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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마스터 1(25화)
9. 활동(3)


하지만 그것은 블랙스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것들에 대비한 대비책을 확실하게 세워 두었기 때문에.
‘이제 두 가지만 착용하면 완벽한데…….’
블랙스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블랙스타에게 필요한 것은 야구모자와 하얀색 마스크.
하지만 그것을 상점에서 팔 리가 없지 않은가?
현실은 하얀색 마스크를 약국에서 살 수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 게임에 약국이 있을 리가 없다.
즉, 하얀색 마스크는 수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야구모자는 분명히 상점에서 팔고 있기는 할 테지만, 기왕 하얀색 마스크를 유저들에게서 사는 겸, 야구모자도 같이 사는 것이 시간 절약이 된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시간은 금이다(Time is Gold)!
건물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부분에 옹기종기 모여서 좌판을 펼치고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
블랙스타는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최고 품질의 물건만 있습니다! 최고 품질이 아니면 100% 환불!”
“오빠∼ 여기 물건 한번 보고 가.”
“야, 거기! 안 오면 뒈진다. 물건 보고 가라!”
광고서부터 협박까지.
물건을 팔기 위해 정열을 불태우는 상인들의 외침이 귀를 즐겁게 하는 듯했다.
블랙스타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빠르게 좌판을 훑어보면서 걸어갔고, 그렇게 한참 동안을 좌판을 훑어보던 블랙스타의 눈에 검은색 야구모자와 하얀색 마스크가 올려 있는 곳이 보였다.
“어, 형씨. 물건 보고 가게? 이리 와 봐. 싸게 해 줄 테니까.”
험상궂은 표정으로 손짓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근육질의 남성!
블랙스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이스! 봉 한 마리 당첨!’
남자는 블랙스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용산에서도 저런 놈들이 봉이었지! 캬! 오늘 운수 한번 쥑이는구나!’
딱 보기에도 봉으로 보이는 손님은 폐인 기질을 풀풀 풍기고 있다!
거기다가 얼굴도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 처음부터 가격을 후려쳐도 될 것으로 보인다.
초보자로 보이지만, 초보자도 돈은 있는 법!
만약 정말로 진짜 거지라면 그냥 내쫓아 버리면 된다!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블랙스타에게 말했다.
“뭘 사게? 척 보기에도 초보자 같은데, 여기 무기들이나 한번 봐 봐. 사람들이 사냥하다 나오는 좋은 아이템들을 내가 싼 값에 사들이고 있거든. 내가 초보자 시절 때 매너 있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 그 사람들의 의지를 이어서 나도 이렇게 초보자를 도우려고 물건을 싸게 팔고 있지.”
남자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던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얼굴 전체를 메우고 있는 영업용 스마일!
블랙스타는 남자의 표정 변화를 보고는 피식 웃고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실제로 관심이 있는 것은 야구모자와 하얀색 마스크지만, 처음부터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가는 얼마나 바가지를 씌울지 모른다. 모름지기 먼저 물건을 고르고 그것의 가격을 물어 보는 것부터가 일단 반쯤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블랙스타는 동대문에서 옷을 구입할 때에도 이것저것 살피는 척하면서 가격을 묻고, 주인이 가격을 부르면 그 가격의 반이나 3분의 1 정도밖에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원래 구입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의 가격을 묻는다.
동대문이든 이곳이든 손님 등쳐먹으려고 하는 상인이 있는 것은 똑같으니, 그것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될 터.
블랙스타는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하고, 옵션을 확인하기도 하면서 남자의 시선을 끄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타는 한참을 기웃기웃거리다가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좋은 철검>
종류 : 무기
레벨 제한 : 10
물리 공격력 : 140
설명 : 질 좋은 철을 이용해서 만든 검. 상당한 솜씨의 대장장이가 만들어서 그런지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진다.

블랙스타가 검을 집어 들자 남자는 화색을 띠면서 말했다.
“오∼ 그거! 어제 들어온 아이템이지! 원래는 꽤 비싼 거지만, 싸게 해 줄게.”
블랙스타는 남자의 반응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기…… 제가 가진 돈이 5실버밖에 없어서…….”
