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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



나는 영혼을 팔았다 1권(1화)


어느 날, 악마가 내게 제안했다.

힘을 주겠노라고.

내가 말했다.

받겠노라고.

다시 악마가 말했다.

대가는 영혼이라.

나는 웃었다.



1. 계약(1)


이상실은 홀로 어두컴컴한 방에 있었다. 문을 잠가 버린 방에 채광이란 존재치 않는다. 반지하의 손바닥만 한 방엔 창문이란 게 없다. 습기가 가득해 퀴퀴한 냄새가 나고, 실제 바닥을 만지면 물기가 묻어난다.
내부는 깔끔했다. 몇 없는 책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새것처럼 보였고, 낡아빠진 옷장은 경첩이 떨어져 문짝이 기운 것 외에 문제는 없다. 구석엔 어디서 주워 온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위에 구닥다리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상실은 벽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낮이니까. 다들 출근해서 사람이 없을 시간이니 쫓아올 사람이라곤 집주인뿐이다. 물론 그도 바쁜 사람이니 지금은 없을 거다.
한참 못질을 하던 그는 벽을 파고든 콘크리트 못을 잡아 흔들어 봤다. 단단히 잘 박혔다.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해 둔 밧줄을 꺼내 건다. 어딘가에 걸리면 올무처럼 조여들면 조여들었지, 풀리진 않는 구조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만든 작품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소년은 서툰 손놀림으로 콘크리트 못에 밧줄을 묶었다.
몇 번이나 실패하며 처음부터 못과 함께 박아 버릴 걸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는 수 없이 몇 번이고 시도해 간신히 묶는 데 성공했다.
올무를 잡아당겨 잘 고정되었는가 확인해 본 그는 책상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겼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올무를 손에 쥔 소년은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외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옛적에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아들을 키웠다. 당연히 벌이가 시원찮아서 집안은 가난했고, 상실은 늘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유행에 따라 또래 애들이 가지는 것도 손에 쥐지 못했고, 행색 또한 남루했다. 당연히 주눅이 들었다. 그 탓에 운동도 못했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라곤 게임뿐이었다.
어머니는 일을 하시느라 늦은 저녁이나 되어서야 돌아오셨으니,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학원 갈 돈도 없기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게임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공부하는 척했다.
당연히 공부도 못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선생님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다.
얼굴도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한 탓인지 마른 몸에 배만 나왔고, 얼굴은 여드름이 가득했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은 젬병에, 돈도 없다.
그런 몰골이니, 학교생활도 멀쩡하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늘 주눅이 들어 생활했고, 눈치나 살폈다. 자연히 친구도 없다. 대신 쫄따구가 되었다. 정확히는 화풀이 대상.
본인도, 부모도 힘없는 그는 괴롭힘의 표적이 되었다. 도를 지나친 장난을 당하고, 맞아도 아무 말도 못하고 바닥만 바라봐야 했던 상실은 샌드백이나 다름없었다.
그 괴롭힘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고등학생이 된 다음에는 엄마를 졸라, 제법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새로 배정된 반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뒤는 이전과 같았다. 그 녀석이 다른 애들을 선동해 앞장서서 괴롭혔다. 아무 말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그를 새로운 급우들도 만만하게 여겼다.
소년은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번엔 더욱 심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반에서 모두가 그를 무시했으니까.
학교를 가는 매일이 고통스러웠다. 서러워서 울어도 봤지만 돌아오는 건 모멸 가득한 조롱뿐.
그는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건 이미 옛날에 해 봤었다. 선생님이 말을 해 봤자 얼마 가지도 않았다.
며칠 뒤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또 고자질 해 보라며 두들겨 맞기만 했다.
엄마에게 말해도 소용없었다. 엄마가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를 쳤고, 선생님은 진정시키려 애썼다. 선생님이 다시 아이들에게 한 소릴 했지만, 역시나 그때뿐이었다.
다시 엄마가 학교로 달려갔을 때부턴 선생님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그 뒤로 상실은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해결되는 일은 없었고, 적만 늘었다. 차분하게 말하지 않고 길길이 날뛰는 엄마가 부끄러웠었다.
엄마도, 선생님도 믿지 못하게 된 그는 어느 날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 나가는 엄마가 이를 눈치채고 문을 두들겨도 열지 않았다.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학교를 나가기 싫었다. 급우들 보기도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또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집까지 찾아와 패악을 부리지 않을까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밥만 해 두고 일터로 나가셨고, 괴롭히는 애들도 집까지 찾아오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계속 컴퓨터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하고 있으면 다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성인이 되면? 엄마가 없으면? 난 어떻게 되지? 누가 날 먹여 살리지? 나는 뭘 해야 하지?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리고 자신이 한심해졌다. 엄마는 저 고생을 해 가며 나를 키우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고작 하는 것이라곤 게임뿐. 엄마에게 있어, 나는 짐이다.
그러자 왜 사나 싶어졌다. 이렇게 벌레처럼 살아도 되는 걸까 싶었다. 자괴감은 이성을 갉아먹었고, 종국에 가서 그는 도피처를 찾아냈다.
죽음.
죽으면 자유가 된다. 괴롭힘도, 엄마의 걱정도, 앞으로 살아갈 일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못난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됐다.
완벽한 도피처였다. 앞으로 살아갈 자신도, 희망도 없다 생각한 그에게 있어 죽음의 유혹은 달콤했다.
“엄마, 미안.”
올무를 손에 쥐고 중얼거린 그는, 그것을 목에 걸었다. 죽는다 생각하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한참을 심호흡하던 소년은 인터넷에서 본 대로 의자를 걷어차 쓰러트렸다.
“케엑!”
발밑이 비어 버리자, 올무에 체중이 실렸다. 단단히 조여진 밧줄이 목을 파고들었다. 숨쉬기가 괴롭다. 얼굴이 터질 것만 같다. 가슴이 답답하다. 죽을 것만 같다.
상실은 발버둥 쳤지만 올무는 풀리지 않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와 장면은 엄마뿐이다. 주름진 얼굴. 펑퍼짐한 몸매. 새벽부터 나가 고생하시다 저녁이 되면 십 년은 더 늙은 얼굴로 돌아오시는.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기억 속 잠들어 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우리 아들, 착하기도 하지.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된다.
공부 못하면 어때, 건강하기만 하면 됐지.
아들, 이다음에 엄마 호강시켜 줘야 돼?
사랑한다, 아들.
사랑한다, 상실아.
사랑한다.
사랑해.

