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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24화)
9. 몬스터 몰이(2)


용병들의 생리를 이야기하는 트링커의 얼굴이 착잡함으로 물들었다. 이 빌어먹은 전투에 참가한 용병들은 대부분이 본대 소속이었다. 용병들은 사령관이 원정실패를 선언하고 돌아갈 때까지 버티면 되는 것이라 살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해도 이쪽으로 넘어올 용병은 적을 것이었다.
“그럼 용병들은 포기해야겠군. 그들이 즉시 전력감이기는 하지만 우리와 뜻을 함께하지 않는 이상, 적이니 말이야.”
적에게는 야멸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스컬이었다. 지금도 최대한 많은 수를 살려서 합법적으로 귀환하기 위함이었다. 그것만 아니라면 한센을 데리고 몰래 빠져나갔을 것이었다. 이곳으로 들어온 이상 실종은 전사자로 처리되는 맹점을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최대한 우리와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살기 위해 오크들을 몰아 원정대를 공격한다고 생각하니 꼭 죄를 짓는 거 같아요.”
로스도 물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면서 살아남는 것은 이 미친 짓을 벌인 황제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모두는 그 말에 안색이 굳어졌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
스컬은 트링커와 싱클레어, 그리고 모여 있는 백인장 이상의 지휘관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두 번의 전투에서 스컬이 보여 준 압도적인 무위에 반해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였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대의 신뢰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그게 사람입니까? 별수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죠.”
지휘관들이 모두 같은 의견을 내놓자 스컬은 볼을 긁적였다. 해결사라고 설치고 다닐 때는 이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다. 죽일 놈 아니면 살려 줄 놈.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됐고 그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모두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수만 명이 넘는 인원이 걸린 일이다 보니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알았다. 내일 나도 사령부로 가서 지원을 요청하지. 오크들의 수가 너무 많으니 최소한 같은 수로 맞춰 달라고 말이야.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놈들은 같이 사는 거고 죽을 자리라고 뒤로 빼는 놈들은 죽게 놔둔다. 그럼 마음에 걸리는 거 없어지겠지?”
스컬의 말에 모두는 동의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오는 자들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아는 자들이었고 나머지는 자기 살기 바빠서 도망가는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마음이 편해지겠네요.”
“네, 그렇게 하죠.”
“저도 동감이에요.”
로스까지 동감을 표시하자 회의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제 오크들을 몰이하기 전에 스컬과 로스가 사령부로 가서 병력 충원을 요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성문을 열어라!”
며칠 만에 온 요새는 확 바뀌어 있었다. 첫째 부서져 흔적도 없던 성문이 있던 자리에 두꺼운 철판이 덧대어진 성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병력을 총동원하여 부서지고 깨진 요새의 벽을 보수했는지 깔끔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누구십니까?”
요새의 문 위쪽 망루에서 경계병이 물었다. 그러자 문을 열라고 외쳤던 트링커가 성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8군단 제10 천인대장이신 엘가드 S. 스컬 남작님이시다!”
로스도 같이 왔지만 트링커는 스컬의 이름만 말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인 로스도 연장자이자 실질적인 리더인 스컬의 이름만 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끼이익!
기름칠을 하지 않았는지 새롭게 만들어진 성문은 인상이 구겨질 정도로 찢어지는 소음을 내며 열렸다.
“들어가시지요.”
트링커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안내를 자처했다. 그의 뒤를 따라 스컬과 로스 등이 말을 몰아 나아갔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흐음. 닷새 만에 보는 거니 오랜만이라는 말은 좀 그렇군. 그래 무슨 일로 사령부로 온 것인가?”
지금까지는 전령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날마다 오크들의 부락을 찾아서 공략하라고 전령을 보낸 것이 제이슨 백작이었다.
“총 3곳의 오크 부락을 발견했습니다. 그 수가 남성체 오크만 4만에 달하는 것이라 증원을 요청하려 합니다.”
“증원이라… 4만의 오크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오크들이 부락 생활을 하지만 식량을 수급하기 어려워 대단위로 살아가지 못한다. 지금 이 숲에서 수만 마리 이상의 오크들이 부락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가 보면 바로 밝혀질 것을 거짓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딴은 그렇군. 4만이라면 어느 정도를 증원해 달라는 건지 말해 보겠나?”
