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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11화)
4. 마왕! 마왕? 마왕이란다(3)


재운은 아직 상황을 잘 몰랐기에 의문을 표했다.
“그런가. 거절했다는 것으로 이해하지. 어서 옷이나 입어라. 나가서 기다리겠다.”
마왕은 그런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야, 근데 쟤 누구냐? 혹시 네 이거?”
재운이 새끼손가락을 까딱이며 천일에게 물었다.
“바보냐. 그런 거 아냐. 쟤가 우리를 구해 줬어. 마왕님이란다.”
천일이 답했다.
“마, 마왕? 마왕이라고?”
재운도 놀랐다.
“빛이니 어둠이니 하는 이야기 못 들었냐? 주희가 설명 안 하든?”
천일이 물었다.
“모르겠는데.”
재운은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아, 그래.”
천일은 설명을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들었어도 저 바보가 그걸 다 기억하고 있을 리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거리.
태양은 중천에서 조금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왕의 모습에 일단 다들 길을 비켰다.
탐스러운 은발에 푸른 눈동자.
검은 갑옷.
곧게 편 등과 허리, 군인같이 균일한 발걸음.
마왕은 누가 봐도 위풍당당했다. 그 뒤를 천일과 재운이 소란스럽게 걷고 있었다. 재운이 어둠이 뭐고 빛은 뭐냐고 천일에게 질문 공세를 던지기 때문이었다.
천일에게는 재난이었지만 불쌍한 바보 한 명 구하는 셈 치고 성실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재운의 머리라면 곧 잊어버릴 테지만 그래도 그냥 버려둘 수는 없었다. 치고받은 의리 같은 것이 있었다.
우뚝.
돌연 마왕이 걸음을 옮겼다.
“응?”
천일이 마왕을 바라보았다. 잘 가다가 걸음을 멈춘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오래지 않아 풀렸다.
“으흐흐.”
“버, 벗어.”
“갑옷 안 보고 싶어.”
모세의 지팡이에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졌던 사람들이 이상한 얼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로 남자들이었다.
“시시한 장난질이다. 잠깐 거기서 보고 있도록 해라. 절대로 손을 쓰면 안 된다.”
마왕은 그런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남자들이 마왕에게 달려들어서는 갑옷을 벗기려고 했다.
무수한 손들이 마왕의 갑주를 더듬고 만졌다. 아무리 갑옷 위라지만 이건 성희롱이었다. 그럼에도 마왕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저지하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입에 침을 흘리며 마왕을 향했다.
‘이상한데.’
천일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어젯밤에 만났던 소녀를 발견했다.
양산을 쓰고 레이스가 잔뜩 달린 분홍 드레스를 입은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노신사와 청년이 있었다. 그들은 남자들에게 만져지는 마왕을 바라보며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천일은 순간적으로 마왕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빛과 어둠의 싸움은 빛과 어둠에 속한 자들의 것이고 빛에도 어둠에도 속하지 않은 자들은 승자에게 바쳐지는 제물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제.
관계없는 사람들이 천일을 공격했었다.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베리도넬 R 베이트리체라는 소녀의 소행일 터였다.
쨍그랑.
마왕이 입고 있는 갑주 중 어깨 부위가 떨어졌다. 그러자 얇은 내의가 드러났고 그것은 곧 찢겨졌으며 남자들의 손이 그곳을 어루만졌다.
“……!”
마왕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압!”
먼저 튀어나간 것은 재운이었다. 천일은 냉정했기에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르륵.
재운의 몸에서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나 근처의 사람들이 밀려났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아무리 여자에 눈이 돌아갔다고 해도. 그러고도 남자 새끼들이냐!”
재운의 외침이 울렸다.
“너답다.”
천일이 망했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망쳐라!”
마왕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외침이 사라지기도 전에 마왕의 주변에 있던 사내들의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재운을 향해 덤벼들었다.
퍼퍼퍼퍼퍽.
재운은 주저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폭풍처럼 날려졌고 동시에 보고 있던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이쪽으로 향해 날아왔다.
소드 임팩트.
천일이 나서서 검을 뽑았다.
쾅.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허공을 날았다.
―오호호. 했겠다. 했겠다. 마왕을 인질로 잡은 것도 모자라 마왕을 지키기 위해 이동하는 나 베아트리체 백작을 날려 버렸겠다! 고맙구나. 인간.―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하지만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상관하지 않았다. 지면에 발을 디디는 즉시 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재운이 날려졌다.
“크헉.”
건물 벽에 부딪힌 재운이 신음을 토했다.
정오햇살! 소드 임팩트!
천일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제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에게 상처를 입힌 그 공격이었다.
“흥!”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오른손으로 얼굴을 보호하며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짙은 어둠이 흘러나와 방패 같은 것이 되었다.
쾅.
