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2화)
제1장 납치당하다(2)
***
한국의 서울.
길을 걷는 한 학생이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 학생은 얼굴이 매우 작고 짙은 검은 눈썹과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따져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하아 짜증 나.”
올해 나이 19살인 박진영은 한숨을 쉬며 학교로 등교하고 있는 길이었다.
때는 가을, 서울 가로수의 은행나무가 열매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거리마다 똥냄새로 가득한 시기였다. 그 덕에 그의 기분은 매우 안 좋은 상태였다.
요즘 들어서 학교로 통학하는 버스가 자주 교통사고를 일으켰고, 그에 따라 지각하면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뿐인가? 사고가 없으면 버스가 너무 심하게 흔들려 멀미 나고, 기분 더러워서 버스에서 내리면 길거리에 밟아 으깨진 은행의 뭐 같은 냄새가 난다.
이러한 기분은 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된다.
싸가지 없는 놈들의 행동 때문에 짜증 나고, 점심시간 급식실에 가는데 담배 좀 핀다는 것들의 새치기 때문에 5분 만에 들어갈 거 10분 동안 줄 서기 일쑤다.
급식실 스피커에서는 가창력은 형편없는 가수의 노랫소리만 시끄럽게 나왔다.
여기서 끝이냐고 묻는다면 천만에 말씀이다.
밥 다 먹었으면 식판 반납할 것이지 뭘 믿고 그대로 식탁에 두고 나가는지 싸가지 없는 놈들 때문에 또 짜증 나고, 그것들 먹은 거 보면 아주 돼지같이 어질러서 먹는 것 때문에 토 나온다.
반에 들어가면 성적은 나랑 똑같은 놈이 잘난 척하면서 애들에게 아는 척하고 훈계하고 있는 모습까지.
진영에게는 이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짜증 남의 연속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속 좁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흑, 짜증 나.”
“그래, 학생 짜증 나나?”
“응?”
진영이가 고개를 돌리니 골목 구석에 쭈그려 앉은 흰 수염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보였다. 진영은 그 노인을 오래전부터 등굣길 구석에 앉아 있던 노숙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그 지루한 인생을 바꾸고 싶지 않은가?”
“그러면 할아버지는 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습니까?”
“물론, 있지 있고말고.”
“풉, 퍽이나 있겠네요.”
진영이가 비웃는 투로 말하자 노인의 이마에 핏줄이 하나 맺혔다.
“크흠, 사실 자네를 쭉 지켜보고 있었지.”
“그렇지요. 만날 여기 있으니까.”
“넌 그분과 많이 닮았어.”
“에? 누구랑 닮았다는 거죠?”
“아, 그건 둘째치고, 너 왕이 되어 보지 않을래?”
“에? 왕이요?”
“그래, 왕!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절대자.”
“풉, 농담이 심하시네요.”
“어허, 될 수 있다니까.”
노인의 말에 진영의 눈에 한순간 씁쓸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요? 그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솔직히 이따위 세상, 미련도 없었기에 한 말이었다.
“좋아. 후회하기 없기다.”
문득 노인이 진중한 표정으로 재차 물어 왔다. 순간 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노망든 노인의 말을 받아준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말도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손을 내밀어 봐.”
“……설마 손에다가 왕이라고 써 주는 건 아니죠?”
“말이 많네.”
덥석.
노인이 진영이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어? 왜 이러세요?”
“가만히 있어.”
노인이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자, 이걸 껴.”
“무슨 짓이에요?”
진영이 기겁하며 말했다. 노인이 진영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있어야 우리 세계에 와서 말하기 편하거든.”
“네?”
노인이 다시 계란만 한 루비 덩어리를 꺼냈다. 루비 안에 작은 육망성 같은 것이 보였다.
“나와 함께 가자.”
“네? 뭐라구요?”
퍼석!
노인의 손 안에서 루비가 매우 쉽게 박살이 났다.
번쩍!
박살 난 루비 안에서 커다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노인과 진영이를 삼키고 그대로 사라졌다.
“어? 뭐야?”
“방금 뭔가가…….”
주변의 주민들은 노인과 학생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그 빛이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해하기만 했다.
제2장 우리의 왕이 돼 주어야겠어(1)
“어? 어?”
진영이는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 했다. 빛이 나는가 싶더니 주변 환경이 변한 것이 아닌가? 주변이 매우 어두운 것으로 보아 지하방 같았는데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휴우, 됐다.”
“뭐가 된 거죠?”
“왕이 되고 싶다며?”
“예? 할아버지 그보다 그 빛은 뭐죠? 게다가 여긴 어디…….”
덜컥!
“수석 마법사님! 드디어 오셨군요.”
멋들어진 카이저수염에 금색 단추가 인상적인 붉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래, 며칠 지났던?”
“근 1주일 만에 오셨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왕가의 후손을 모시러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한 그곳에서 7년을 있었는데. 야, 나 배고프다. 밥 먹자.”
“네, 시종장에게 언질을 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많이 닮으셨군요.”
남자가 진영이를 보더니 애수 어린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토프는 마치 ‘어때? 나의 안목이?’란 표정으로 으쓱였다.
“그래, 내가 물건을 잘 골랐지?”
“물건이라뇨?! 말씀을 가려서 하세요.”
“큭, 그래 봤자 나에게는 그게 그거야. 선대 폐하와 나의 관계를 알지 않나?”
