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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18화)
6. 바이벨로나 시티 공방전―상(5)
“여!”
불쑥 재운이 등장했다.
“왔냐?”
천일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조금 더 마왕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눈치 없이 재운이 나타났다.
그래도 뭐, 시간은 많으니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이 몸의 전투 능력이 40갤런이나 올랐다! 크하하.”
재운이 자랑을 했다.
“…….”
마왕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좋단다. 그래. 열심히 해라. 나는 잠깐 다녀오련다.”
천일이 그런 말을 하며 일어났다. 마왕과 노닥거리느라 크로코엑셀러 처리하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어디가? 너, 아직 안 잡았냐? 호옹. 여자친구하고 놀았군. 게으름뱅이 녀석. 그렇게 농땡이 부리다가는 나에게 따라잡히고 말거다! 이천일.”
재운은 언제나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든지.”
천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크로코엑셀러가 나오는 구역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 입구에는 작은 석상이 있는데 그 석상의 입에 반지를 가져가는 것으로 도전 자격을 부여받았다.
지잉.
붉은 빛이 반지를 한번 훑고 지나갔다.
철컥.
문이 열렸다. 천일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자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했다.
―나는 누구인가? 악어인가? 사람인가? 과거에는 악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독백이 있었다.
―배가 고프군. 인간이 먹고 싶다. 인간이!―
외침이 있고 사방에서 약간 빛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 서서히 커다란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기어 다니는 주제에 키가 3m나 되었다. 보고만 있어도 위압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할 터였다. 그러나 천일은 쓴웃음을 한번 짓고는 ‘공 좀 들였구나. 하지만 그래 봐야 악어겠지.’라고 중얼거렸다.
“크아아악!”
악어의 눈이 붉게 빛나며 커다란 악어의 몸이 천일을 향했다. 단순 무식하게 돌진이었다. 그에 천일은 소드 실드를 사용하였다.
쾅.
굉음이 울린다. 소드 마스터가 됨으로써 천일의 모든 검술은 전반적으로 성능이 올라갔다. 이전이었다면 부서졌을 충격에도 소드 실드는 끄떡없었다.
‘시험이나 해볼까. 첫 번째 초식은 인간이 아닌 것을 상대할 때 쓰는 거고. 생명체라면 역시 2번째 초식이지.’
달무리 지옥빛살.
방을 가득 메우던 약한 빛이 사라졌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천일과 천일의 머리 위에 뜬 둥근 구체, 그리고 크로코엑셀러였다.
“크워어어!”
크로코엑셀러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났다.
척.
천일이 검을 치켜든 채로 잠깐 고민에 빠졌다. 달무리 지옥빛살에는 기본 공격 외 세 가지 특수한 검식이 존재했다. 세 가지 검식 중 무엇을 사용해도 크로코엑셀러는 죽을 터였다. 걸레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씩 해볼까.’
첫 번째 검식, 귀신 걸음.
검식인데 어째서 걸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걸까? 이상한 이야기지만 세 가지 검식은 본디 하나의 검식으로 동시에 펼쳐 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 가지 검식이자 한 가지 검식이었다.
슥.
천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어디서 울리는지는 알 수 없었고 천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뚝.
천일은 크로코엑셀러의 후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크로코엑셀러는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천일을 감지하고는 발을 돌렸다. 천일을 노려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천일을 볼 수는 없었다. 크로코엑셀러의 몸이 토막 나서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역시…… 대단한 검술이다.’
천일은 살짝 놀라고 말았다.
지잉.
천일의 반지에서 붉은 빛이 감돌았다. 크로코엑셀러를 쓰러트렸음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천일은 달무리 지옥빛살을 거두었다.
휘청.
역시랄까. 달무리 지옥빛살은 마나의 소비가 어마어마했다. 사용하고 있을 때에는 평소 이상으로 마나가 충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그때뿐인 이야기였다.
우웅.
천일의 몸이 입구로 강제 전송되었다.
“그 정도로 고전한 겁니까?”
