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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세기, 소드 마스터와 마왕과 외계인 1권(24화)
8. 영웅의 조언(1)
노바 스페이스 연맹 플랑드 말론 방면 수비 함대 소속 9번째 영웅, 네아.
금색 눈동자와 푸른색 눈동자의 오드 아이.
기본적으로 상의는 나시 티, 하의는 핫팬츠였지만 다시 그 위에 가디건과 망토를 걸치고 아래에는 하얀색 롱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장신구로 가득한 귀와 목이었다.
모빌에 귀찌에 팬던트에 체인에…….
금색의 머리카락도 기하학적인 모양의 구조물 형태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나면 큰일이겠다 싶었다.
“크으.”
데블런이 신음을 토했다. 천일의 목을 물어 피를 빨려던 순간이었다.
“지구인, 똑똑히 들어라. 시작 지점의 세이프 존은 훼손되면 안 되는 장소다. 웬 줄 아나? 출발 지점의 세이프 존은 피난처라는 의미도 있다. 그걸 멋대로 망가뜨리면 이쪽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거지. 이유를 알았으면 가버려.”
팟.
데블런이 사라져 버렸다.
천일은 몸을 돌려 소녀를 한번 훑어보았다. 외모만 보면 귀엽고 깜찍한 초등학생이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이쪽에서 저쪽, 저쪽에서 이쪽.
어느새 천일의 곁으로 다가온 소녀는 졸려 보이는 눈으로 천일의 전신을 훑어보고 있었다. 뭘까? 천일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한걸음 물러났다.
“확실히 연구대상으로 삼을 만하네. 그건 그렇고 재현(再現)을 사용하다니. 지구인치고는 제법이잖아. 응? 오빠.”
소녀는 천일을 오빠라고 했다. 조금 전 데블런을 없애 버릴 때 사용했던 고압적인 말투나 태도는 거짓말 같은 모습이었다.
천일은 소녀의 정체를 짐작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실례지만 귀하는 혹시 노바 스페이스 연맹의.”
천일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영웅이냐고?”
네아가 물었다.
“네.”
천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 네아면 돼. 시끄러운 것도 어색한 것도 싫어. 좋아하는 것은 맛있는 과자. 귀여운 인형. 그리고…… 그리고. 즐거운 것. 오빠에 관해서는 체비트에게 많이 들었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소개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데블런이라는 얼간이는 옥쇄의 탑으로 보냈어. 염려하지 마. 시험이 끝날 때까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시작 지점 세이프 존 요원들을 건드리다니 배짱도 좋지. 전투 능력 200만 갤런도 안 되는 주제에.”
네아의 어조는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내용은 터무니없이 오만했다.
“200만 갤런…… 갤런도 안 되는…….”
천일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놀라는 거야? 오빠. 순진하구나. 잘 들어. 알겠어? 노바 스페이스 연맹은 천만 갤런 이상을 영웅으로 분류하지만 천만이 겨우 넘는 영웅은 영웅으로 취급 안 해. 갓 태어난 병아리 같은 게. 영웅이 되면 끝도 없는 싸움과 전투의 나날이야.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가서 싸우는 거야. 싸우고 또 싸우고 또 싸우고. 그렇게 하다 보면 늘어나는 것은 전투 능력뿐. 1억 갤런은 넘어야, 이름 좀 알려지고. 적들도 몸을 사려. 항성 만드는 네아가 나타났다! 도망가자! 우와아아아. 이런 느낌으로.”
네아는 수다가 심했다.
주절주절주절.
천일은 그저 옆에서 멍하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흐.”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뭐 하는 것이더냐. 거기 있는 꼬마는 또 무엇이고?”
베베가 왔다. 천일이 위험하다고 해서 달려왔는데 꼬마의 수다에 시달리는 천일을 보고 뭔가 이상을 느낀 것이었다.
“와. 이번엔 언니잖아. 가만 보자. 흠흠. 확실히…… 이것도 연구 대상이야. 몸에 현상(玄裳)을 담고 있는 생명체라니. 퀸즈가 알면 어떤 얼굴을 할지. 오랜만에 가서 좀 놀려줄까.”
네아는 베베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고. 소란스러운 녀석이었다.
‘이게 영웅?’
천일은 여러 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천일, 빨리 설명을 해보거라. 뭔지 모르겠구나.”
베베가 천일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난. 네아! 현재 알펜스토르 항성계에 머무르고 있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 함대가 자랑하는 12 영웅 중 하나. 걱정 마. 해치지 않아. 그냥 보기만 하는 것뿐인 걸. 봉인장치도 잔뜩 달고 있으니, 문제없어.”
네아가 말했다.
“……!”
베베의 안색이 굳어졌다. 네아의 말에 놀라 버리고 만 것이다.
끄덕.
