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제왕 아틸라 1권



제왕 아틸라 1권(1화)
프롤로그


하늘이 유난히도 붉었다.
짙은 혈향이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로 진동했다.
주위엔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썩어 가는 시체들도…….
몇 날 며칠간 계속되는 전쟁.
그 전쟁이 이제 끝을 보이고 있었다.
“으음…….”
로마의 장군 에이시우스(Aetius)는 침중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뾰족하게 세운 창으로 동그랗게 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안에 한 남자가 포위되어 있다. 남자의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처참했다.
화살이 빽빽이 박혀 들어가 사람인지 고슴도치인지 구분조차 안 간다. 화살뿐인가? 칼, 도, 창, 도끼……. 병기란 병기는 모조리 박혀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거칠어진 호흡을 뱉어 낼 뿐.
절대로 쓰러지지 않았다.
마치 신화에서나 나오는 불사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기세 높던 로마의 정예병들도 모두 공포에 질렸다.
단 한 명.
고작 한 명을 죽이지 못해 오만에 달하는 병사들의 사기가 땅을 치고 있었다.
“아틸라……. 정녕 당신은 악마란 말이오?”
훈족의 지배자, 아틸라.
그는 마왕이나 진배없는 존재였다. 로마에선 그를 악마라 불렀고, 세상 모든 이들이 신의 징벌이라 불렸다. 수많은 야만족들을 하나로 합쳐 스스로가 세상의 절대자임을 자처하는 아틸라의 힘 앞에 로마도 별 힘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에이시우스는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온갖 계략과 수많은 전투, 그리고 병사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아틸라를 이렇게 낭떠러지 끝까지 몰아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였다.
아틸라는 정말 악마라도 되는 양 죽지 않았다.
“크흐흐흐! 그래, 악마가 되어 주마!”
아틸라가 잔혹한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이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하늘 높이 뛰어오른 아틸라는 거세게 도끼를 휘둘렀다.
푸아아악!
“끄아악!”
허공에서 일은 에너지장은 거침없이 병사들을 짓이겼다.
아틸라는 연이어서 도끼를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에너지장이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가공할 능력이었다.
“으으으으!”
“악마야! 악마!”
병사들은 아틸라의 악마 같은 무위에 몸서리쳤다.
죽어 가는 병사들의 눈동자에는 처절한 공포가 어려 있었다.
악마!
그 어떤 신앙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현세에 지옥을 도래시킨 악마!
믿지 않았다. 과장된 이야기라 믿었다. 영웅이라 칭송받는 에이시우스마저도 그랬다.
한데…….
에이시우스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탄의 현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촌각의 시간에 죽어 간 병사의 수가 수백에 이른다. 분명히 위험에 처한 건 아틸라지만 오히려 병사들이 죽어 가고 있다.
화살을 쏴 봤자 죽지 않는다. 검을 휘둘러 봤자 피를 흘릴 뿐 죽지 않는다. 에이시우스는 이것이 무언지 잘 안다. 아틸라의 특기인 흑마법 중 하나가 분명했다.
흑마법은 가공할 파괴력과 무서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 흑마법에 대항하기 위해선 더 뛰어난 흑마법을 발휘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에이시우스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먼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아틸라의 도끼가 빛을 발했다.
“어디 한눈을 파는 것이더냐!”
그리고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에이시우스의 머리를 향해 쪼개지듯 떨어졌다.
쿠아아앙!
무지막지한 폭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
아틸라는 눈을 부릅떴다. 분명 진기를 가득 담아 도끼를 휘둘렀다. 에이시우스가 로마의 전쟁영웅이라 하더라도 아틸라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결코 막을 수 없다. 한데 강렬한 마기(魔氣)가 도끼를 막아 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엇인지 아틸라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토록 익숙한 기운, 바로 흑마법이었다.
‘방어의 술이군! 하지만 어떤 방어의 술이라고 해도 진기를 담은 내 공격을 막지는 못할 터! 그렇다면……?’
일순간 아틸라의 시선이 언덕을 향했다.
‘……!’
언덕을 바라보는 아틸라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자신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던 여인.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아틸라의 눈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녀가 로마군에 투항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아틸라는 괴로웠다. 유일하게 정을 나눈 인물이었다.
배신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전에는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한데…… 배신은 사실이었다.
“…….”
차갑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아틸라의 가슴을 아프게만 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단 말인가? 단 한 줌만큼이더라도…….
그녀는 무심한 눈빛으로 아틸라를 쏘아보더니 손을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마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흑마법의 힘이었다.
흑마법에 있어선 그녀가 아틸라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아틸라는 정신력으로 버텨 냈다. 굴하지 않고 앞을 막는 병사들을 베었다. 그리고 언덕을 향해 뛰어올랐다.
“크악!”
콰드드득!
그러자 더 강한 마기가 그를 억눌렀다. 아틸라의 신형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졌다. 로마의 고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틸라를 공격했다.
“크허엉! 이노옴들……!”