마왕이 천일에게 물었다. 천일의 안색이 창백하고 걸음이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천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고전은 무슨. 시험해 볼 게 있어서 무리를 좀 해봤어. 전투 능력이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녀석에게 고전을 할까. 그러면 잠깐 쉴게. 보호 좀 해줘.”
라고.
“알겠습니다.”
마왕이 보초를 섰고 그 옆에서는 재운이 등위에 바위를 올려놓고 한 손가락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재운은 집중을 하고 있는 탓에 천일의 휘청거림을 알지 못했다. 자신도 가볍게 날려 버리는 크로코엑셀러에게 고전할 천일이 아님을 알기에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밉살맞게 한마디 해줄 기회를 잃어버렸다.
노페이스가 등장하는 오리엔탈 비전 상층부 입구.
천일에게 당해 병원으로 강제 이송되었던 크라이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놀랄 만한 소식과 접하고 말았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나방 인간 모스맨의 출현 장소를 접수하고 근방에 있던 사람들을 수하로 만들어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여기는 아틀란티스 월드.
흡혈귀에게 물려 그 수하가 된 자들은 어떤 짓을 해도 두 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었다. 지구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관여한 이 아틀란티스 월드에서는 달랐다. 아틀란티스 월드의 병원은 그야말로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다 하더라도, 흡혈귀의 종이 된다 하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간단하게 고칠 수 있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말이다.
외계인 만만세다. 거대 우주 전함을 광속 이상으로 움직여 우주를 돌아다니는 자들 다운 기술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수하가 되어버린 지구인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흡혈귀의 종이 된 자들은 전투 능력이 2―3배로 강화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더러운 일이다. 나방 인간 모스맨 출현 장소 입구에는 노페이스 출현 장소 입구와 마찬가지로 용병들이 있었다.
용병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만 이상의 전투 능력이 필요했다.
크라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사실이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천일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나서 준다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왕의 존재가 거슬렸다. 만에 하나 마왕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편에 서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생각의 미로였다.
그렇게 고민 고민 하고 있는데 천일들이 나타났다. 노페이스가 부활했냐고 물어왔다. 천일이 잡을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잠깐, 할 말이 있다.”
크라이는 천일에게 따라오라는 몸짓을 했다.
“응? 어.”
천일은 무슨 일인지 몰랐기에 크라이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크라이가 걱정하는 부분까지도 들었다.
“마왕에 대해서는 괜찮아. 그녀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어.”
천일이 말했다.
“그게 정말인가?”
크라이는 크게 놀랐다.
“말했지? 영웅이 되겠다고. 영웅이 되면 빛과 어둠의 전쟁을 강제로 종결시킬 거야. 마왕은 내 아내라구. 말도 안 되는 족쇄에 질질 끌려 살아가게 둘 수야 없지. 괴로워하는 아내를 비웃으며 기뻐하는 취미 같은 건 없어.”
천일이 말했다.
“…….”
크라이는 굳어버렸다. 천일의 포부와 도량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건은 맡겨둬. 그녀에게는 빚이 있고 나방 인간 모스맨을 잡지 않으면 바이벨로나 시티를 나갈 수 없잖아.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천일.”
마왕이 말했다.
“그래? 난 모르겠는데.”
재운은 둔했다.
“나방 인간 모스맨의 출현 장소가 베리도넬 R 베이트리체라는 흡혈귀에게 점령당한 모양이야. 근처의 사람들을 잡아다 흡혈귀로 만들며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네.”
천일이 설명했다.
“……!”
마왕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런데 노페이스는? 잡을 수 있어?”
천일이 화제를 돌렸다.
“조금 전에 부활한 것 같습니다.”
마왕이 답했다.
“빨리 잡고 나와.”
재운이 말했다.
“응. 빨리 잡고 나올게. 기다리고 있어.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기다리는 거다. 알았지?”
천일은 신신당부를 하고는 노페이스를 잡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노페이스의 출현 장소.
방식은 크로코엑셀러와 비슷했다. 독백 비슷한 것이 흐르고 주위가 환하게 밝혀지며 노페이스와 그 똘마니들이 등장했다.
달무리 지옥햇살.