천일이 베베에게 긍정을 표해 보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데블런을 간단히 처리해 버린 것을 보면 범상한 존재는 아닐 터였다.
“네아 님!”
“설마, 네아 님!”
“네아 님,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네아 님께서 타고 계신 함선은 지금 분명…….”
언제 정신들을 차린 건지, 데블런에게 정식을 지배당하고 있었던 노바 스페이스 연맹 소속 사람들이 몰려왔다.
“시끄러! 놀 거야! 놀 거라고! 그리고 방금 함선의 항로에 관해 지껄인 놈 누구? 알펜스토르에 다이빙시켜 줄까? 퀸즈에게 팔아버릴 테다.”
발끈, 네아가 소리쳤다.
히이이익!
노바 스페이스 연맹 사람들 얼굴이 전원 파랗게 질려 버렸다. 보기에는 장난스럽지만 뱉은 말은 현실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네아였기 때문이었다.
“알아들었으면 가서 일들 봐. 지구인에게 정신의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것도 기억 못하는 머저리들이. 내 일이 참견할 시간 있으면 수련이나 해!”
네아가 버럭 했다. 그러자 노바 스페이스 연맹 사람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자칫 튀는 불똥에 화를 입을까 두려운 것이었다.
“마왕하고 재운은?”
틈을 타서 재운이 베베에게 물었다.
“마왕은 곧 오겠고 재운은 병원에 보냈느니라.”
베베가 답했다.
“그렇군.”
재운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왕도 보고 싶어. 마왕. 마왕! 재운이라는 지구인에 대해서는 흥미가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봐두기로 할까. 그러고 보니 체비트가 기다리겠네. 하아. 못생긴 그람빌 성인 주제에 언제나 입만 살아선. 지구인 오빠. 지구인 오빠. 반지 낀 손 좀 내밀어봐.”
네아가 천일에게 와서는 묘한 주문을 했다. 이에 천일은 당혹스러웠지만 상대가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해 있는 이상 해는 없을 터였다.
척.
천일이 손을 내밀었다.
“하아. 이게 뭐야. 지구인 오빠.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제대로 된 집도 없고 차량도 없고. 놀기만 하면 안 돼. 프로페스들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구. 열심히 노력해서 얼른 영웅이 되어야지. 배틀 포인트를 팍팍 모아 어비스도 소환하고. 군단도 구축하고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부대 지휘관이나 함대 사령관은 될 수 없단 말이야. 영웅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가 있다구.”
네아는 심각하다는 얼굴로 그런 소리를 했지만 천일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은 날 따라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니, 안심해. 지구인 오빠 팀에는 좋은 이야기야. 단, 이건 비밀이다. 알았지? 나와 나누었던 대화나 지금부터 있을 일이나 대화에 대해 말하고 다니면 안 돼. 오빠의 팀원이라면 어차피 알게 될 테니 괜찮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면 곤란해. 그럼, 간다.”
네아는 그런 말을 하고는 한걸음 물러났다.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긋자 천일, 마왕, 재운, 베베가 아틀란티스 월드에서 사라졌다.
아틀란티스 월드와 외부 세계 사이에는 뒤틀린 시공간의 틈이라고 해서 노바 스페이스 연맹 플랑드 말론 수비 함대 소속 12번째 우주선 아세란 함대가 존재했다.
아세란 함대.
무얼 숨기랴. 아세란 함대는 아틀란티스 월드를 감싸고 있는 시공간 필드와 기타 시스템을 감시하고 운용하는 우주선이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 플랑드 말론 방면 수비 함대는 현재 두 팀으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은 프로페스와 싸우기 위해 항해를 하는 중이고 다른 한쪽은 지구에 머무르며 아틀란티스 월드의 유지 및 관리 그리고 지구에 존재하는 각 나라 정부들과의 교신 등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아의 함대는 프로페스와 싸우기 위해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틀란티스 월드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무사항해 중으로 프로페스와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있었고 측근들 중 하나인 체비트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체비트.
노바 스페이스 연맹 플랑드 말론 방면 수비 함대에서는 유명한 인물로 과학자이며 엔지니어였다. 행성 그람빌 출신으로 키는 우겨서 1m인 녹색 외계인이었다. 피부는 파충류 비슷했고 옆으로 길게 늘어진 귀와 개구리 비슷한 얼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왔구나. 왔어! 그럼 빨리 검사부터.”
체비트는 천일들을 보자 그런 말을 했다.
“체비트! 소개부터 해야지. 예의를 어기면 안 된다는 것을 잊었어? 못되게 굴면 퀸즈에게 팔아버릴 거야.”
네아가 으름장을 놓았다.
“자자, 지구인 여러분 이쪽으로. 아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을 겁니다. 우선 검사부터 하죠. 이야기는 그다음입니다.”
체비트는 네아의 으름장을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있었다.
“체. 비. 트!”
