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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
내 새로운 이름, 알렉산드로프



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1화)
프롤로그


쿠궁!
번개가 내리쳤다. 그와 함께 비도 왔다. 하늘도 그의 죽음이 슬픈지 비가 계속 왔다.
“으…….”
침대에 누운 노인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그의 죽음 직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까닥.
노인이 겨우 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에 따라 시종장이 다가가 그의 입에 귀를 대었다.
노인이 나지막하게 말을 했다. 너무나도 작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근위기사단장님을 빼고 모두 나가시랍니다.”
그 말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하지만 조용하게 빠져나갔다. 그 후 백금발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검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그는 매우 무표정했지만 울음을 참으려는 듯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몸은 심히 떨리고 있었다.
“네. 마이로드.”
그가 군례를 취했다.
노인이 손가락을 까닥했다. 그는 얼른 귀를 노인의 입가에 댔다.
“……네.”
남자는 침실에 걸려 있던 명화의 액자를 들췄다. 그곳에는 밀랍으로 봉인 된 봉투가 있었다.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얼른 다시 노인의 입가에 귀를 댔다. 노인의 입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노인의 입과 손가락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리고 그 봉투를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방을 빠져나왔다.
“뭐라 하십니까?”
남자가 나오자마자 누군가 물었다.
“폐하께서 주무시고 싶다 하셨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두 명의 노인과 중년의 남자를 데리고 자신의 갈 길로 갔다.
남자의 말의 의미를 안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시녀 중 하나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과 동시에 모두들 울음을 터트렸다.


제1장 납치당하다(1)


“승하하셨습니다!”
“폐하!”
궁정 구석구석에서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루덴 대륙에서 가장 약소 왕국인 아룬 왕국의 제 32대 국왕이자 대륙 유일의 8서클 마스터였던 오토 2세가 서거하는 순간이었다.
사인은 급성 폐결핵, 마법왕이라 불리던 그로서도 급성 폐결핵은 치료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얀텐 제국의 속국이었던 공국을 독립시켜 왕국으로 격상했다. 실로 눈부신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재위 기간 62년, 89년의 생을 살면서 왕비를 두지 않아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위 기간 내내 제국과 전쟁을 한, 왕의 생에 여자가 낄 시간은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같이 동침한 여자들이 몇 있었지만 그녀들은 전부 왕의 후계자를 낳지 못하였다.
“크윽.”
아룬 왕국 수석 궁정마법사이자, 7서클 마법사인 크리스토프 폰 비텐베르크는 침통한 표정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의 책상 좌, 우에는 근위기사단장 막스 폰 베버 후작과 왕국근위군(중앙군) 대장 빌헬름 폰 카이텔 백작도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일이 났군, 이제 겨우 왕국을 격상된 지 5년, 만약에 얀텐 제국이 폐하의 서거 소식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군사를 일으켜 왕국을 침공할 것이야.”
크리스토프의 말에 빌헬름이 착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보다 후계가 먼저입니다. 수석 마법사님, 폐하께서 후사를 남기지 않은 이상 지금 당장 귀족들이 왕이 되기 위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오토 2세의 치세에 단점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가 전장을 누비며 전투를 치르는 동안 귀족들 단속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귀족들은 각자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고 그중 몇몇은 중앙정부에 위협이 될 정도였다.
그때 크리스토프가 고개를 들더니 툭 내뱉듯 말했다.
“야, 그러면 네가 왕 해 볼래?”
“네?”
빌헬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크리스토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너 머리 좋잖아? 13전 13승! 대제국 전쟁의 불패의 명장 빌헬름 폰 카이텔 백작! 딱 네가 좋네.”
“지금 장난하십니까?”
빌헬름의 트레이드마크인 카이저수염이 흔들거렸다.
“뭐 어때? 폐하께서 후사도 안 남기신 마당에 그딴 덜떨어진 귀족들보다는 네가 낫다는 것은 누구든지 안다고.”
“전 싫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넌 어때? 막스…….”
스릉!
막스가 단호한 얼굴로 칼을 뽑았다.
“그래, 미안해 잘못했어. 근데 이것들이 노인을 뭐로 보고…….”
크리스토프가 짐짓 움츠려 든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빌헬름이 소리쳤다.
“아주 그냥 확 뒈져 버리십시오!”
“그래! 나도 이제 얼마 못 살아! 꼭 뒈져 줄 테니 기다려!”
“그 말한 지 20년이 지났고 수석 궁정마법사께서는 연세가 151세인데 아직도 펄펄하잖아요!”
“펄펄하긴 뭘 펄펄해?! 이 배까지 자란 수염과 주름을 보라고! 이게 다 죽어 가는 노인이지 펄펄한 사람이냐?!”
“소리 잘 지르시는 것 봐서 펄펄하시네요!”
쾅!
크리스토프와 빌헬름이 언성을 높이자 막스가 검집 채 책상에 내리쳤다.
“……조용.”
그 흉험한 기세에 크리스토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그래 미안해 정말 미안해.”
“……폐하께서 남기신 유서가 있습니다.”
막스의 가슴 갑주에서 밀랍으로 봉인 된 봉투가 나왔다.
“헉, 그런 건 진작에 말했어야지!”
“페하께서 말씀하시길 폐하께서 서거하시고 난 후 두 분 앞에서 개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줘 봐.”
크리스토프가 봉투를 받아 편지 칼을 이용해 그것을 개봉했다. 봉투 안의 기다란 종이에는 장문의 글이 쓰여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눈썹이 최대한 올라가고 말았다.
“어허 이런…….”
“무엇입니까?”
빌헬름이 그것을 받아 보았다. 그리고 어벙한 음성을 토해 냈다.
“엑?!”

