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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 1권(25화)
8. 조우(2)


“어, 어어?”
“가라.”
퍼억!
“컥!”
팔꿈치나 무릎의 단단함은 인체의 뼈 중에서도 손꼽힐 만하다.
정현의 니킥에 복부를 강타당한 세현고등학교의 일진은 그대로 무너져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저, 저놈이!”
“죽여 버려!”
동료가 당한 모습을 보자 잔뜩 흥분한 일진 두 명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자연의 기운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러는 사이, 정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정당방위의 상황을 만들었다.
더불어서 바람의 기운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일개 고등학생들의 싸움에 지나지 않게 되니 고대무술협회가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이것은 단순한 싸움이다. 더 이상 재볼 것도 없는…….’
이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정현으로서도 더 이상 복잡한 계산은 사양하고 싶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울분을 풀어놓았다.
“뭐, 뭐야? 왜 안 맞아?”
“이 새끼 뭐가 이렇게 빨라!”
근접한 거리임에도 공격이 닿지 않는다.
당황한 일진들은 소리를 치면서 주먹질을 이어 갔다.
그들이 본 정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야생의 동물 같았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산에서 체력 단련과 수련을 반복한 정현의 움직임은 야생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놀라운 스피드와 반사신경은 바람의 기운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진들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먼저 오른쪽 녀석부터…….’
정현의 눈이 냉철하게 빛났다.
첫 번째 공격과 두 번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뒤 정현은 갑작스레 왼쪽의 일진에게 접근했다.
“엇!”
피하기만 하던 정현이 안쪽으로 파고들자 당황한 녀석은 허둥지둥하며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을 스치듯이 피하며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정현은 잠시 타이밍을 재다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퍼억!
“헛! 미, 미안.”
“크으…….”
정현을 뒤따르며 배후에서 주먹을 날린 일진은 공격이 친구에게 적중하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사이 반전한 정현은 최단거리로 주먹을 날려서 기습을 했던 일진의 턱을 타격했다.
“컥!”
강하고 빠른 주먹이 턱을 강타하며 그것을 중심축으로 뇌를 흔들어 놓는다.
타격을 당한 일진은 다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고, 정현은 망설이지 않고 이어진 발차기 공격으로 남은 한 명마저 쓰러뜨렸다.
복부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것이, 쉽게 일어설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이 분명했다.
“뭐야, 저놈은?”
“보통이 아닌데? 이봐, 큰일 났어. 애들 좀 모아 봐.”
정현이 순식간에 셋이나 쓰러뜨리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골목길의 남은 일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은 정현을 좌우로 포위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사이 한 명이 핸드폰을 통해 주위에 있는 일진들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일인데 모이라는 거야?”
“허, 설마 저놈 하나 때문에 집합시킨 것은 아니겠지?”
다들 근방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모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나둘 숫자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다. 그들이 뿜어내는 흉흉한 기세가 보통이 아니어서 지나가려던 일반인들이 모른 척하고 발길을 돌리는 것이 멀리서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흠…….’
싸움에는 기세나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정현은 아직 의사소통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지휘 체계도 잡히지 않은 지금이 바로 최적의 순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가자!’
타닥!
“헛!”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열 명이나 되는 숫자를 상대로 겁 없이 달려들 것이라고는 미처 몰랐던 후미의 녀석은 엉겁결에 뒷걸음질치면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얼굴 옆을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런 뒤 물 흐르듯이 돌려차기가 이어져서 그 옆의 일진을 가격했다.
“커억!”
“뭐, 뭐야, 이 새끼!”
“밟아 버려!”
흥분한 사람은 그만큼 움직임이 저돌적으로 변하지만, 단순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정현은 순차적으로 달려오는 일진들을 보며 정확한 움직임을 계산했다.
가장 근접한 일진과 두 번째 일진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서도록 좌측으로 이동한 뒤 당당하게 정면을 보고 섰다.
협공만 조심한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야! 비키라고. 너 때문에 앞이 가리잖아.”
“아우! 닥치고 좀 싸워라, 이 새끼들아!”
정현의 움직임은 절묘했다.
빠르게 치고 빠지며 원을 그리듯 빙빙 돌며 포위되는 것을 회피했다.
마치 투우사가 성난 황소를 다루는 듯했다.
세현고등학교의 일진들은 성난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럴 때마다 정현의 귀신같은 발놀림으로 인해서 동료들의 등을 눈앞에서 봐야 했고, 가장 선두에 선 녀석은 얻어맞고 자리에 몸을 눕히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 어어?”
그것은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붙잡혀 있던 명성고등학교 학생 두 명과 주로 연락책 임무를 맡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일진은 멍한 표정으로 악어처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삼류 액션 영화도 아니고, 신체의 한 군데씩을 붙잡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세현고등학교의 일진들에게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빨리 와 줘. 지금 애들이 모두 당했어. 정말 괴물 같은 놈이야!”
