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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2화)
1화 마지막 기회(2)
결국 현상은 14번째로 경찰들의 손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제 전과 13범이 아닌 14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현상에게 도착한 수십 명의 경찰들 중 한 명이 현상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전과 13범 류현상 씨. 당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철컥!
마침내 수갑이 현상의 양손을 제압하자, 경찰이 이마에서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드디어 잡았군.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
“후후, 썩어 빠진 이 나라의 개들이 사람 하나 잡았다고 좋아하다니. 역시 개들이란…… 쯧쯔.”
“나는 왜 당신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당신이 엄청나게 멍청해 보일 뿐입니다.”
“멍청하다? 그놈들은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지만 그들은 특히 더 그런 기색이 강하더군. 아까 죽인 그놈도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어 죽인 것이다.”
“당신의 말을 들어 보니 당신은 부모님이 없겠군요.”
경찰관의 말에 현상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현상을 바라본 그 경찰관은 말을 이어 나갔다.
“대게 이렇게 살인마가 되는 이유, 뭐 간단합니다. 국가가 자신에게서 강제로 무언가를 갈취했다든가, 다른 사람이 부모님을 내가 보는 앞에서 죽였다든가. 하지만 당신은 후자인 것 같군요.”
“후자라…… 후후, 하긴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내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셨지.”
“역시 그러셨군요. 그런데 이 지긋지긋한 살인은 그만두시는 게 어떠신지요? 10여 번 들으셨을 테지만 살인을 해 봐야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하지. 그럼 이제 그만 경찰서로 날 끌고 가지 않을 건가?”
“당신은 경찰서로 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탈옥하여 잡혀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경찰관의 말에 현상이 이채로운 눈빛을 띠며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그에게 입을 열었다.
“도둑을 잡았으면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지 그럼 어디로 가는가?”
“대법원입니다.”
“뭐? 대법원? 거기는 왜 가는가?”
“모르셨습니까? 앞으로 당신은 잡히면 경찰서에 가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으로 갈 겁니다. 최근 제정된 ‘류현상 특별법‘에 의거, 전과가 10범 이상인 사람들은 경찰서로 인도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으로 이송되어 재판을 할 겁니다. 그럼 이만 차에 타시길.”
삐뽀삐뽀.
경찰차 다섯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리 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차들은 현상이 있는 곳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 고급스러운 차에는 단정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차는 빼고 말이다. 아마도 그 차가 바로 현상이 탈 차인 것 같았다.
현상의 몸을 일으킨 경찰관은 곧바로 그 비어 있는 차 안으로 현상을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자신도 그 차에 타고 문을 닫자, 다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던 차들이 대법원을 향하여 출발하기 시작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희대의 살인마 류현상 씨가 경찰에 검거…….”
“여의도에서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 류현상 씨가 탈옥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검거되었습니다.”
현상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은 빠른 속도로 전파를 타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무언가를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은 현상의 검거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며 엄청난 일을 해낸 경찰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국내의 모든 방송 매체가 현상의 검거 소식을 특급 뉴스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모든 신문사 조간신문 1면에 현상의 검거 소식이 실릴 것도 확실시되었다.
한편, 그 모든 일의 주인공인 현상은 엄중한 경호 속에서 대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의도를 빠져나온 차량이 서울 올림픽대로를 달리자 곧바로 10여 대의 차량이 현상이 타고 있는 차 주변을 엄중 경호하며 뒤따랐다.
대통령의 경호를 보는 듯한 이 행렬은 대법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현재 대법원 입구에서는 먼저 도착한 언론 기자들이 현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먼저 도착한 대법원장과 검사, 그리고 현상 측 변호사가 이미 대법원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이제 현상만 오면 되는 것이었다.
“류, 류현상이 옵니다!”
“카메라! 저기 오는 차 집중 촬영해. 이 특급 기사를 놓치면 안 돼!”
현상이 탄 차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법원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상이 탄 차를 둘러싼 채로 함께 들어오는 10여 대의 차량은 사람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덜컥!
마침내 차의 문이 열리며 현상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기 시작했다. 전과 13범, 아니 이제 전과 14범이 될 사람의 행동치고는 너무나도 당당해 보였다.
마치 개선장군과도 같은 이 도도함이란,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그를 따라서 내린 경찰들이 이중 삼중으로 현상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그대로 현상을 대법원 안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대법원 정문 앞 수미터에 당도하자 곧바로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류현상 씨. 왜 살인을 하시는 겁니까?”
“잠깐 비켜 보세요. 지금 재판을 해야 합니다. 질문은 나중에 하시고, 자자, 비키세요!”
맨 앞에 나선 경찰들이 기자들이 운집한 대법원 정문 앞을 뚫으며 현상을 안내했다. 마치 선진국의 대통령이 대법원을 방문하는 것 같았다.
대법원 앞을 가득 메운 수십 명의 취재진들이 현상만을 취재하고 있다, 정말로 인생에서 한 번 겪어 볼까 말까 한 일인 것이다.
