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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얼스 1권




뉴얼스 1권(1화)
프롤로그(1)


‘여기가 어디지?’
모든 것이 낯선 곳이다.
눈을 뜬 카일러가 처음 본 것은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건물들이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있는 광경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온갖 굉음들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울려 온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밝혀진 환한 불빛들이 마치 꿈인 듯 느껴진다.
지난밤의 일들이 마치 악몽인 것처럼.
하지만 카일러는 알 수 있었다.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이제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뉴얼스 1권(1화)
1장. 새로운 시작(1)



‘힐베르크 단장님은 결국 돌아가셨겠지…….’
카일러는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아무리 둘러봐도 생전 처음 보는 것들뿐이다.
건물,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내가 있는 이 구석진 곳 역시 낯설다.
“오빠, 저 사람 좀 봐. 노숙자인가?”
“쳐다보지 마, 괜히 시비 붙일 수도 있어.”
“근데 옷이 특이하네? 무슨, 중세시대 암살자 코스프레라도 하나?”
“빨리 가던 길이나 가자.”
‘뭐라는 거지?’
카일러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덕분에 이곳이 카일러에게 얼마나 낯선 곳이고 이곳 사람들이 카일러를 얼마나 낯설게 보는지 짐작이 갔다.
‘아주 머나먼 곳이군. 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 있던 그곳과는.’
카일러는 일어서서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카일러는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당신 뭡니까?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그런데 그때 모자를 눌러쓰고 목에 호루라기를 차고 있는 노인이 빛이 나는 무엇인가를 카일러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이봐요, 말 못 알아들어요? 여기서 주무시면… 뭐, 뭐야?”
그때였다.
카일러의 가방 안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와 앞에 있던 노인을 휘감았다.
노인을 휘감은 초록빛은 잠시 뒤 사라졌다.
“뭐, 뭐야?”
“드, 들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이곳 사람들의 말이 자신의 모국어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그 빛이 뭐였…….”
“설마, 내가 그걸 갖고 있었던가?”
카일러는 자신의 가방 안을 뒤져 보았다.
그곳에는 초록빛을 발산하는 구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그, 그 불빛은 도대체…….”
“별거 없고, 그저 머릿속에 있는 언어에 관련된 기억을 빼 왔을 뿐…….”
“사, 사람 살려!”
카일러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골목이 떠나가게 비명을 질러 댔다.
“목소리 한 번 크군.”
갑작스러운 노인의 행동에 카일러는 그곳을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그곳에 괜히 있다가는 힘없는 노인네를 죽이려든 비겁한 자로 낙인찍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편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해는 진 것 같은데… 완전 대낯처럼 환하군.’
거리를 환하게 비춰 주는 가로등, 조명, 오색 빛을 반짝이며 건물을 장식하는 간판.
그리고 큰 건물의 한 벽면에 걸린 대형 TV.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이 밤이 아닌 낯이라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풍경.
하지만 카일러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카일러가 살던 곳에는 밤이 되면 거리는 칠흙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참 신기한 곳이군.’
어린아이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일러는 길거리를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꼬르륵.
거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카일러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젠장… 이곳 화폐도 없는데.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카일러는 허리춤에 달려 있던 물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카일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먹을 걸 구할 방법이 없을까?’
카일러는 먹을 것을 구할 방법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처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던 카일러에게 빵집이 하나 보였다.
‘화폐가 없으니…….’
“어서 오세요. 어떤 빵을 찾으십니까?”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카일러는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다른 손님들 뒤쪽에 섰다. 그리고는 가게 주인을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잠시 뒤 카일러가 빠른 손놀림으로 빵 하나를 집어 품속에 넣었다.
‘젠장, 내가 빵이나 훔치는 신세가 되다니…….’
굶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빵을 훔친다. 그것은 암살자였던 카일러에게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은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다시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사셔 드셔 보지 그러세…….”
카일러는 가게 주인의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빵을 품속에 안은 채 달아나듯이 가게에서 나왔다.
가게에서 나온 카일러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가게로부터 먼 길가로 나갔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훔친 빵을 꺼내 우적우적 씹어 먹기 시작했다.
