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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25화)
9. 몬스터 몰이(3)


요새 주변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진을 치고 있던 2개 군단이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꼬박 하루의 거리를 행군하여 로스 군단이 자리한 곳으로 왔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정말 대단한데요?”
놀라워하는 엘란드는 제국 기사아카데미를 졸업한 수재로 전략 전술에 따른 지형지물의 이용에 대해서도 해박했다. 그런 그의 눈에 지금의 지형은 제이슨 백작이 머물고 있는 요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최고의 요새였고 실력이 뛰어난 기사 열 명으로 능히 만 명의 적을 막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 지도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하루 동안 나이가 비슷했던 스컬과 엘란드는 말을 놓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특히 엘란드는 성격이 화통하여 직위를 떠나 스컬을 형처럼 따랐다. 물론 그 이면에는 대련 한 번의 영향이 컸는데 단 한수에 스컬에게 목을 내어 주고 실력 차를 인정한 것이었다.
“와우! 이거 정말 대단한 지도인데요. 이렇게 뛰어난 지도는 제국 군부에서도 가지고 있지 못한 거 아닌가요?”
“물론. 이 지도는 마왕의 숲에서 살아가는 주인들이 만든 지도거든.”
스컬은 가지고 있던 빌트만 장로의 유품인 지도는 돌려주고 루시언에게 새로운 지도를 받은 상태였다. 그 지도를 엘란드에게 건네서 살펴보게 했다.
“주인이요? 설마…….”
지도를 정교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이거나 그에 준하는 지성을 갖춘 존재여야 했다. 아니면 그 이상의 존재인데, 지도의 뛰어남으로 보아 드래곤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건 아니고.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곳에는 엘프들이 산다.”
“헉! 에, 엘프요?”
제국에서 씨가 마른 것이 엘프라는 종족이었다. 간혹 다른 왕국에서 엘프들이 노예로 팔려 오기에 엘프라는 종족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아름다운 엘프 노예는 그 희귀함만큼이나 그 가격이 비쌌기에 좀처럼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종족이었다. 그런데 스컬이 엘프가 산다고 하니 놀라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나중에 보게 될 거다. 그렇게 알고 저곳에 군영을 차려라.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보자고.”
스컬이 그렇게 말한 후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저 형님, 오늘도 대련 한 판 해 주실 거죠?”
스컬과 같은 스피드의 쾌검술은 접해본 적이 없었다. 전날의 충격적인 대련 결과를 곱씹으며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스컬과 날마다 대련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쾌검술도 익힐 생각이었는데 그걸 조르며 스컬을 붙잡았다.
“그래, 저녁 먹고 보자고. 난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야.”
“흐흐! 저녁 먹고 반드시 대련해 주는 겁니다.”
“물론이지. 그럼 이따 봐.”
스컬은 손을 흔들어 주며 얼른 빠져 나왔다. 엘란드와 막심의 군단이 군영을 차리는 동안 해야 할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끼익! 끼아악!”
날아가며 와이번은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를 질렀다. 제 딴에는 자신이 가고 있다고 알리며 몬스터들이 황급히 도망가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저기가 붉은 오크들의 부락이에요.”
마왕의 숲 서편, 광대한 마왕의 숲은 그 크기만 해도 커다란 왕국 3개는 세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서편이라는 의미가 요새의 서쪽이라는 뜻에 불과했다. 진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시작하자고. 그런데 오크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지 걱정이야. 이들은 마왕의 숲 외부와는 교류를 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크 로드나 주술사들은 인간의 말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겠지만.”
인간의 말로 도발을 해야 한다. 와이번을 타고 가는 것도 본대가 있는 곳을 이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와키! 와쿰!”
“싹툼! 싹툼!”
오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 꽤 높이 비행하고 있어도 들렸다.
“저기로 가자.”
데보라의 조종에 따라 와이번은 날개를 활짝 편 채 활공하듯 날았다. 비스듬히 내리 꽂히며 오크들의 머리위로 빠르게 쇄도했다.
끼익! 투웅!
데보라는 어느새 활을 꺼내 화살을 한 대 쏘아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눈부신 속사는 다크엘프의 피를 타고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쏴라!”
투퉁! 투투퉁!
와이번 10마리에 타고 오크 요새 위를 비행하는 라이더들이 미친 듯이 화살을 아래로 쏘아 보내자 오크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이 가진 무기로는 와이번의 높이까지 쏘아 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리저리 피하며 화살을 쏘는 데보라 등을 원독에 찬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꾸익! 치사한 놈들! 내려와라! 꾸이익!”
보통의 오크들과는 다르게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키의 오크 로드가 자기의 키만한 블레이드를 들고 외쳤다. 그는 흥분으로 콧김을 연방 내보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흥! 내가 왜 내려가. 여기서 쏴도 충분한데. 오호호호!”
데보라가 오크 로드를 약 올리며 다시 한 대의 화살을 그에게 쐈다.
피이이잉!
날카롭게 날아가는 화살이 오크 로드의 머리통을 노렸다.
“꾸익!”
차컁!
블레이드를 신경질적으로 쳐올려 화살을 갈라 버린 오크 로드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는 블레이드를 집어 던졌다.
피리리링!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오는 블레이드에는 오크 로드의 붉은 마나가 실려 있었다. 다른 오크들과는 다르게 높이 던져 올렸지만 그뿐이었다. 중력의 법칙을 이기지 못한 블레이드는 점점 붉은 기운을 잃었고 덩달아 올라가는 힘도 잃고 말았다.
“꾸익! 내려와라! 이 치사한 인간들아! 꾸익!”
발작하듯 외쳤지만 데보라는 팔을 흔들어 인간들에게만 통하는 욕설을 몸으로 해 보였다.
“호호호! 요거나 먹어라!”
평소의 성격이 어떤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녀는 뒤에 신경 써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깔깔대며 웃었다.
‘진짜 천방지축인 아가씨로군.’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살살 저었다. 지금은 도움을 받는 처지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크 로드! 나는 인간들의 지도자 스컬이다!”
“꾸익! 치사한 인간의 지도자는 전사 아니다. 나는 전사만 인정한다. 전사라면 당장 내려와라! 꾸익!”
지능이 대단히 높은지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오크 로드가 딴에는 도발을 한다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날개를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떠 있는 와이번의 등 위에서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동남쪽 요새는 탈환했다. 그곳에서 살던 너희 친구들은 모두 우리 군에 의해 죽었지.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항복하면 살려 주겠지만 아니면 모두 죽일 것이다. 어떤가, 항복하겠는가?”
일부러 항복이라는 말을 꺼내며 오크들의 전의를 일으켰다. 오크들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종족이지 절대 항복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그들에게 항복은 노예가 되겠다는 뜻이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꾸익! 내려와라! 당장 죽여 주마! 꾸익!”
전보다 더 흥분해서 외치는 오크 로드에게 스컬이 비침을 날리며 말했다.
피피피핏!
“하루다. 항복하지 않으면 하루 뒤에 너희는 모두 죽는다. 너와 네 새끼들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도륙할 것이다! 가잣!”
스컬이 살기를 담아 외치자 데보라는 느릿하게 와이번을 몰아 동북쪽으로 날았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오크 로드는 풀리지 않는 분노와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작은 비침이 주는 고통을 합하여 외쳤다.
“꾸익! 로타마! 싹투움!”
‘모여라, 죽이러 간다.’ 정도로 해석되어야 할 외침에 이제껏 도망다니던 오크들이 녹슨 그네들의 병장기를 치켜들고 포효했다.
“아바탄! 싹툼!”
“꾸이이이이익!”
전쟁에 대한 광기로 물들어 가는 오크들은 다른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인간들이 있다는 동남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붉은 오크 일족의 모든 전사들이 동원되어 새빨간 물결이 마왕의 숲을 물들이고 있었다.

