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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24화)
chapter 9 마도 병기의 등장(4)
“크아아악! 이, 이 노옴!”
마기가 뇌를 들쑤시자 어쌔신들은 머릿속을 전기로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말해라. 배후만 말한다면 깨끗하게 죽여 주겠다.”
어쌔신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생사를 넘나드는 극도의 훈련을 받아 온 그들도 발칸의 정신 공격은 견뎌 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중 한 어쌔신이 고통을 견뎌 내지 못하고 실토했다.
“노, 노엘 후작이다.”
“노엘 후작?”
아일란 왕국의 최고 소드 마스터인 그가 왜 자신을 노린다는 말인가?
발칸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사실인가?”
“사, 사실이다. 그러니 어서 죽여 다오!”
이 고통의 순간에 거짓을 고하지는 못할 것이다. 흑마법의 오랜 고문 역사는 어쌔신의 정신 훈련으로 감당되는 것이 아니었으니.
“잘 가게나.”
발칸이 손가락을 내뻗자 레이저 포인트가 발현되어 어쌔신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꿰뚫어 버렸다.
아무리 서바이벌 라이프를 사용했어도 뇌를 꿰뚫리면 즉사다.
발칸은 씁쓸한 표정으로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시간을 비워 두면 의심의 눈을 사겠군.”
단순히 철부지 귀족으로만 알고 있을 테니 발칸은 더 이상 몸을 뺄 수 없었다.
발칸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방금 발칸이 떠나간 곳에 내려앉았다. 그중에는 반자크와 노엘 후작도 있었다.
반자크는 어쌔신들이 처참히 도륙당한 것을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
“마, 말도 안 돼…….”
노엘 후작은 담담한 표정으로 반자크를 책망했다.
“소드 마스터조차 암살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았나? 그들이 왜 은신에서 발각된단 말인가?”
“그, 그들은 모두 익스퍼트 최상급에 속한 이들입니다. 임무 성공률 또한 백 퍼센트를 자랑했습니다. 이, 이렇게 전멸당할 줄이야…….”
노엘 후작은 어쌔신들이 당한 상처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윈드 커터로 난자된 몸이나 아이스 스피어로 꿰뚫린 등.
하체를 완전히 태워 버린 파이어 월.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의 머리를 꿰뚫어 버린 하나의 작은 구멍.
이런 마법 같은 일을 미토스라는 소드 마스터가 해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드 마스터가 한 일이라면 익숙한 마나 파동이기 때문에 노엘 후작이 모를 리가 없다.
“흔적을 보니 모두 흑마법사에게 당한 듯합니다.”
노엘 후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에게 오히려 어쌔신들은 천적이 아닌가?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죽을 텐데.”
기사보다도 더욱 까다로운 자들이 바로 어쌔신.
한 명도 까다로운 판에 열 명이나 같이 덤볐는데 마법사 하나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큰 실망이었다.
“흑마법은 방어 기술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캐스팅 속도는 여타 백마법사보다 여러 배, 혹은 수십 배나 빠릅니다. 그리고 저희가 쫓는 자는 대마도사라고 불릴 정도의 높은 서클을 구사하는 흑마법사입니다.”
노엘 후작은 지금까지 흑마법사와의 전투를 겪어 본 적이 없었다.
흑마법사라는 존재는 언제부터인가 마도국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마도국은 타국 사람이 출입하기 어려운 국가다.
대부분의 나라가 흑마법사를 배척해 버리자 노엘 후작이 소드 마스터로 등극했을 당시에는 흑마법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언제부터인가 백마법사들의 시대가 찾아왔다.
하지만 기사와 백마법사들 간의 싸움은 싱겁기 짝이 없을 정도로 쉽게 끝나 버렸다.
6서클에 오른 대마도사라 할지라도 허둥지둥 낮은 서클들의 마법만 사용하다가 제대로 타격을 줄 만한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기사들에게 패배를 시인한 것이다.