아틸라는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거의 3m에 이르는 도끼를 너무나 가볍게 휘두르는 아틸라.
휘우우웅!
가공할 파괴력!
회전력과 육중한 무게감이 실리면서 엄청난 파괴력이 일었다.
로마에서 제일가는 검수들 수십이 단번에 쪼개졌다.
그때, 다시 마기가 아틸라의 움직임을 막았다.
“쿨럭……! 크흐윽!”
마기는 너무 강력했다. 아틸라는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애초에 불가능한 싸움이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나마 흑마법으로 버틸 수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흑마법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뛰어난 로마 검수들의 합공과 그녀의 무지막지한 흑마법의 조화는 실로 대단했다. 아틸라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 데일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 계획했던 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치를 떠는 아틸라를 죽이기 위해 계획하고 아틸라에게 접근하지 않았던가.
데일라는 흑마법사였다.
세상 사람에게 흑마법사는 천대받으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흑마법이 워낙 사악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기에 과장되게 부풀려진 소문이 많았다.
그렇기에 데일라는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데일라가 살았던 도시가 로마에게 정복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데일라는 처음으로 한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사랑을 느꼈다. 처음으로 다가온 사랑이란 낯선 감정.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사랑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신분의 벽.
데일라는 멸시와 두려움을 동시에 받는 흑마법사였으나 남자는 로마의 영웅이었다. 로마 시민 모두가 찬양해 마지않는 영웅, 에이시우스가 바로 그 남자였다. 데일라는 좌절했다. 그러나 좌절한 데일라에게 에이시우스가 찾아와 제안했다.
‘아틸라를 죽이도록 도와준다면 그대에게 로마의 작위를 주겠다.’
그 말에 데일라는 눈이 번쩍 뜨였다.
작위가 생긴다면 어느 정도 신분의 벽은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데일라는 에이시우스의 제안을 승낙했고 아틸라에게 접근했다.
원래 아틸라는 흑마법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광대들이 벌이는 간단한 눈속임 마술에도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려고 했던 아틸라였다. 그래서 접근은 쉬웠다. 흑마법을 가르쳐 주며 접근했고 두 사람의 사이는 급격히 좁혀졌다.
그렇게 아틸라는 데일라에게 사랑이란 감정마저 느껴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데일라는 오히려 그것을 적극 이용해 아틸라를 이렇게 함정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데일라는 아틸라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죄책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니야. 저자만 제대로 해치운다면 나는…… 나는 에이시우스 님의 곁에 있을 수 있어.’
데일라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흑마법을 부려 아틸라의 몸을 꽉 붙잡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마왕이 있었다.
“크흐흐…….”
아틸라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수십 개의 검이 일제히 목과 머리를 향했다. 아틸라는 그들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렀다.
죽음의 순간이다.
그런데 웃고 있다니? 에이시우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정말 두렵다. 어찌 세상에 저런 존재가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틸라는 잔혹한 웃음을 흘리며 언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짙은 경멸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댄 나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줬다.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나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준 대가를…….”
짙은 어둠이 아틸라에게서 뿜어졌다.
쿠아아아!
하늘이 무너졌다.
땅거죽이 치솟아 올랐다.
아틸라의 분노가 하늘을 꿰뚫는 벼락이 되었다.
순간 천지가 진동했다.
“나의 분노를 담을 수 있는 육체의 그릇이여! 나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여! 나를 담아라! 나를 담아라! 나를 담아라!”
아틸라의 포효!
“저, 저건!”
데일라가 경악을 터뜨렸다.
아틸라의 행동!
그것은 금지된, 아니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저주받은 흑마법.
영혼전이의 술!
“막아야 돼!”
데일라는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자신이 내뿜을 수 있는 모든 마기를 쏟아부었다. 막아야만 했다. 지금 여기서 마왕은 죽어야만 했다. 설마 저 금지된 마술을 사용할 줄 누가 알았던가!
아틸라가 벼락과도 같은 빛을 토해 냈다. 그 빛은 순간 하늘로 치솟는 듯했다. 벼락, 그 자체였다. 그때 데일라의 에너지가 그것을 붙잡았다.
‘크아아아아!’
아틸라의 영혼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흑마법, 박령(縛靈)의 술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일라의 흑마법이 아틸라의 영혼을 붙잡았다. 주위가 짙은 어둠과 눈부신 섬광의 대비로 점철됐다. 그런 상황에서 아틸라는 극한의 고통을 느꼈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승천하는 영혼을 붙잡는 박령의 술. 그것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저주받은 흑마법을 잡아 낼 정도!
그러나 지금 아틸라의 정신력은 극에 달해 있었다. 분노의 화신이 된 아틸라는 격한 복수심에 그대로 박령의 술을 뿌리쳤다.
쿠아아아!
어둠의 기운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리고 하늘 위로 눈부신 섬광이 치솟았다.

하늘을 꿰뚫은 분노의 벼락은 차원의 문턱을 넘었다.
공간과 시간, 그리고 차원을 뛰어넘어…….
그곳에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