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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9화)
4. 마왕! 마왕? 마왕이란다(1)
재운은 천일을 찾아 계울시에 왔다. 겸사겸사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서 실시하는 시험에도 응할 생각이었다. 간이 시험에 떨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계울시 시외버스 터미널 앞.
재운은 거리를 보고는 잠시 넋을 잃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천일, 내가 왔다! 이 몸의 새로운 힘, 새로운 능력을 보여주마.’
재운은 의기양양했다.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여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익힌 탓이다. 한 줌 호흡으로 피부를 강철같이 만들고 체내에 흐르는 에너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힘을 육체가 버티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였고.
좌우간.
재운은 먼저 천일을 찾을 생각이었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간이 시험 대기소에 가서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시작했다!”
“물러나!”
갑자기 외침들이 있었다. 동시에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근처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 같았다.
“뭐, 뭐냐. 왜 이래? 어이. 이 자식들아! 무슨 일이냐고!”
재운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급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고? 보면 안다. 보면.
쾅.
폭음 같은 것이 울리며 약한 충격파가 재운을 덮쳤다. 상처를 입을 정도는 아니지만 눈을 깜빡 할 정도는 되었다.
“어쭈.”
재운이 중얼거렸다.
시야의 중간.
5명이 소년 하나를 에워싸고 엎치락뒤치락하는 풍경이 재운의 눈에 들어왔다. 재운은 소년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 명을 놓고 5명이 힘을 합쳐 공격한다는 것이 비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심코.
정말 무심코, 소년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그 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철!
질풍!
재운의 피부, 뼈, 근육, 내장기관 등이 강철과 같이 변했다. 근육에 힘을 주면 그곳이 단단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재운은 바람처럼 다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 명을 두고 다섯 명이서 뭐 하는 거냐! 비겁하게 남의 xx나 걷어차는 천일 같은…….”
기세 좋게 소리치던 재운이었지만 소년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동시에 소년도 재운을 발견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소년이 누구냐고? 천일이다. 이천일. 예상치 못한 순간의 재회였다. 때문에 재운은 천일을 도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잠깐 망설이게 되었다. 동요를 보인 것은 천일도 마찬가지였다. 재운이 천일과 아는 사이라는 것이 적들에게 알려진다면, 재운도 녀석들에게 공격당할 것이 분명했다.
천일에게 있어 재운은 마음에 들지 않는 바보 멍청이였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무작정 덤벼드는 찰거머리였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죽게 된다면 그건 싫었다. 친하지 않고 싫은 녀석이었지만 자신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녀석들의 표적이 된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천일은 생각했다. 기도했다. 제발 아는 척하지 말라고.
“너, 뭐 하냐?”
재운은 천일의 기대를 보기 좋게 깨뜨렸다.
“도망쳐. 이 멍청아. 죽고 싶어?”
천일이 소리쳤다. 그리고 천일을 공격하던 다섯 명 중 두 명이 전열을 이탈하여 재운 쪽으로 이동했다.
“야! 하지 마. 쟤는 관계없어!”
천일이 소리치며 소드 임팩트를 사용했다.
쾅.
천일의 틈을 노리던 적들이 대기를 흔드는 충격파에 휘말려 한발 물러났다. 그 틈을 타고 천일이 재운 쪽으로 이동했다.
스슥.
전열을 이탈한 두 명이 재운의 등 뒤에 나타나 무기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들의 무기는 독이 발린 단검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즉사인 맹독. 천일은 재운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쪽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하압!”
재운이 기합을 토했다.
쾅!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운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발생했다. 멋모르고 배후를 노리던 천일의 적들 중 두 명이 그에 휘말려 밀려났다.
“어?”
천일이 의외라는 얼굴로 급히 한걸음 물러났다.
“네놈. 지금 누구에게 죽고 싶냐고 물은 거냐? 설마 나? 나? 나냐? 이 썩을 놈아!”
재운이 소리쳤다.
“그래. 너.”
천일의 대답은 냉정하고 무심하고 무료했다. 걱정한 자신이 바보같이 여겨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재운은 그런 천일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는 인간에게 걱정 받는다? 구함 받는다?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런 일 재운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천일을 쓰러뜨리는 건 자신이어야만 했다.
재운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그날.
우연히 자연의 기운을 깨달아, 그 힘을 활용하여, 기합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날.
재운은 성장했고 그러자 천일이 자신을 봐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천일이 재운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는 것을 껄끄럽게 여겨 손에 사정을 두었음을 알아버리게 되었다. 시비를 걸은 것은 자신이다. 동정 받을 이유가 없다. 남자들의 결투에 배려심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있는 힘을 다해 싸워서 지면 지는 거고 이기면 이기는 거다.
