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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3화)
1화 마지막 기회(3)
서류를 정리한 변호사는 곧바로 대법원 정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현상이 변호사의 어깨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봐, 변호사. 잠깐 말 좀 하지.”
“희대의 살인마께서 저와 말을 하자고 하시니,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왜 판사에게 그 가상 현실 게임을 통한 치료를 건의했지?”
“모든 변호사들이 피고를 변호할 땐 다 한결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피고가 개과천선을 할 수 있을지 말이죠. 저도 여느 때와 똑같이 생각했고, 그래서 이러한 결과를 도출한 겁니다. 물론 개과천선을 할지 안 할지는 순전히 당신의 몫이지만요. 하지만 꽤 재미있을 겁니다. 듣기로는 그 게임이 상용화가 된 지 1달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하하, 재미있는 변호사로군. 아무튼, 약간 기대가 되는군.”
크게 웃음을 지으며 현상이 변호사에게 말했다. 역시 웃음으로 받아친 변호사는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이내 현상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바로 명함이었다.
“왜 나에게 명함을 주는 거지?”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당신은 분명 좋은 사람일 겁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살인만 저지르는 내가 말이다.”
“후후, 그것도 숙제로 남겨 드리지요. 자신의 성격을 돌아보시고 10년 동안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남기고 변호사가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다시 걸음을 멈춘 다음 뒤를 돌아보며 현상에게 입을 열었다.
“참고로 그곳에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살인을 마음껏 해도 사람이 죽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그 살인이라는 것을 마음껏 해도 상관없지요. 그러나 미리 말해 두는데, 그곳에서 살인을 하게 된다면, 일반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패널티가 적용될 겁니다. 그럼 개과천선하여 돌아오시길.”
다시 실소를 지어 보인 그 변호사는 그제야 완전히 대법원을 빠져나갔다. 그가 현상에게 준 명함에는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써져 있었다.
확인해 보자는 차원에서 그 이름을 읽어 내려간 현상은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황은성이라, 변호사치곤 이름이 좋군.”
황은성이라 적혀진 그의 명함을 도로 집어넣은 현상은 다가오는 경찰들에게 몸을 맡긴 채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류현상 특별 감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상은 몰랐다. 자신에게 명함을 건네준 황은성이라는 변호사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2화 시작! 시그널 온라인(1)
끼이이익!
어딘가에서 한참을 달려온 것 같은 차량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 차량의 옆에는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가 떡하니 서 있었다.
2층 규모의 저택으로 약간 고전적인 스케일이 느껴졌다. 앞에 있는 정원에는 잘 정돈된 잔디와 초소같이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원 너머에는 이곳의 입구와 벽이 사방을 두르고 있었다.
덜컥.
차에서 누군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내, 그는 바로 현상이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 경찰관이 현상의 수갑을 잡은 다음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잘 정돈된 잔디밭을 거친 다음 어느덧 저택의 앞에 이른 현상은 옆에 있던 경찰관의 말을 경청했다.
“여기가 바로 일명 류현상 특별 감옥이라 불리는 당신의 감옥입니다. 일차적으로 당신은 판결에 따라 이곳에서 10년간 가상 현실을 이용한 정신과 치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걸 한다고 나아질 것 같은가?”
“글쎄요. 그건 본인만이 알고 있겠죠. 참고로 저는 앞으로 당신의 간수를 맡게 된 최지성이라고 합니다.”
손을 내민 간수 최지성은 현상을 스윽 바라보았다. 현상도 그 시선을 받아 주더니 이내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드리며 감옥 안으로 들어가면 5초 후 자동적으로 수갑은 해제되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밥은 저기 보이는 배식구를 통하여 넣어 드릴 것입니다. 가상 현실을 즐길 시에는 넣어 드리지 않을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대가 그런 걸 어떻게 알지?”
“22세기의 과학을 무시하시는군요. 당신이 있을 이곳은 겉보기에는 멋 좋은 저택같이 보이지만 안에는 수많은 첨단 장치가 있습니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지요. 그러니 탈옥하실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당신이 빠져나가는 순간 강남과 강북에 있는 경찰들이 여의도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수백의 경찰 분들이 당신을 찾으러 여의도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시스템이 되어 있으니.”
“하하하, 나를 위한다고 하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군.”
“그러나 안에는 가상 현실 기기 말고도 러닝 머신 같은 헬스 기구, TV, 소파 등 어지간한 집은 부럽지 않을 정도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전에 있었던 10평 남짓의 21세기형 저택과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 밖에 말할 건 없나?”
“게임에 접속하실 때의 절차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신 다음 침실에 있는 캡슐로 들어가셔서 해드셋 같은 것을 착용하시면 자동으로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럼 부디 개과천선하여 돌아오시길.”
