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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25화)
8. 영웅의 조언(2)


어쨌든 지방방송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고.
“먼저 지구인 오빠부터. 오빠가 사용한 기술. 재현(再現)류는 강력해. 가진 전투 능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낳아. 하지만 거기에 연연해서는 더 강해질 수가 없어. 영웅이 되고 싶다면 아주 많은…… 아주 많은 에너지를 가져야 해. 존재 자체로 항성계의 질서를 틀어버릴 수 있는 정도의 에너지를. 그러기 위해서는 그릇부터 키워야 해. 재현류 기술은 강력하지만 거기에 연연하여 그쪽 능력을 키우다가는 지구인 오빠 자체가 풍경이 되어버릴 거야. 그런 다음에는 우주에 삼켜지기 마련. 생명체로써 존재 할 수 없을 테지. 나는 그런 자들을 많이 봤어.”
네아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눈초리로 그런 말을 했다.
“……!”
천일은 놀랐다. 빛살검리에도 그런 내용과 함께 3번째 검식 오색무상 빛살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거기 현상을 소유한 언니. 보아하니 불과 바람을 몸에 담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분명 한계에 부딪히고 말거야. 한계를 넘어 그 이상으로 날아가고 싶다면 하나만 선택해. 하지만 역시 지구인 오빠와 마찬가지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현상의 힘을 너무 추구하다가는 자신이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아. 우주에 먹혀 버릴 뿐이지. 때문에 앞서 존재했던 지구의 주민들이 사라졌을 거야.”
네아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승에게 그런 비슷한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 마왕.”
네아의 어조가 무거워졌다.
“듣고 있다. 말해라, 외계인들의 영웅.”
마왕이 답했다.
“죽지 마. 네가 죽으면 계약은 갈 길을 잃고 그를 해방시킬 게 분명해.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지구가 있는 알펜스토르 항성계를 없애 버리게 될 거야.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서 너를 봉인하고 싶지만. 규칙도 있고 거기 있는 지구인 오빠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이 말은 해둬야겠어. 그를 먹어 치워. 받아들여. 그것만으로도 너는 우리들에게 필적하게 될 테지. 거부는 용납하지 않아. 할 거지?”
네아는 더없이 진지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당연히 한다.”
마왕의 눈빛이 번뜩였다.
“후후. 좋아. 그럼 여기까지. 영웅의 참견을 끝낼게. 여기 있는 체비트는 너희들이 구매한 팀 저택에 머물게 될 거야.”
네아가 화제를 바꾸었다.
“나는! 왜 나는 없는 것이냐!”
재운이 소리쳤다. 영웅을 눈앞에 두고 배짱도 좋았다.
“하아.”
네가 한숨을 쉬고는 재운을 바라보았다.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가 괜찮겠지, 라는 표정으로 바꾸고는 속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
“이거 선물.”
네아가 툭 하고 재운에게 던졌다.
“네아 님, 지금 무슨 짓을. 진심입니까?”
보고 있던 체비트가 의문을 토했다.
“그렀네. 생각해 보니 지구인 오빠도 필요하겠어.”
네아는 무슨 생각인지 속주머니에서 반지 3개를 더 꺼내 천일에게 주었다. 재질은 금이나 은은커녕 천일이 알고 있는 그 어떤 금속도 아니었고 문양이나 장치 같은 것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시, 신이시어.”
체비트가 난데없이 신을 찾았다.
“뭐야?”
천일이 물었다.
“전투 능력 봉인 반지. 싸구려는 아틀란티스 월드 내에서도 팔고 있을 거야. 하지만 이건 조금 특별해. 한계 전투 능력 1억 갤런. 성능은 개인별로 다르게 적용 돼. 절대 수치를 깎는 것이 아니라 퍼센트로 깎아내는 거야. 깎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수련에 도움이 될 거야.”
네아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타이밍으로 허공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외침이 울려 퍼졌다.
―네아! 언제까지 노닥거리고 있을 셈이야? 빨리 가! 함대 전체가 널 기다린다고 초 장거리 순간이동 한계지점에서 계속 대기 중이란 말이다!―
내용으로 보아 이 함선의 영웅 아세란의 외침 같았다.
“이크. 아세란이 신경질 부린다. 이래서 여자는 시집을 빨리 가야.”
―너한테 만큼은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빨리 안 가? 이 멍청한 할망구!―
“알았어. 알았어. 후배 주제에 잔소리는. 하아.”