그런 건데.
분명 그래야 하는데.
그러니 천일은 반드시 자신이 쓰러뜨린다. 그래야만 한다고 재운은 결심했다. 하지만 단기간에는 무리임도 알았다. 그만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재운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극복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동정 따위 필요 없어! 이 비겁하고 치졸한 자식아! 넌, 반드시 내 손으로 쓰러뜨린다.”
재운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휙 몸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두 명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멧돼지 멱살 찌르기! 더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재운의 배후를 노렸던 두 명을 날려 버렸다. 그에 아직 천일을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이 물러났다. 상황이 바뀌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거 무리.”
천일은 적들이 사라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재운에게 현실을 말해 주었다.
“무, 무리?!”
재운이 불같은 시선으로 천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응. 무리. 보아하니 조금 강해지긴 한 것 같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나도 강해졌거든. 앞으로는 더욱 강해질 거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절대 강자가 될 예정이지.”
천일에게는 그저 당연하고 확정적인 사실이었다. 그러나 재운에게는 지독한 오만이고 독선으로 보였다.
하지만 도와달라며 약한 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호오. 입은 살아서 나불거리기는. 비겁하게 봐주기나 하고 xx나 노리는 비열한 자식 주제에.”
어쨌든 재운은 질 수 없었다.
“하아. 너, 실력 차를 깨달았으면서도 아직도 그런 소릴. 목숨은 하나뿐이야. 소중히 해야지. 쓸데없는 일에 휘말려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바보도 아니고.”
천일은 친절하게 조언을 했다.
조언? 아니, 도발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칭찬해 주고 싶었다. 멍청이가 스스로의 역량을 넘어 한 단계 성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재운과 친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저기 어딘가에서 적들이 보고 있을 터였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앙숙이라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 재운이 놈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 터였다.
“호오. 너, 나에게 싸움 거는 거냐? 앙?”
재운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알았냐? 바보.”
천일이 중얼거렸다.
“바보. 바보라고 했겠다. 죽여 버리겠어! 이천일!”
간단히 도발에 말려든 재운은 바로 자세를 잡았다. 멧돼지 멱살 찌르기의 강화버전 곰 멱살 찌르기를 시전하기 위해서였다.
“소드 쉴드.”
천일은 사고의 흐름을 전투에서 대련으로 바꾸었다.
“곰 멱살 찌르기!”
재운이 정권 찌르기를 했다. 보기에는 멧돼지 멱살 찌르기와 똑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파워가 달랐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이트 차지!”
천일은 최고 속도로 재운의 품에 파고들었다. 재운이 사용하는 진공파 종류는 대개 직선이었다. 소드 쉴드를 비스듬히 시전하여 진공파의 방향을 바꾸면 진공파의 위력이 강하더라도 튕겨내는 것이 가능했다.
쾅.
나이트 차지에 의해 가속된 천일의 몸이 소드 쉴드를 무기로 재운을 때렸다.
“크으.”
재운이 신음을 토했다.
“어?”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소드 쉴드와 나이트 차지의 조합은 대략 시속 70km/s로 달리는 승용차로 들이받는 정도의 충격량이었다. 재운이 성장했다고 해도 간단히 견딜 수는 없어야 했다.
“이 자식아! 그러니까 사람을 얕보는 것도 정도껏 하란 말이다! 곰 멱살 찌르기!”
재운이 소리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쾅.
이번에는 천일의 몸이 붕 떴다. 재운의 전투 능력을 잘못 파악한 대가였다.
“크. 대단하네.”
천일은 자신도 모르게 재운을 칭찬해 버렸다. 그러나 그런 걸로 쓰러질 천일이 아니었다. 6―7미터 정도를 날아가 자세를 다시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잘 들어라. 이 비겁하고 치졸한 자식아. 나의 이 몸은 강철과 같고 주먹은 곰을 날려 버린다. 움직임은 바람과 같다. 네놈이 검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쓰러지지 않아. 베일 것 같냐!”
재운이 소리쳤다. 제대로 상대하란 소리다.
“거참. 빠져나갈 길을 줘도 지랄이네.”
천일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소드 쉴드를 해제하고 검을 치켜들었다. 마나를 흘려보내자 푸른 아지랑이가 검에서 피어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거란 말이다!”
재운은 기분이 좋은지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는 재운 역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새롭게 터득한 기술, 바위를 부수는 철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고오오.
하얀 아지랑이가 재운의 두 주먹에서 피어올랐다. 10초 정도 흐르자 재운의 두 발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나이트 차지!”
한발 빨리 천일이 공격을 시작했다.
