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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



대검의 암살자 1권(1화)
1화 마지막 기회(1)


22세기 초가을 새벽, 텅 빈 거리를 질주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피가 범벅이 되어 있는 상의와 얼굴에 어렴풋이 보이는 칼자국, 그리고 왼손에 들려 있는 피 묻은 검. 그의 정체는 왠지 으스스할 것 같았다.
피가 묻은 옷과 검. 그의 모습은 살인마를 연상시켰다. 여의도 한복판을 달리는 그는 자신을 쫓아오는 경찰들을 뿌리치기 위하여 텅텅 빈 이 서울의 거리를 홀로 질주하는 듯 보였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경찰 수십 명이 화음처럼 호루라기를 불며 이 사내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연예인 부럽지 않은 그의 정체, 그는 바로 한국이 낳은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이 희대의 살인마는 전과 13범의, 경찰들에겐 정말 초특급 경계 대상 1호였다.
틈만 나면 살인을 일삼고 다니는 그가 죽인 사람의 숫자는 자그마치 30여 명. 정말 희대의 살인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엉뚱한 쪽으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질긴 짜바리 놈들. 포상금에 눈이 멀어 쫓아다니는 꼴이란.”
우탕탕!
골목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난 담장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밟고 가뿐하게 넘은 현상은 이내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그가 밟은 쓰레기통은 바닥으로 쓰러져 쓰레기를 내뿜었고 경찰들은 잠시 후,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젠장맞을.”
열심히 현상을 쫓아왔던 그 경찰이 욕을 내뱉으며 높디높은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장이 이번에는 반드시 류현상을 놓치지 말라고 단단히 엄포를 준 것이 3시간 전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놓치는 것이 아닌지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는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든 다음, 역시 현상을 쫓고 있는 다른 팀원에게 급히 무전을 날렸다.
“여기는 B조. 진돗개를 놓쳤다. 그곳으로 갔으니 포위해서 생포하자.”
[지이익! 알았다, 오버.]
무전을 마친 그들은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서 현상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벽을 넘어서 도망친 현상은 국회의사당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현상이 있는 곳은 아마 여의도 어딘가인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현상은 여의도에 있는 것일까. 도둑에게 섬이란 아주 치명적인 곳인데 말이다.
사실 현상은 몇 시간 전. 후드를 쓴 채로 여의도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 숲에 숨어야 제일 안전하다는 말처럼, 외곽 지대보단 차라리 여의도 같은 중심지에 있는 것이 백배 낫다고 생각한 그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거리를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한 한 남성이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다가 넘어지기도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만취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현상이 그 남성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가 갑자기 옆으로 넘어지며 현상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단 자신은 수배 중이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머리까지 올라오는 화를 꾹 누르면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부딪쳤던 그 남성이 잘 가고 있던 길을 돌아오더니 이내 현상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순간적으로 느낌이 온 현상은 만취 상태의 그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얌마! 너는 내 어깨를 치고 갔으면, 딸꾹! 사과를 해야 되는 거 아냐?”
“당신이 쳤지, 내가 쳤는가? 참고 가고 있는데 정말 눈치도 없는 사람이군.”
“뭐야? 말 다 했어? 딸꾹! 나로 할 것 같으면 대 태광전자의 이사란 말이다!”
“이사가 뭔지는 모르지만 이사나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이 여의도 거리에서 그런 행패를 부리며 다니니 서울의 위상이 내려가는 거다.”
현상의 말에 그 남성의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는지, 그를 향해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면 다야? 나이도 어려 보이는 것이 어디서 감히 어른에게 훈계를 해?”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행동해라. 그 꼬라지가 아주 영락없는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을 보는 것 같군.”
“유, 유치원생?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을 보았나. 네 녀석 애미 누구야? 애미 누구냐고?”
남성의 이 한마디에 현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빨을 꽉 깨물며, 현상은 조용히 그 남성을 바라보았다.
한편 주제 파악도 못한 그는 무언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대소를 터트리고는 이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행동을 보니 효자인 모양이군. 딸꾹! 이 XX야. 네 애미도 참 알 만하다. 너 같은 놈을 교육시킨다고 평생을 바쳤냐?”
“우리 어머니를 함부로 말하지 마라.”
“하하하, 꼴에 옹호하긴. 딸꾹! 그렇게 행동하면 애미가 다 욕을 들어 먹어. 알겠냐? 앞으로 그런 짓은 하지 마란 말이다. 그냥 어른이랑 충돌했으면, 딸꾹!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면 되는 거야.”
“…….”
현상이 그 남성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자 기세가 바짝 오른 그 남성이 계속해서 현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왜? 할 말이 없냐? 그러고 보니 원래 아들이 이 모양이면 애미도 XX라는데 혹시 네 애미가 창…… 크억!”
그 남성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의 심장 부근에는 시퍼런 단검이 꽂혀 있었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현상은 30번째 살인을 하고 만 것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이 엄청난 광경을 보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휘이이잉~
바람이 현상을 스쳐 지나가며 후드를 완전히 벗겨 놓았다. 경찰에 전화를 하려던 사람들은 현상의 모습을 보곤 곧바로 붕어눈을 하며 기겁을 했다.