솔직히 제이슨 백작은 증원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병력을 빨리 소모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이었다. 그래서 각개격파를 당하는 식으로 병력을 차례차례 없애고자 했다. 거기에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반란에 관한 것이었다. 병력이 한 사람에게 많이 집중되면 반란을 일으켜 살아서 마왕의 숲을 빠져나가려고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스컬과 같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병력을 몰아주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크들과 싸우려면 적어도 그들과 같은 수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컬이 3개 군단의 증원을 이야기하자 제이슨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각개격파를 하면 2개 군단으로 충분하다고 보네. 3곳을 모두 합하면 4만이지만 1곳은 1만이 갓 넘는 것이지 않은가 말이야.”
“백작님 대놓고 병력을 소진시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비록 실패로 끝날망정 최대한 노력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 지금 어디서 본작에게 그 따위 건방진 말을 지껄이는 것이냐!”
백작이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스컬은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그게 아니면 뭡니까? 훈련도 안 된 농노병 1명이 오크 1마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래서 똑같은 수를 데리고 가서 죽으라고 하시는 거구요? 백작님이 직접 농노병 1개 군단 이끌고 해 보시지요. 백작님이 오크 부락을 1개 군단으로 점령하시면 제 스스로 목을 잘라다 드리겠습니다. 빌어먹을!”
완전 대놓고 막가자는 식으로 말했다.
“왜요? 자신 없으십니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따를 이유는 없다고 제국군 규정에 나와 있습니다. 적국과의 전쟁 시가 아니라면 말이죠. 이건 마왕의 숲 원정이니 상관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은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명령이 제대로 된 거라는 걸 보여 주시죠. 백작님께서 직접 1개 군단으로 성공시켜 보십시오. 당장에 말입니다!”
일부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백작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렇게 한 이유에는 스컬의 귀에 각 지휘관들이 모여드는 것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 이자가 지금 하극상을 하는 것이냐?”
제이슨 백작이 당황하여 하극상을 논했지만 스컬이 콧방귀를 거하게 끼며 말했다.
“흥! 이게 하극상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말귀가 어두우신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명령으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 때는 거부할 수 있다는 제국군 규정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 먼저 내리신 명령이 올바른 거라는 걸 보여 주십시오. 그럼 제 목을 베어다 드린다니까요?”
“밖에 누구 없는가?”
제이슨 백작은 기사들을 찾았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들은 그의 기사들이 아니라 각 군단의 지휘관들이었다. 지금까지 정보를 통제하면서 각 군단장들끼리 흩어놓는 작전을 썼던 제이슨 백작이었다. 그런데 그 군단장들이 문 밖에서 스컬이 한 말을 다 듣고 들어온 것을 백작도 느꼈다.
“제국군 규정에 그런 규칙이 있는지는 몰랐군요. 밖에서 에드몬 남작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저에게는 상당히 옳다고 여겨집니다. 사령관님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보여 주십시오. 백작님!”
군단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이슨 백작이 1개 군단으로 오크 부족 하나를 지우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의 가세로 점점 수세에 몰린 백작은 이대로는 반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기세에 한 발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황제 폐하의 지엄하신 명령을 따라야 하는 본작이 사소한 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군단장들의 의견을 들으니 무리하게 명령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고 생각하네. 해서 에드몬 남작의 바람대로 2개 군단을 더 붙여 주겠네. 각개격파를 하는 것이니 그 정도면 충분할거라 믿겠네.”
인상을 사정없이 구긴 백작이 2개 군단을 더 붙여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말을 더 붙이는 것으로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에드몬 남작에게 지원하러 가는 군단까지 선봉군단으로 삼겠네. 그리 알고 각 군단장들은 지원하도록 하라.”
선봉군단은 제일 먼저 죽으라고 있는 군단이었다. 이번에도 제일 먼저 오크들과 싸웠어야 했던 로스의 군단이 요행수로 살아남아서 그렇지, 원래대로라면 벌써 선봉군단은 다른 군단으로 바뀌어 있어야 했다.
“누가 가겠나?”