“어, 오빠. 저 사람 봐봐.”
“거지인가? 뭔 빵을 저렇게 불쌍하게 먹어?”
카일러가 빵을 먹는 모습은 사람들이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난민처럼 빵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는 그 모습은 거지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묘사였기 때문이다.
“근데 저 사람은 옷이 왜 저렇게 지저분해?”
카일러의 옷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피 터지게 싸우며 바닥을 뒹군 것처럼 더럽혀져 있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카일러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보통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증오가 담긴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 그 눈빛에 사람들은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각자 가던 길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겁쟁이들이로군.’
카일러는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정처없이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빵빵!
‘이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윽!”
카일러는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기에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자동차가 달려오던 것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 자동차는 카일러를 치지 않고 멈췄다.
“당신, 제정신이야?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혹시 보험금 노리고 그러는 거냐? 젊은 놈이 한심하기는.”
“도, 도대체 정체가 뭐지?”
카일러의 귀에 운전자의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앞에 있는 눈에서 안광을 내뿜는 거대한 몸짓의 괴물에만 신경이 쏠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동차였다.
“정체는 무슨 얼어 죽을 정체야, 이게 미쳤나? 빨리 비키기나 해!”
빵빵!
운전자는 또다시 경적을 울렸다.
카일러 보고 비키라는 의미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카일러는 또다시 들리는 난생처음 듣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좀전처럼 흠칫 놀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쨍그랑!
카일러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빼 들어 자동차의 전조등를 부쉈다.
“이, 이게 무슨… 거기 서!”
카일러는 검을 다시 집어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골목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달린 끝에 마침내 카일러가 멈춰섰다.
‘이곳에서는 한눈팔았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군.’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동차에 치일 뻔한 것 때문에 놀랐을 상황이지만 카일러는 ‘자동차의 존재’ 때문에 놀랐다. 이곳에 관한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생기는 웃지 못할 비극이었다.
‘막막하군.’
카일러는 또다시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앉아 있으면 잠시나마 이 낯선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이, 아가씨∼ 오빠한테 돈 좀 빌려 줄래?”
그런데 갑자기 옆 골목에서 느끼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으로 추측할 때 골목을 돌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카일러는 옆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수상쩍은 두 놈이 어떤 여자에게 찝쩍대고 있었다.
‘이곳도 길거리에 인간 쓰레기가 걸어다니는군.’
카일러는 그 깡패들의 등 뒤로 다가가 그중 한 놈의 목덜미를 강하게 쳤다.
빡!
“크흐흑!”
갑자기 목덜미를 가격당한 깡패가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고통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나머지 한 놈이 그 광경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너, 넌 뭐야? 나대지 말고 그냥 꺼, 꺼져!”
어렸을 때부터 암살자 훈련을 받은 카일러. 그런 카일러에게 말까지 더듬으며 기어가는 소리로 내뱉는 깡패의 협박은 씨알도 먹혀들지 않았다.
카일러는 그 깡패의 면상을 가격했다.
“윽!”
“꺼져라.”
“이, 이 자식이!”
깡패는 카일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카일러는 가볍게 피하고 깡패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욱…….”
“아직도 오기가 남아 있나?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지. 분수도 모르고 덤벼들다니.”
“감히… 찌질한 거지 새끼가… 애들 불러 와서 죽기 직전까지 패야 정신을… 뭐, 뭐야!”
그때였다. 카일러는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서 검을 빼 들어 깡패의 목에 겨누었다.
“가치없는 인간을 죽이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지. 원한다면 여기서 죽여 주마.”
카일러가 칼을 빼 들자 깡패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리고는 깡패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급하게 도망을 쳤다.
“한심하군.”
도망치는 깡패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카일러가 이번에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밤에는 쓰레기들이 많이 굴러다니니까 조심하…….”
“사, 살려 줘요!”
“뭐?”
여자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것이라 생각했던 카일러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는 카일러를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몸까지 벌벌 떠는 것을 보면 보통 겁먹은게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