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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19화)
6. 바이벨로나 시티 공방전―상(6)


세상이 검게 변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빛을 삼켜 칠흑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천일의 달무리 지옥햇살은 빛을 모아 달을 만들고 따라서 주변은 어두워졌다.
“……!”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안색이 바뀌었다.
“원래 이 검술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사람은 어둠에 약하니까 말이지. 하지만 너무도 강해서 제대로 된 검식을 받아낼 사람이 없어. 그래서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검식이기도 해.”
천일이 설명했다.
“흥!”
콧방귀를 뀌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스윽.
천일이 사라졌다.
―알고 있니? 보름달이 떴음에도 그믐달 밤처럼 어두운 밤이 있다는 걸. 그 밤의 달은 미쳐서 울부짖고 귀신이 노닐고 지옥이 입을 열어. 달무리가 홀로 어둠을 밝히는 달님의 슬픔을 달랠 때까지 계속. 언제까지나 아침이 오지 않는 갇힌 밤이야.―
내레이션처럼 그런 목소리가 울렸다.
서걱.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다음에는 허리가, 다음에는 다리가, 곧 토막으로 변했다.
―꼬마, 제법이구나. 환상을 손에 넣다니. 하지만…… 아쉽게도 이 누님은 이런 정도로는 죽지 않는단다. 팔다리가 잘려도 피를 전부 잃어도 그런 것으로는.―
푸드득.
해체되어 버린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육신의 파편들이 박쥐로 변했다.
끼아아악!
달이 울부짖었다. 무수한 박쥐들로 변한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강력한 충격을 느꼈다. 달빛이 모든 박쥐들을 꿰뚫었다.
“쿨럭.”
빛으로 만들어진 바늘에 걸레가 되어버린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면에 납작 엎어진 채로 피를 토했다.
끼히히히. 이히히히.
이번에는 달이 웃었다. 얼굴 같은 것이 있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에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안색이 굳어졌다.
“안 돼. 제, 제발.”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빌었다.
―못된 아이는 죽어서 지옥에 간단다. 못된 아이는 죽어서 지옥에 간단다. 달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지요. 너는.―
내레이션처럼 울리는 목소리.
달이 희번득 웃고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에게 달려들었다.
―지옥행이다!―
라고 말하면서.
콰쾅.
폭발이 일어나며 육편이 튀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죽은 걸까? 서포트 시스템은 어째서 발동을 하지 않은 걸까? 의문은 많았지만 달무리 지옥햇살이 종료되었다. 천일은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숨을 몰아쉬었다.
‘망했군. 이걸 전부 맞았음에도 살아 있다니. 흡혈귀란 놈들은 대체.’
천일은 황당했다.
푸드득.
사방에 널려 있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육체가 박쥐가 되어 날아오르더니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짠 하고 아무 상처도 없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심으로 후회하게 만들 줄은. 놀랍구나, 인간.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한 자들의 피를 빨아 55만 갤런이라는 전투 능력에 도달한 본녀를 이렇게나 몰아붙이다니. 네 피가 탐나는구나.”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그런 말을 하고는 천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척.
천일은 심하게 지쳐 있었지만 아직 패배를 시인할 수 없었다. 검을 치켜들고 나이트 소드, 제로 검식을 펼쳤다.
서걱.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푸학.
피가 튀었다. 반으로 갈라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상체는 자신의 피웅덩이를 뒹굴며 한심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런 걸로는 본녀를 죽일 수 없다고 했지 않든? 발악 해봐야 인간은…… 인간일 뿐. 결코 흡혈귀를 이길 수가 없단다. 어째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나.”
스으윽.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상체가 허공을 붕 떠서 본래대로 붙었다.
“서포트 시스템이 있으니 어차피 죽진 않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
천일이 답했다.
“여전히 입은 살았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이거늘.”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그런 말을 하며 발을 돌렸다. 천일 역시 발을 돌렸다. 다시 시작하는 대치 상태.
“인간과 사이좋게 될 수는 없는 거야?”
천일이 물었다.
“흡혈귀는 피를 먹는 존재. 돼지와 친하게 지내는 인간이 있던가? 아아. 그러고 보니 애완돼지를 기르면서 삼겹살을 먹거나 했던가. 후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천일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답을 요구했다.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인간이구나. 흡혈귀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는 건가? 피를 줄 것도 아니면서? 달콤한 말로 꼬여놓고는 자기 좋은 것만 취하는 자들에게 들려줄 말은 가지고 있지 않구나, 인간.”
“피를 주면 친구가 되는 거냐? 그렇다면 주지. 내 피를.”
“호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꼬마.”
“나는 언젠가 영웅이 될 남자.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도 않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저버릴 생각도 없어. 하지만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사람도 아니지.”
천일은 자신만만했다.
“그런 말은…… 피부터 내놓고 해라! 인간!”
그리고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천일에게 덤벼들었다. 빠르지도 않았고 특별한 기술을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 순수하게 네 피부터 빨고 보자는 식이다.
콱.
천일은 저항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다가오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를 베려면 벨 수 있었지만 자신이 한 말이 있기에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7. 바이벨로나 시티 공방전―하


천일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침대 위였다.
곁에는 마왕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박제가 된 것처럼 매서운 형태로 굳어 있었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왕은 어둠의 왕이며 그러나 천일의 뜻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에게 흡혈을 허락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흡혈귀는 운동을 하거나 깨달음을 얻는다고 강해지지 않았다. 물론 깨달음이라는 지혜를 얻음으로써 힘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말하는 전투 능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흡혈을 통해 힘을 얻었다. 피란 그들에게 있어 식량이며 강해지기 위한 무언가였다.