네아는 한바탕 투덜거리고는 천일들과 체비트를 천일의 팀 저택으로 순간 이동시켰다. 그러고는 자신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기본 모듈의 팀 저택.
단층 목조 건물이었다. 7개의 방과 하나의 거실,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쓸데없이 넓은 면적의 땅이 옵션으로 딸려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영웅과 마왕 그리고 지구인 팀 여러분.”
보급형 하우스 메이드가 인사를 했다.
보급형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관절 부분의 이음새가 눈에 보이고 움직임도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오토로봇이었다. 표정 역시 없었다.
“곤란하네요. 기본 모듈 팀 저택에는 제 구역을 만들기가 어려운데 말입니다.”
체비트가 난색을 표했다.
“우, 우, 움직일 수가 없다! 살려줘!”
재운의 외침이 있었다.
체비트에게 말을 걸려던 천일은 할 수 없이 재운을 바라보았다. 재운은 아스팔트에 버려진 마른 오징어처럼 지면에 딱 엎드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
천일은 말문이 막혔다.
“재밌나?”
마왕이 반어법을 사용하여 물었다.
“일부러가 아니니라.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질 않느냐. 성급한 인간의 최후로다.”
베베가 말했다.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다!”
재운이 소리쳤다.
“흐.”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천일은 재운을 번쩍 들어서는 거실로 옮겼다. 반지를 빼주면 간단하겠지만 지면에 뒹굴거려 울부짖는 재운을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몸이…… 몸이. 움직이질 않는단 말이다. 대체 이거 뭐냐! 비열한 천일 같은 여자의 음모임이 틀림없다! 하늘이여! 이 몸이 강해지는 것에 샘을 부리다니. 크으.”
재운의 말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바보는 일단 버려두자.”
천일은 그렇게 화제를 바꾸었다. 재운의 상태나 반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체비트 쪽이 중요했다.
“체비트 님이라고 하셨죠?”
천일이 체비트에게 물었다.
“체비트 님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거 좋군요. 네아 님의 밑으로 들어간 이후 언제나…… 언제나…… 그야 말로 체비트 어딨어! 라고 밤이고 낮이고 부림당하는 처지였던 터라. 하지만…… 괜찮습니다. 체비트면 됩니다. 체비트면. 흐흐.”
체비트는 잠깐 혼자서 그의 평소 생활이 엿보이는 원맨쇼를 펼쳤다.
“아, 그래. 응. 알았어. 체비트.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천일은 조금 전까지 어영부영 네아에게 휘둘렸을 뿐이었다. 사정이나 이유나 이야기나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말씀드리기는 송구스럽지만 그 부분은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해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팀 저택에 제공되는 기능 중 만물상과 연구 시설이 있다는 건 아시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여러분의 저택에 머물면서 만물상과 연구 시설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택을 3단계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합니다만. 아아,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빚으로 달아둘 테니까요. 제가 하는 연구에 적당히 장단만 맞추어주시면 자동으로 탕감되니 걱정할 필요 하나 없습니다.”
체비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술술 이야기를 진행하였지만 천일에게는 달랐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걱정되는데.’
진심이었다.
팟.
돌연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차이나 드레스처럼 옆트임이 있는 치마에 뭔가 링 같은 것이 잔뜩 달려 있는 흰색의 하늘거리는 상의를 입고 있었다. 네아와 마찬가지로 귀와 목에 뭔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체비트!”
그녀는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히엑!”
체비트는 휙 발을 돌리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뛰는 폼도 뒤뚱뒤뚱이었다.
“도망간다고 내 손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여자는 분명 천일의 근처에 있었는데 체비트의 앞에 나타나 발을 들어 체비트의 머리를 내리찍고 있었다.
영웅 아세란, 네아를 할망구라고 부르며 쫓아버린 여자였다.
“자,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세란 님, 아세란 님.”
체비트는 양손을 모아 용서를 빌었다.
“용서? 시스템을 해킹하여 다량의 배틀 포인트를 생성하고 기타 등등. 지구인들이 알면 안 되니까 말할 수 없는 부분에까지 손을 댄 네놈을 용서? 내가? 오호호호호. 나도 꽤 얕잡아 보였구나, 체비트.”
아세란의 눈은 빔이라도 토해낼 듯 이글거렸다.
“…….”
체비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노트런 봉급을 3등급 삭감하고 해킹 건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원대래도 돌린다. 불만 있나?”
아세란이 선언했다.
“아세란 님, 그건…… 그건.”
“그건 뭐? 감히 내 결정에 토를 달겠다는 거냐? 네아처럼 내가 물렁해 보이디?”
