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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23화)
chapter 9 마도 병기의 등장(3)


발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노예들의 대표인 노인이었다.
“주인님,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 합니다. 이동 속도를 조금만 늦춰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발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입가를 미세하게 떨었다.
“그러도록 하겠소. 내가 용병들에게 잘 말해서 이동 속도를 늦추겠소.”
성녀 때문에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발칸이 할 수 있는 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빻아서 상처 부위에 바르는 것뿐이었다.
특히 내상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발칸은 이미 예전부터 별것 없는 이동 속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발칸은 곧장 미토스에게 다가갔다.
“단장, 얘기 좀 할 수 있겠소?”
“무슨 일입니까?”
“노예들이 이동 속도에 부담을 느끼고 있소.”
노예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있다. 장정들은 힘이 별로 들지 않아도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은 이 속도에 부담을 느꼈다.
게다가 노예들은 원래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의 체력은 금세 얼마 못 가 바닥났다.
미토스는 노예들의 상태를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속도를 조금 늦추도록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고맙소.”
발칸이 제자리를 돌아왔을 때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발칸은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상처를 아예 치료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상태로는 영지에 도착한다 해도 한 달가량 요양하게 될 것 같았다.
성녀의 힘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반적인 디바인 포스하고는 궤를 달리하는 것 같았다.
발칸은 조용히 주변 사람들에게서 한 발자국씩 멀어졌다.
상처 치료 마법은 사령마법이나 흑마법에 없지만 상처 악화 마법은 존재했다.
내상이나 외상 부위에 상처 악화 마법을 사용하면 상처가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흑마법사라면?
상처 악화 마법에 마기가 반응하여 악화된 곳의 성질을 마기로 바꾸고, 마기가 복구하기 시작한다.
상처 치료 마법은 아니더라도 응급 처치 마법이었던 것이다.
발칸이 그동안 이 응급 처치 마법을 꺼렸던 이유는 바로 소드 마스터인 미토스에게 흑마법을 발각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발칸은 미토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곧바로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며 전신을 휘감고 있는 마기를 끌어올렸다.
“큭……!”
마기가 일어나자 성녀에게 당한 상처가 일어났다.
발칸은 입술을 깨물며 4서클 마법을 발현했다.
“다크 운즈(Dark wounds).”
파팟!
디바인 포스로 당했던 상처가 터져 버렸다.
외부와 내부의 상태가 엉망이 되었지만 발칸은 그 고통 속에서도 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마기를 일으켜 상처를 수복하기 시작했다.
발칸이 입고 있던 로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 물들었다.
입술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이빨이 입술을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상처 악화 마법을 사용하고 나자 발칸의 표정은 한결 나아졌다.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이건 한순간이었다.
마기로 인해 고통이 완화되며, 종국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발칸은 그 정도가 되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브가 검은색이라 피가 굳자 별로 티도 나지 않았다.
“파이어 볼.”
이번엔 간단한 공격 마법을 발현시켰다.
손 위에 떠 있던 파이어 볼은 발칸이 손을 움켜쥐자 사라져 버렸다.
마기를 운용하는 것에는 별반 지장이 없었다.
상처의 성향도 마기로 변했으니 흑마법사인 발칸으로선 오히려 빠른 속도로 치료가 될 것이었다.
발칸은 응급 처치를 끝내고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자 그때, 마침 미토스가 발칸을 찾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발칸의 흑마법을 감지한 것은 아닌 듯했다.
“무슨 일이오?”
“정찰대로 보낸 용병 두 명이 화살에 당해 발견되었습니다.”
“산적일 가능성은?”
“그 용병들은 산적 두목들이라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합니다.”
정찰대는 익스퍼트 급 이상이 아니면 구성하지 않는다. 그리고 익스퍼트 급이라면 초인은 아닐지 몰라도 거의 근접한 자들.
무기에 관해서 문외한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이 한낱 산적들의 화살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토스의 얼굴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지금 이쪽으로 열 명 정도의 시선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필시 이건 누군가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체, 어째서…….”
발칸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발칸이 모르니 미토스라고 알 턱이 없었다.