그리고 천일은 마왕 이상의 강자였다.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 그 피의 가치는 흡혈귀들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 터였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역시 그랬다.
천일이 서포트 시스템에 의해 사라질 때까지 피를 빨아 마신 그녀는, 직후 푸른빛에 둘러싸여 진화했다. 전투 능력을 측정해 본 결과 89만 8천 갤런. 천일의 피를 한번 흡입했을 뿐인데 그 정도였다. 앞으로 2―3번 정도의 흡혈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병원이네. 베리…… 뭐라더라. 그 애는?”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제정신입니까? 그녀는 당신의 피를 빨아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마왕이 불만을 토했다.
“하하.”
천일은 웃고 말았다.
“무사합니까? 정신이 지배당하고 있다거나 합니까?”
마왕이 화제를 돌렸다.
“응. 괜찮아. 별문제 없는 것 같아.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기술은 위대해. 그런데 걔는 어딨어? 베리…… 뭐라던가 하는 애 말이야. 설마 사람들하고 싸우는 중은 아니겠지?”
천일이 걱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닙니다. 그녀는 밖에서 당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왕이 답했다.
“만나볼 수 있을까?”
천일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불러오겠습니다.”
마왕이 일어났다. 잠시 후,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마왕을 따라 병실에 들어왔다. 이에 천일이 입을 열었다.
“안녕.”
평범한 인사.
“왜 막지 않았느냐?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냐?”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물었다.
“빨린다는 것 의미? 식량 제공?”
천일은 그렇게 말하고는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를 바라보았다.
“……!”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안색이 바뀌었다. 지구의 상식 그리고 천일의 곁에 마왕이 있음을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데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장난을 치는 것이리라.
“아아. 농담이었어. 너의 하위 흡혈귀화 되는 것 말이지? 알고는 있어. 하지만 그건 네가 자신의 피를 나에게 먹였을 때 일어나는 현상 아니야? 단순히 피를 빨기만 한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지. 네가 나의 친구가 될 생각이 있다면 흡혈귀로 만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어.”
“떠본 것이더냐?”
“그런 거지.”
“간덩이가 부었구나. 네가 마왕의 남편이라고 공표 되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의미가 없느니라. 여기는 아틀란티스 월드. 우리 로얄블러드 가문을 포함한 4대 흡혈귀 가문과 그 외의 흡혈귀들은 이곳에 와서 정말로 커다란 힘을 얻었느니라. 작위가 박탈되고 영지를 몰수당하고 어둠의 진영에서 추방당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강함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쫓기는 중이다. 조만간 그가 이곳에 오겠지.”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라고 하면 누구지?”
마왕이 물었다.
“데블런 R 고든.”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답했다.
“데블런? 그가 너를 쫓아오는 것이 무섭다?”
마왕이 의문을 표했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본녀는 저기 인간의 피를 빨아 상당한 전투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그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두세 번 정도 피를 더 빤다고 해도 의미는 없겠지. 본녀를 기다리는 것은 파멸뿐이니라.”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는 우울한 얼굴을 했다.
“…….”
마왕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얼마나 강해진 거야?”
천일이 물었다.
“현재 나의 전투 능력은 89만 8천 갤런이니라.”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가 답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였지? 미안. 베리…… 뭐라고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천일이 화제를 돌렸다.
“베베라고 불러라. 너에 한해서 그 칭호로 나를 부르는 것을 허락하겠다.”
베리도넬 R 베아트리체, 이하 베베가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
꿈틀.
마왕의 안색이 안 좋은 쪽으로 굳어졌다.
“아, 그래? 고마워. 그런데 그거 친구라고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야?”
천일이 물었다.
“인간. 그전에 한 가지 묻겠다. 나는 흡혈귀. 너는 인간. 우리는 다른 길을 걷는 자들이다. 친구가 되어 좋을 것이 없지. 그럼에도 너는 친구라는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모든 이야기 중 가장 웃긴 이야기다. 내가 흡혈귀임을 모르고서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가끔 있었지만 정체를 알고 나면 안색을 바꾸지. 그것이 바로 인간. 내가 아는 인간이니라.”
베베가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그렇구나. 쓸쓸했겠네.”
천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상식에 비추어서 감상을 늘어놓았다.
“쓸쓸? 정말로 재밌는 인간이로구나. 본녀를 인간 취급하다니.”
“이상해?”
“이상하다 못해 괴상하다. 인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하하.”
“어째서 웃는 것이더냐!”
베베가 버럭 소리쳤다.
“아니, 그냥 여러 가지로 조금.”
천일은 대충 얼버무렸다. 이전의 삶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고 만 탓이다. 드래곤과 친구 먹던 시절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목적이 뭐냐? 흡혈귀를 친구로 삼아서 어쩌겠다는 건지 들어야겠느니라.”
베베가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나는 영웅이 될 거야. 그래서 여기 있는 마왕과 행복한 미래를 보낼 예정이지. 그렇다면 어둠에 속한 존재들과도 친분을 쌓아야 하지 않겠어? 지구인은 지구인이야. 인간만 지구인으로 취급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때가 되면 죽여야 할지도 몰라. 불필요한 살육은 피하는 것이 좋지. 나는 진왕 같은 거 될 생각 없거든.”
천일이 답했다.
“진심으로 마왕을…… 여기 있는 이 얼빵한 여자를 아내로 삼을 생각이더냐?”
베베는 크게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