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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22화)
chapter 9 마도 병기의 등장(2)
미토스는 발칸이 아무 이상 없이 돌아오자 안도했다. 혼자 배웅을 하러 간다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의뢰 중에 의뢰주가 죽는다면 용병단에 커다란 신뢰도가 깎여 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성기사가 아니었군. 해코지는 당하지 않은 건가?’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성기사가 살기만 드러내도 일반인은 피를 토하며 기절한다.
그런 식으로 따끔하게 벌을 주는 식도 있었다.
하지만 발칸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미토스는 발칸에게 경고를 주어야겠다고 생각되었다. 그에게 단독 행동은 너무나 위험했다.
“다시는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수도를 벗어났으니 이제 도적단이나 산적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발칸은 괘념치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단장 말대로 하리다.”
미토스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발칸은 단순히 운이 좋게 백작 자리를 거머쥐어 철없이 여행하는 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익명으로 용병들을 고용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 과정 후에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켰다.
아무리 성녀라고 해도 잠행 중이었으면 끝까지 비밀로 했어야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너무 간단하게 위험에 노출시켰다.
아무 생각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 호위의 변수는…… 바로 의뢰주였나!’
미토스는 이제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발칸의 두 눈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발칸은 미토스가 걱정할 정도로 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드 마스터라는 초인의 경지에 오른 미토스조차도 발칸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발칸은 수도인 헬라인에서 대놓고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 와중에 성기사였던 카알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 발칸의 실력이 이미 그들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뜻했다.
그때.
“으음…….”
발칸은 얼굴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방금 전 사용한 마기에 반응한 성녀의 힘이 내부를 진탕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한 마기가 디바인 포스를 제압하듯 성녀의 힘은 발칸의 마기조차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정작 성녀는 지금 발칸이 다쳤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언령이 발생한 경우라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후드로 감춰진 발칸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성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드레스 양쪽 끝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이 질책하는 눈빛을 보냈다.
“성녀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빨리 좀 될까요?”
“노력해 볼게요.”
하지만 두셋으로 안 될 것 같아 결국 네다섯이 달라붙어 머리를 펴고 옷을 매만진 끝에야 치장이 끝날 수 있었다.
“보석도 다셔야죠?”
“보석은 괜찮아요. 이걸로도 충분하니까.”
성녀는 작은 주머니에 숨겨져 있던 십자가 하나를 꺼내 목걸이처럼 걸었다.
그러자 어떠한 보석도 어울리지 않던 성녀의 모습이 신비스럽게 보였다.
시녀들이 그제야 성녀의 외모에 감탄했다.
“와아. 정말 예쁘세요, 성녀님.”
성녀가 수줍게 웃었다.
그녀도 여자였으니 예쁘다는 말은 가슴 설레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후훗!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장례식은 언제 시작하는 것이죠?”
“5분 남았어요.”
성녀는 자신이 늦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알이 자신을 안고 달리지 않았으면 이 시간까지 도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성녀는 원래 화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메이크업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녀라는 이미지 때문에서라도 그녀는 화려하게 입는 것보다는 수수하게 입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수수한 면이 황제의 장례식에 걸맞게 잘 어울렸다.
장례식은 그 모두가 숙연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입장했다.
공작, 후작들은 물론이거니와 변경의 지방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관이 자리 잡은 곳 바로 앞에는 일왕자와 이왕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둘 모두 가식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으흑흑! 아바마마! 이렇게 가시면 안 되나이다! 아바마마!”
“폐하! 소자는 아직 배울 것이 많사옵니다! 벌써 이렇게 가시면 저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왕자들의 눈물 때문인지 귀족들도 하나둘씩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황제는 무능하지 않았다.
유능한 황제였다. 언제까지도 이 아일란 왕국을 제국으로 부상시켜 줄 인재라 생각되었다.
야심이 작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황제였다.
그런 황제가 죽었으니 귀족들 모두가 슬퍼했고 백성들 모두가 목 놓아 울었다.
성녀는 관의 앞에 앉아 기도를 읊었다.
관에 뿌린 성수가 마를 때까지 그녀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에 귀족들이 상념을 깨고 성녀에게 주시했다.
황제의 장례식이라는 이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여신이 강림하여 축복을 내리는 듯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여인이었다.
이런 완벽한 여인이 성녀로 태어났으니 귀족들로서는 신이 참으로 야속하게 느껴졌다.
태양의 신 로한의 교는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어떻게 해도 성녀의 마음을 얻진 못할 것이었다.
성녀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태양의 신 로한교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인데 로한교를 지지하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귀족 정도로는 성녀를 품을 수 없었다.
결국 성녀의 외모에 감탄하며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귀족들은 그녀의 외모에 대한 화제를 이왕자로 돌렸다.
이왕자에 대한 평가는 세간에서 하락되고 있었다.
일왕자가 로열 크로이츠 상단을 통해 퍼뜨린 소문 때문이었다.
