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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암살자 1권(25화)
11화 다른 사람 같은 이유(1-2)
“크아악!”
데스사이트 팀원의 목을 양분한 레시온은 그 옆에 있는 팀원에게도 다가가 일격을 날렸다. 이판사판으로 전장을 돌아다니는 레시온의 머릿속에는 그들을 향한 복수심과 희열감밖에 없었다.
질 면에서 밀리는 데스사이트 팀원들은 현재 30여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레시온 측 전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레벨 차이의 이유도 있었지만 성직자의 존재가 그들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직자에다가 포션까지 마시는데 죽을 유저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전사유저들은 서로의 빈틈을 보완해 가며 싸우고 있었다. 한 측이 위험에 빠지면 다른 일행이 목숨을 구해 주었고 이러한 상부상조의 관계가 엄청난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는 레시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크억!”
“심장을 난도질해도 시원찮을 개XX놈들.”
피를 보면서 성격이 일시적으로 격렬해진 레시온이 욕을 내뱉으며 팀원의 몸에 박힌 대검을 도로 회수했다. 그런 다음 9시 방향에서 날아오는 검을 쳐 낸 다음 다시 그곳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뒤에서 3명의 팀원들에 레시온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죽어랏!”
칼의 끝부분을 레시온의 몸통을 향해 겨냥한 그들은 이판사판으로 레시온에게 달려들었다. 현재 레시온의 대검은 죽기 직전인 팀원의 몸에 박혀 있는 상태.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의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한 전사유저가 레시온을 구해 주었다.
“크아악!”
“이런 젠장……. 크윽!”
단숨에 두 명의 팀원들을 배어 버린 그 유저는 나머지 한 유저를 향해 플라이 킥을 날린 다음 레시온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실소를 지어 주었다.
이에 레시온이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녀석에게 빚을 하나 졌군.”
“하하,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배를 탄 이상. 서로 도와야지요.”
“동감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를 구해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아주 무예가 출중하시던데 아마 그러리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레시온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한 그 유저는 다른 곳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전투에 다시 참가했다. 그리고 레시온의 뇌리 속에 문득 한 사람이 스쳐 갔다.
철저한 독불장군인 레시온에게도 동지가 한 명 있었다. 그리고 레시온은 몰랐지만 그 동지가 바로 일전에 레시온과의 면회를 신청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자신을 도와주는 그 유저를 바라보며 그를 생각한 레시온은 그땐 그랬지라는 식의 미소를 지으며 한 명의 유저를 더 베어 나갔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제온 님, 하지만…… 크아악!”
무언가 말을 하려던 한 팀원이 궁수유저가 쏜 화살에 맞아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날아온 화살을 쳐낸 제온은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회복하려고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했다.
“미친 듯이 날뛰는군요.”
“한 마리의 똥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운영자님.”
동욱의 말에 한 유저가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현재 전투가 시작된 지 1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50명을 자랑하던 데스사이트 팀원들의 숫자는 30명으로 줄어들고 또다시 1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그들이 죽어 나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급하게 포션을 마셔 가며 성직자의 부재를 만회하려고 하지만 1시간이 한계인 듯 보였다.
“크읍!”
심장 부근에 정통으로 맞은 화살을 바라본 한 팀원이 경악의 눈빛을 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팀원은 과다출혈로 그대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 유저의 신형 너머로 제온과 나머지 팀원들이 주춤거리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완패는 예정되어 있었고 제온은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개인을 상대할 땐 쉬웠을지 몰라도 뭉쳐 있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지만 결과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30여 명을 희생시킨 대가로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얻은 걸 생각해 보면 소모시킨 그들의 체력과 마나 정도? 그 밖에 별다른 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들의 한계였다. 무리수로 상대하는 데스사이트의 한계 말이다.
“이봐, 이제 그만 항복하시지.”
“닥쳐라!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네놈 뒤에 있는 녀석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그리고 네놈의 눈앞에도 보일 것이다. 그들이 흘린 아이템과 돈이 말이다.”
일행들의 발아래에 있는 무수한 돈과 아이템들을 제온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흘린 돈과 아이템, 죽어 간 그들을 위해서라도 회수를 해야 했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그러기란 불가능했다.
물론 제온이 일행들을 전멸시킨다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러한 가정은 현실성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말이다.
그러나 제온이라는 인물은 탐욕에 너무나도 젖어 있는 인물이었다. 전에 만났던 카리온과는 달리 그는 금전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말고는 모든 것들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전부 다 네놈들을 죽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승리자는 우리가 될 것이다.”
“항전의 의사를 밝힌다면 별수가 없군.”
레시온의 말과 동시에 그들을 향해 화살 하나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화살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제온의 어깨 부근에 정확하게 박혀들었다.
팍!
“크윽!”
화살이 박힌 어깨 부분을 손으로 쥐면서 괴로워하는 제온. 그리고 때를 맞추어 레시온의 설득이 이어졌다.
“그대들은 보았을 것이다. 대장이라는 놈이 화살 하나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놈 뒤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잃고 피와 같은 돈과 아이템을 흘릴 것이냐.”