‘수도와 거리는 멀어졌다. 중앙 수비군이나, 치안대가 이곳까지 쫓아올 리는 없는데?’
도둑 길드를 박살 냈다고 치안대가 움직이지는 않는다.
발칸은 순간적으로 수도에서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그렇담, 왕궁 근위대인가?’
발칸은 고개를 내저었다.
왕궁 근위대가 쫓아온다고 해도 앞에 나서서 발칸의 이동을 막았을 터다. 선발대만 공격하며 상대를 심리부터 압박시키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대열에 흑마법사가 있다는 냄새를 맡은 것이 틀림없군.’
발칸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발칸의 얼굴을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설사 왕궁 근위대라 해도 발칸이 흑마법사라고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스콜피온 용병단은 파이브 스타 급 용병단이다. 왕궁 근위대라 해도 쉽게 저지하지 못한다.
게다가 스콜피온 용병단의 단장인 소드 마스터 미토스가 이곳에 있다.
발칸은 멀리서 이 행렬을 쳐다보고 있는 자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힐끔 쳐다보았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마기를 이용해 시력을 상승시킨 발칸에게는 뚜렷하게 보였다.
미토스의 말대로 숫자는 열 명 정도.
“우리 쪽에서 선공을 하면 노예들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오. 이 속도를 유지하며 적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일단 중요할 듯싶소.”
미토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노예들에게는 말해 주지 마시오.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오.”
“믿을 만한 제 용병들에게만 일러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두시오.”
미토스는 발칸 말대로 노예들에게 일절 말하지 않고 친분이 있는 용병들에게만 은밀하게 얘기했다.

발칸의 두 눈이 착 가라앉았다.
하지만 눈과는 달리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발칸은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열 명이 숨어 있는 장소로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 울려 퍼졌다.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당신들이 노리는 것이 흑마법사라면 내가 맞소. 그러니 앞에 나타나 모습을 보여 주시오.”
발칸의 말에도 그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숨어 있던 장소에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발칸이나 미토스 정도가 되어야 간신히 잡아챌 수 있는 은실술이었다.
‘어쌔신이로군. 이 정도의 은신술이라면 소드 마스터의 목도 딸 수 있겠어.’
경지만 따지면 익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 정도의 실력자들.
열 명이 뭉친다면 소드 마스터 하급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는 무리였다.
발칸은 어쌔신들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움직여 주지. 어떻게 하겠나?”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발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가 갑자기 급변하기 시작했다.
어쌔신들도 마나를 끌어 올린다는 증거다.
이미 이들에게 발칸의 공격 방식은 잘 알려져 있었다.
사령마법을 이용한 본 실드로 완벽 방어를 하고, 상대에게 레이저 포인트를 난사하는 기본적인 공수 전환.
하지만 이 간단한 마법에 도둑 길드가 무너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팟!
발칸이 말도 하기 전에 레이저 포인트가 발현되어 허공을 갈랐다.
쏴아!
풀숲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열 명 모두가 발칸의 공격을 피해 냈다. 아무런 신음도 없었고 마나의 변동도 없었다.
어쌔신들은 발칸의 공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품 안에서 비수를 꺼내 던졌다.
슉―!
비수는 발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발칸이 가볍게 몸을 놀리며 피해 낸 것이다.
“……!”
그 광경을 본 어쌔신들은 매우 놀랐다.
마법사가 순수한 육체 행위로 비수를 피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방어 마법이 얼마 없는 흑마법사에게 날렵한 신체를 지니는 것은 빠른 캐스팅을 익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본 실드(Born shield)!”
피하기 어려운 몇 개의 비수는 본 실드로 막았다. 아니, 되돌렸다.
하지만 어쌔신들도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기에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귀찮군.”
그들은 회피와 은신 즉, 급습이나 암살 같은 공격에 매우 뛰어난 자들.
그에 비해 마법은 너무 느렸다.
제일 빠른 마법이 레이저 포인트지만, 그들 모두가 피해 낼 수 있는 반사 신경을 지녔다.
