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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대제 1권(3화)
제2장 우리의 왕이 돼 주어야겠어(2)
잠시 뒤, 요리사가 수레를 끌고 들어와서 은으로 된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역시 은으로 된 그릇에 담긴 요리를 내려놓았는데 그것을 본 진영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어 캐서롤 요리, 새끼 돼지 바비큐, 꿩 볶음, 송아지 고기를 넣은 굴라쉬(헝가리식 스튜의 일종), 딸기를 첨가한 요구르트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 무화과 열매, 사과 꿀 절임, 여러 가지 빵입니다.”
요리사가 접시를 놓는 동안 요리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했다. 요리들에는(굴라쉬 제외) 이미 누군가가 먹은 흔적이 역력했지만 맛있어 보였다. 그리고 요리사는 진영이에게 크게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이 나라가 과연 위기에 처한 건 맞습니까?”
4명만 식당에 남게 되자 진영이가 물었다.
“나라가 궁핍하고 나라의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나 궁정에서 왕의 식사까지 형편없어야 하냐?”
크리스토프가 연어 요리를 자신의 접시에 옮기며 말했다.
“후계자님을 모셔 왔으니 이제 어떻게 하죠? 내일 대전회의를 열어서 발표하고 대관식을 준비…….”
“아니야.”
빌헬름의 말을 자르며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대관식은 너무 일러. 일단 1, 2년 정도 후계자의 제왕 수업이 필요해. 그리고 기본 예법이랑, 결혼 준비도 해야겠지.”
크리스토프가 입에 음식이 든 상태에서 말했다.
“겨, 결혼?”
진영이가 기겁하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충격으로 가득했다. 갑자기 난데없이 결혼 이야기가 나왔으니 당연했다.
“선대 폐하께서 이런 유언을 남기신 이유가 바로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이번 후계자는 후계를 반드시 둬야 돼. 제왕 수업과 동시에 전국의 귀족가문의 영애들을 불러야겠어.”
크리스토프가 이번에는 새끼 돼지를 잘라서 자신의 접시로 옮기며 말했다.
“근데 제왕 수업은 뭐죠?”
진영이가 물었다.
“말 그대로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이지. 왕의 마음가짐이나 지식, 그런 거.”
크리스토프가 말을 할 때마다 막스의 얼굴이 어둑어둑해지더니 이내 진한 살기를 크리스토프에게 쏘아 보냈다.
“전대 폐하는 몰라도 이번 폐하만큼은…….”
“아, 그래 후계자가 정식으로 대관을 가지면 정말 예를 다해서 따를 테니까 걱정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그리고 것보다 예법 수업이 먼저겠군.”
“왜?”
“네가 지금 굴라쉬의 고기를 찍어 먹고 있는 포크, 굴라쉬는 원래 숟가락으로 떠먹는 스튜의 일종이야. 그리고 그건 생선 요리 전용 포크고.”
“아…….”
진영이는 3중으로 놓인 포크와 나이프 중 아무거나 골라서 음식을 먹었던 것이었다.
“예법이 먼저겠군요.”
빌헬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저 옷은 뭐죠? 이계 방식의 옷인가요?”
“저건 교복이라고. 학교, 그러니까 우리 방식으로 아카데미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제복의 일종이야.”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이계는 어땠습니까?”
빌헬름이 물었다.
“살기 좋았어, 거리는 깨끗하고 길에는 말없이 달리는 마차들이 다니고, 지하에는 뱀처럼 생긴 대형 마차도 다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금속의 새를 타고 날아다니기도 하는 곳이야.”
“세상에 그런 곳이 있군요.”
“그 세계는 대기의 마나가 부족해서 마법이 발전하지 못했나 봐. 대신 과학이라는 것이 발전했는데 과학이라는 거 조금 공부해 봤으면 좋았겠는데 선대 폐하의 유지를 받드느라고 전혀 공부하지 못했지.”
크리스토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6개의 눈동자가 진영이를 향했다. 아카데미(학교)를 다녔으니 지식이 많을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뭐에요?”
진영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너, 네가 알고 있는 지식 좀 토해 내 봐.”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그는 이제 꿩 볶음 요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저, 저는 자세한 건 몰라요.”
“에잉, 무능한 녀석.”
크리스토프가 투덜댔다.
“뭐, 지금 당장 토해 내라는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 나누면 알게 되겠지.”
“그렇지만 여기서 당장 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빌헬름이 말했다.
“뭔데?”
“후계자의 성함을 안 정했잖습니까?”
“아.”
빌헬름의 말에 크리스토프가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깜빡하고 있었네. 왕가의 성은 랑스도르프이니까. 뭐가 좋을까…….”
“뮬러는 어떻습니까?”
빌헬름이 말했다.
“너무 평범해.”
“구룬델.”
막스가 말했다.
“구룬델이라…… 어감이 안 좋아.”
“알렉산드로프.”
이번에는 빌헬름이었다.
“알렉산드로프 폰 랑스도르프. 줄여서 알렉산더 괜찮군, 어때?”
크리스토프가 물었다.
“알렉산드로프라…… 괜찮네요.”
“좋아, 그렇다면 이름은 알렉산드로프, 알렉산드로프 1세.”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접시의 요리를 비우고 이제는 굴라쉬에 손을 댔다.
“알렉산드로프 1세, 마음에 들어. 그러면 이제부터 알렉산더라고 부르면 되겠군.”