“그래도 안 됩니다.”
“시끄럽고 밥이나 먹자, 나 배고프다.”
“아, 예. 그럼 시종장에게 전하러 가겠습니다.”
“우리도 가자.”
남자가 나간 후 노인이 진영이를 이끌며 말했다. 하지만 진영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여긴 어디죠?”
“어디긴, 네 집인 왕궁이지.”
“지금 절 놀리시는 거지요?”
“그보다 일단 여기를 나가면 알게 될 거야.”
노인을 따라 밖으로 나간 진영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교과서에서나 보던 베르사유의 궁전 같이 높은 천장과 복도, 복도를 밝히는 벽에 걸린 촛대를 보고 이곳이 왕국인 것을 실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설명해 주지.”
노인은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정말이었던 겁니까?”
“그래, 후회하나?”
노인의 말에 진영은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 처음에는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잘 모르겠어요.”
“끌끌! 그럴 줄 알았어. 게다가 이미 늦었어, 난 차원이동 마법을 모르는데다가 마법진은 매직 파우더의 마나가 다 되어서 사라졌어. 더욱이…… 네 녀석은 돌아가 봤자 언제나 홀로일 테지?”
“네?”
“네 모습이 선대 국왕 폐하와 매우 쏙 닮아서 널 선택하고 널 감시, 조사를 한 지 2년이나 되었다. 네가 혼자 살고 있는 조그마한 옥탑방 방세 3달 치 밀렸잖아, 안 그래? 그리고 학교에서도 거의 왕따 아니었어? 살인자의 자식이라면서 말이야.”
흐흐흐 웃어 대는 노인이 진영이는 매우 무서웠다. 그렇다. 진영이의 아버지는 살인범이었고 체포 후 재판을 통해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충격에 의해 아버지가 사형당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집안 재산은 피해자 유족들이 전부 가져갔고 친척도 없어 여태까지 진영이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2년 전부터 여태까지 날 미행한 건가요?”
“물론.”
노인이 말했다.
“자네는 우리의 계획대로 남은 생을 우리의 왕으로 살아 줘야겠어.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못한다면?”
“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야겠지.”
노인이 진영이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살기였다.
“목을 찔러 경동맥을 자르면 누구든지 죽으니까……. 그리고 난 후 소멸 마법으로 제거하면 순식간에 흔적조차 남지 않아. 넌 그렇게 되면 묘비 하나 못 두고 사라져 버리는 거야.”
꿀꺽.
잔뜩 긴장한 진영이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결정해, 왕이 될래? 여기서 죽을래?”
“왕이 되겠습니다.”
“호오!”
순간 노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왕이 되겠다 말하는 진영의 어조가 방금 전과는 다르게 한층 차분해졌기 때문이다.
“의외로 빠르게 수긍하는군.”
“어차피 제게 선택권은 없죠. 그럴 바에야 휩쓸려 다니기보다는 이쪽에서 선택하겠어요.”
막힘없는 그 말에 노인은 가만히 진영의 두 눈을 응시했다. 조금 흔들리는 것이 두려움을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차분했다.
“좋아.”
노인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진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밀린 방세 때문에 주인아줌마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안락한 왕궁에서 호사스럽게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 그렇지도 모르지…….”
복도 저 끝에서 검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왔다. 그는 백금발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의 남자였다. 그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무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역력했다.
“……이분이?”
“그래, 이제 앞으로 네가 충성을 맹세해야 할 사람이다.”
“충!”
검은 제복의 남자가 자신의 장검을 뽑더니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장검을 양손에 받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신 근위기사단장인 막스 폰 베버 후작,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런 막스 때문에 진영이만 곤란해졌다. 무섭게 생긴 남자가 난데없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니까 말이다.
“야, 지금 맹세할 필요가 있나? 식당으로 갈 거니까 따라와. 그리고 아직 대관식을 안 했으니 폐하는 아니라고. 하지만 곧 폐하가 되실 분이니 네가 호위해.”
“알겠습니다.”
결국 막스도 진영이의 뒤를 따라나서게 되었다. 진영이는 학교 끝에서 반대편까지 이어지는 듯한 매우 긴 복도를 3명이서 아무 말 없이 걷자 뻘쭘해진 나머지 말을 걸기로 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이…….”
“크리스토프. 이 나라의 후작이자 수석 궁정마법사이자 7서클 마스터. 그리고 존대 쓸 필요 없어. 그냥 편하게 반말해.”
“…….”
막스가 말없이 칼을 뽑았다.
“아, 진짜. 이 새끼는 툭 하면 칼을 뽑으려고 한다니까. 그렇게 융통성 없게 살면 답답해서 못 살 텐데.”
크리스토프가 막스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며 말했다.
“근데 식당은 어디죠? 왜 이리 멀어요?”
“이쪽입니다.”
막스가 오른편에 있던 문을 열며 말했다. 식당은 학교 교실 정도의 방이었는데 막스가 진영이를 직사각형 식탁의 가장 상석에 앉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내 카이저수염의 남자가 식당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만 1시간 전에 궁정 식사가 끝나서 재료가 없답니다. 그래서 그때 먹고 남은 요리를 데운다고 하니 양해 바랍니다.”
“난 그렇다 치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게 하세요.”
크리스토프의 말을 진영이가 자르며 말했다. 그는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를 가서 배고프던 참이었다. 그도 빨리 음식을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