노엘 후작은 마도 병기인 마신기, 혹은 요즘 들어서 생긴 이름인 나이트 골렘을 가지고 오면서 그렇게 싱겁게 전투가 끝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흑마법사와의 전투를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때문에 어쌔신 열 명이 죽기는 했지만 이내 그의 얼굴이 흥분으로 고무되었다.
어쌔신의 희생으로 대략이나마 흑마법사의 실력을 알 수 있었고, 그 실력이 자신과 겨루기에 충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어쌔신들을 대기시키고 나의 명을 기다리시오. 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들쑤시면 되오. 아무리 놈이 꽁꽁 숨어도 꼬리까지 숨기지는 못할 테지.”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반자크는 어쌔신들을 데리고 그 자리에서 철수했다.
노엘 후작의 눈이 서늘하게 변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마나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마기들의 집합체를 간단히 삼켜 버렸다.
노엘 후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후후! 이곳까지 도주하는 데 참으로 애썼소. 하지만 이젠 벗어날 수 없을 것이외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말이오.”
마도국에서 수입해 온 마도 병기 마신기.
마신기만 있다면 대륙 이름난 초인들과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노엘 후작의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발칸은 눈을 감았다.
그의 마기가 움직이자 주변의 마나가 움직여 반발하기 시작했다.
마기는 억지로 마나를 탁하게 만들려 하지만, 마나는 뱀처럼 마기를 빠져나와 도망친다.
“역시 무리로군.”
마도국이나 특별히 마기가 깃들어 있는 곳이 아니라면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들은 마기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어쌔신들과의 싸움으로 떨어져 나간 마기를 보충하려던 발칸은 한숨을 내쉬면서 품 안에서 하나의 돌을 꺼내었다.
바로 마법석이었다.
발칸은 마법석을 손으로 쥐고 조용히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마법석이 검은색으로 빛나며 마기에 반응했다.
이렇게 마기에 반응된 마법석은 철저히 흑마법사의 전유물로 바뀌어 버린다. 그 후에 이 마법석으로 떨어져 나간 마기를 보충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석으로 보충한 마기도 깨끗하지 않다.
마나 홀에 연결되는 순간 반발을 한다. 마법석에 깃들어 있었던 마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마법석으로 들어온 마기를 기존의 마기와 동화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발칸은 그 작업을 30분을 넘게 반복한 끝에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마나 홀이 다시 정순한 마기로 가득 차자 발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칸이 1시간가량 행렬에서 사라져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발칸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발칸은 자신의 마기만큼이나 은밀하게 움직여 행렬에 합류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있었는데 미토스가 곧 발칸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오?”
“갑자기 저희를 감시하던 눈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기분이 찜찜합니다.”
미토스는 이 호위 의뢰의 총책임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생각하고 결정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발칸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미토스는 상대가 귀족이라서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그것은 사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발칸의 기운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래에 있지 않은, 강력한 절대자의 기운.
“아무래도 그들이 생각을 정한 듯싶소. 노예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일단 용병들에게만 언제든지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오. 물론, 우리들이 그들을 눈치 챘다는 것을 절대 알게 하면 안 되오. 노예들에겐 내가 이야기하겠소.”
“알겠습니다.”
미토스가 긴장감을 역력히 드러냈다.
자신에게 지켜보고 있던 어쌔신 열 명이, 만약 자신을 노렸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 판국이었다.
적들은 자신들을 꿰뚫어보고 있는데 자신들은 적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니 당연한 소리였다.
최근에 받은 의뢰 중에 이렇게 목숨이 경각에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위험한 일은 없었다.
미토스는 용병들에게 은밀하게 전하는 한편,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라고 신신당부했다.
용병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긴장을 드러냈다.
발칸은 노예들 중 대표를 맡고 있는 그 노인, 룬크를 찾아갔다.
룬크는 발칸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았고, 노예들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촌장 자리를 맡았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룬크는 발칸이 찾아오자 반갑게 맞이했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굳이 주인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오. 영지에 도착하면 그대들의 주인은 영주가 될 것이오.”
“그럼 뭐라고 불러야…….”
“아무거나 상관없소. 지금 난 이름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니오.”
