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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4화)
2화 시작! 시그널 온라인(2)
밥을 먹으면서 TV를 지켜보는 현상은 여러 가지 잡다한 뉴스들은 제대로 듣지도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 현상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새벽에 열린 살인마 류현상 씨의 재판 내용에 대한 대법원장의 기자 회견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거의 다 먹어 가던 현상은 아까와 같은 앵커의 발언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TV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숨에 화면이 변하며 기자 회견장으로 보이는 장소가 TV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했다.
대법원장이 앉을 것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10여 개의 마이크가 우후죽순처럼 붙어 있었고 탁자 앞에는 수십 명의 기자와 카메라맨이 대법원장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5분 동안 기자 회견장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 그리고 잠시 후, 한 목소리가 카메라를 통하여 흘러나왔다.
“대법원장께서 입장하십니다.”
양복을 입은 한 사내의 말이 끝나고 일전에 현상을 재판했던 대법원장이 기자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곧바로 카메라맨들의 시선이 대법원장에게 옮겨지더니, 그들은 셔터를 끊임없이 눌렀다. 플래시가 터져 나가며 대법원장의 행동 하나하나가 시시각각 찍히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을 받아들이며 자리에 착석한 대법원장은 의자를 당겨서 앉은 다음,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대법원장입니다.”
짝짝짝짝.
대법원장의 말에 기자 회견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커다란 3개의 권력 중 하나인 대법원장에게 행하는 자연스러운 경의의 표시었다.
그러나 이내 박수 소리는 멎었고, 대법원장의 입장을 알렸던 양복의 사내가 기자들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기자 분들께선 대법원장께 하실 질문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분당 한 개의 질문만을 받습니다.”
사내의 말소리가 끝나자마자 오른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기자가 손을 든 다음 대법원장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에 행하신 류현상에 대한 재판에서 대법원장께서는 저번과는 달리 10년간의 정신과 치료라는, 어찌 보면 약간 이상한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여태껏 그에 대한 재판에서 징역을 선고하셨는데 왜 이번에는 그렇게 판결을 내리셨습니까?”
“제가 열세 번, 아니 오늘 있었던 재판을 포함하면 류현상 씨에 대한 총 열네 번의 재판을 했는데요. 지난 열세 번의 재판에서 징역을 내린 것은 자연적인 절차입니다. 원래부터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징역이나 집행 유예를 선고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에게 다른 범죄자들과 똑같이 대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는 거지요.”
대법원장의 말이 끝나자 뒤편에 있는 기자가 대법원장에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한 판결을 내리셨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류현상에 관한 열세 번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저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의 사고방식을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가상 현실을 통한 정신 치료를 받도록 선고하신 겁니까?”
“네. 여태껏 그에 대한 판결은 대부분이 무기 징역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번 재판에서 일종의 마지막 기회를 준 겁니다.”
대법원장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맨 앞에 있던 기자가 손을 들며 대법원장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만약 대법원장께서 주신 기회를 내치고 다시 탈옥을 한 다음 살인을 하여 대법원장께서 또 재판을 해야 될 상황에 처했을 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말이 결정타인 듯 보였다. 거침없이 답을 해 오던 대법원장의 입이 이 질문에서 멈추었다. 정말로 날카로운 질문에 대법원장이 즉각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이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일이 엄청나게 커질 수도 있었기에, 대법원장은 신중하게 대답을 해야 했다.
수십 초간의 침묵이 지나간 다음,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대법원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이번 판결에서 준 제한적인 자유마저도 완전히 묵살해 버린 그러한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일반적인 죄수들에게도 자유라는 것이 있지만, 그런 식으로 류현상 씨를 다시 만나면,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현재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자유마저 사라지게 할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대법원장의 말에, 그 기자는 속이 시원하게 뚫린 것 같은 표정으로 대법원장의 발언을 노트북에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간파한 양복의 사내는 기자들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이제 대법원장께 하실 질문은 없으십니까?”
“…….”
나올 거 다 나온 상황에서 기자들이 더 이상 할 질문은 없었다. 사내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기사를 쓰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그들이었다.