진심으로 돈이 없어서 걱정스러워하는 초보자의 모습의 얼굴.
배우들이 봐도 단번에 속아 넘어갈 모습……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리얼한 얼굴이었다. 궁상과 불쌍함이 얼굴에 뚝뚝 묻어나는 표정.
‘에이 썅, 봉은 무슨. 거지였네.’
남자는 블랙스타의 말을 듣고 안면을 구겼다.
“에이, 돈 없으면 가!”
남자는 꺼지라는 듯 손을 움직이면서 다시 표정을 험상궂게 바꾸었다.
그리고 블랙스타는 그 남자의 반응에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마스크와 야구모자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기, 그럼 이거랑 이건 얼마인가요?”
넉살좋게 실실 웃으면서 마스크의 가격을 물어 보는 블랙스타의 말에 남자는 버럭 화를 냈다.
“개당 10실버! 어차피 네놈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못 사! 그냥 가!”
‘열 받아서 정가를 불렀군! 브라보!’
“가격이 그 정도밖에 안 할 줄은 몰랐는데…….”
블랙스타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휘익!
짤랑!
재빨리 마스크와 모자를 낚아채고, 동시에 남자의 손에 20실버를 올려놓는 블랙스타!
“물건 잘 파십쇼. 흐흐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자에게 말하는 블랙스타!
‘이, 이런! 당했다!’
남자는 얼굴을 팍 구겼다.
돈 없는 주제에 물건 가격을 두 개나 물어 보는 거지가 물건을 탐하는 것이 짜증나서 홧김에 정가를 부른 것이 실수였다. 저 물건의 가격을 물어볼 때에도 바가지를 씌운 가격을 불렀어야 했건만!
이런 물건은 취향을 타는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만 잘 만나면 개당 10실버가 아니라 개당 50실버에도 후려쳐서 팔아넘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속지만 않았다면 가격을 2~5배까지 후려쳐서 팔아먹을 수 있었던 건데, 홧김에 거지를 약 올리려고 소리친 말이 오히려 함정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검은색 야구모자>
종류 : 방어구
물리 방어력 : 3
설명 : 햇빛을 가리기에 좋아 보이는 모자. 웬만한 옷에는 다 어울리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하얀색 마스크>
종류 : 방어구
물리 공격력 : 3
특수 효과 : 상태이상 ‘감기’에 대한 내성 10%
설명 : 입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마스크. 황사, 감기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방어력도 시궁창이요, 특수 효과도 시궁창. 하지만 내 모습을 감추는 데에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지.’
블랙스타는 옵션을 확인하고는 아이템을 장착 후, 남자를 한번 쳐다보며 씨익 웃고는 광장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블랙스타를 쳐다보았다.
“오늘 장사 초쳤네. 썅.”
남자는 욕설을 내뱉으면서 좌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잡쳤느니 어쩌느니, 강아지, 송아지 등등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들을 걸쭉하게 내뱉으면서 재빨리 좌판을 정리하고는 골목길로 사라졌다.
‘크흐흐흐…….’
블랙스타는 남자가 느끼고 있을 짜증을 생각하면서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세상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법. 하하하하.’
쿡쿡쿡쿡…….
블랙스타는 길가에 서더니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 모습에 주변의 사람들이 서서히 블랙스타가 있는 곳을 피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누구 죽이려나 보다.’
‘저 사람은 분명 킬러일 거야.’
‘저 사람한테 말을 걸면 칼을 휘두르면서 공격하겠지.’
‘범죄자의 오오라! 가까이 가서는 안 되겠어.’
주변 사람들이 등 뒤에 검은 기운이 올라오는 환각까지 볼 정도의 음침한 웃음소리!
하지만 블랙스타는 주변 사람들이 멀어지든 말든 한참을 웃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블랙스타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기분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파티 게시판.”
블랙스타는 파티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게시판을 소환하기 위해서 조용히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이 끝나는 순간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쉬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파티 게시판-
1. 고블린 던전 가실 분 모집합니다. 렙제 10.
2. 어두운 스켈레톤의 생성지 가실 분 모집. 렙제 30. 템 좋아야 함.
3. 저랑 같이 34시간 노가다 할 용자 분 구합니다. 렙제 20.
