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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



암흑군주 1권(1화)
프롤로그


흑암의 탑.
대륙에서 유일하게 흑마법사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마도국의 탑 중 하나.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자하드의 머릿속에서 잊혀 지지 않는 거대한 탑이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인정받지 못하여 음지로 스며든 마탑이다.
당금 마도국에도 수십 개의 마탑이 존재하고 각각 고유의 비전기술과 학파가 존재하기에 발전하지 못한 기술과 학문은 시대에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한때 자만에 빠져 현재의 결과를 초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를 불러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흑암의 탑은 음지에 스며들었고, 또 다시 세월이 흘러 세상에 나왔을 때는 긴 시간이 지난 뒤였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지 못했고 그들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다.
마도국의 진정한 힘의 원천인 마도 병기의 제작에도 착수했던 그들의 몰락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흑암의 탑은 인정받지 못한 채 마도국 자하드를 벗어나 한 나라의 정착했다.
그곳이 바로 아일란 왕국이었다.
아일란 왕국은 대륙에서 유일하게 친인에게 작위 계승이 가능한 국가다. 그 때문에 예로부터 수많은 매관매직이 성행하면서 고위급 귀족들조차도 한순간에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흑암의 탑은 그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아일란 왕국에 파고들었다.

프라시스 영지.
영토 약, 210㎢.
영지민 30,000명.
프라시스 영지는 백작령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와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왕국 중부의 지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의 주인인 프라시스 백작.
전형적인 야심가이지만, 지금의 그는 지금 흑암의 탑에 빌린 30만 골드를 갚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귀족으로서 30만 골드는 그렇게 큰돈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영지를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식량난이 연이어 찾아와 식량 구입에 모조리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어떻게, 어떻게 안 되겠는가?”
흑암의 탑주 발칸.
“시간은 충분히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칸도 한 치의 물러남도 없었다.
그들에게도 더 이상 후퇴할 길이 없었으니까.
마탑 운영비를 제외하고 난다면 백작에게 빌려 준 30만 골드가 마지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었다.
발칸 역시 흑암의 탑주로서 사활을 건 사항이었던 것이다.
발칸은 처음부터 프라시스 영지를 노리고 있었고 은밀하게 접근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전체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때라 식량 값이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그런데 프라시스 백작은 수도 귀족으로 진출하기 위해 백성들의 등골을 쑤시며 모아 놓은 세금을 탕진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의 흉년이 찾아오는 것에 전혀 대비하지 않은 채 말이다.
발칸은 그런 상황에서 돈을 빌려 주었고, 프라시스 백작은 식량 구입을 한 것만으로 모든 자금을 다 써 버리고 말았다.
영지에 있는 사업 수단은 잦은 착취와 높은 세금율로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상태.
프라시스 백작은 이미 돈 들어올 데가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덧, 프라시스 백작의 눈에 체념의 빛이 떠올랐다.
프라시스 백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한 장의 종이를 대고 펜을 놀렸다.
“크흐흑…….”
대륙력 2128년 8월부로, 영주권을 포기하고 친인 발칸에게 백작의 작위를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chapter 1 영주 등극(1)


다그닥다그닥.
마차가 성문에 도착하자 경비병이 창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정지!”
경비병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외쳤다.
“이곳은 프라시스 영지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스륵.
마차 창문이 열렸다.
“오늘부로 이곳에 부임하게 된 프라시스 폰 발칸이다. 문을 열어라.”
새로운 영주가 부임한다는 사실은 프라시스 영지 내에서도 몇 명 알지 못한 사항.
“저, 정말 영주님이십니까?”
경비병 한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 뜬금없이 영주라 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혼자 온 것도 아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기에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겁이 났다.
하나같이 시꺼먼 복장에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정체 모를 공포심을 유발했으니까.
한스는 그들의 기세에 주눅이 들었다.
“저어…… 국왕 폐하의 친서를…….”
발칸은 품에 안고 있던 친서를 한스에게 친히 확인시켜 주며 말했다.
“영주 대리를 데리고 와라.”
“네!”
한스는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백작가의 경비병답게 국왕의 인장이 진짜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기름칠을 한 듯한 뚱뚱한 남자가 걸어왔다.
그는 신임 영주라는 게 확인된 발칸을 보고도 아니꼬운 시선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발칸은 영주 대리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뭔가?”
“라드라고 합니다.”
“자식은 있나?”
“아들 둘이 있습니다.”
“나이는?”
“열다섯, 열셋입니다.”
발칸이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병사로 쓰기에 아주 적당한 나이가 되었군.”
“……예?”
라드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자신이 영주 대리라 해도 신분은 준남작이다. 준남작의 아들들은 관례상 강제 징병을 해도 병사가 되지 않는다.
“오늘부로 너는 준남작에서 박탈시킨다. 고향으로 꺼져라.”
“그, 그런…….”
라드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발칸을 쳐다보았다.
“준남작이라고 오만한 모양이로군. 언제부터 준남작 따위가 백작인 나를 그런 식으로 쳐다볼 수 있었지?”
발칸의 말 한마디에 라드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돌리며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하지만 방금 전의 선택은 재고해 주십시오. 박탈이라니요…….”
라드는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영주가 갑자기 자신에게 상을 줘도 모자를 판에 박탈이라니?
프라시스 백작이 자리를 비운 한 달 동안 이 영지를 운영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아니었던가!
“하늘에 맹세코 잘못한 것이 없는가?”
“없습니다!”
발칸이 혀를 가볍게 놀렸다.
“쯧쯧, 기회를 줬거늘.”
발칸이 턱짓을 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가지고 있던 종이 뭉치 중 하나를 꺼내어 읽었다.