10여 초가 지나도 손을 드는 기자가 없자 양복의 사내는 기침을 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이 없으시다면 이상으로 모든 기자 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기사 작성을 완료하신 기자 분들께서는 곧바로 퇴장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멘트를 끝으로 기자 회견실을 비추던 카메라의 화면이 다시 바뀌며 앵커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현상은 TV를 껐다.
지금 현상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자유를 억압한다니. 감히 그 누가 남의 자유를 억압한단 말인가. 철저하게 자유를 느끼며 살아가는 현상은 대법원장의 발언 때문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미간을 심각하게 찌푸리며 꺼진 TV 화면을 바라보던 현상은 마치 앞에 대법원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법원장, 감히 네가 나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두고 봐라. 10년간 이 생활을 마친 다음 반드시 네놈을 죽여 주지. 내 인생이 파탄난다고 할지라도 나의 자유를 제한시키겠다는 너의 말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극도의 흥분 상태가 점점 더 커져 참을 수 없게 된 현상은 곧바로 캡슐이 있는 2층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면 10년이라는 기간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엄청난 속도로 2층으로 올라가는 현상이었다.
곧바로 2층에 도착한 현상은 침대 옆에 있는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캡슐 안으로 들어간 현상은 헤드셋을 착용했다. 그리고 자리에 착석을 하자, 잠시 후 무언가 자신을 잡아채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곧 기계음이 들려왔다.
[홍채 스캔 결과 처음 보는 유저입니다. 아이디를 생성하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기계음에 현상은 약간 당황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이게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게 다 접속을 하기 위한 절차라는 것을 간파한 현상은 기계음이 말한 아이디라는 것에 대하여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이디란 건 무엇인가?”
[아이디라는 건 비밀번호와 함께 접속 시 필요한 암호 같은 것입니다. 참고로 아이디를 만들지 않으면 플레이를 하실 수 없습니다. 아이디를 정하실 땐 중복되지 않는 한, 유저께서 원하시는 어떠한 단어로 만드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생성할 아이디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디에 대한 설명과 추가로 비밀번호에 대한 설명도 간략하게 전해 들은 현상은 이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영어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Legend Killer.”
[Legend Killer, 생성 가능한 아이디입니다. 생성하시겠습니까?]
“생성하겠다.”
[그다음 비밀번호를 입력하시기 바랍니다.]
“********.”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비밀번호를 말한 현상은 다시 기계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다음 캐릭터 설정입니다. 게임 플레이 시 사용할 캐릭터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 번 정한 이름은 다시 바꿀 수 없으니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현상은 문득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돌아가신 현상의 어머니의 직업은 바로 만화가였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꽤 알아주는 만화가였다.
현재 현상의 기억 속에서, 그의 엄마는 인물의 이름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12살의 현상은 그런 엄마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엄마, 나 배고파.”
“현상이 배고파? 잠시만 있어 봐. 엄마가 10분 뒤에 밥해 줄게.”
“응! 알았어.”
이때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현상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밥을 기대하면서 나가려던 현상은 뒤에 있는 엄마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레시온이 좋겠네. 그리고 배경은…….”
엄마와의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 이름, 그 이름은 바로 레시온이었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억양에 따라 지은 이름 같았지만 현상은 자신의 닉네임을 레시온이라 하기로 다짐하고 입을 열었다.
“레시온으로 하겠다.”
[레시온. 사용 가능한 닉네임입니다. 닉네임을 레시온이라고 하시겠습니까?]
“하겠다.”
[몸 설정입니다. 현재 이곳에 접속하신 유저 분께서는 시스템에 의거하여 자동적으로 다른 모습으로 플레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피부의 상태라든가 몸의 뚱뚱한 정도는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의문이 든 현상이었지만, 자신의 원만한 플레이를 위하여 설정된 거라고 생각한 현상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경 쓰이던 한 가지에 관하여 입을 열었다.
“얼굴에 있는 흉터는 없애 주었으면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다음 대륙 설정입니다. 동대륙의 베르시스 왕국과 서대륙의 젠카라 왕국 중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선택은 후에 업데이트되는 대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니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이 대목에서는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던 레시온은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입을 열었다.
“베르시스 왕국으로 하겠다.”
[그럼 마지막 체크에 들어가겠습니다. 닉네임은 레시온, 몸 설정은 얼굴 흉터를 사라지게 하고 자동 설정된 모습. 플레이할 장소는 동대륙의 베르시스 왕국입니다. 맞습니까?]