노페이스는 크로코엑셀러와는 다르게 혼자가 아니다. 똘마니들을 데리고 등장한 탓에 천일은 달무리 지옥햇살의 세 가지 검식과 그 외의 것에 대해 그런대로 충분한 실험을 해볼 수 있었다.
밖.
천일은 휘청이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달무리 지옥햇살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호위 부탁해.”
천일은 마왕에게 부탁을 해두고는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천일이 눈을 떴을 때.
마왕과 재운만이 아닌 크라이를 비롯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크라이는 자신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며 힘을 합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을 물리치자고 말했다.
“그거 대단하네. 도우려고 온 거야? 상관없는데. 내 지시를 절대로 따라줄 수 있어? 아니면 곤란해. 필요도 없고.”
천일이 말했다.
“그 점은 내가 책임지지.”
크라이가 답했다.
“좋아. 그러면 가볼까? 그 녀석 나방 인간 모스맨을 잡으러 가면 만날 수 있겠지?”
천일이 중얼거렸다.
“그럴 필요도 없는 모양이다. 건물 밖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그녀도 나의 기척을 느꼈다.”
마왕이 말했다.
“그래?”
천일은 의문을 표하고는 창가로 갔다. 밖을 내려다보니 아래쪽에 분홍 양산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보였다.
씨익.
교환되는 시선.
‘아무래도 선공을 빼앗긴 모양이네. 이런 이런.’
천일은 속으로 잠깐 투덜거리고는 원래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마왕과 크라이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창가로 왔다.
턱.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고오오.
천일은 랜스 형태의 검강을 만들고는 나이트 차지를 시전하였다. 목표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였다.
쾅.
굉음이 울렸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회전하는 어둠을 방패로 삼고 있었는데, 위치 에너지와 결합한 나이트 차지를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콰직.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밟고 있는 지면에 균열이 생겼다. 어둠으로 검강을 막아낼 수는 있어도 충격은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강해졌구나, 꼬마.”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중얼거렸다.
“별로. 고작 해봐야 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지.”
천일이 답했다.
“건방지구나. 혓바닥에 기름이라도 칠한 모양이로구나, 소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도 지지 않았다.
팟.
천일이 검을 퉁겨서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로부터 4―5m를 물러났다. 그러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소년, 인간이 아니게 되었구나.”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중얼거렸다.
“인간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천일이 답했다.
“오호호. 그게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냐. 인간은 늙고 약하고 병들어 죽기 마련. 그런 것에서 벗어난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일 수가 없지. 너는 어엿한 어둠. 우리들 어둠에 속한 존재들도 알고 보면 너와 비슷한 종류. 한때는 모두 인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벗어나게 되었지. 그래서 어둠으로 치부되었고 공격받았다. 이 억울함을 알겠느냐? 꼬마.”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원한을 담아 말했다.
“취했구나. 헛소리를 다 하고.”
천일이 받아쳤다.
“뭣이!”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눈빛이 붉게 변했다.
“싸우기 전에 몇 가지만 물어도 될까?”
천일이 그런 말을 하며 검강을 끌어 올리고는 정오햇살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질문은 이긴 다음 하지 그러냐, 꼬마.”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전신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여전히 양산은 들고 있는 채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때 날 죽이지 않은 것을 후회할 거야.”
그리고 천일의 검이 밝은 빛을 토했다. 정오햇살이 시전된 것이다.
“호오. 따끔거리는구나, 소년. 하지만 본녀에게는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한 자들의 피는 각별하더구나. 전투 능력 55만 갤런의 힘을 보여주마. 어둠의 권좌여, 나에게 힘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소리쳤다.
고오오.
붉은 아지랑이가 검은색으로 변해서는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급격히 어두워지는 세상. 바이벨로나 시티의 하늘은 짙은 먹구름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어 빛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기술력으로 일정 수준의 밝음은 유지되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아지랑이가 모든 빛을 잡아먹고 있는 탓이었다.
“굉장해. 순순히 감탄을 보일 수밖에 없는걸. 하지만.”
천일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달무리 지옥햇살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