곧바로 문을 연 지성은 저택 같은 감옥 안으로 현상을 집어넣은 다음 문을 잠갔다. 여러 가지의 보안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감옥의 정문은 이제 앞으로 10년간 특별한 이유를 제외하곤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홀로 남겨진 현상은 멍한 눈으로 감옥을 바라보았다. 문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TV와 소파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욕실과 트레이닝실, 그리고 트레이닝실 입구에는 러닝 머신이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이곳에서 운동이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현상은 1층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곳들을 한 번씩 돌아본 다음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개의 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간 현상은 곧바로 더블 사이즈의 침대와 캡슐, 그리고 자그마한 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은 없이 그냥 단순하게 구성된 2층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시하는 현상이었다.
“분명히 1층과 2층의 규모는 같은데 왜 2층은 이렇게 작은 건지 모르겠군.”
1층의 크기에 비하여 2층의 크기가 너무나도 작은 것에 대해 수상함을 느낀 현상은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나 나중에 감옥의 구조가 왜 이런지 뼈저리게 느낄 현상이었다.
이렇게 2층 구경을 마친 현상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캡슐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곧바로 침대로 간 다음 침대에 몸을 맡겼다.
푹신한 느낌이 아주 좋은 침대 위에서 현상은 멍하게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피곤함은 현상의 눈을 감게 만들었고 이내 현상을 잠의 세계로 인도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역시…… 저 희대의 살인마의 사고방식이 궁금하군.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잠이라니. 이거 간수 생활 처음부터 괴물을 만났군.”
현상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있는 지성이 감옥 밖에 마련된 초소에서 잠든 상태의 현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감옥에 들어왔으면 두려워해도 모자랄 판국에 느긋한 잠이라니. 지성은 현상의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전과 13범이란 타이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현상이 마치 감옥을 집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보지만 대략 20대 후반의 외모를 하고 있는 지성은 군대를 마치고 곧바로 경찰로 들어온 새내기인 것 같았다.
말년의 고생이 아닌 시작부터 현상이라는 거물의 간수로 부임한 그의 기분은 기쁘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수십 개의 모니터는 24시간 감시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성은 감옥 내에서의 현상의 행동을 거의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옥 안에 설치한 CCTV는 현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까지 완벽하게 설치했기 때문에 현상이 이 CCTV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지성이었다.
앞으로 고생하게 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지성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전기 권총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나절 후.
“으으음.”
잠이 든 후 저녁이 다 되어서야 현상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동안 떠돌이 생활을 해 오면서 쌓인 피로를 한 방에 푼 듯 보였다.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난 현상의 오른쪽에는 캡슐이 보였다. 이것을 통해 개과천선을 하라고 강조하는 경찰들이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현상이 게임을 시작한 후, 그 엄청난 현실감에 감탄할 자신의 모습을 아직 몰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녁이 다 되자 배가 고파진 현상은 몸을 좌우로 돌리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간 현상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TV는 보고 싶지 않았고 졸린 상태라 러닝 머신도 뛰기 싫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현재 현상에게 좋은 방법인 듯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현상의 저녁밥이 배식구를 통해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맛있는 비빔밥이었다. 이곳 감옥 생활 후 첫 음식이 비빔밥이라는 것이 약간 의외이긴 했지만 밥이 들어왔으니 현상은 일단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배식구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발에 담긴 비빔밥을 들고 다시 소파에 앉은 현상은 소파 바로 앞에 있는 큰 탁자에 그릇을 두고 이내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 밥이라면 거의 남기지 않고 먹는 현상이었다. 배가 너무 부르거나 아픈 때를 제외하고는 먹었으면 다 먹었지, 자신이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아예 먹지를 않는 것이 현상의 성격이다.
숟가락을 집어 든 현상은 천천히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숟가락을 떠먹은 현상은 현실에서 자신의 유일무이한 오락거리가 될 예정인 TV의 전원을 켰다.
스팟!
마침 TV에서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볼 필요도 없이 바로 현상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 소식이었다.
왜 기자들에게 현상의 수감 시간을 사전에 말해 주지 않았는지, 대법원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혹시 살인마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게 아니냐는 억측까지 내놓으며 대법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문장을 읽어 내려간 그 기자는 ‘혹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라는 말을 끝으로 맺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깜박거리던 화면은 이내 뉴스의 앵커를 비추었다.
그리고 다음 소식으로 나온 보수 단체들의 성명에서는 사형을 내려도 모자랄 판국에 이건 또 무슨 일이냐며 대법원을 상대로 강력하게 항의하는 뜻을 전달했다.
전과 13범의 엄청나게 위험한 인물을 또 한 번 놓아주었다며 대한민국 안전 보장 이사회는 ‘대법원장은 열세 번의 실수를 하고도 거기에서 하나의 숫자를 더해 버렸다.’며 ‘언제까지 지속될지 두고 볼 것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성명을 마쳤다.
다음 순서로 일반 시민 단체에서는 ‘살인마 류현상에 대해 대법원장이 좋은 판결을 내렸다.’라며, ‘오늘 저녁에 있을 기자 회견을 기대한다.’라는 말로 조금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