이름 : 라드.
나이 : 41.
가족관계 : 부모 사망. 아들 모리스, 라닌 있음. 부인은 라닌을 낳던 중 사망.
직책 : 영주 대리. 전 영지 총관.
연봉 : 400골드.
재산 : 아일란 왕국 수도 헬라인에 20,000골드 급 저택 보유.
영지 프라시스에 1,500골드 급의 저택 보유.

듣고 있던 라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봉 사백 골드에 이만 골드와 천오백 골드짜리 저택을 보유하다니. 도대체 어디서 돈을 긁어모았나?”
“그, 그건…….”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있을 리가 없다. 1년에 400골드를 죽어라 벌어 봤자 2만 골드의 저택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듣기로 부모 둘 다 유산이라고는 자네에게 300골드를 남겼더군. 그 돈으로 도박을 해서 대박이라도 쳤나?”
“으으…….”
“전 프라시스 영주가 전부 불었다. 이곳에서 나는 특산품인 마법석을 팔아 영주와 돈을 나눴더군.”
마법석이란 이 시대의 에너지를 담은 마나의 집합체라 볼 수 있다.
수백 년간의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 3할밖에 밝혀내지 못했다고 알려진 신비의 돌.
그 신비의 돌, 마법석은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적어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프라시스 영지는 국가에서 공표한 영지민 5할 이상의 세금 금지를 무시하며, 3년간 5할 5푼을 받아 왔다.”
“그, 그건…… 항상 프라시스 영지는 언제 전시 상태가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 보안법을 적용하여…….”
“알아본 결과 프라시스 영지는 3년간 세 차례의 몬스터 공격을 받았지만, 전혀 피해가 없었다. 매년 죽어 나간 병사들의 숫자는 200명 정도. 그 정도 수준이라면 대륙 어디의 영지라도 앓고 있는 문제점이다.”
라드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프라시스 영지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온 것이 틀림없으니 발뺌할 것도 없었다.
영주 권리로 특별 보안법을 적용시키면 일시적으로 5푼의 세금을 더욱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최대 2년 이상 5푼의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라드와 전 프라시스 영주는 이런 악독한 짓을 3년 이상이나 반복해 오며 영지민들의 고충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부로 네놈의 작위를 박탈하고, 재산 중 95%를 몰수하겠다. 그 벌로 네놈을 이 영지에서 쫓아내며, 아들 둘을 10년간 이 영지의 병사로 쓰겠다.”
“헉!”
파라다이스 같은 인생이 한순간에 똥통으로 바뀌었으니, 라드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영주로 발령받은 첫째 날. 발칸은 그렇게 화려하게 영지에 도착했다.

* * *

“자네 이름이 뭔가?”
한스는 발칸의 질문에 앞이 캄캄해졌다.
“하, 한스라고 합니다, 영주님.”
방금까지 발칸의 말에 대꾸도 못하며 추방당한 영주 대리의 얼굴이 떠오르자 없던 죄도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영주 대리를 제외하고, 이 영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재가 필요하네만, 알고 있나?”
“전 프라시스 영주님께서는 영지에 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발칸이 코웃음을 쳤다.
“프라시스 영주가 나가면서 학교의 인사들도 모두 사라졌겠군.”
“한 달째 휴교에 있습니다. 그리고 워낙 학비가 비쌌던 터라, 다니던 아이들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다는 놈치고 영지에 대해 모르는 놈들이 없었습니다.”
서로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전 영주와 영주 대리는 학교 또한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국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돈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휴교를 했다 해도 관리하는 자가 없지는 않겠지. 그자에게 요청하여 이 영지에서 제일 박식한 자를 데려오라 하게.”
그리고 발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밖으로 나가 여관 하나를 잡고 있겠다. 그리로 데려오도록.”
그런 말을 하는 발칸의 눈은 붉은색이었다.
지레 겁을 먹은 한스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