그러나 상황 판단이 빠른 이시대의 시민들은 곧바로 휴대전화부터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거기 경찰이죠? 여기…… 여기 류현상이 나타났어요!”
“류현상, 그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이 여의도에서 또 살인을 했습니다!”
전화를 하는 시민들은 언론의 기자처럼 경찰서에 현상의 출현을 알렸고 곧바로 근처 경찰서에 있는 경찰 수백 명이 여의도를 향하여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에 맞은 그 남성은 경악의 눈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현상을 바라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현상은 이내 실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네놈이 내가 죽인 30번째 사람이다.”
“류……현상!”
“감히 내 어머니를 욕하다니.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건만 네놈의 주둥아리를 한탄하며 구천을 떠돌아라.”
푸욱!
그 남성의 심장 부근에 박혔던 단검이 더욱더 깊숙이 들어갔다. 무언가 변명을 하려던 그 남성은 현상이 단검에 힘을 주자 신음 소리만을 흘리더니 이내 스르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것이 바로 그 사내의 최후였다.
“흐흐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며 희열에 잠긴 현상은 곧바로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남성의 심장 부근에 박아 놓았던 단검을 뽑았다.
푸샥!
그 남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현상의 상의를 적셔 들었다. 엄청난 양의 피가 묻은 자신의 옷을 발견한 현상은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그 남성의 시신을 발로 걷어찼다.
찌른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지만 현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자마자 이내 반대편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일단 현상은 여의도를 빠져나가야 될 필요성을 느꼈다. 계속 이곳에 있다간 경찰들이 물량 공세를 펼치며 자신을 압박해 올 것이고 결국엔 탈옥한 이 상황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죄수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일단 여의도를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두 곳이었다. 강남과 강북. 특히 여의도는 강남 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강남으로 가는 것이 용이했다. 아주 작은 강만 건너면 되니깐.
하지만 강북으로 가려면 드넓은 한강을 건너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다.
게다가 그곳에서 포위를 당해 버리면 100% 잡힌 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현상은 상대적으로 도망칠 구석이 많은 강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KBS 본사를 지나 남쪽으로 달려가던 현상은 이내 한 시민이 오토바이에서 내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곧바로 그에게 다가간 현상은 근처에 돌아다니고 있던 각목을 집어 든 다음 그 시민의 머리를 향하여 각목을 휘둘렀다.
딱!
둔탁한 음성이 들려오며 그 시민의 신형이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재빨리 몸을 숙여 생존 여부를 확인한 현상은 아직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이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화끈한 소리가 들려오며 단번에 오토바이 시동이 걸렸다. 뒤에 있던 모자는 쓰지도 않은 채로 현상은 오토바이로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오토바이 소리는 삽시간에 경찰들의 귀에 들어갔고, 경찰들은 현상이 향하는 방향이 강남 쪽임을 간파하고는 이내 강남 쪽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 병력을 다리 쪽으로 이동시켰다.
삽시간에 수십 명의 경찰이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통하는 다리 두 개를 막아섰다.
마침 모퉁이를 돌아 직선 주로를 달리고 있던 현상은 길 너머에 무장한 채로 서 있는 경찰 수십 명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대로 저들의 대응이 신속했다. 이대로 간다면 현상은 잡히고 말 것이다.
“짜바리 놈들아. 내가 이기나 너희들이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부아아앙!
점점 더 오토바이의 속력을 높여 가기 시작한 현상은 속도를 표시해 주는 계기판이 시속 120을 가리키는 걸 보고는 이대로 돌진할 생각을 굳혔다. 120 정도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광란의 질주를 하며 현상이 다리에 들어섰다. 그러자 전기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경찰 수십 명이 현상을 향하여 전기 권총을 겨누었다.
“권총 발사 준비! 발사!”
상관의 명령에 따라 경찰들은 현상을 검거하기 위해 전기 권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잉!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감으로 느낀 현상은 별수 없이 오토바이의 속력을 줄인 다음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궤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여서 최대한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처럼 난사되는 전기 권총을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하나둘씩 박혀 들기 시작한 전자탄은 이내 현상의 몸을 압박해 갔다.
“크으윽…… 이놈의 전기 권총.”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 오고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지만 현상은 꾹 참고 계속해서 질주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었기에 앞으로 있을 자유를 생각하며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그였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어 계기판의 바늘이 시속 80킬로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리저리 피하던 현상도 피하는 폭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계에 봉착했음을 온몸이 알려 주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크윽.’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텨 보는 현상. 그러나 비처럼 난사되는 전기 권총에는 당해 낼 수 없었다.
결국 속도가 점점 더 떨어지더니 결국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마비가 되어 버린 현상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쓰려졌다.
위이이잉!
주인을 잃은 오토바이는 그 후 몇 미터를 더 굴러가더니 이내 제 주인처럼 바닥에 고꾸라졌다.
곧바로 경찰들이 현상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현상은 호주머니에 있는 수류탄을 꺼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전기 권총에 엄청나게 맞아 버린 지금,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