근거 없이 퍼진 소문은 없다고, 아무리 유언비어라지만 귀족들 대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그것이 사실이라 알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요즘 이왕자는 귀족들에 의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라거나 ‘그렇게 담이 클 줄은 몰랐다’라는 등등 좋지 않은 소문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일왕자에 비해 세력 구도가 약했던 이왕자는 더욱더 약해지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
중립을 선언하던 귀족들이 등을 돌리고 일왕자 쪽으로 붙었기 때문이다.
이왕자는 일왕자와는 달리 가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일왕자보다, 혹은 그 누구보다도 목 놓아 우는 소리가 컸다.
하지만 귀족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하는 ‘미친놈’으로 평가되고 있을 뿐이었다.
기존에 이왕자와 붙어 있던 귀족들도 슬그머니 줄을 옮겨야 될지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털어 봐서 흑마법사라도 튀어나와 이왕자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불게 된다면 왕위는 고스란히 일왕자에게도 넘겨줘야 했다.
일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으면 피의 숙청.
이왕자에게 가담한 자들은 모두 명단에 의해 처단될 것이었다.
다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 일왕자와 끈을 잡아 보려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귀족들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 이왕자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 내고 죽은 황제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바마마. 아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불러 봅니다.’
이왕자 또한 본국이 얼마나 난세인 줄 체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왕위 계승권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 형에겐 절대 아버지의 자리를 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형이…… 참된 군주였다면 얼마든지 왕위를 내어 드릴 터지만.’
왕이 가져야 할 덕목이 없고, 야심만 가지고 있다.
백성들을 파탄에 길로 빠져들게 만들 군주.
이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의 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왕위는 어떻게 해서든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왕자는 프리 머천트 상단의 하렌 지부장에게 바짝 다가가 한 장의 쪽지를 남겼다.
하렌 지부장은 은밀하게 쪽지를 움켜쥔 채로 눈을 아래로 내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찢어 버렸다.
쪽지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아돌트 왕국 황제 폐하의 제안에 응하겠다고 전해 주시오.
아돌트 왕국은 아일란 왕국의 이웃 국가다.
이왕자가 세력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돌트 왕국은 이전부터 이왕자에게 은밀하게 손을 뻗쳐 왔다.
바로 일왕자보다 부족한 소드 마스터를 보충해 줌과 동시에 군사 10만을 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돌트 왕국에서 받는 이득은 이왕자가 황제로 등극했을 때, 바로 연합국 쥬오스로부터의 침공을 방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쥬오스 연합국은 최근 아돌트 왕국과 사이가 나빴다.
아돌트 왕국은 식량 지역이 많은 한편 쥬오스 연합국은 식량 지역이 없어 항상 수입으로 국민들을 먹여 살렸다. 하지만 메뚜기 떼들의 집단 공격으로 식량 값이 폭등하자 더 이상 식량을 수입할 예산이 남아돌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아돌트 왕국의 식량 지역이었다.
쥬오스 연합국은 곧바로 아돌트 왕국에게 선전포고하고, 항복을 요구하는 사신들을 몇 차례나 보냈다.
쥬오스 연합국의 힘은 대륙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강했다.
그에 반해 아돌트 왕국은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뿐 최근 식량 값 폭등으로 큰돈을 벌어들이기는 하지만 국력에서 쥬오스 연합국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쥬오스 연합국에서 아돌트 왕국을 쉽게 침공하지는 못했다.
바로 아돌트 왕국과 쥬오스 연합국 사이에 아일란 왕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일란 왕국이 침공 허가를 내린다면, 쥬오스 연합국의 대군이 아일란 왕국을 거쳐 아돌트 왕국에 도착하는 최단 코스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돌트 왕국은 아일란 왕국으로부터의 침공 허가를 불허하라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아일란 왕국에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아일란 왕국도 식량난이기는 마찬가지.
아돌트 왕국에서 수입을 거부한다면 국력은 쇠퇴하고 나라 자체가 패망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돌트 왕국의 편에 들면 자칫 쥬오스 연합국의 눈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이 이야기는 이왕자에게 떠맡겨지고 말았다.
‘아돌트 왕국에서의 소드 마스터 보충은 희소식이다. 하지만 노엘 후작을 이길 만한 강자가 있을까? 그들에게 마도 병기가 있다면 승산은 높지만.’
최근 마도국 자하드에서 마도 병기 복원의 성공으로 각국으로 마도 병기가 수출되었다.
마도 병기란 과거 마신기라고 불리던 기갑의 이름으로 사용자의 마나와 육체의 힘을 최대 몇 배나 증진시킬 수 있는 병기였다.
이왕자는 최근에 일왕자 측에 마도 병기가 굴러갔다는 정보를 받아 냈다.
소드 마스터가 마도 병기를 사용한다면 같은 소드 마스터 둘, 혹은 셋과도 맞먹는 힘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그런 노엘 후작을 저지할 수 있을지 아돌트 왕국의 소드 마스터들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마도 병기! 그 실용성이 널리 퍼진다면 대륙의 새바람이 되겠군.’
이왕자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마도 병기는 차세대 대륙 전쟁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며, 마도 병기 붐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