“잘 들어라.”
모여 있는 사람들은 로스의 군단에 소속되어 있던 백인장 이상의 지휘관들이었다. 거기에 데보라와 토르펨 부족의 전사들까지 합하여 꽤 강력한 전력을 지닌 부대가 되어 있었다.
“오크들의 대이동이 관측되었고 속도로 보건데 내일 정오 무렵이면 서로 충돌할 것 같다.”
하루 종일 와이번을 타고 다니며 오크들을 도발했고 분노한 오크들이 본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음도 확인했었다. 와이번을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는 오크들은 인간들의 대병력을 공격하여 그 복수를 하려 했다. 그리고 피의 전승을 통해서 인간들이 마왕의 숲을 공격하고 오크들은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기억이 그네들에게 잠재되어 있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오크들이 이동한 것이었다.
“오크들과 본대가 충돌하면 제이슨 백작을 제거한다. 그리고 각 군단의 지휘관들을 속여 우리 쪽 병력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한 번에 제압하면 더 좋겠지만 오크들과의 싸움이 치열할 때 거사를 벌일 것이라 나눠져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령관이 제이슨의 인장이 필수였다. 그의 인장으로 군단장들과 천인장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그 다음 그들을 제압하고 병력을 장악하는 수순이었다.
“삼촌.”
“응? 뭐, 할 말 있냐?”
“얼마나 죽을까요?”
한센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나이 어린 소년에게 수많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것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많이 죽겠지. 그러나 이거 하나만 명심해. 원래 죽어야 할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는 일이라는 걸.”
제이슨 백작과 그의 기사단이 도망가지 못하게 전부 죽여야 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반란을 일으켜 농노병들을 살리려고 하는 노력은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들의 부친들이 황제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반드시!’
이제껏 해 왔던 그 어떤 의뢰보다 난이도가 높은 의뢰가 될 예정이었다. 기사들까지 들고 있을 텔레포트 스크롤과 그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제이슨 백작을 잡는 일은 지난한 일이 될 것이었다.
“가자!”
“네, 삼촌!”
한센도 마법사로서 참가했고 싸울 수 있는 가용인원은 모두 총 동원되어 요새 쪽으로 향했다.


<『엘가드 스컬』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