하지만 마법이 느리면, 어쌔신들을 느리게 만들면 될 일.
발칸은 곧바로 한 어쌔신에게 마법을 걸었다.
“블라인드(Blind).”
도둑 길드에서 사용했을 당시에는 광역으로 모두에게 사용했지만 이번 것은 간단하게 한 명에게만 사용한 블라인드다.
캐스팅이 필요 없었다.
무영창 즉시 시전!
“헉!”
어쌔신은 한순간 실명이 돼 버리자 그 자리에 우뚝 멈추고 딴 길로 도주했다.
“어딜!”
발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공중에 재배열되며 4서클의 흑마법이 튀어 나갔다.
“파이어 월(Fire wall)!”
화르륵!
발칸의 주위를 시작으로 한순간에 어쌔신들의 발아래로 소환되는 불의 장벽!
1,000도가 넘는 불기운에 시전자인 발칸의 얼굴도 시뻘겋게 변했다.
“으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몇 명의 어쌔신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스 스피어(Ice spear)!”
발칸의 손 위로 서서히 소환되는 3미터를 상쇄하는 거대한 얼음 창!
극한 저온을 자랑하는 아이스 스피어는 파이어 월에서도 멀쩡한 마법이었다.
쏴악!
발칸이 손을 뻗자 엄청난 속도로 아이스 스피어가 날아갔다. 아이스 스피어는 도주하는 어쌔신의 등을 완전히 꿰뚫었다.
“으아악!”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아이스 스피어를 보며 어쌔신이 앞으로 몇 걸음을 더 걷다가 꼬꾸라졌다.
쿵!
“윈드 커터(Wind cutter)!”
3서클 공격 마법 윈드 커터.
마법에도 윈드 커터가 있지만 발칸의 윈드 커터는 그 수가 수십여 개였다.
“피해라!”
어쌔신들의 눈이 부릅떠지며 윈드 커터의 공격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십여 개나 되는 윈드 커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발칸은 그들을 도망칠 수 있게 한가롭게 놔두지 않았다.
“다크 포그(Dark fog).”
발칸의 주위로 퍼져 나가는 검은 안개가 삽시간에 주위를 덮쳤다.
다크 포그는 소량의 독이 들어 있다.
자칫하면 시전자조차 중독시킬 수 있지만, 애초에 6서클에 오르면서 대마도사가 된 발칸에게 독이 통할 리가 없다.
또한 시야를 무력화시킬 뿐만 아니라 잠시간 마비시키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크아아아악!”
다크 포그로 공간을 감싸고 중독된 어쌔신들을 윈드 커터로 도륙했다.
“쿨럭! 커헉! 컥컥!”
윈드 커터로 상반신이 반으로 나뉜 자부터 시작해서 토막이 난 자도 적지 않았다.
“이젠 말해 줘도 되지 않겠소? 배후에 누가 있는 거지?”
한 명의 어쌔신이 발칸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어 까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어쌔신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발각될까 봐 모두 입에 물고 있던 독단을 깨물어 버린 것이다.
식도를 타고 들어간 독단은 위를 철저히 망가뜨리고 내장을 모두 녹여 버릴 것이다.
하지만 발칸은 그들 모두에게 저주 계열의 사령마법을 걸었다.
“서바이벌 라이프(Survival life).”
본래 고문을 할 때 사용하는 마법인데, 이 저주에 걸린 자들은 독단을 먹거나 혀를 깨물어도 그 대상자의 정신과 신체를 강화시켜 죽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독단을 깨물었다고 해도 이 마법이 풀리기 전까지, 최소 3시간 정도는 의식이 있을 것이었다.
“커컥! 어, 어째서.”
독단으로 철저히 망가진 몸 때문에 그들의 말소리가 크게 들리거나 정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죽지 않았음에 놀라워했다.
발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죽는다 해도 소용이 있을 것 같나? 너희들은 독단에 의해 철저하게 고통을 받다가 죽을 것이다. 원하는 대답을 내놓는다면 고통 없이 죽여 주마.”
동시에 발칸은 마기를 뿜어 어쌔신들의 뇌를 직접적으로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