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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린 1



제라린 1(1화)
프롤로그


두둥∼ 둥∼∼
끊임없이 울리는 북소리.
제라린이 평원의 저쪽에 있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돌격 대형을 갖추기 위하여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제라린의 등 뒤에도 기사들이 쐐기꼴 대형을 만들고 있었다.
말들도 곧 다가올 전투를 느꼈는지 뜨거운 숨을 내쉬면서 말발굽으로 땅바닥을 거칠게 내딛고 있었다. 땅바닥의 돌들이 말발굽에 차여서 사방으로 튀었다.
제라린은 랜스를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치켜들었던 랜스를 앞으로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돌! 격!”
제라린의 뒤를 따라 기사들이 말을 달리기 시작했고 곧 수많은 말들의 말발굽 소리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 나노머신 뉴타입 군인 차오성(1)


2010년 초반에는 전 지구적으로 많은 재해가 발생했다.
멕시코만의 초대형 태풍, 일본의 지진, 말레이 해협의 화산 폭발과 쓰나미 등, 2013년에는 백두산도 화산 폭발을 일으켜서 만주와 북한 지역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런 자연 재해와 싸우던 지구인들에게 2016년 외계 문명이 침입을 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외계 문명에 대항하기 위하여 군사 강국들은 전술핵을 사용했고 그런 연후에야 외계 문명과 비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2020년 외계 문명에 대항하기 위하여 지구인들은 모든 생산력을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과 무기 등의 군수물자 생산에만 집중했다.
기존과 같이 삶의 여가를 위한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시기 이후를 ‘더 이상 문화를 생산하지 못하는 시대’라고 불렀다.

2016년에 침략한 외계 문명과의 전쟁도 어느덧 13년째인 2029년.
한국군 공수부대 대대장인 차오성, 나이는 26세, 계급은 소령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한국군의 기존 편제는 거의 무너졌고 병력 보충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오성이 지휘하는 병력은 겨우 100명 남짓하였고 차오성은 그 인원으로 대대 전술을 수행하고 있었다.

차오성은 외계인이 침략한 초기인 2016년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으로 갔다. 하지만 그 고아원도 곧 파괴되었고 그 이후에는 계속 군부대를 따라다니면서 군인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2019년 현지 입대를 했다. 병력 손실이 많았던 한국군에서 16세가 입대한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2023년 20살이 된 차오성은 어느덧 전투에 관한 노련한 고참 병사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군은 병력뿐만 아니라 지휘관 부족도 심각했기 때문에 전투 능력이 탁월한 고참 병사들을 뽑아서 장교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만들었다.
거기에 차오성도 뽑혔기에 차오성은 약 3개월간의 단기 간부 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했다.
그전까지 전투에만 열중했던 차오성은 이후 전술에 대해서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2025년, 강력한 외계의 기계 문명과 맞서 싸우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나노머신을 이용한 뉴타입 군인 프로젝트’가 드디어 성공하고 전 병력을 상대로 유전자 검사를 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몸속에 약 1만 개의 나노 컴퓨터를 주입하여 인간의 육체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차오성도 유전자 검사에 통과하여 신체에 나노머신을 주입받은 약 오천 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뉴타입 군인들은 개인별로 효과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신체 능력이 기존에 비해서 약 3∼5배가량 향상되었다.
과거의 인간에 비해서 근력, 순발력, 지력, 시력, 청력, 유연성, 점프력 등이 향상된 군인들이 투입되자 한국 전선은 기존까지 밀리거나 비슷했던 상황에서 벗어나 전황이 유리하게 변했고, 한국 정부는 세계 인류 생존을 위하여 이 기술을 각국 정부에 제공했다.