정현은 싸늘한 눈빛을 던지며 마지막 남은 일진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핸드폰을 붙잡고 정신없이 떠들어대던 일진은 정현과 시선이 마주치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으으. 가까이 오지 마, 이 괴물아.”
무엇을 믿고 있는지, 이런 상황에서 아직까지 뻗대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정현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은 한 녀석을 처리하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
“……?”
정현의 시선이 돌아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우측에 있는 담벼락 위였다.
“제법 재미있는 구경이었어.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적절했지.”
담벼락 위에 앉아서 다리를 좌우로 흔들며 느긋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소년.
세현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일진들의 동료라 짐작되는 이였다.
타닥!
그리고 이어진,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정현의 무심한 시선을 정면에서 받아 낸 소년은 쓰러져 있는 일진들을 일별하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뭐 전설의 싸움짱…… 이런 거냐? 큭큭! 재미있네. 정말 제법이야. 아무리 오합지졸 같은 녀석들이지만 이 숫자는 만만한 것이 아닐 텐데.”
“…….”
정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자였다.
일반적으로 두 자리 수에 달하는 인원을 쓰러뜨린 상대방을 두고 보일 수 있는 태도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흐릿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은 정현의 판단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뭐야, 그 표정은? 좀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아니면 지금 무게라도 잡는 거야? 후아, 폼생폼사라 이거냐? 킥킥!”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까부터 혼자 떠들어대는 것으로 모자라서 스스로 던지는 말에 폭소하는 소년이었다.
그에 반해 정현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소년의 모습이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오늘 아침부터 발동된 예지의 능력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따끔한 고통을 머릿속에 전해 오고 있었다.
그것이 알려 주는 것은 바로 위험이었기에 정현은 지금의 상황을 두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지?’
불안 요소 따위는 없었다.
그럼에도 예지의 능력은 계속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말해 왔다.
그렇기에 정현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넌 뭐지?”
“응? 나? 나는 여기 쓰레기처럼 뒹굴고 있는 놈들의 대장이지. 보스라고 해야 할까? 뭐, 의미만 통하면 되잖아.”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있지만 시선은 차가웠다.
무엇인가가 일그러져 있는 기분.
정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쓰레기들의 대장이란 소리군.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가 뭐냐?”
“이유? 재미있잖아. 겸사겸사 용돈 벌이도 되고. 시간 때우기에도 딱 좋고. 안 그래?”
점점 목소리에서 노골적으로 적의가 묻어 나왔다.
정현은 그것을 느끼며 조금씩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는 기분.
소년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며 킥킥거리던 웃음과 다르게 처음으로 쇳소리와 같은 거친 음성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그러는 넌 무슨 이유로 방해한 거지?”
“뭐?”
정현은 상대방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다.
타 학교의 불량한 인원들이 모교의 학생들을 괴롭히는데, 그것을 막을 힘이 있는 입장에서 딱히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것은 내 유희(遊戱). 능력자로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위. 그것을 방해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네놈의 몸뚱이에 똑똑히 심어 주도록 하지.”
“……!”
주위의 대기가 조금씩 무거워지며 칼날 같은 예리한 기세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평범한 사람은 그 실체를 확실히 모르기에 명성고등학교의 두 학생과 마지막 남은 일진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공포심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반면 정현은 상대방의 매서운 기운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랬던 것이군.’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약간이나마 보통의 사람들을 깔보는 의식을 가진다.
그것이 더욱 심화되고 투철한 능력자는 일반인을 상대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자가 된다.
예를 들자면, 선택받은 자로서 하등한 인간들에게 하는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제 남은 것은 12명……. 그중 9명은 범죄자야. 후, 정말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만 제법 능력이 있는 녀석들이어서 협회 차원에서 수배하고 있지.”

영진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협회차원에서 수배를 하고 있다는 9명의 범죄자.
어쩌면 눈앞의 소년은 그들 중 하나가 아닐까?
“같은 능력자라 해도 내 일을 방해한 이상 봐주지 않아. 뜨거운 맛을 보여 주지.”
우웅!
선명하게 느껴지는 내공의 기운이 상대방의 존재감을 어필했다.
뚜렷한 적의!
그리고 낮게 울리는 목소리를 통해 뻗어 나오는 기파가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자극했다.
점점 고조되는 알 수 없는 흥분감.
정현은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라고 있었지?]
‘전혀! 난 평온한 삶은 원했다.’
[힘을 사용하고 싶었지? 제천문의 위대함을 알리고, 그 광대한 무력으로 모두를 굴복시키는 모습을 그려 왔던 거야, 너는.]
이것은 심마(心魔)였다.
정현은 머릿속에 울리는 유혹적인 음성을 접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당장 전면에 있는 상대방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번의 적은 내공을 가지고 있는 자였다.
“후…….”
짧은 호흡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러자 날카롭게 갈무리된 시선이 전방을 응시했다.
그사이, 힘을 보여 주는 것을 의식했는지 평범한 인원들을 모조리 기절시킨 소년은 차가운 미소로 응대했다.
“자, 간다.”
“와라.”
정현과 마주친 소년의 주먹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