그 후 식사를 다 마친 알렉산더(진영)는 막스의 안내를 받아 크고 화려한 왕의 침실로 들어가 오지도 않는 잠(크리스토프에게 납치당하기 전에는 아침이었다.)을 청했다.
***
알렉산더가 잠든 그 시각, 왕궁이 있는 수도 에블레헴.
왕국에서 유일하게 공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루덴버그 가문, 그 가문의 저택은 왕궁과 비교될 정도로 규모가 큰 편(그래 봤자 다른 왕국들의 비해 턱없이 작았다.)이었다.
그 저택의 응접실에는 매우 화가 난 표정의 남자와 소파에 앉은 남자가 있었다.
“감시를 그렇게 했는데 그 능구렁이 같은 재상이 빠져나가는 것도, 후계를 찾는 것도, 그리고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파악 못했단 말이냐?!”
화가 난 남자가 소리쳤다. 그는 검은색 연미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이랑 얼굴은 뚱뚱했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코에 난 수염 덕분에 알렉산더가 본다면 후덕한 영국의 신사라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매우 화가 난 나머지 인상을 찌푸리고 얼굴은 상기되어 후덕한 이미지에 손상을 주었다.
그가 바로 왕국에 최고의 재력과 무력을 가진 헤르만 폰 루덴버그 공작이었다.
직위는 내부 대신. 게다가 그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었다.
“죄송합니다.”
쇼파에 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말했다. 그는 푸른색의 멋진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사내였는데, 헤르만 공작의 심복 알베르트 폰 슈미트 백작으로 직위는 공부 대신이었다.
“자네는 지금 죄송하다는 말밖에 못하나? 6일 전에 있었던 대전회의 때 차기 국왕을 거론하다가 근위기사단장인 막스 후작에게서 크리스토프 후작이 후계자를 모시러 갔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 줄 알아? 전대 국왕의 음식에 약을 타고 왕이 전쟁을 나간 사이에 왕가와 연관성 있는 것들을 전부 비밀리에 처리했는데 이런 일이?”
“공작님, 언성을 줄이시지요.”
알베르트 백작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주위를 살폈다.
“험, 실수했군.”
헤르만 공작이 헛기침을 했다.
그랬다. 오토 2세에게 후손이 없는 것은, 그가 먹는 음식에 헤르만 공작이 연금술사들에게 비밀리에 시켜 만든 후손이 생기지 않게 하는 약을 탔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의 식사에서는 독약 검사를 하지만, 독약만 검사하는 것인지라 그 약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왕가의 피를 조금이라도 이어받은 후손들을 제거해 왔다.
그리하여 왕가와 연관된 자는 오직 하나, 그뿐이었다. 게다가 공작이라는 작위와 재력, 무력이 막강한 그 외에는 왕이 될 수 있는 재목이 없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이 죽고 난 후 그는 이 계획이 성공했다 생각했는데, 크리스토프가 태클 걸어온 것이다.
“이제 고지가 눈앞이었는데 이렇게 되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차선책을 사용해야 합니다.”
“차선책이라면?”
“3가지 차선책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후계자를 우리의 손아귀에 두는 것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후계자는 19살밖에 안 된 미혼의 남자라고 합니다. 선대 국왕의 잘못을 또 일으키지 않기 위해 크리스토프 후작은 분명 왕가의 결혼을 서두를 것입니다. 그 왕비를 저희 쪽 사람의 영애를 앉혀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 왕을 우리 손아귀에 넣을 수 있나? 장인이라는 이유로 대전회의 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어. 크리스토프 후작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아니지요. 저희가 후계자를 손아귀에 넣어야 할 방법은 정치판이 아닌 잠자리입니다.”
“음?”
“자고로 아내의 말을 무시하는 남편은 없습니다. 얀텐 제국의 역대 황후들도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한 사례가 있습니다.”
헤르만 공작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왕좌에 오른다면 좋겠지만, 왕좌를 차지 못하고 왕국의 실세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쁘지 않은 차선책이군, 다른 방법은?”
“둘째로는 후계자의 단점을 근거로 왕의 자격이 없다 하고 후계자의 자리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물론 공작님의 직위와 공작님을 따르는 귀족들이 단합한다면 해 볼 만합니다만, 100퍼센트 이길 자신은 없습니다.”
“그것은 위험해. 잘못하면 권력을 빼앗길 수 있어. 셋째는?”
“이것이지요.”
알베르트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이것을 하려면 근위기사단장은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근위군대장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일이 수월하게 끝날 것입니다.”
“그건 안 돼! 선대 국왕께서 돌아가신 지금 얀텐 제국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 왕권을 차지하려다가 결국 같이 망할 수도 있어.”
헤르만 공작은 왕좌를 노리는 자였지만 자신이 태어난 아룬 왕국을 사랑하는 자이기도 했다.
“나머지 두 개는 지금 시기상 하기 힘들어, 게다가 위험해. 그렇다면 일단 첫 번째로 정하지 내일 대전회의 때 후계자 계승을 지지하라고 따로 언질하고 밤에 회의를 소집하지.”
“알겠습니다.”
알베르트 백작이 헤르만 공작에게 인사를 하고 나간 후, 응접실의 불이 꺼졌다. 고요한 왕도의 밤은 2개의 달이 비추며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