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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25화)
8장 비굴한 자식(3)


“무, 무슨 짓이냐?”
대검을 들쳐 멘 사내는 당황해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폭발할 수 있지? 분명 폭발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을 텐데!”
그는 경악한 얼굴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진우는 그를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메모라이즈. 마나를 미리 모았다가 한순간에 터뜨리는 거지.”
메모라이즈. 2클래스 때 배운 마법이 바야흐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메모라이즈는 마법을 구현하기 위한 마나를 미리 모아 놓았다가 한순간에 발현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것은 메모라이즈 해 둔 마법 수의 제한과 메모라이즈 해 둔 마법에 필요한 마나가 마나 절대량에서 감소된다는 단점이 있다.
자신의 마나 절대량이 천이고 메모라이즈 한 마법의 마나량이 오백이었다면 메모라이즈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오백이 들기 때문에 마나 절대량은 오백밖에 남지 않는다. 그리고 메모라이즈 한 마법을 사용하면 오백이었던 마나가 한순간에 천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마법을 메모라이즈 하는 것은 보통 마법사 유저들은 엄두를 못 내는 일이었다.
보통 어떤 클래스의 유저 급이라면 그 클래스에 맞는 마법을 한두 번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스터 급으로 올라가면 서너 번은 사용할 수 있을 테지만.
마나가 적게 들어가고 자신의 클래스보다 하위 클래스의 마법을 메모라이즈 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의 예들은 진우에겐 해당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마법을 구현할 때 자신의 마나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대기의 마나를 끌어 모아 그것으로 형을 만들고 구현하기 때문에, 마법을 구현할 때 사용되는 마나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장시간 동안 유지하려면 그만큼 마나가 빠져나가야겠지만.
“크큭.”
진우는 사내의 경악한 표정이 재미있는지 연신 입술을 씰룩거렸다.
진우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사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그가 대검을 치켜세우며 진우에게 쇄도해 왔다.
진우는 그런 그를 보며 더욱더 킥킥댔다. 그 모습에 사내는 이성을 반쯤 상실하고 말았다.
대검을 꼬나쥔 채 달려오는 그를 본 진우가 주변에서 마나를 모으더니 주문을 외웠다.
“일렉트릭 쇼크.”
파직―!
“큭? 뭐야!”
진우를 향해 기세 좋게 달려오던 사내는 순간 귀와 코, 입속에서 스파크가 튀자 깜짝 놀라 우뚝 섰다.
그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는데,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진우는 그런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웃겼는지 배를 움켜잡았다.
“크큭…… 이봐, 당하는 소감이 어때?”
진우는 몸을 부들부들 떠는 사내를 향해 비웃음 섞인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라이트닝 볼트를 생성했다. 보통 때의 1미터 남짓한 라이트닝 볼트가 아닌 사내의 머리통만 한 크기였다.
라이트닝 볼트를 완성한 그는 그것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이게 머리를 통과하면 어떻게 될까나?”
진우가 히죽 웃으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색다른 경험일 거야.”
진우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의 말을 들은 사내의 안색이 삽시간에 새파래지고 얼굴은 공포로 물들었다.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그가 얼마나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현실이었다면 벌써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아무리 통각이 제한되어 있다 해도 머리통에 정통으로 번개를 맞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으으윽!”
사내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것으로 보아, 몸을 움직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그걸 시험해 보려고. 실험체로 선택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럼 간다?”
진우가 히죽 웃으며 사내의 머리통을 향해 라이트닝 볼트를 냅다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라이트닝 볼트가 지척에 왔을 즈음 일렉트릭 쇼크의 효과가 끝난 듯, 사내는 가까스로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라이트닝 볼트를 피할 수 있었다.
간신히 라이트닝 볼트를 피한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허둥댔다.
“이, 이대로는 아이템을 잃고 말아……. 로, 로그아웃을 해야 해.”
공포에 질린 사내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메뉴창을 열어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이, 이런…… 젠장!”
사내가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그에게 절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머더러 상태로는 한 시간 동안 로그아웃을 할 수 없으며 머더러 상태가 풀려야만 로그아웃을 할 수 있습니다.】

“빌어먹을.”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진우를 쳐다보았다.
진우는 그런 그를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쯧쯧, 그러게 감당 못할 일이었다면 애초에 벌이질 말아야지.”
진우가 비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내의 주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기더니 그 모서리 끝에서 파직파직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으, 으악!”
사내는 자신의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생기자 다리가 풀리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피할 수 없다 생각한 그는 얼른 비굴한 표정을 만들었다.
“이, 이봐. 내가 가진 아이템이 좀 많아. 헤헤, 머더러 상태에서 죽여도 못 나오는 아이템이 조금 있거든. 그걸 너에게 줄게. 어때?”
조금이라도 살아 보려는 가상한 노력이었지만 진우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마, 마음에 들지 않아? 그, 그럼 아이템을 더 줄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서로 좋잖아?”
사내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삐죽 들어 진우를 올려다보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허억.”
경멸이 가득한 눈빛. 그 눈빛에 소름이 돋은 사내는 더욱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가, 가진 것의 반을 너에게 줄게! 제발 부탁이야.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면 난 사냥조차 못 한다고.”
진우는 그런 그를 여전히 경멸에 가득 찬 눈초리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굴한 자식.”
진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실성한 사람처럼 메뉴창을 열어 마구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로, 로그아웃! 제길! 제발!”
공포에 질린 사내의 눈에서는 더 이상 그때의 당당함과 뻔뻔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유저를 죽일 때는 그토록 당당하더니 이제 와서 저 모습은 무어란 말인가.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었다.
“그만 죽어라, 너하고 대화하는 것도 이제 역겹다.”
진우가 비웃음 섞인 말을 나직이 내뱉었다.
로그아웃을 누르는 사내의 손이 진우의 말을 듣고는 더욱 빨라졌다.
“제, 젠장. 로그아웃! 제발 되란 말이야! 운영자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진우는 그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유저를 죽인 것은 생각 안 하고 어디서 저런 뻔뻔한 말이나 나오는지.
“이만 죽어라.”
그는 사내를 향해 펼쳤던 손을 움켜쥐었다.
“젠장! 로그아우웃!”
그의 처절한 비명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곳을 들썩이게 할 만큼 쩌렁쩌렁했다.
그리고 그 뒤로 밝은 섬광과 폭음이 들려왔다.
“결국 로그아웃이 된 건가…….”
진우는 눈앞의 광경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스파크가 휩쓸고 간 자리엔 폭발했다는 흔적만 덩그러니 남겨졌고, 사내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 사내는 로그아웃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 만나면 정말로 죽여 주마.”
진우는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사내가 다시 이 세계에 올 일은 없을 듯했다. 그만한 공포를 맛보았으니 말이다. 공포를 이겨 내고 이 세계에 다시 접속하더라도 그는 진우 때문에 숨어서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포를 이겨 내고 복수를 결심할지도…….
‘그땐 더 이상 이 짓을 못하게 잘근잘근 씹어 줘야겠어.’
진우는 상념을 털어 버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맹렬히 흔들고는 설인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주웠다. 10분이 지난 상태라 잡은 사람 외에도 주울 수 있었다.
“이거 당신들 거죠?”
설인을 잡은 파티의 성직자에게 다가간 진우가 넋 놓고 서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한동안 진우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진우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진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민정 선배?”
놀람이 깃든 진우의 목소리는 앞에 있는 민정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