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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화)
1. 나는 아틸라다(1)


우르릉!
“으아악!”
마차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청천벽력!
말 그대로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이었거늘, 갑자기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고막을 터뜨릴 뇌성이 울리는 것이 아닌가.
“으으으!”
병사들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벌벌 떨었다.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니. 무지한 그들로서는 신의 징벌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기사들이 급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폈다.
정말 벼락이 눈앞에 떨어졌다.
마나로 눈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눈은 실명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병사 몇몇은 눈이 멀어 버렸다. 지표면에 흐르는 강렬한 뇌기에 감전되어 몸을 푸들푸들 떨다가 죽어 간 이도 있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일어나지 못해! 어서 이공자님을…… 헉!”
부랴부랴 명령을 내리던 기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헉! 저, 저럴 수가!”
“이공자님!”
그들의 눈에 보인 현장은 끔찍했다.
커다란 사두마차 하나가 완전히 부서져 처참한 잔해만이 눈에 보였다. 말들도 허연 거품을 물고 푸들푸들 떨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기사는 황급히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이공자님! 이공자님!”
마차 안에는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었다.
만약 벼락을 맞아서 생명이 어떻게 되었다면……!
부서진 마차 잔해 뒤로 창백한 피부의 소년이 눈에 띄었다. 마차가 무너지면서 상처를 입었는지 머리에서부터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사는 급히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있다!’
분명 방금 전 벼락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통으로 맞았으니 죽음을 피해 가기란 요원했을 터.
하지만 다행히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직은 살아 있단 소리였다.
기사는 이것을 천운으로 여기며 급히 소년을 업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영지로 가서 치료해야만 한다!”
기사의 외침과 함께 말 머리가 돌려졌다.
기사는 보지 못했다.
그가 등에 업고 있는 소년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 * *

고스는 새로 들려온 소식에 얼이 빠졌다.
어린 호랑이라 불리는 루인 이공자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른하늘의 벼락을 맞고 돌아왔다.
“대공자의 죽음에 놀라 도망친 어린 호랑이, 벼락을 맞고 돌아왔다고? 무슨 이런 일이…….”
루인 이공자는 대공자의 죽음 이후 백작가를 떠나 황실 아카데미 입학을 선언했다. 그리고 출발을 한 날짜가 불과 엊그제였다.
한데 루인은 갔던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벼락을 맞다니, 허 참.”
고스는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바츨라브 백작가의 행정을 총괄하는 고스는 백작가의 세력을 절반이나 손에 쥔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루인 이공자는 눈엣가시였다. 어쩌면 자신하고 대립각을 세운 외무를 총괄하는 가신 룩스보다도 더 신경 쓰였다. 물론 그는 자신이 백작가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리라 의심치 않았지만, 적은 많으면 많을수록 위험한 일이 아닌가.
루인이 백작가를 떠난다고 했을 때 고스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었다. 게다가 벼락을 맞아 깨어나지 못한다고 하니, 하늘이 자신을 이렇게 도와줄 수도 있구나 싶다.
“이왕이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군.”
고스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같이 떠난 기사들의 발 빠른 대처로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들어 보면 뇌기에 너무 심하게 감전되어 백치가 되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거라 한다.
“바츨라브의 씨는 끝났군.”
잔인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
제국 남부를 질타했던 야수의 핏줄, 바츨라브의 씨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고스 자신이, 이 백작가의 정점에 서리라.
고스가 그렇게 단꿈에 젖어 있을 무렵,
백작가에서 악마가 태동하고 있었다.