“그럼……?”
“아무래도 노예들을 대거 구입해서 빠져나온 것이 발각된 모양이오. 왕궁 근위대와 추격꾼들이 쫓아왔소. 그러니 노예들에게 은밀하게 알려 그 상황이 되면 미토스 용병단장의 인도에 따라 신속히 도주해 줬으면 하오.”
정확히는 흑마법사인 발칸 때문이었지만, 발칸은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룬크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저, 저희들은 괜찮은 겁니까?”
“저래 봬도 스콜피온 용병단은 파이브 스타 급이오. 안전하게 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 알겠습니다, 주인…… 아니, 도련님.”
도련님은 룬크가 지금 막 생각한 호칭이었다.
발칸은 20대 중반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도련님만큼 잘 어울리는 호칭도 없었다.
게다가 발칸은 귀공자마냥 얼굴이 희고 고왔다.
얼굴도 준수했다.
“얘기한 대로만 하면 모두 죽지 않고 살아서 영지에 도착할 수 있소.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아 주었으면 하오.”
“그것은 맡겨 두셔도 됩니다, 도련님.”
룬크는 묘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발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드시 나 또한 힘을 보태 지켜 주겠소.”
발칸의 말에 룬크는 발칸이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보아도 병약해 보이는 청년이 지켜 줘 봤자 왕궁 근위대가 온다는데, 그들과 어떻게 맞서 싸우겠는가?
하지만 룬크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발칸을 기쁘게 할 대사를 내뱉었다.
“아이고, 도련님! 정말 든든해집니다.”
발칸은 미소를 지으며 룬크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없소. 빨리 전해 주시길 바라오.”
“예.”
룬크가 자리를 옮기자 발칸도 몸 안의 마기를 활성화시켰다.
마기가 발칸의 전신을 한 바퀴 휘감았다. 주먹을 움켜쥐자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발칸은 고개를 올려 후드를 벗어젖혔다.
마기가 들끓던 그 손을 그대로 얼굴에 대자, 얼굴에서 변화가 생겼다. 눈썹이 더욱 찐해지고 입술이 두툼해졌다.
윤곽도 더욱 뚜렷해졌다.
준수했던 발칸의 얼굴이 실로 남자다운 얼굴로 변화한 것이다.
사령마법 중 하나인 이미지 체인지(Image change)였다.
소환수들이나 언데드들의 외형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이미지 체인지를 자신의 얼굴에 사용한 것이다.
직접 보면서 할 수는 없었기에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발칸은 얼굴을 매만지며 그럭저럭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쁘지 않군.”
발칸은 다시 후드를 뒤짚어쓰고 미토스에게로 갔다.
평소에도 후드를 쓰고 다녔기에 미토스는 얼굴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없었다.
“우릴 감시하는 자들이 나타났소.”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미토스는 발칸에게 불신을 드러냈다.
소드 마스터인 자신도 읽기 못하는 기척을 발칸이 읽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적들이 어디…….”
“저기 있소.”
미토스의 말에 발칸은 손가락으로 한 수풀을 가리켰다. 거리가 수십 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미토스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발칸이 그 수풀을 가리킨 순간, 수풀이 살짝 움직였다.
바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인위적인 움직임.
그 순간이었다.
팟!
수풀 속에서 난데없이 한 뼘 크기의 날카로운 비도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헉!”
미토스는 순간 검을 뽑아내며 비도를 비스듬히 막아 냈다.
그 비도가 막히자 여러 방향에서 미토스를 향해 수십 개의 비도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슈슈슉!
하나하나 모두 필살의 의지를 담고 있는 은밀한 비도들이었다.
미토스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구르며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가 피한 자리를 수십 개의 비도들이 스쳐 지나가며 단번에 뒤에 있던 바위들에 구멍을 만들어 냈다.
미토스는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에서 소리쳤다.
“전투 태세!”
채채챙!
용병들 대부분의 손에 자신들의 무기가 쥐어졌다.
그들도 비도가 날아온 순간 어쌔신들의 기척을 파악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