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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아틸라 1권(24화)
10. 뒷골목의 스콜피온(2)
바츨라브 영지.
남부를 지배하는 철옹성인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런 곳에는 자연히 더러운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수많은 범죄자들, 도둑, 살인범, 창녀, 도박꾼이 모여드는 뒷골목.
그런 뒷골목에는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또한 그 세계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고 군림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그중 악녀(惡女)가 있다.
사람들은 부른다.
악녀(惡女) 스콜피온.
“스콜피온은 어디 있지?”
골렘은 다짜고짜 스콜피온의 행방을 찾는 청년을 보고 기가 막혔다.
여긴 자신의 구역이다.
스콜피온은 자신의 적이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스콜피온을 찾는가? 골렘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2m에 달하는 덩치는 청년을 따라온 칠 척 거구의 노인에 비해 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근육으로 꽉 찬 골렘이 더 우람해 보였다.
“허, 이 어린놈이 여기서 그년을 찾아?”
골렘은 주먹을 쥐었다.
그는 열세 살 때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아 그 타고난 괴력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그의 별명도 골렘이 아닌가?
뒷골목에서 스콜피온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이가 바로 그였다.
“뒷골목에서 가장 강한 자가 스콜피온이라고 들었다. 어디 있는가?”
그 말이 골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뭐, 뭣? 어떤 새끼가 그래? 뒷골목의 왕은 나라고. 나!”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어디 있냐?”
“그럼 잘못 찾아왔다. 이 자식아!”
슈웅!
골렘은 주먹을 날렸다.
푸악!
“끄아아악!”
비명을 지른 건 청년이 아니었다. 골렘이었다. 골렘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뻗어 냈던 자신의 주먹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오른 손목에서는 핏물이 콸콸 흘렀다.
“끄으윽, 끄아악!”
골렘의 두 눈에 공포가 어렸다.
청년은 가만히 있었다. 뒤에 있던 노인이 어느새 검을 뻗어 왔다. 보지도 못했다. 그저 키 때문에 힘 좀 쓰겠다 싶은 노인이었다. 오히려 계속 웃고 있기 때문에 노망난 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 있는 노인이 저럴진대, 앞에 있는 청년은 얼마나 더 무서운 인물이란 말인가.
“다시 묻지, 스콜피온 어디 있나?”
“끄으으윽…….”
공포, 그리고 충격과 고통에 골렘은 말하지 못했다.
청년은 무심한 표정으로 골렘의 가슴팍에 발을 올렸다.
꾸우우욱.
“커허어억!”
“갈비뼈가 부서지고 심장이 터지기 전에 말해라.”
“그, 그녀는 반대편 돈스텔이란 술집에…….”
청년은 그제야 발을 치웠다. 골렘은 죽다 살아난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스콜피온한테 가서 전해. 곧 주인 될 자가 온다고.”
“그 무슨……?”
“아틸라. 뒷골목의 주인이 될 자가 온다고. 그게 바로 나야, 아틸라.”
아틸라!
그가 뒷골목에 나타났다.
“푸하하하. 그거 정말 웃긴 소리일세.”
“그니까 말이야. 뭐 뒷골목의 주인이 될 자가 온다고?”
“골렘이 미친 것이 분명하군!”
스콜피온의 아지트에 모인 간부들은 들려온 소식에 웃음을 터뜨렸다.
불과 몇 시간 전, 골렘이 아지트에 편지를 부쳤다.
곧 뒷골목의 주인 될 자가 온다고,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하나 스콜피온의 간부들은 비웃었다. 지금껏 뒷골목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뒷골목의 주인은 등장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권력을 쥐고 있는 권력가들이 뒷골목을 접수하고자 했었다. 그들은 권력으로 일시적으로 뒷골목을 접수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뒷골목만큼 험하고 거친 곳은 전장밖에 없다.
이곳을 접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권력? 돈? 힘? 이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할 것이고, 그것도 압도적이어야만 한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
그러나 꼭 그렇지 않아도 뒷골목의 주인이 될 자가 나타날 거라고 스콜피온의 간부들은 믿고 있다.
바로 자신들의 주인인 악녀 스콜피온 말이다.
“정말 우스운 말 아닙니까? 헬란 님?”
헬란.
그것이 뒷골목에서 악명이 자자한 스콜피온의 이름이었다.