한편 경찰들의 안내 속에 기자들의 숲을 뚫고 겨우 건물 안으로 입장한 현상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눈 감고도 피고인 자리를 알아낼 정도로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곧바로 현상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나머지 판사들이 대법원장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현상의 변호인과 검사가 착석하고 배심원들까지 자리에 모두 앉자 재판이 시작되었다.
탕탕.
“그럼 지금부터 ‘류현상 특별법’에 의거, 전과 13범의 살인마 류현상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 피고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대법원장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검사가 현상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대법원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저녁 8시경, 피고 류현상은 지나가던 행인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러다가 행인의 말 한마디에 피고는 수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또다시 검을 휘둘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피고…….”
“이봐, 검사. 검이 아니고 단검이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재판장에서 무슨 사극 대사를 읊는 건가?”
“피고, 여기는 재판장입니다. 그러한 말은 절대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실 말이 있으면 검사의 말이 끝난 다음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 말씀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피고 류현상을 살해 혐의로 대법원장님께 고소합니다.”
“변호인.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현상의 대변인이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검사께서 설명하신 대로 피고 류현상은 여의도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좌시할 수는 없습니다. 류현상의 살인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변호인은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일종의 테스트를 해 보는 겁니다.”
“테스트요?”
결의에 찬 현상의 변호인은 숨을 가다듬은 다음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다이나믹사에서 개발한 가상 현실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가상의 세계, 그렇기 때문에 피고가 본의 아니게 사람을 살해해도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저는 피고의 정신 치료에 이 가상 현실 게임을 활용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변호인, 재판장에서 그런 말씀은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검사께서는 피고의 살인 행각을 근본적으로 막으실 대책을 가지고 있으십니까?”
“그, 그건…….”
대답할 말이 없자 검사는 자연스레 말꼬리를 흐렸다. 변호인의 미소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현상이 희대의 살인마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임이 이처럼 변호를 잘해 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살인자라도 해도 잘만 다독이면 일반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21세기의 상황과는 다르게 22세기의 민주주의는 자율성을 중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의 사람들은 살인자를 나쁜 사람으로만 보았지만 22세기의 사람들은 살인자를 두고 ‘나쁜 사람’이라 비난하기보다는,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물론 살인자가 잡히는 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었지만 22세기의 사람들은 단순히 ‘나쁜 사람을 잡아서 좋다‘라고 생각하는 21세기의 사람들과는 달리 ‘저 사람이 드디어 구제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시민 의식이 성숙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살인자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바꾸기란, 그것도 국가적으로 고정 관념을 바꾸기에는 정말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그 노력의 결과, 변호인은 현상을 변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몰라주는 현상이기에 그 빛이 바래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한편, 검사의 입을 틀어막은 변호인은 대법원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이 희대의 살인마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자가 말하길 ‘무혈입성(無血入城)이 상책(上策)’이라 하였습니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부디 선처를 베풀어 주셔서 이 살인마의 생각을 바꾸어 보지 않겠습니까?”
“누가 누구 마음대로 생각을 바꾸는가? 이봐, 변호인. 해야 될 말이 있고 안 해야 될 말이…….”
“지금은 이렇게 말을 하겠지만 나중에는 혹시, 혹시 변할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무혈입성을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현상의 변호인이 열변을 토했다. 다시 말해 가상 현실을 통하여 현상의 살기를 지우고, 그를 한번 개과천선시켜 보자고 건의하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변호인의 의견을 신중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절차로 옆에 있는 다른 판사들과 종합적인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현상 측 변호인은 긴장된 자세로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또한 검사도 의견을 나누는 판사들과 대법원장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직, 이 재판의 당사자인 현상만이 긴장감 제로의 상태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곧바로 판사들 사이에 비밀스러운 몇 마디가 오고 갔다. 무언가 열변을 토하는 판사도 있었고 안심하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판사도 있었다. 아마 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 듯 보였다.
그 결과 그들의 대화는 30여 분간 지속되었다. 결국 한 판사가 대법원장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대법원장은 미소를 띠며 곧바로 다른 판사들과 함께 전방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30여 분간 대중들에게 닫혔던 대법원장의 입이 열렸다.
“그럼 판결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피고인 측 변호인의 의견을 대폭 수용하여, 피고 류현상에게 10년 동안 가상 현실을 이용한 정신 치료를 선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장소는 최근에 완공한 ‘류현상 특별 감옥’으로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심리적 플러스를 위하여 감옥 내에서만큼은 자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탕탕탕.
열변을 토한 변호인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판결이 흘러나왔다. 10년간 가상 현실을 통해 정신 치료를 받도록 명한 것이다.
아무리 온 국민에게 위험의 대상이었던 현상이라 할지라도 일단 기회를 한 번 줘 보자는 의견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대법원장의 선고에 대하여 현상 측 변호인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대법원장이 있는 곳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재판이 끝나자 곧바로 모든 사람들이 대법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열변을 토한 변호사, 현상을 고발한 검사 등 재판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판결 결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과연 저 지독한 살인마가 개과천선을 할 것인지가 문제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