“…….”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다. 너희들이 항복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팔을 벌릴 것이고 끝내 항전을 고집하겠다면 무기를 들 것이다. 선택은 너희들의 몫이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레시온의 연설과도 같은 말에 데스사이트 팀원들의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마음까지 흔들리니 점점 의리보다는 실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들려오는 레시온의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지금 달려들다가 죽는 건 개죽음이었고 그로 인하여 바닥에 쌓일 자신의 돈과 아이템, 그리고 그것들을 가져가는 자들의 모습이 그들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몸통 부근에 머물고 있던 그들의 무기들이 점점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싸울 의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들의 표정도 내려가는 무기와 같이 시무룩한 표정이었고 한 걸음을 물러섬으로써 싸울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부하들의 이러한 태도를 발견한 제온은 화가 머리 위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가뜩이나 힘을 모아야 될 판국에 부하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리자 답답해서 미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부하들의 선택이 백번 옳은 결정이었지만 제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포기한 이상 자신 혼자라도 싸울 의사가 있는 것 같았다.
“심리적으로 이겼다고 자만하지 마! 나 혼자서라도 네놈들과 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답이다!”
한 궁수유저가 화살 시위를 당긴 다음 곧바로 제온에게 날렸다. 그리고 직선으로 날아간 화살은 아까 전에 박힌 곳에 또다시 박히며 제온의 체력을 더 줄여 놓았다.
아까 전의 한 발을 시작으로 2명의 궁수유저가 차례대로 원한을 담은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온은 화살을 쳐 내면서 레시온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돈에 굶주린 하이에나의 모습이 바로 제온의 모습과 같았다.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오는 제온의 모습에 레시온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비참한 그의 모습이 약간은 안타까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쓸 곳 없는 동정심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던 레시온은 곧바로 정색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오는 제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레시온!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네놈이야말로 호랑이 위세를 입은 여우…… 크윽!”
“우리는 지휘고하가 없다! 단지 평등할 뿐이다. 네놈들에게 날리는 이 원한의 화살은 나 자신의 것.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제온의 말에 곧바로 한 궁수유저가 반문하여 소리쳤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킬을 사용하여 화살을 하나 더 날렸다.
그리고 이 화살을 쳐 내기 위해 칼을 들었던 제온은 엄청난 화살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어깨 부근에 또다시 화살을 허용하고 말았다.
팍!
“이, 이런 젠장맞을!”
체력이 거의 다 줄어든 것 같은 제온이었지만 돈의 대한 욕망이 그의 몸을 진격하게 만들고 있었다. 궁수유저들이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지만 욕망의 진격을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뒤에서 가만히 제온의 상태를 지켜보던 레시온은 이내 고개를 돌려 동욱에게 입을 열었다.
“저놈을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
“글쎄요…… 비록 시그널 온라인의 유저 분이지만 전과를 생각해서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호오, 전혀 의외의 발언이로군. 운영자가 그렇게 하면 되는가?”
“운영자라도 게임에 방해가 되는 유저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레시온 님께서 마무리를 지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비를 베풀 가치조차 없다는 말투로 동욱이 말하자 곧바로 레시온이 대검을 들어 올린 다음 제온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점점 제온의 최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편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던 제온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시온을 바라보더니 이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이제 나오는 건가? 나는 죽기 일보 직전인데 말이야.”
“너의 그 탐욕적인 꼴을 고치기 위해 온 것이다. 네놈에게는 특별히 고통 없이 죽여 주도록 하지.”
“나를 깔보지 마라! 나는 데스사이트의 돌격대장 제온이다! 돌격대장…… 쿨럭!”
역설을 내뱉던 제온이 순간적으로 기침을 하며 신음 소리를 흘렸다. 제온의 몸에서 기침과 함께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내상을 심각하게 입었다는 증거였다.
그의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레시온은 대검의 날을 들어 제온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와의 싸움은 즐거웠다. 그리고 명심하라. 그대를 시작으로 데스사이트의 숙청은 시작되었다고 말이야.”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는 영원…… 크악!”
제온이 말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 레시온의 거대한 대검에 제온의 선혈이 묻어 나오며 제온의 머리가 몸통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더 이상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 레시온의 칼날은 매섭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제온의 최후는 끝이 났다.
목을 밴 레시온은 곧바로 피가 묻은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그러자 일행들이 그와 동시에 엄청난 함성을 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일행들은 그동안 쌓인 울분을 토해 내는 듯 엄청난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 일대가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함성을 지른 그들은 잠시 후, 빼앗겼던 자신들의 돈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개중에는 현질을 했던 유저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은 일부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데스사이트를 완벽하게 소탕하면 자연적으로 돌아오는 것들이기에 그들은 불평불만 하나도 없이 동욱에게 약속한 금액만큼을 주어서 자신의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살아남은 나머지 유저들은 데스사이트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 낸 다음 자유로운 신분으로 풀어 주었다.
PK를 하면서 생겨난 그들의 패널티가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그들은 동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한 다음 멜타 마을로 돌아갔다.
“너란 놈은 마음이 참 관대하군.”
“후후, 저희들은 중재자이지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갱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그렇다고 해서 본부에 있는 놈들에겐 그런 선처를 베풀지 말도록.”
“그럴 겁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레시온 님이 갱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후후, 천 년을 기다려 봐라. 될지 안 될지 말이야.”
“하하하하.”
레시온의 대답에 동욱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욱에겐 고통의 족쇄를 채우는 대답일 뿐이었다.
한편 저들이 보낸 선발대를 완파한 레시온과 일행들은 다시 아벨리스크를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