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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5화)
10. 뒷골목의 스콜피온(3)


“낄낄낄. 한심하군. 밖에 있던 어쌔신들은 제법 매섭기라도 했지…….”
바스티안이 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외팔에 들고 있는 그의 검에는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가 스콜피온인가?”
바스티안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아틸라는 헬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헬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자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강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티안만 해도 그렇다. 거구에 외팔이 검사인 바스티안은 척 봐도 위협적이었다. 보아하니 간부 셋을 순식간에 제거했던 것도 바스티안의 솜씨이리라. 도저히 자신이 감당해 낼 수 없는 실력이 분명했다.
바스티안이 그럴진대…….
그 뒤를 걸어 나오는 아틸라는 어떻겠는가?
헬란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틸라와 바스티안의 관계를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뒷골목에서 이만큼의 세력을 일구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헬란은 채찍을 쭉 뻗었다.
그의 채찍술은 전갈과 같았다. 전갈이 단 한 번의 독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것 같았다. 채찍엔 가시가 빼곡히 나 있었다.
푸악!
채찍이 비틀어지면서 아틸라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꽈악!
아틸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채찍을 한 손으로 잡았다.
헬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시에는 극독이 발라져 있었다.
코끼리도 즉사시킨다는 극독!
극독은 은밀하지 않았다. 화려했다. 건장한 성인에게 극독이 침투되는 순간, 한 번 호흡하기도 전에 목숨이 끊긴다. 스콜피온이 뒷골목의 악녀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한심하군.”
아틸라는 냉막한 미소를 보여 줬다. 헬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까악!”
아틸라는 그대로 채찍을 잡아당겼다.
괴력이었다.
헬란은 그대로 휩쓸려 간 채로 바닥에 처박혔다.
“헬란 님!”
간부들이 급히 몸을 던졌다.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아틸라의 배틀액스가 하늘을 쪼개듯 떨어졌다.
푸아악!
일격!
한 번의 휘두름에 하나의 목숨은 반드시 사라졌다.
초개처럼 몸을 던진 간부들의 몸이 모조리 갈렸다.
“네가 스콜피온이지?”
“끄으윽!”
“말해!”
퍼어억!
아틸라는 헬란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얼굴을 가격했다. 헬란의 고개가 90도로 홱 돌아갔다.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깨져 나갔다.
“맞, 맞아.”
“스콜피온이여! 듣지 못했는가? 주인이 될 자가 온다고!”
아틸라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헬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너의 주인, 아틸라다.”
아틸라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헬란을 내려다 놓았다. 헬란의 눈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땅에 내려놓아지자마자 헬란은 그대로 소매에 숨겨 놨던 비수를 꺼내 쭉 뻗었다.
“끄아아악!”
뿌각.
헬란의 손목이 90도로 비틀어졌다. 헬란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끄으윽.”
아틸라는 무심한 표정으로 헬란을 바라보았다.
“명을 내리겠다. 뒷골목의 암흑세계를 통합해라.”
“…….”
“그리고 바츨라브 백작가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라. 누가 몇 시에 죽고 사는지, 어디 사는 누가 불륜을 저지르는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너희들은 나만의 정보기관이 되어야 한다.”
“미친놈…… 퉤!”
아틸라의 얼굴에 누런 가래침이 뱉어졌다. 헬란은 독기 서린 표정으로 아틸라를 노려보았다.
헬란!
악녀 스콜피온!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진작 죽었어야 했을 목숨이었다. 제국의 정보기관에 쫓겨 여기 숨어들었을 때, 그녀는 처절한 독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까짓것 죽으면 어떤가?
그녀는 이곳의 왕이 되고 싶었다.
암흑세계의 왕!
그런데 그것을 모조리 갖다 바치라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
그것이 헬란의 생각이었다.
“그런가…… 좋아.”
아틸라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헬란이 본 건 무저갱처럼 처절한 공포의 터널과 같은 두 눈동자였다.