간부들과 달리 헬란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푹신한 시트에 앉은 채 다리를 꼬고 있는 그녀는 한없이 고혹적이었다. 갈라진 치마사이로 드러나는 매끄러운 허벅지와 아름다운 각선미, 그리고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은 누구나 침을 흘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웃음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야.”
“그 무슨?”
“골렘은 무식하지만 당당한 놈이야. 자신의 힘을 믿고 남에게 수그리지 않는 놈이라고, 그런 놈이 주인이 오니까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그렇다면 골렘이 다른 수를 쓴다는 것입니까?”
“꼭 그렇지만은 아니야. 골렘은 무식하거든.”
“그럼…….”
“진짜 골렘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주인 될 자…… 아틸라라고 했나? 그가 올지도 모르지.”
헬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제국의 정보기관 출신이었다. 바로 정보요원이 그녀의 전 신분이었다. 여러 정보를 캐내는 와중, 그녀는 큰 실수를 저질러서 처형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때 도망쳐서 그녀는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제국의 전문 교육을 받았고, 가진 바 능력도 뛰어날 뿐더러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정보요원에겐 직감이란 유용하고 최후의 보루였다.
그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예사 상황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직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세한 님, 일이 터졌습니다.”
“무슨 일이지?”
가장 말단에 있는 간부 세한은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부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웬 미친놈이 스콜피온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면서 길을 열라고 합니다.”
“누군지 확인했나?”
“모르겠습니다. 그저 체격 좋은 청년하고 키가 무지 큰 노인네였습니다.”
“……!”
순간 세한은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골렘의 편지에 묘사된 그의 행색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세한?”
헬란이 굳어지는 세한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세한은 애써 불길함을 떨쳐 내고 웃으며 말했다.
“그저 미친놈들이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답니다. 금방 처리될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불길하긴 했지만 스콜피온의 아지트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확인 절차를 통하지 않고 침입하면 수많은 함정에 위협받는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매복해 있는 문지기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난 어쌔신들이다. 전문 어쌔신 길드에서 여기까지 흘러 들러온 그들은 충분히 침입자들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세한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나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에 세한도 흔들렸다.
“1차 저지선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천장에 매복해 있던 어쌔신들이 속수무책으로……!”
“놀란스 녀석들이 문을 잠그고 막아 봤지만 모두 다 소용없…….”
파죽지세!
그제야 세한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세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자 헬란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다.
“무슨 일이야! 세한!”
“그, 그것이 침입자가 너무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다고.”
“몇 명인데 그래? 골렘 녀석들이야?”
“두, 두 명…….”
“뭐?”
헬란을 비롯한 간부들은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고작 두 명의 침입자에게 뒷골목에선 요새라고 불리는 스콜피온의 아지트가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있단 말인가.
간부 대부분들은 이 말도 안 되는 보고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겼다. 그러나 헬란만큼은 아니었다. 가슴을 꽉 죄이는 불안감, 그리고 직감.
그것이 지금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스콜피온은 허리춤에 매고 있던 채찍을 꺼내 들었다.
헬란이 채찍을 꺼내 들자 간부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스콜피온이 채찍을 꺼냈다!
그것은 뒷골목에 피바람이 분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했다.
그때였다.
피투성이가 된 수하가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피, 피하십시오! 어느새 놈들이…… 아악!”
쾅!
수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부서졌다. 문이 부서지자마자 간부들은 검을 뻗거나 비수를 던졌다.
슈수수숭!
좁은 문!
그곳으로 들어오는 침입자! 그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검과 비수들!
간부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비수를 쏟아부었다.
파파파팍!
벽과 바닥에 세차게 꽂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얼마나 쏟아부었을까.
먼지가 자욱해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간부들은 죽었으리라 생각했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에 좁은 문틈에서 쏟아지는 비수를 어찌 다 피하겠는가.
하나 헬란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그토록 많은 비수가 쏟아졌다.
한데 기합이나 비명, 신음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먼지가 점차 사라졌다. 간부들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한데…….
“뭐야?”
“어디 갔어?”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검과 비수들이 바닥에 빼곡히 처박혀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마치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서걱!
“끄아아악!”
가장 앞에서 상황을 보던 세한의 어깨가 뎅강 잘려 나갔다. 동시에 옆에 있던 간부 둘의 허리가 베어졌다.
무언가 대처하기도 전에, 정말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