강원도의 한 야산.
야산 언저리에 부하들과 매복한 차오성. 모두들 적의 열 적외선 감지기를 피하기 위하여 열피복을 덮어쓰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묻혀 있는 외계 문명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물질인 프레롤을 채취하기 위하여 적들이 출동한다는 첩보를 듣고 여기로 출동한 상태였다.
외계 문명은 프레롤을 이용하여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를 추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구에서는 아직도 그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차오성은 적의 비행체가 약 2∼3대 정도가 나타날 것이라는 첩보를 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기습 공격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감싼 계곡 위뿐만 아니라 골짜기 아래의 바위 뒤쪽 곳곳에 부하들을 배치했다.
이윽고 적의 비행체가 나타났다. 하지만 첩보와는 다른 다섯 대였다.
두 대는 그대로 상공에 머물면서 정찰을 하고 세 대가 지상에 착륙했다.
지상에 착륙한 착륙선에서 약 8미터 정도의 로봇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빠르고 화력이 좋았기 때문에 지구인들이 지상전을 벌일 때 제일 곤란한 상대들이었다. 벌써 약 40여 기가 내려서 주위 정찰 및 탐색을 시작했다.
적의 비행기가 5대 나타날 때부터 차오성은 당황하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3대 정도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맞게 화력을 배치했던 것이었다.
상대의 규모가 예상보다 약 2배 정도 증가한 상태였기에 차오성은 입술을 지그시 물고는 고민에 빠졌다.
‘음… 이대로 후퇴해야 하는가? 하지만 적의 에너지원을 그냥 넘겨줄 수는 없다. 그리고 후퇴하는 도중에 걸려서 피해가 더 크게 될 것이다.’
이윽고 차오성은 피해를 무릅쓰고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지상의 저 로봇들도 문제지만, 더 무서운 것은 저 위에 떠 있는 비행체들이다. 저들을 먼저 처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 위로부터의 공격에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차오성은 대대의 모든 화력을 일시에 상공에 있는 적의 비행체에 퍼부을 것을 명령했다.
그와 동시에 대대가 보유한 모든 중화기가 한꺼번에 상공의 비행체에 타격하고 강한 섬광과 함께 2대의 비행체는 폭발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매복을 알아챈 외계의 로봇들이 레이저빔을 마구 쏘면서 한국군의 매복 지점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상공의 비행체에 타격을 가한 뒤에 빠르게 지상으로 사격을 개시한 부대원들, 하지만 로봇들은 이미 그들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로봇들에게 사격을 퍼붓는 부대원들 속에 차오성도 있었다.
이제는 지휘관의 역할을 벗어나 한 명의 전사로서 싸워야 하는 때였다.
차오성이 신궁―2를 들었다.
기존의 바주카포를 개량한 중화기로 엄청난 화력을 가졌지만 반발력이 커서 일반 병사들은 사용하지 못했다.

차오성은 신궁―2를 어깨에 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전방을 집중해서 보자, 청신경에 연결된 나노 컴퓨터에서 소리가 들렸다.
‘삐. 목표물 확대됩니다.’
동시에 그가 원하는 지점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그의 시신경에 연결된 나노 컴퓨터의 효과였다.
드디어 눈앞에 생긴 타겟에 한 대의 로봇이 들어왔다.
차오성이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을 살짝 당겼다.
슝∼∼ 쾅!!!
굉음과 함께 표적이 파괴되었다.
차오성은 반동으로 크게 흔들린 어깨를 다잡으면서 다음 목표를 찾았다.