나이트 차지는 돌진 스킬이다. 무엇을 치켜들고 시전하느냐에 따라 위력이 달라졌다. 랜스를 들었을 때가 가장 강력하고 방패를 들었을 때가 가장 약했다. 익스퍼트 상급이 되면 검기를 활용하여 무엇이든 꿰뚫는 검기 랜스를 형상화시킬 수 있었다. 그 정도는 돼야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관통하여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전장에서의 이야기다. 대규모 전투에서나 사용할 만한 기술이다. 개인끼리의 싸움에서는 검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물론 상대가 기사였다면 천일도 주저하지 않고 검기 랜스를 사용했을 터였다.
쾅.
폭음이 울렸다. 재운의 양손과 왼쪽 발이 힘을 합쳐 천일의 나이트 차지를 가로막은 탓이다.
“바보.”
천일이 중얼거렸다.
“뭐?”
재운이 의문을 표했다.
“소드 임팩트!”
천일이 소리쳤다. 그리고 강렬한 충격파가 청살검에서 발생하였다. 재운은 순간적으로 세상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충격파가 재운의 고막을 찢고 신경을 흔든 탓이었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틈이 생겼다. 아주 커다란 틈이.
퍽.
보는 사람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충격음이 울렸다. 천일이 재운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버린 탓이다.
“으어거어너어흐더머어거억.”
재운이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그래도 나이트 차지를 막아내다니. 정말 놀랐다고. 하지만 뭐, 이 정도겠지.”
천일은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주희에게 쓰러진 재운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자신과 함께 있으면 그들에게 목숨이 노려질 터이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진영이라고 불리는 자들 가운데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이 다수고 인간이 소수였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그들 모두를 뭉뚱그려 지구의 생물로 취급했지만 그건 그들이 외계에서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천일은 정오햇살이라는 검술을 사용하여 천일을 습격하려던 흡혈귀 남자를 물리쳤다.
남자는 어둠의 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봐야 조무래기이긴 했지만.
그는 천일이 사용한 정오햇살에 관한 정보를 어둠의 진영 정보 공유 사이트에 올렸다. 그러자 흡혈귀와 요괴 같은 자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불길한 싹은 미리 제거해 두어야 한다며 소란을 떨었다.
대충 그런 이유로 천일은 공격을 받게 되었다.
낮에는 인간들이.
밤에는 인간이 아닌 자들이.
주희들과 혜미, 명진은 천일을 돕다가 연속되는 전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은신처로 몸을 피했고 현재 천일은 혼자였다.
그리고 이틀.
천일은 어둠을 상대로 밤이고 낮이고 관계없이 전투를 수행해야만 했다. 빛의 진영에 속해 있는 혜미와 명진은 부상이 낫지도 않았는데 어둠으로부터 천일을 지켜야 한다며 소란을 떨었지만 천일은 그들을 짐짝 취급하며 돕게 하지 않았다.
주희나 혜미, 명진이 들으면 팔짝 뛸 이야기겠지만.
천일은 밤낮으로 벌어지는 어둠과의 전투가 싫지 않았다. 수련이 되었다. 이전의 삶에서 겪었던 나날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기도 했다.
쏟아지는 화살의 비, 집요하게 쫓아오는 추적자들.
천일이 이 전의 삶에서 소드 마스터였던 시절.
성채 하나를 방패로 10만 대군에 둘러 싸여 홀로 싸워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한 틈도 쉴 수 없었고 조금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군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것이다.
7일 밤낮을 쉬지 않고 싸웠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오히려 좀 더 몰아붙여 주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한동안은 괜찮겠지. 3일 정도만 더 버티면 간이 시험을 볼 테고. 문제는 집인데. 그 부분은 빛의 진영이 도움을 준다고 하니.’
천일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건물 사이의 음습한 곳으로 발을 옮겼다. 지구의 도시는 멀리서 보면 숨을 곳 하나 없이 네모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막상 돌아다녀 보면 숨을 곳이 많았다.
해가 졌다. 천일은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편의점에 가면 김밥이고 빵이고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었다.
우걱우걱.
“이 정도면 되겠지. 언제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천일은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는 편의점을 나왔다.
오늘도 거리는 한산했다. 밤이 되면 계울시 거리는 사람이 사라져 버렸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 때문이었다.
뚜벅뚜벅.
“좋은 밤이로구나. 네가 이천일이라는 인간이렸다. 귀엽게 생겼구나.”
가로등 저편에서 요상한 차림새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14살? 15살? 어쩌면 그 이하. 밤인데 양산을 들고 있었다. 분홍색 레이스가 잔뜩 달린 귀여운 프린세스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