“끄으으!”
루인은 눈을 뜨자마자 머리에 치미는 고통에 신음을 토해 냈다. 마치 거인이 손으로 머리를 터뜨릴 것처럼 누르는 고통이었다. 루인은 눈을 감고 고통을 참으려 애썼다.
콰콰콰―
갑자기 뇌에 기억의 물결이 파도쳤다. 루인의 기억과 생소한 기억이 서로 부딪치며 뇌에 억지로 스며들었다. 거기서 전해지는 아픔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순간.
번쩍!
루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흉광이 뿜어졌다.
지독한 살기, 그리고 분노가 담긴 흉광!
만약 누가 보았다면 그대로 심장이 멈췄으리라. 그만큼 지독히도 무서운 흉광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노가 담긴, 모든 것을 부수고 짓밟고야 말겠다는 엄청난 분노.
고작 열여섯 살짜리 소년인 루인에게서 나올 수 없는 기운이었다.
그렇다. 루인의 몸뚱이에 자리 잡은 영혼이 내뿜고 있는 분노였다.
“아틸라? 훈족? 로마? 에이시우스? 으아아아!”
루인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갑자기 억지로 뇌에 스며드는 기억들의 파도에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로마니, 훈족이니, 에이시우스니……. 모두 생소한 기억들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생생했다. 생소하면서도 낯설지가 않았다.
“으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방 안을 뒤흔들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틸라! 아틸라였다.
지독한 분노의 화신이 루인의 육체에 강림했다. 항거할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루인의 정신력을 마구 짓밟고 뭉그러뜨렸다.
“으아아악! 나가! 나가란 말이다!”
루인은 머리를 뜯어내듯이 쥐고는 미친 사람처럼 발광했다.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생소한 기억들, 그리고 몸속에 자리 잡는 하나의 이질감!
그것의 이름은 아틸라였다.
“악마, 악마!”
악마, 악마였다. 사람의 육신을 빼앗으려는 악마!
분노에 찬 악마가 루인의 육신을 차지하고자 한다.
단지 열여섯 살짜리 소년이 어찌 버티겠는가!
루인이 아무리 세상에서 새끼 호랑이라 칭송하는 인재라 하더라도 아틸라는 전쟁을 호령한 마왕이었다.
“나를 받아들여라……!”
루인의 입가에서 거칠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아틸라의 목소리!
그렇다. 아틸라의 영혼이 조금씩, 그리고 치밀하게 루인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내 몸이야!”
루인이 소리쳤다. 아틸라의 목소리와 루인의 목소리가 계속 교차했다. 루인의 머리가 하얗게 타들어 갔다.
점점 정신이 희미해진다.
분노를 불사르고 어떻게든 이겨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육체를 잠식해 가는 존재는 다름 아닌 아틸라가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루인도 대단했다.
천하의 아틸라를 상대로 기를 펴고 버텼다.
아틸라가 어찌 루인의 육체를 차지하려 하는 것인가?
그것은 루인의 육신이 아틸라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란 얘기였다.
루인!
그도 분노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아틸라는 분노의 화신!
분노로 점철된 아틸라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한 루인뿐!
힘겨운 기 싸움이 계속됐다.
아틸라는 차지해야만 했다. 이 육신을 차지해야만 했다.
데일라의 박령의 술의 영향이 컸다.
만약 제대로 영혼전이의 술이 펼쳐졌다면 아무리 루인이 큰 그릇이라고 하더라도 금방 차지하였으리라.
하지만 박령의 술로 영혼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아틸라는 곧바로 루인을 제압하지 못했다. 하나 아틸라가 누구였던가!
그는 전무후무한 제왕이었다.
루인의 육신에 점차 아틸라의 영혼이 잠식해 들어갔다.
한 육체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하는 일은 절대 불가!
그러나……!
루인은 끝내 육체를 버리지 않았다.
아틸라에게 머릿속을 잠식당하면서도, 그는 깊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들었다.
‘으으으……!’
그리고 끝내……!
번쩍!
루인의 눈에서 흉광이 폭발했다.
루인이 아니었다.
마왕의 재림이었다.
초원을 넘어 로마를 무너뜨리던 훈족의 영웅이요, 로마의 절망이었던…….
마왕(魔王) 아틸라의 재림!
“나는 아틸라다! 훈족의 왕 아틸라!”
아틸라의 포효.
그것은 세상을 강타할 거대한 폭풍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