“맞으니 이동을 시켜라.”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륙의 운명 속에서 싸우는 화려한 대서사시, 시그널 온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팟!
기계음이 끝나고 섬광 같은 것이 번뜩이더니 이내 무언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섬광이 발생하며 드러난 무언가는 현실과 똑같은 청명한 하늘과 그리고 중세 시대 유럽을 연상시키는 건물들이었다.
이곳은 바로, 현재 동대륙 베르시스 왕국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가게 되는 곳인 멜타 마을이었다. 나중에 추가로 패치가 되면 그러한 멘트가 사라지겠지만 현재 동대륙을 선택한 사람들은 전부 다 멜타 마을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중규모의 도시인 멜타 마을은 동대륙 중서부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왕국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베르시스 왕국에서는 꽤 큰 마을로 꼽히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NPC들과 유저들이 오고 가고 있었고 벽돌로 만들어진 대로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약간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레시온은 주변에 있는 상점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았다.
자신의 모습은 현실에서의 모습과 크게 달랐다. 이목구비가 완전히 달라진 현상의 모습은 조각 미남의 그것처럼 엄청나게 멋져 보였다.
날카로운 턱 선에 확연하게 구분이 가능한 이목구비. 누가 봐도 호감을 가질 만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감정이 거의 없는 현상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거울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레시온이 첫발을 내디디려고 할 때, 요정 같은 NPC가 모습을 나타내며 레시온의 앞에 섰다. 조그마한 페어리 같아 보이는 그 NPC는 레시온에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유저님. 튜토리얼 진행을 맡은 NPC 리엘입니다.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자신을 리엘이라 소개하며 레시온의 앞에 나타난 NPC는 친절한 미소로 레시온을 바라보았다. 전혀 뜻밖의 일이라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 레시온은 일단 무언가 들어야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그 결과, 긍정을 표시하는 레시온이었다.
“음…… 설명해라.”
―일단 여러 가지 상태 창을 보시고자 할 때는 해당되는 창의 이름을 외치시면 됩니다. 그리고 시그널 온라인에서 사용이 될 창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상태 창과 아이템 창, 그리고 스킬 창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리고 전직은 레벨 10이 되면 마을 내 전직소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기본적으로 사용하실 무기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할 무기에 레시온은 생각할 것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범죄 생활과 함께했던 단검. 그것이 바로 레시온이 원하는 유일무이한 무기였다.
“단검을 달라.”
―단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단검을 선택하시면 표창 2천 개도 추가로 드리니 인벤토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궁금한 사안이 있으시면 튜토리얼창을 여셔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냥은 전직을 하기 전까지는 마을 안에 있는 사냥터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튜토리얼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튜토리얼은 간단했다. 기본적인 인터페이스만을 가르쳐 주는 이 NPC는 왠지 철저하게 독신적인 유저들을 위하는 것 같았다.
레시온은 몰랐지만 각 유저들의 성격에 따라 배치되는 이 튜토리얼 NPC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레시온의 성격 탓에 이러한 NPC가 걸린 모양이다.
한편 레시온은 자신의 손에 쥐여진 단검을 바라보고는 희열에 차 있었다. 다시 보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던 단검이 자신의 손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엄청난 만족을 느낀 레시온은 단검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단검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NPC가 말한 창 이름 중 스킬 창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낸 레시온은 스킬 창에 있는 기본 스킬 창에, 감정 스킬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스킬을 단검에게 사용했다.
“감정.”
[초보자용 단검 ― 일반]
·설명 : 단순히 초보자를 위한 단검이다.
·옵션 : 없음
·공격력 : 5∼10
·착용 가능 직업 : 공통
·레벨 제한 : 없음
·내구도 : 30/30
단순한 단검이었다. 공격력도 일반적이고 내구도도 일반적인 그저 그런 단검이었다.
그러나 레시온은 단검을 쥘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살인자의 본능인 것일까. 한 번 잡은 단검은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있는 표창을 본 레시온은 이내 표창 하나를 손에 쥐어 보았다. 일반적으로 쓸 양을 최대 50개까지 저장하여 사용하는 표창이기 때문에 곧바로 50개를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