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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25화)
chapter 9 마도 병기의 등장(5)
어쌔신들은 미토스가 발 빠르게 전투 대형을 갖추자 곧바로 공격하기를 포기했다.
어쌔신은 원래 암살과 은신에 능하다.
아무리 그들이 익스퍼트 최상급이라고 해도 단검을 들고 근접해서 싸울 수는 없었다.
어쌔신들 중 한 명이 복면을 내렸다.
그는 반자크였다.
반자크는 제일 처음 소드 마스터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완벽한 기회가 올 때까지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한 인물의 등장으로 완벽하게 기회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내 기척을…….’
반자크는 도둑 길드의 길드장. 이곳의 어지간한 어쌔신들보다도 더욱 은밀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있던 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노엘 후작 각하 말대로 흑마법사가 제 발로 나올 때까지 계속 들쑤신다. 다른 자들은 죽여도 좋다. 하지만 명심해라. 노엘 후작 각하께서 친히 흑마법사를 잡는다 하셨으니 건드리지는 말아야 한다.”
어쌔신들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소드 마스터인 미토스 단장을 죽이는 게 제일 먼저다. 나와 다섯 명은 애송이 소드 마스터를 맡고, 다른 자들은 용병단 떨거지들을 맡는다.”
반자크의 말과 함께 어쌔신들이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이 행렬에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어떤 이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공기가 턱 막혔다. 언제 어디선가 비도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노예들은 몸을 최대한 구부리며 용병단이 만들어 놓은 원형 방어진 안에서 상황을 엿보았다.
파이브 스타 급 용병단이라고 해도 이미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의 실력을 지닌 어쌔신이라는 말에 죄다 얼굴들이 굳었다.
그들 수십 명이 마음먹고 공격해 온다면 자신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중 미토스는 긴장감을 역력히 드러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쌔신들의 최우선 표적이 자신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슷.
어쌔신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미토스는 마나 홀에서 마나를 일으켰다.
“후읍……!”
그의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팍!
그러고서는 전력을 다해 땅바닥을 거칠게 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푸욱!
사력을 다하는 미토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한 어쌔신이 싸늘한 초주검이 되었을 때였다.
그들은 그제야 미토스가 움직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한 어쌔신이 비도를 내던졌다.
슉!
동시에 몸을 은밀히 숨기고 있던 어쌔신들이 몸을 드러내며 용병단원들을 향해 일제히 비도를 던졌다.
소드 마스터가 작정하고 움직이는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익스퍼트 급에게라면 그들 역시 똑같이 해 줄 수가 있었다.
“막아라!”
“으아악!”
비도에 맞은 용병이 옆으로 꼬꾸라졌다.
그런 용병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하지만 용병들은 동료의 죽음에 슬퍼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어쌔신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들이 있는 곳은 곧 난전의 상황이 되었다.
챙챙챙!
“와아아아아!”
몇몇 용병들은 노예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어쌔신들도 노예들에게 관심은 그다지 없었는지 오히려 용병들을 달달 볶았다.
그중 한 어쌔신이 검은 후드를 둘러싸고 있는 자에게 덤벼들었다.
단검에 깃든 검기의 기운이 시퍼런 예기를 발산하는데, 그 후드의 남자는 손가락 하나를 어쌔신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핑!
어쌔신은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이마 한가운데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레이저 포인트였다.
“흐음.”
발칸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그 난전을 빠져나왔다.
그의 발걸음은 숲 속의 큰 공터 앞에서 멈췄다.
“안녕하신가?”
어떻게 보아도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 그자는 하얀 제복을 입고 롱 소드 하나만 꺼내 놓은 채 발칸을 처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하나만 묻겠네. 자네가 이왕자와 연루되었다는 그 흑마법사가 맞나?”
발칸은 후드를 젖혔다.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노엘 후작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젊은 얼굴이군! 그 나이에 대마도사가 되었다니, 대체 비결이 뭔가? 아니면 원래 동안이었나?”
발칸이 마나 홀의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의 전신은 언제든지 마기를 끌어 올려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궁금한 게 원래 많은 거요, 아니면 늙으니 말이 많아진 거요?”
노엘 후작의 얼굴이 잠시 놀람으로 바뀌었다가 이내 평온해졌다.
지금 자신은 소드 마스터에 갓 입문한 미토스나 로한교의 카알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강대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숲 속의 동물들조차 숨어들 만한 살기건만, 이 흑마법사는 자신의 앞에서 아주 편안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경지가 결코 낮지 않음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난 노엘 후작이라고 하네. 들어는 봤겠지만, 아일란 왕국 최고의 소드 마스터라는 부끄러운 칭호를 달고 있네. 물론, 그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란 것쯤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표면에 드러난 그의 실력은 소드 마스터 중급.
익스퍼트와 소드 마스터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이듯, 소드 마스터 초급과 중급의 차이도 천양지차였다.
평범한 소드 마스터들을 상상하다가는 큰코다친다는 얘기다.