소드 임팩트가 더해진 정오햇살이 어둠에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
천일이 놀랐다.
“태양도 어쩌지 못하는 나의 어둠을 그런 빛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어제 밤에는 방심한 탓에 당했지만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야. 인간.”
슈우욱.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천일을 비웃었다. 동시에 그녀의 왼손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천일에게 다가가 그 몸을 감싸 버렸다.
서걱.
어둠이 베였다. 보고 있던 마왕이 검을 뽑은 것이다. 이에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비릿한 얼굴로 물러나서는 입을 열었다.
어제의 거만한 어투와는 전혀 다른.
예의 바르고 절도 있는 신하의 몸짓과 얼굴과 음성으로.
“마왕 폐하, 어찌하여 충성스러운 신하의 행동을 막으시는지요. 저자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나, 상당한 강함을 소유한 인간입니다. 빛이 만든 함정일 수도 있어요. 인간은 인간다워야 합니다.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이 전부인 벌레처럼. 저항할 힘을 가지지 못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폐하,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고는 비열한 웃음을 띠우고 있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사내들의 정신을 지배하여 마왕을 덮치게 했고, 마왕은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천일과 재운에게 나서지 말란 말을 한 것이다.
“…….”
마왕은 침묵으로 답했다.
“말씀이 없으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먼저 마왕님 주변에 얼쩡거리는 벌레들을 청소하겠습니다.”
여전히 말은 공손했다.
하지만 그녀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마왕을 향해 달려드는 보통의 남자들과 그를 막아서는 재운과 숨을 고르는 천일을 훑어보았다. 그들 모두를 죽이겠다는 의미였다.
“하지 마라. 가증스러운 것. 내 존재가 너희들에게 그렇게도 거슬렸나.”
마왕이 탄식을 뱉었다.
“거슬리다니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폐하. 누구보다 폐하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에 마왕은 눈을 질끈 감았다. 10초 정도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천일이라는 소년은 내가 남편으로 맞이한 분이다. 손을 댄다면 그대. 목숨으로 보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물러가라.”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마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편?
천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왕이 자신을 지목하여 남편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왕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분은 어둠에 속한 남자가 아니라고 압니다. 빛으로 갈지도 모르는 남자입니다. 그런 자를 진왕으로 섬길 생각이시옵니까?”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입가에는 비열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왕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 아는 것이었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쌓이고 쌓인 사정이 있었다.
“그렇다. 나의 몸과 마음도 저분의 것. 그분을 죽이려고 하는 일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의 남편이 될 수 있는 남자는 저분 하나뿐이다. 마왕의 이름을 걸겠다.”
“어리석군요.”
“알고 있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겁니까? 당신이 마왕 가문의 마지막임을 알면서도?”
“…….”
“아버지. 오라버니. 그렇답니다.”
베르도넬 R 베아트리체가 그런 말을 하자, 옥상 위에서 그녀의 양옆에 서 있던 노인과 청년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남편이라니. 대체.’
천일은 항의하고 싶은 기분이 굴뚝같았지만 실제로 행하지는 않았다. 마왕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자신과 재운의 목숨이 달린 일일 터였다.
“큭큭.”
노인이 웃었다.
“고지식하기는. 세상은 바뀌었다. 그런데도 전통과 규칙에 목을 매나? 어리석은 짓이야. 선대 마왕과 같은 선택을…… 큭큭. 이래서 인간은 안 돼.”
청년은 그런 말을 하고는 비열하게 웃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어둠은 빛이 아닌 자를 상처 입혀서는 안 될 것이다. 명심해라. 로얄블러드 일가여.”
마왕이 말했다.
“낄낄. 그 목이나 조심하게나, 마왕. 위세가 좋은 것도 지금뿐임을 명심하게.”
노인이 그런 말을 하고는 발을 돌렸다. 이어 청년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도 물러났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짚단 쓰러지듯 쓰러졌다.
질끈.
마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네 남편이라니?”
천일이 물었다.
“미안하다. 임기응변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너와 네 친구는 죽었을 테지. 그들의 억지에 의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괘념치 마라.”
마왕은 그런 식으로 대답을 피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알아야겠어.”
천일이 물고 늘어졌다.
“괘념치 마라. 아틀란티스 대륙에 가면 빛의 진영이든 자유 진영이든 어디든 가담해라. 그것이 너를 위한 최선의 길이다. 그럼 가지.”
마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더는 말도 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그게 천일은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지만 더 묻기도 뭐해서 재운에게 가서 손을 내밀었다. 잡고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웃기지 마. 네 도움 따위 필요 없다.”
재운은 팔팔했다.
이후, 그들은 어색한 침묵에 둘러싸여 노바 스페이스 연맹 간이 시험장 대기소로 향했다. 마왕이 뭐라고 말하자 천일과 재운이 바로 간이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