계선이었다. 그것을 넘지 않으면 마나 써클은 성장하지 않았다.
성장이라는 가능성을 포기하면 매직 나이트나 챔피언 등의 다른 강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천일이 이전에 살던 세계에서의 이야기였다.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뿜고 들이마시고 내뿜는다.
천일은 마나 써클 단련을 계속하며 특성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주희가 말해 주었다. 특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사용하는지. 주희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특성은 단시간에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식이요법과 명상, 의식의 전환, 생각 등을 조절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개념마다 수련법이 달랐다. 수련법은 어떤 특성이든 문파나 가문의 비전으로써 취급되었다. 주희 역시 그랬다.
‘개념의 힘. 재밌어. 정말 재밌어. 지구의 마나는 딱딱하고 잘 움직이지 않아서 마나 써클의 수련이 어려운 편이다. 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하여 검의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할 수 있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겠지. 빛살검리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천일은 나름대로 깨달음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마나 써클 단련을 계속하였다. 무언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번뜩.
천일이 눈을 떴다. 문밖에서 살기가 느껴진 탓이었다. 청살검을 주의를 집중했다. 그러자 작지만 울려 퍼지는 주희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습?’
천일은 급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호오. 내 기척을 느꼈다는 건가?”
하얀 양복에 하얀 중절모를 쓴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후반으로 구석에는 주희와 팀원 2명이 검은 테이프 같은 것에 꽁꽁 묶여 있었다.
“무슨 짓이지?”
천일이 물었다. 눈앞에 있는 상대가 적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른 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이나 끌 생각으로 말한 것이다.
“후후. 신경 쓸 것 없다. 저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빛과 어둠의 싸움은 빛과 어둠만의 일. 전리품에 불과한 존재에게 손을 댈 수야 없지. 하지만 참견이라도 하면 귀찮아 지거든. 파리나 모기라도 왱왱거리면 기분이 상한다. 그러면 실수로 죽여 버릴지도 몰라. 그런 의미다.”
남자 역시 천일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정체를 알아낸답시고 대답을 해 주었다.
“혼자인 모양이군.”
천일이 중얼거렸다.
“네놈. 빛에 속한 자냐? 배지가 없는 걸 보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만.”
남자가 확인차 물었다.
빛의 진영, 어둠의 진영.
각 진영에 속한 자는 왼쪽 가슴에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엠블렘 배지를 다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그게 없다면 자유 진영이거나 어느 진영에도 속해 있지 않은 존재를 뜻했다.
“소속 같은 것은 없지만 이곳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식객이라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단지 그뿐인 이야기.”
천일은 그런 말을 하며 검을 뽑았다.
“검? 그렇군. 네가 마욱선이 말한 그 녀석이로군. 부하가 신세를 졌다. 욱선과 진우에게서 이야기는 들었다. 소속이 없다고 말했나?”
남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없다고 말했다만?”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어둠으로 와라. 욱선이 이기지 못한 네 녀석이라면 어둠의 진영에서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겠지. 빛과 어둠의 싸움은 곧 끝난다. 빛의 발악도 여기까지다. 아틀란티스 대륙이라는 무대가 준비된 이상은. 이쪽으로 오지 않으면 너는 먹히는 쪽이 된다. 먹는 쪽과 먹히는 쪽, 어느 쪽이 좋은가? 소년.”
남자가 천일에게 선택권을 던졌다.
“먹는 쪽과 먹히는 쪽? 아쉽지만 나는 누구 밑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서. 네가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때?”
천일이 답했다.
“크하하. 간덩이가 부은 꼬마로군. 기세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분수를 모르는군.”
남자는 그런 말을 하며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검은 연기처럼 흩날리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주희가 조심하라고 외쳐 보지만 입까지 검은 테이프 같은 것으로 막혀 있어서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
천일은 곧장 청살검을 뽑았다.
스릉.
동시에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천일을 향해 몰려들었다. 천일은 검을 몇 번 휘둘러보지만 연기를 벨 수는 없었다.
소드 임팩트!
하다 못한 천일이 기술을 사용했다. 커다란 충격음이 울리고 주변 사물이 부서져 공중을 날았다.
―실망이군. 형체를 가진 존재라면 그걸로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연기를 그런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보나? 곧 얌전하게 만들어줄 테니 소란피우지 마라. 소년.―
공중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흡혈귀 가운데서도 10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 강함을 손에 넣은 자로 안개로 자신의 몸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스으윽.
검은 안개가 천일의 팔과 다리를 감싸듯 몰려들었다.
‘성가신 놈이로군.’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황하여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겠지만 천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의 삶에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오햇살!
천일이 익스퍼트 상급이 되면서 얻은 빛살검리의 정수들 중 하나로 형태가 없는 어둠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번쩍.
청살검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녹아내리며 치이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무슨!―
“자, 그럼 꺼져주실까? 네놈은 날 이길 수 없어.”
천일이 말했다.
―네놈.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그런 기술을!―
검은 안개는 그런 말을 하고는 빛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갔다.
쨍그랑.
요란하게 소음이 울렸다.
스륵.
창문 밖에서 검은 안개는 사람의 형태로 바뀌었다. 낭패라는 얼굴로 천일을 노려보았다. 원수를 노려보는 듯했다.
“의기양양하게 지껄이더니 도망이냐? 갈려면 빨리 꺼져. 아니면 내가 널 베러 가지.”
천일은 정오햇살을 사용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물러가지 않는다면 구름햇살을 사용하여 공격 할 생각이었다. 얼마나 통할할지는 미지수나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너, 위험하군.”
번뜩.
남자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검붉은 기운이 남자의 손끝에서 피어올랐고 천일은 구름햇살을 사용했다.
팟.
남자의 머리 위에서 내리 꽂히던 구름햇살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것처럼 도중에서 증발했다.
“……!”
천일의 안색이 바뀌었다.
“죽어라, 소년!”
남자가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생성되고 있던 검붉은 기운이 여러 갈래로 길게 늘어나 천일을 향했다.
나이트 차지!
천일이 허공을 날았다. 정오햇살이 감도는 청살검이 천일을 노리고 날아드는 한 줄기 검붉은 선을 가르며 나아갔다.
“……!”
크게 놀란 남자는 재빨리 자신의 몸을 검은 안개로 바꾸었지만 그보다 반 박자 빠르게 천일의 검이 남자의 복부를 베었다.
―크어억.―
남자의 신음이 울렸다.
뚝.
천일의 몸이 추진력을 잃었다.
‘이제 어쩐다. 소드 임팩트로 낙하 에너지를 줄일 수밖에 없나.’
주희가 머물고 있던 방은 모 호텔의 10층. 그냥 떨어지면 죽음뿐이었다.
―이 노오오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네놈은 어둠의 적이다!―
남자의 외침이 울렸다.
쾅.
천일은 소드 임팩트를 연속해서 사용해 낙하 에너지를 줄였다. 덕분에 어떻게든 상처를 입지 않고 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희가 있는 모 호텔의 10층.
벽은 반쯤 파괴되어 있었고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천일이 방치한 남자의 공격이 건물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흔들흔들.
무너진 벽 가장자리에 주희가 서 있었다. 건재함을 과시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어 천일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무사해. 수고했어. 나중에 보자!]
달칵.
용건은 간단했다. 주희였다.
그렇게 천일은 다시 노숙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