“살고 싶다면 내 말을 잘 따르는 게 좋을걸세. 그것이 자네한테도 이로울 테니까.”
발칸은 노엘 후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소이까?”
“말하게나.”
“나의 행적지를 어떻게 알아냈소?”
“자네가 노예들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네. 그래서 알아봤지. 그만한 노예들을 구한다면 반드시 호위할 자들이 필요할 테니, 용병이나 레인저 길드에 의뢰를 요청할 거라 말일세.”
발칸은 눈살을 찌푸렸다.
“용병 길드에서 가르쳐 준 모양이군.”
“요즘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더군. 그리고 그 돈이라는 것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네.”
슈우욱!
노엘 후작이 손을 뻗자 허공에 아공간이 생성되었다.
아공간 마법은 5서클의 흑마법. 소드 마스터인 노엘 후작이 마법사가 아니었으니 아티팩트가 분명했다.
그의 팔찌가 주변의 마나와 동화하는 순간 엄청난 양의 마기가 움직였다.
파아앗!
아공간에는 난데없이 거대한 골렘이 우뚝 서 있었다. 발칸은 골렘을 보며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도 병기 마신기. 아니, 이제는 나이트 골렘인가? 어떻게 이걸 당신이…….”
“마도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야. 요즘 각국에서 나이트 골렘이 인기더군. 몰랐나?”
나이트 골렘의 가격은 천문학적이다.
일단 영구적인 아공간 소환으로 5서클 마법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최소한 7서클 마법사의 입김이 닿았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트 골렘의 재료는 수만 가지가 들어간다.
아무리 국가 단위라고 해도 나이트 골렘을 사는 수요량이 많지는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발칸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마도국에 있어야 할 나이트 골렘이 어째서 타국에 존재하느냐는 것이었다.
‘마도국이 드디어 마도 병기 판매에 들어갔나?’
마도 병기는 참으로 귀찮은 물건이다.
탑승자의 마나력과 컨트롤에 따라 그 실력이 배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소드 마스터 초급이 타면 소드 마스터 중급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
같은 등급이라면 동급 셋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마도 병기였다.
아일란 왕국의 최고의 소드 마스터도 부담스런 처지에 나이트 골렘까지 가지고 있으니 발칸은 한순간 머리를 짚었다.
“역시 자네도 흑마법사라 이건가? 이 물건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하군.”
모를 리가 없었다.
한때는 흑암의 탑 또한 나이트 골렘 제작에 착수했었다.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칸은 이 마도 병기의 존재를 마도국에서 떨어져 나올 때 봉인시키고 나왔다. 자신만은 반드시 이 마도 병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 마도 병기를 눈으로 보자 새삼 반갑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후후!”
발칸은 겁쟁이가 아니었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여유로운 웃음을 보여 주었다.
“당신이 이름을 말해 주었으니 내 이름을 말해 주겠소. 난 발칸이라 하오. 마도국 자하드에서 흑암의 탑주를 해 오다가 아일란 왕국으로 들어왔소.”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것은, 죽이는 것으로 입을 막겠다는 뜻.
“내 이름을 말해 준 것에 대한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난 아주 특별한 자가 아니면 내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소이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네.”
노엘 후작은 나이트 골렘에 탑승했다.
그러자 4미터가 넘는 나이트 골렘의 안광에서 붉은빛이 떠올랐다.
발칸의 전신에서는 마기가 서서히 들끓기 시작했다.
“난 나 하나를 잡으려고 지금껏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살아온 노예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당신네들을 용서할 맘이 전혀 없소.”
발칸의 말에 노엘 후작은 마나를 불어 넣어 검기를 뿜어내었다.
검의 크기만 해도 2미터가 넘었다. 그 검에 검기가 생성되니 피부에까지 그 예기가 전달되었다.
노엘 후작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나도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하지만 이 세계는 노예들의 목숨이나 인생 따위는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네. 그들의 희생은 어쩌면 당연할 일일 수도 있겠지.”
발칸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어찌 노예들만 희생의 대가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어릴 적부터 처절하게 살아온 발칸에게 있어 노예들의 삶은 동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신분을 회복시켜 주려는 것도 그러한 연유 때문이었다.
발칸의 마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죽음 확정이오. 난 단시간 내에 당신을 처참하게 도륙하고 노예들을 구하러 가겠소.”
노엘 후작은 여유롭게 웃었다.
“허허!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네. 이 마도 병기란 놈에 익숙해지기 위해 1년을 죽은 듯이 살았으니.”
발칸의 눈이 착 가라앉은 그 순간 냉소적인 그의 입가에서 한마디 독설 같은 말이 나왔다.
“본인 앞에서 마도 병기를 꺼낸 것을 천추의 한으로 만들어 주겠소, 후작.”
파앗!
발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삽시간에 주위를 뒤흔들었다.
대륙에 처음으로 드러나는 흑암의 탑주 발칸의 위용이었다.
<『암흑군주』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