* * *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로그리스를 필두로 한 기사와 수련생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
고작 십오 분이면 모조리 바스티안에게 나가떨어졌던 그들이 어느새 한 시간을 버텼던 것이다. 그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물론 아직 바스티안의 옷깃조차 스치지는 못했지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틸라 이공자님.”
루나가 홍차를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아틸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들어오시래요.”
“그래.”
루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방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는 여인은 루나보다 월등히 키가 컸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는 여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훤칠했다. 터질 것 같은 둔부에 잘록한 허리, 치마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각선미는 같은 여자인 루나가 봐도 아름답고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틸라를 며칠 전부터 계속 찾아온다는 사실에 괜히 심술이 났다.
“왔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더 공손해졌군, 좋아.”
“호호.”
아틸라는 이채를 띤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정체를 안다면 분명 놀랄 사람이 많았다.
그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다는 뒷골목의 여왕 스콜피온!
바로 헬란이었다.
그때 헬란은 아틸라의 탈혼안에 정면으로 맞섰다.
하나 바스티안의 싸움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던 아틸라의 탈혼안은 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헬란은 탈혼안에 굴복했다. 물론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아틸라는 당근을 줬다. 채찍을 줬으니 당근으로 유혹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아틸라는 온전히 암흑세계를 그녀에게 맡긴다고 했다. 단지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고, 원하는 정보를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외에 뒷골목의 세상엔 아무런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끊임없는 탈혼안과 당근의 유혹.
끝내 독기로 무장되었던 스콜피온 헬란은 아틸라에게 넘어왔다.
그동안 헬란은 뒷골목을 통합했다.
본래 그들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하나…… 아틸라가 나서니 일이 달라졌다. 아틸라는 그저 바스티안을 보냈을 뿐이다.
그랬더니 일이 일사천리였다. 뒷골목에서 바스티안을 감당해 낼 존재는 없었으니까.
“그래 보고서는?”
“말씀하신 보고서는 여기 있습니다.”
헬란은 두툼한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렸다.
책을 한 번 훑어본 아틸라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좋군, 만족스럽다.”
“이제 더 내리실 명령은 없나요?”
“없다. 대신 헬란…….”
“예?”
“난 주인을 무는 개는 용서치 않는다.”
“……!”
헬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틸라가 웃었다.
“그만 나가 보도록.”
명백한 축객령. 헬란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밖을 나갔다.
“악녀 스콜피온. 저런 류는 절대 누구 밑에 있지 않는다. 바스티안처럼 말이야.”
독기로 처절하게 무장된 사람이다. 굴복했을지언정 정신마저 무너지지는 않는다. 헬란은 분명 암흑세계의 여왕이 된 이후 딴마음을 먹을 것이다.
아틸라는 그것을 경고했다.
지금 아틸라와 헬란의 관계는 딱 이 정도가 좋았다.
뛰어난 제왕과 그 밑의 충성스런 수하?
헬란은 누구의 수하가 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단지…… 딱 지금처럼만.
서로 이용하는 관계.
헬란은 뒷골목을 통합하기 위해 아틸라의 힘이 필요하다. 아틸라는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헬란이 갖고 올 수 있는 정보력이 필요하다.
얼핏 보면 헬란이 완전히 굴복해서 아틸라의 수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 견제하고 이용해 먹고 있는 것이다.
“헬란, 물론 네가 도가 지나치면 나는 거침없이 널 벨 것이야.”
아틸라는 단호했다. 만약 이 관계를 무시하고 주인을 문다면…… 아틸라는 거침없이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건 바스티안도 마찬가지였다. 바스티안 역시 아틸라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힘이 부족해서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을 뿐.
만약 아틸라를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언제든지 떠날 존재였다.
하나 아틸라는 상관없었다. 지금 급한 것은 적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로마로 갈 것이니까.
“어디 보자.”
아틸라는 헬란이 갖고 온 책을 면밀히 살폈다.
백작가의 수많은 가신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또한 그들의 비리 역시 많았다. 이것은 살생부나 다름없었다. 가신들의 목숨을 움켜쥘 살생부!
하나 필요 없다.
지금 아틸라에게 필요한 건 그들의 존재였다.
“과연 누구냐. 누가 홀렌을 불렀고, 흑마법사를 색출하게끔 유도했느냐.”
과연 누구인가.
시간이 흘렀다.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다시 달이 지고 해가 떴다.
그동안 아틸라는 수많은 가신들의 특징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끊임없는 고찰!
그리고 도출되는 하나의 결론…….
탁!
책이 덮어졌다.
두 눈을 감은 아틸라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너였군.”


<『제왕 아틸라』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