4. 던전 가실 분 모집합니다.
5. 저희 파티…….

엄청난 숫자의 파티 모집자들.
한 페이지 당 약 20개의 글.
페이지가 현재 34개.
680개 파티가 모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파티가 있는데, 그중에서 레벨 제한이 10 이하인 파티가 하나도 없겠는가?
블랙스타는 집중해서 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레벨 제한이 붙어 있지 않은 파티. 그리고 아이템을 그다지 보지 않는 파티.
지금 블랙스타가 끼고 있는 아이템은 허접 중의 허접.
아무리 몇 년 동안 동영상 게시판 죽돌이 짓을 하면서 얻은 각종 정보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고는 하지만, 허접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
거기다가 직업도 그다지 좋은 직업도 아니며, 끼고 있는 무기들, 방어구까지 전부 허접스러웠다.
거기다가 액세서리는 어떠한가?
액세서리라고는 쥐뿔도 없지 않은가?
액세서리는 모든 게임에서의 부를 나타낸다.
모든 게임에서 사기적인 옵션들은 대부분 액세서리에 잔뜩 붙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액세서리의 대부분은 레벨 제한까지 낮았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현질하라, 그리하면 고수가 될 것인즉’이라는 말처럼 현질이라도 잔뜩 해 놓으면 액세서리로 도배하고 다닐 수 있으련만, 블랙스타는 현질은커녕 접속기 가격도 깎고 깎아서 싼 돈 없는 사람.
액세서리는커녕 액세서리 부스러기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즉, 현재 블랙스타의 모습은 누가 봐도 ‘허접이구나’라고 중얼거릴 모습.
아이템 안 따지고, 레벨도 따지지 않으며, 그리고 수상한 이름까지 지닌 파티.
블랙스타는 눈에 불을 켠 채로 파티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쩝.”
블랙스타는 입맛을 다시고는 근처에 보이는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치기를 할 만한 수상한 파티가 보이지 않으니, 필드사냥으로 렙업을 하려는 것이다.
‘물론 레벨은 9까지만 올려야겠지.’
초보자로 인정되는 것은 레벨 10까지.
레벨 10이 되자마자 초보자에게 주어진 10번의 죽음에 대한 패널티 무효화는 사라진다.
그 말인즉, 레벨 10이 되면 뒤치기를 하고 바로 마을로 오는 참으로 바람직한 짓을 하지 못한다는 것.
‘뭐, 파티 사냥만큼은 아니지만 경험치는 꽤 먹겠지.’
블랙스타는 어느새 도착한 성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초보자 마을에서 겪었던 연속 PK도 이제는 없을 것이고, 앞으로는 약간 지루한 노가다를 하기는 하겠지만 평화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드디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겠군.’
원래 목적인 게임을, 새로운 세상을 즐기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블랙스타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이제 노가다를 위해서 성문을 벗어나면 다른 플레이어 들과 비슷한 재미있는 게임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블랙스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문을 지나쳐서 바깥으로 나왔다.
푹.
[사망하셨습니다. 레벨 10 이하의 초보자에게는 사망 패널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단, 10번 사망할 시 사망 패널티가 적용되게 됩니다. [남은 횟수 : 4]]
“너 이 새끼야. 우리 건드려 놓고 그냥 무사히 갈 생각은 아니었겠지.”
그러나 성문을 나오는 순간 초보자 마을에서 너무나 많이 들었던 화살 날아오는 소리와 함께 블랙스타는 밝은 빛에 휩싸였다.
밝은 빛에 휩싸이며 서서히 사라져 가는 블랙스타의 눈에 하얀색 갑옷을 입고 있는 놈이 들어왔다.
‘지옥유령 이 죽일 놈!’
슈우우우―

“으아아악!”
블랙스타는 마을 광장에서 부활하자마자 괴성을 내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블랙스타를 보고 깜짝 놀라서 슬슬 피해서 지나가기는 했지만,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옥유령! 감히 날 또 죽여?!”
지옥유령!
불에 태워서 죽여 버린 초보자 PK범!
그놈이 쫓아온 것이다!
“오냐. 시비를 건다면 받아 주마. 대신 네놈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빠드득!
블랙스타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옥유령과 마왕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