이번에는 제이슨 백작이 군단장들을 압박했다. 군단장이라고 해 봐야 이제 나이 20살 언저리의 나이 어린 반쪽짜리 귀족들이었다. 그들이 무슨 배움이 있어 상황을 파악하고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제이슨 백작의 눈빛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눈을 피하며 사건의 발단이 된 스컬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저 꼬마가 7군단장 밀리안 공작가의 공자였고, 쟤가 로토스 후작가의 공자인 9군단장이었지?’
제일 먼저 들어와서 백작에게 지원사격을 해 주었던 두 명의 어린 공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군단장들과는 다르게 멍청해 보이지도 않았고 총명해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점이 고무적었다.
‘이왕 도운 거 확실하게 도우면 좀 좋을까만…….’
스컬은 자신을 따라가는 길을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자신의 피해를 조금 감수하고라도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살리는 것이 룰이었다.
“누가 갈 텐가? 막심 공자가 갈 텐가?”
제이슨 백작도 제일 먼저 스컬의 요구를 거들었던 밀리안 공작가의 막심 공자에게 공세적으로 물었다. 강하게 압박하는 눈빛까지 더해졌음에도 막심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입을 열었다.
“가지요. 병력도 많고 지휘관인 에드몬 남작님도 믿을만 하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작의 아들이지만 하녀가 낳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막심이었다. 그러던 그가 이곳에 온 것은 혹여 살아나간다면 남작의 작위와 함께 작은 영지를 주겠다는 공작의 말에 따라 온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믿는 순진한 청년은 아니었고 자신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어머니가 편안해지기를 바라고 온 것이었다. 물론 그 편안을 위해서는 자신은 죽어야 했고 이왕 죽을 거라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막심 군단장이 자원했으니 1개 군단만 더 가면 되겠군. 누가 갈 텐가?”
눈빛을 피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들의 딴청에 백작의 입가에 미소가 돌아왔다. 자신의 수중에서 잠깐 벗어나려고 했던 장난감들이 다시 자신의 수중으로 돌아온 것에 치아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손을 들고 자원한 사람은 제이슨 백작의 눈에 이채가 감돌게 만들었다. 각 군단장들처럼 부친이 노예를 건드려서 낳은 자식들이 아니라 정통 계승권을 가진 귀족이었다. 그것도 제국 아카데미를 수료한 정통파 기사 출신이기도 했다.
‘말리드 백작가의 차남이라고 했던가?’
말리드 백작가는 르브론 제국의 남쪽에 치우친 작은 영지였다. 백작의 차남이니 후계 계승권은 있어도 계승은 힘든 서열이었다. 거기다 말리드 백작가는 간신히 먹고 살 만한 영지로 백작이 사치스러운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에 그 흔한 사생아 하나 없는 영지이기도 했다. 그런 말리드 백작이 눈물을 머금고 보낸 사람이 바로 자원한 엘란드였다.
“엘란드 군단장이 가겠다고?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번복이란 없네. 다시 잘 생각해 보게.”
말리드 백작가는 못사는 영지였지만 그 가문은 대대로 검으로 유명했다. 고지식한 면만 없었다면 제국 10대 검가의 명망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 검의 명가인 말리드 백작과 척을 지기 싫어 다시 한 번 권유하듯 말했다. 그러나 고집스러워 보이는 엘란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검을 수련한 기사가 전투를 마다하면 안 됩니다. 저희 군단이 가겠습니다.”
“음… 알겠네. 그렇게 하게.”
말리드 백작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자기가 가겠다는데 구태여 말릴 필요는 없었다. 선선히 허락하며 다시 시선을 스컬에게 돌렸다.
“로스 군단장의 군단까지 합하여 3개 군단이 됐으니 열흘 안에 오크 부락을 토벌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열흘이라는 시간을 못 박으며 해내지 못할 시에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눈빛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살벌한 그의 언행에 스컬 역시 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열흘까지 필요 있겠습니까? 사흘이면 족합니다. 하루에 1개씩… 크크큭!”
무모하리만치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자신을 조롱하는 스컬에게 백작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실패하면 살아남아도 죽은 목숨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백작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 물러가게. 당장!”
“명령대로 합지요. 크큭!”
끝까지 비웃음을 보이며 스컬은 두 군단장에게 말했다.
“같이 가시지요. 일단 우리 군단이 있는 곳으로 함께 이동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군단장이라도 작위가 없는 공자 신분인 그들은 남작의 작위를 가진 스컬에게 존대를 하며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