“…….”
“대답은?”
“알겠습니다. 달게 처분을 받도록 합지요. 일개 연구원 주제에 어쩌겠습니까. 영웅님이 하라면 해야죠.”
“그리고 네가 의회에 올린 연구 기획. 정식으로 통과 되었다. 그에 따른 권한을 새롭게 부여하지. 이건 정식 결정이다.”
“정말입니까?”
“내가 너랑 농담 따먹기나 하고 놀 정도로 한가해 보이냐?”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헤헤.”
“좋냐?”
“헤헤.”
체비트는 그저 웃었다.
“그럼 음흉하게 치마 속 훔쳐보기는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
아세란은 무감각하게 그런 말을 하고는 체비트의 머리에서 발을 뗐다. 지금까지 꽉 하고 눌리고 있었는데 무슨 치마 속을 훔쳐본다는 걸까? 체비트는 불만이었지만 일일이 잘못을 바로잡으려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그리고 거기 지구인들. 잠깐 대화 좀 할까.”
영웅 아세란은 그런 말을 하고는 천일들에게 다가갔다.
거실.
천일들은 이게 또 무슨 소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참고로 재운은 여전히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네아와 마찬가지로 아세란 역시 재운에게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복잡한 이야기는 싫어한다.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우리들의 결정에 대해 통보만 하고 사라지도록 하지.”
아세란은 거만하게 그렇게 지껄이고는 천일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팀 저택 맞은편에 체비트의 연구소가 세워지는 것을 전제로 1,000만 배틀 포인트를 융자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자는 아틀란티스 월드 한 달을 기준으로 1%이고 강제 차감이다. 지키지 않을 경우 몸으로 때우게 될 거야. 너희들 정도라면 한 달에 10만 배틀 포인트 정도는 우습잖아. 열심히 사냥해서 열심히 포인트를 벌어. 빚을 전부 갚을 때까지 이곳을 제외한 아틀란티스 월드 전역에서 거래가 금지된다. 대신 울란드 뱅크에서 오토로봇이든 요원이든 뭐든 나와서 팀 저택에 머물며 거래 상대가 되어줄 거야. 너희들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것과만 거래가 가능하다. 그 정도는 감수해. 운이 없었네. 하필이면 이런 미친 과학자에게 걸려서. 하지만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지정한 실험에 가맹 종족이 아닌 자들이 참가하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다.”
아세란은 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천일들이 알아야 하는 사항을 늘어놓았다.
‘농담이지? 설명대로라면 완벽하게 외계인의 실험용 쥐가 되었다는 소리잖아.’
천일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일이나 할까. 꽤 바쁜 몸이라서 한가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수가 없단 말이지. 지금부터 영웅과 마왕 그리고 지구인 팀의 저택의 개조를 시작한다. 끝나면 연락을 넣지. 그럼, 영웅의 권위!”
아세란이 소리쳤다. 그리고 천일, 마왕, 재운, 베베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은 전원 바이벨로나 시티로 이동했다.
잠시 후.
아세란의 눈치를 살피던 체비트가 입을 열었다.
“아세란 님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라고.
“호오. 알고 싶나?”
아세란이 반문했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체비트는 딴청을 피웠다.
“잘 생각했다, 체비트. 뭔가를 알게 되면 반드시 나에게 먼저 보고 할 것.”
아세란이 말했다.
“네? 그 말씀은…… 곤란합니다. 네아 님이 알면 전 죽어요.”
체비트가 엄살을 떨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본모습을 잊은 거냐? 한입 거리도 되지 않는 주제에 까불지 마라. 먹어버린다.”
아세란은 진심이었다.
“히익.”
체비트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아세란은 잠깐 자신의 진짜 모습과 언젠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영웅이 되기 전의 일로 이름 없는 원시 행성에 불시착하여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사건.
칼베인이라는 사내와의 목숨을 건 혈투.
훈련받은 드래고닉 행성인의 전투 능력은 통상 350만 갤런.
우주로 진출은커녕 행성에 묶여 행성 안에서 길러지는 주제에 사내는 아세란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을 터였다.
무사히 행성을 탈출한 그녀는 영웅이 되어 칼베인을 수하로 넣자며 그 행성에 갔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칼베인이 살던 그 행성은 레플리카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레플리카, 프로페스와 같이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적.
아세란은 천일이 칼베인임을 확신했다. 모습은 달라졌지만 영혼의 반짝임, 정신의 견고함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건 역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겠지.’
아세란은 그리고 발을 돌렸다.


<『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