하다 못한 네아가 체비트의 뒤로 가서 그 머리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네, 네아 님?”
체비트의 눈동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왕복 운동을 했다. 떨고 있다는 소리다.
“시공간의 틈에서 헤엄이라도 치고 싶지?”
네아가 물었다.
“아. 아니요.”
체비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길게 노닥거릴 시간 없어. 알지? 테스트는 간단하게 하는 거다.”
네아가 주의를 주었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네아 님의 지시를 제가 어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체비트는 벌벌 떨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네아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정말로 우주선 밖으로 옮겨져 시공간의 틈에 다이빙하게 될 것임을.
“아세란이 오기 전에 도망가야 해. 그 시끄러운 것이 오면 나는 몰라도 너는…… 알지?”
네아는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히익.”
체비트의 안색이 굳어졌다.
“좋아. 그럼 가봐.”
네아가 체비트의 머리를 속박하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자자, 지구인 여러분. 빨리 해야 하니. 이쪽으로.”
체비트가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섰고 천일들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일단 체비트를 따라갔다.
체비트는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한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괴팍하기로 이름이 높은 과학자이며 엔지니어였다. 발명품 중 대부분은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가끔 기상천외한 이론이나 물건을 만들어 이목을 끄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체비트는 여러 지구인 가운데서도 인간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다.
지금의 지구는 그리고 인간은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한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대개의 행성은 한가지 종류의 지적 생명체의 생존만을 허락하고 있었다. 행성이 생명체의 생존을 허락한다고 말하면 이상한 이야기지만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서는 상식이었다.
이유는.
늘어놓기 시작하면 A4 100장은 가뿐히 넘어갈 지루한 이론 이야기는 살짝 넘어가기로 하고.
지구에는 여러 형태의 지적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인간이 주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흡혈귀니 요괴니 수인이니 하는 것들부터 해서 신수(神獸), 선인(仙人)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그들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 인간들을 끌어들여 서로 싸우고 있지만 원래부터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던 생명체였다.
체비트의 흥미를 자극한 것은 인간이 그것들과 만나 후손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우주는 넓고 신비는 깊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후손을 만드는 것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 출신이 다른 행성의 사람들 혹은 다른 형태의 지적 생명체가 만나 후손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주는 넓고 신비는 깊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함으로 혼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노바 스페이스 연맹에 속해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그런 특성에 주목하여 후손을 만들고 싶어 했다. 출신 행성이 사라졌거나 멸망한 종족의 최후의 일인 같은 자들이 그랬다. 체비트는 그들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야망은 노바 스페이스 연맹이 정한 법규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따라서 계속 참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정말로 희귀한 케이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육체를 재구성하여 인간보다 한층 뛰어난 인간이 된 천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종 자체가 달라져 버린 베베.
처음부터 연구 대상이었던,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마왕.
위의 세 명이 모여서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비교하기 쉽도록 보통의 인간 재운까지 함께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연구 샘플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기에 체비트는 네아를 꼬셨다. 네아 역시 모성을 잃고 일족 최후 생존자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호오. 이거 놀랍군요. 여러분…… 설마 이런 상태가 가능하리라고는…… 이로써. 이로써! 저의 오랜 연구도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간단히 검사를 끝낸 체비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혹시가 역시로 바뀌며, 이건 연구해야 해! 죽어도 연구할 거야! 라고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테이블을 놓고 천일들과 네아, 체비트가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체비트는 네아에게 귓속말로 이러쿵저러쿵 결과를 말해 주었다.
“걸리면?”
네아가 물었다.
“새삼스레 무슨 그런 말씀을. 걱정 마십시오. 이럴 줄 알고 아세란 님께도 살짝 귀띔을.”
빡!
네아가 주먹으로 체비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꺄울.”
체비트가 신음을 터트렸다.
“나한테만 알려주는 비밀이라고 했었지?”
네아가 질문을 표했다.
“그, 그게…… 네아 님께서 내려가셨을 때 아세란 님이 찾아 오셔서…… 하, 할 수 없이.”
체비트는 우는 얼굴을 했다.
“하아.”
네아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아세란 님을 설득해 두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그분도 우리와 같으니까요. 게다가 연구가 성공하면 그 결과는 나눌 수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화내지 않으셔도.”
체비트가 네아를 달랬다.
“그만 거기까지.”
네아가 체비트에게 말을 아끼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화제를 바꾸자. 거기 지구인 오빠 그리고 기타 등등.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조언해 줄게.”
네아가 손바닥 뒤집듯 화제를 바꾸었다.
“조언?”
천일이 의문을 표했다. 옆에서 재운이 ‘기타 등등? 내가 어째서 기타 등등이냐! 재운이라는 이름이 있단 말이다!’라며 구시렁댔다. 베베도 ‘천일 외에는 없는 사람 취급이로구나.’라고 말했지만 마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