어느덧 그의 귀에 착륙선의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일반인들은 잘 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몸 안의 나노머신으로 신체 능력이 강화된 차오성은 들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적이 이륙하는 것으로 판단한 차오성은 전 대대원들에게 다급하게 명령했다.
“적의 비행체가 이륙한다. 전 대대원 비행체를 먼저 공격한다. 공격! 공격!”
그의 말과 동시에 지상에 있던 로봇들과 전투를 벌이던 대대의 모든 화기가 이륙하려는 비행체에 집중되었다.
땅 위에 정지된 표적이었기에 좀 전에 허공에 있는 2대를 잡을 때 보다 더 쉬웠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외계의 로봇들과 싸우던 병사들이 있었기에 피해는 컸다.
어떤 병사들은 로봇과 싸우다가도 차오성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앞에 있는 로봇을 포기하고 비행체에 사격을 집중했다.
모두들 저 비행체 중 한 대라도 공중에 뜨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기지로 귀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은 로봇에 바로 죽음을 당했다.
이윽고 차오성의 대대는 적의 비행체와 지상에 남겨진 모든 로봇들을 격파하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 부대원들을 우두커니 보는 차오성에게 선임 중대장이 다가와서 보고했다.
“대대장님. 총원 103명 중, 전사 12명, 부상 21명입니다.”
중대장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차오성은 우두커니 실려 나가는 부하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전술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 처음부터 무리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후퇴했으면 적에게 발각되어서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지휘관으로서 맞는 선택을 했다.’
차오성은 오늘 입은 피해가 자신의 전술 때문이 아니지 다시 곱씹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서 로봇들과 싸우다가 이륙하려는 비행체들을 먼저 요격한 것도 옳았다. 만약 한 대라도 떴으면 여기 사람들 중 반 이상은 기지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휘관의 명령으로 병사들은 바로 앞에서 싸우는 적을 놔두고 비행체부터 먼저 공격해야 했다. 오늘 피해를 더 줄일 수 있는 전술은 없었던가? 오늘의 전술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기지로 돌아온 차오성은 부대원들에게 개인 정비를 지시하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도 개인적인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프레쉬룸으로 갔다.
프레쉬룸에 있던 덩 중위가 그를 보고서 경례를 했다.
덩 중위는 중국인으로 2026년 외계 문명의 중국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으로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구 중국인민해방군 출신이었다.
덩 중위는 궤멸된 부대를 이탈하여 한국으로 망명을 왔었고 한국 정부는 그녀를 한국군에 배속시켰다.
“축하드려요. 대승을 거두셨다면서요?”
밝게 웃으면서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차오성은 고개만 끄덕이면서 인사를 받았다.
죽은 부하들 때문에 아직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던 덩 중위는 어학에 제법 재능이 있었는지 아니면 본국을 잃은 이후의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는지 이제는 제법 유창하게 한국어를 말하고 쓴다.
처음에는 단지 차오성과만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차오성은 몸 안에 있는 나노 컴퓨터를 이용하여 중국어를 단지 이틀 만에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뇌신경에 연결된 나노 컴퓨터가 자극을 주어서 그녀의 목소리를 쉽게 기억하게 했고, 나노 컴퓨터가 그녀의 목소리를 분석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분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거는 약 5일 정도가 걸렸는데 나노 컴퓨터를 통해서 아무리 발음 기호가 눈앞에 떠오른다고 해도, 차오성의 혀 근육이 중국어를 발음하기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차오성이 전자기기 앞에 앉고, 자기의 화면을 보고 있던 덩 중위가 키득거리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하하하. 한국 예능 왜 이렇게 재미냐? 으헤헤헤. 웃겨 죽겠네.”
차오성을 살펴보니 역시나 오늘도 그녀는 예전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되어진 예능프로그램 ‘S맨’, ‘무한XX’ 등을 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문화는 생산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예전에 만들어진 것들을 보고 또 보는 수밖에 없었다.
차오성도 자리에 앉아서 디스플레이에 연결된 전자 장치에 자신의 손을 대면서 자기 몸속의 나노 컴퓨터를 연결했다.
그냥 자신의 눈에 디스플레이 해도 괜찮지만 그렇게 할 경우에 눈이 쉽게 피로했기 때문에 차오성은 이렇게 외부에서 크게 디스플레이 되는 방식을 더 좋아했다.

곧 그의 눈앞에 ‘고대 로마 시대의 중장보병의 역할’, ‘고구려 기병의 활용 방법’, ‘중세 시대 갤리온선들의 제작과 운용 방법’ 등등의 책들이 떠올랐고, 차오성은 곧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읽기 시작했다.
모두 2010년대에 만들어진 컨탠츠로써 장교들의 전술 능력 향상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특히, ‘고구려 기병의 활용 방법’은 2013년 백두산 화산이 터진 다음에 지진의 여파로 땅속 깊숙이 묻혀 있던 고대의 병법서를 복원한 것이었다.
오성은 현역 군인으로서 지휘관의 전략과 전술에 따라서 수많은 부하들의 생명이 좌지우지된다는 생각과 전술은 고대 전술을 기본으로 발전한다는 신념에 틈이 날 때마다 이런 전술서를 읽고 전술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물론 외계 생명체의 무기 성능에 대한 분석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