[나 아룬 왕국 32대 국왕 오토 2세의 유언이다. 나는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다는 신념으로 전장을 누비며 여생을 보낸 나머지, 왕들의 의무인 후사를 정하지 못한바 이렇듯 유언을 남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신들만 쓸 수 있다는 차원이동에 대한 마법을 연구한 끝에 마침내 차원이동 마법에 대한 연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저리머저리 얼씨구절씨구 이러쿵저러쿵 아무튼 결론은 차원이동을 해서 이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 중에 왕의 자질이 보이면서 자신과 닮은 자를 하나 뽑아 이리로 데리고 오래. 그리고 왕으로 삼으라는군. 공식적으로는 왕이 숨겨 둔 자식이라 하고. 하아!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푸념을 내뱉으면서 크리스토프는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오토 녀석,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알기 위해 죽으면서 이딴 유언을 남기다니.’
크리스토프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오토 2세는 자신이 오직 연구만 한 차원이동 마법이 이론대로 작동되는지 알기 위해 이런 유언을 남긴 것이었다.
“왕의 유언을 그딴 식으로 읽다니! 아무리 폐하의 스승이라지만 노망이 들었어도 어찌 그런 말을!”
빌헬름이 크리스토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물론 크리스토프 역시 지지 않고 핏대를 세웠다.
“그러면 어쩌라고?! 쉬지 않고 10분 동안 읽어야 하는 장문을 나보고 읽으라는 거냐?! 간추려 준 나에게 감사는 못할망정 하극상 부리지 마라!”
“에라이! 이레서 농노 출신은…….”
“지랄, 지도 농노 출신 주제에…….”
“농노 아닙니다! 제가 15살 때 아버지께서 평민의 신분을 사셨습니다!”
빌헬름과 크리스토프는 원래 농노 출신이었지만 검과 마법의 재능 덕분에 귀족이 된 신흥귀족이었다.
“시끄러워 인마, 어차피 그게 그거야.”
“어떡하실 것입니다? 유언대로라면 차원이동 마법진은 이미 왕궁 지하 국왕 전용 창고에 만들어졌다는데, 사용하실 것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 차원이동 마법진은 검증도 되지 않는 마법진인데 그거 함부로 가동시켰다가는 나 순식간에 죽어…….”
“죽어도 돼요. 아무튼 폐하의 유지를 받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빌헬름이 크리스토프의 등을 떠밀었다. 마법사가 기사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법.
크리스토프는 속절없이 떠밀려 가면서 버럭버럭 소리쳤다.
“얌마 7서클 마법사이자 마법계의 최고봉인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냐?”
그랬다. 8서클 마스터인 오토 2세가 죽기 전에는 그다음으로 가장 높은 경지를 이룬 7서클 마스터가 크리스토프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얀톤 제국 수석 궁정마법사가 7서클 유저였다.
“폐하께서 살아계셨을 땐 2인자였던 주제에…….”
“이놈이 자꾸…….”
쿵!
막스가 검을 검집 채, 바닥에 내리찍었다.
“……갑시다.”
“응.”
막스의 박력에 크리스토프가 순순히 걸었다.

왕궁 지하 국왕 전용 창고, 하지만 이름만 그럴듯하지 안에는 금화와 약간의 보석 한 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창고였다.
그곳에 전 국왕인 오토 2세가 만든 차원이동 마법진이 창고를 거의 다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크게 매직 파우더(마법진을 만들 때 쓰는 마나석을 곱게 갈은 가루)로 그려 져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놀랍다는 듯 연신 마법진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만날 업무에 바쁘신 분이 이것을 언제…….”
빌헬름이 유서를 읽으며 말했다.
“사용법을 보면 마법진에 들어가기 전에 귀환용 마법진이 담긴 보석을 가지고 중앙에 서서 4서클 정도의 마나로 시동을 걸면 작동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도 알아. 나도 내용은 다 알아.”
“그리고 폐하의 연구에 따르면 그쪽 세계에서의 1년은 이곳에서 하루라 하니까…….”
“아놔! 안다니까 자꾸 그러네.”
크리스토프가 구시렁거리며 마법진 중앙에 섰다.
“마나여! 나의 뜻에 따라 움직여라!”
크리스토프의 몸에서 노란 안개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나오더니 마법진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번쩍!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창공에 흰색 둥근 쟁반 같은 것이 생겨났다.
차원이동 게이트였다.
“성공했다.”
“수석 궁정마법사님! 제대로 된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해요!”
빌헬름의 외침에 크리스토프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시끄러!”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크리스토프의 몸이 천천히 허공에 떠오른다 싶더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게이트는 사라지고 마법진의 불빛도 사라졌다.
“……잘 될지 의문이군요.”
걱정스럽다는 막스의 어조에 빌헬름이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될 겁니다, 후작. 저렇게 천박한 행동을 한다지만 크리스토프 님은 한다면 하시는 분이니까요. 자 이만 여길 나갑시다.”
끄덕.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