엄마, 엄마.
호흡이 가쁜 와중에도 눈물이 차오른다. 발버둥 치며 이를 악물었지만 밧줄을 벗어날 순 없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케헥, 케엑.”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엄마를 불러 보고 싶지만 숨통이 콱 막혀 버린 탓에 이상한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다.
시야가 어두워짐을 느끼며, 소년은 엄마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안녕?”
시커먼 자가 상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남자일 것이라 짐작되는 그는 그림자처럼 윤곽만 보일 뿐, 어떻게 생겼는지, 뭘 입고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누, 누구세요?”
상실이 더듬더듬 답했다. 그러자 남자가 씩 웃었다. 아니, 그의 입가엔 변화가 없었다. 상실은 그가 웃었다고 생각했다.
“악마.”
“악마요?”
난데없는 말에 소년이 황당한 표정이 되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악마. 영혼을 가져가고,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지.”
“소원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힘을 준다.”
“힘?”
소원을 들어준댔다가 힘을 준다고 하는 그를, 상실은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상한 사람이다. 말과 형상 모두.
“마법이지. 믿음으로, 의지로 세상을 바꾸는 불가해한 힘.”
“마법?”
계속 묻기만 하는 자신이 바보 같겠지만, 소년은 상대가 더 이상하다 생각했다. 악마라느니, 소원이라느니, 힘이니, 마법이니. 괴상한 소리다.
“여긴 어디예요?”
“내가 있으니 지옥이겠지?”
상실은 이상한 말만 해 대는 저 남자를 상대하기 싫어졌다. 집으로 가야 했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돌아오실 거다. 엄마가 오면 잘못했다고 해야지. 이제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고 해야지. 그러다 문득 남자가 한 말이 걸렸다.
“지옥이요?”
“그래.”
남자는 끄덕이며 단언했다.
“너는 죽었다.”
“죽어? 내가?”
당황하는 그에게 남자가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벽에 못을 박고, 거기에 건 줄에 목을 매달아 질식해 죽었다. 여기는 지옥인 셈이고.”
“죽어? 죽었다고?”
충격을 받아 멍하니 중얼대던 소년이 다음 순간 빽 소리쳤다.
“아니야! 난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다고. 조금 있으면 엄마가 돌아오실 거야. 날 돌려보내 줘. 난 죽지 않았어!”
“완전히 죽은 건 아니야.”
“어?”
“너는 이승과 저승에 한 발짝씩 걸쳐 있다. 거의 죽어 가고 있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죽을 거야. 확실히.”
남자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실을 기다려 주었다. 멍청히 혼잣말을 되뇌는 소년을 지켜보던 그는 윽박지르듯 말했다.
“시간이 없어. 더 지체하면 넌 확실히 죽는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연유 모를 설득력과 박력에 휘말린 소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그럼 어쩌죠? 난 죽기 싫어요, 엄마를 봐야 해요!”
“그럼 계약을 맺자.”
남자가 음험하게 웃었다.
“너를 살려 주지, 힘도 주마.”
“힘이요?”
상실은 어쩐지 꺼림칙해졌다. 저 남자는 아까부터 힘을 강조하고 있었다. 왠지 그에게 힘을 주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자신을 살려 주는 것도 힘을 주는 것에 덤으로 주는 것 같았다.
“그래, 넌 나약하고, 박약하다. 그렇기에 핍박받으며 살아왔지.”
남자가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상실의 과거가 영상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