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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검지주(鐵劍之主)
은거괴동 1권(1화)
序章
작가서문
안녕하십니까?
은거괴동의 운후서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은거괴동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비록 중간에 얽히고설킨 일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다행히 은거괴동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글을 출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뿔미디어 관계자 여러분과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저를 보살펴 주신 부모님, 하늘에 계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항상 오십 대로만 보이시는 예쁘신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이모부, 이모, 이모할아버지, 이모할머니, 고모부 분들, 고모 분들, 큰어머니, 고모할아버지 분들, 고모할머니 분들, 외삼촌할아버지, 외삼촌할머니, 작은 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그리고 제 글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과 곁에서 지켜봐 주신 동료 작가 여러분.
비록 모든 분들을 적진 못했지만, 항상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은거괴동, 읽으시면서 잠시나마 즐거우셨으면 좋겠습니다.
운후서 올림.
序章
“이걸로 두 덩어리.”
턱을 쓰다듬으며 유심히 고깃덩어리들을 살펴보던 백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윤기가 흐르는 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백의 노인의 건너편에 있던 홍의 중년인이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이것 말씀이시지요?”
“그려.”
백의 노인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홍의 중년인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바구니에 담겨 있던 고기를 낚아챘다.
워낙 표홀한 손놀림에 주위 사람들이 보았다면 감탄사가 절로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백의 노인은 그저 주위를 둘러보며 지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낚아챘던 고기가 홍의 중년인의 손아귀를 벗어나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홍의 중년인의 손이 허리춤에 매여 있는 칼집으로 재빨리 옮겨 갔다.
푸슛.
작은 소음과 함께 뽑힌 칼이 허공에서 요란하게 춤을 췄다.
파파팟.
소음과 함께 빛에 숨어 있던 고깃덩어리들이 바구니에 조심스레 안착했다.
바구니에 안착된 고깃덩어리들은 놀랍게도 일정한 모양과 크기로 갈라져 있었다.
언뜻 보아도 마흔 조각은 넘어갈 것 같았다.
쾌검술(快劍術) 혹은 발검술(拔劍術)의 고수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경악하며 한 수를 가르쳐 달라고 조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백의 노인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깃덩어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치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였다.
“저번보다 한 조각마다 약지만큼 부족한데……. 쾌검제(快劍帝)라 불리던 자네의 실력이 녹슨 거여 아니면 오 년 단골손님을 무시하는 거여?”
마치 직접 저울에 달아 보기라도 했는지 백의 노인이 거칠게 꾸짖었다.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번에 미친놈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소 한 마리를 죽이고 말아서 그렇습니다. 이번만 봐주십시오.”
홍의 중년인이 애처롭게 말하며 사정을 말하자 백의 노인이 코를 킁킁거렸다.
고깃덩어리의 냄새를 맡던 백의 노인이 홍의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척 보아도 홍의 중년인의 눈매에서 애처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 왔다.
결국 백의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다음에 또 부탁함세.”
“아이고, 감사합니다.”
홍의 중년인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시원스레 말했다. 사실 백의 노인도 이곳이 가장 인심이 후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한번 농 삼아 떠본 것이다.
물론 그것을 홍의 중년인도 오 년째 겪고 있기에 가볍게 넘길 정도였다. 백의 노인이 모습을 감추자 홍의 중년인이 호탕하게 외쳤다.
“다음 손님!”
第一章 은거괴동(隱居怪洞) ― 네가 이 마을의 막내다(1)
날씨는 맑았으나 유난히 바람이 심한 날이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산새들은 날개를 숨긴 채 나뭇가지에 힘겹게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한 청년은 넝마로 변한 청의(靑衣)를 입은 채 땀을 흘리고 있었다.
“헉, 헉.”
청년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지 열심히 뛰다가도 가끔씩 뒤로 고개를 돌려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청년은 달리고 또 달렸다.
넝마로 변한 청의 틈에 보이는 살의 색이 퍼렇게 변할 때까지 차가운 바람을 고스란히 맞았다.
열심히 숲 속을 질주하던 청년이 순간 돌부리에 걸려 나자빠지고 말았다.
크게 넘어진 청년이 신음성을 내뱉으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하아.”
그러나 심하게 다친 듯 청년의 무릎에선 피가 낭자했으며 청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겨우 상체를 일으켰던 청년이 신음성을 내뱉으며 나무를 버팀목 삼아 주저앉았다.
청년은 이를 악다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당장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발견할까 노심초사해하는 모습이었다.
조용히 하늘을 올려 보던 청년이 청승맞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눈물과 콧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청년은 하늘이 떠나가도록 통곡했다.
“크흑.”
통곡을 하던 청년의 뇌리에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지만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큰 장원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먹고살기에 충분했고 홀어머니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광동(廣東)에 흑살문(黑殺門)이라는 이름을 지닌 흑도방파가 들어섰다.
흑살문이 세워진 그날 독고천(獨孤穿)은 흑살문에게서 서신을 받았다. 친히 보호를 해 줄 테니 매달 금액을 바치라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독고천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으며 정중하게 답신을 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독고천에게서 흑살문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드시고 싶다는 장어를 구하러 시장에 갔다 온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장원의 대문이 부서진 채 주위에는 파편이 낭자했으며 대문에 들어서자 장원은 이미 폐허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급히 장원을 둘러보았지만 어머니와 자신이 평생 모은 재물들이 사라진 지 오래인 듯싶었다.
사람이란 분노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법이다.
고로 독고천도 눈알이 뒤집혀 무작정 흑살문의 대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그러나 흑살문은 시치미를 뗐고 분노에 가득 찬 독고천은 흑살문에서 난동을 부렸다.
평상시에 무공의 무자도 모르고 살던 독고천은 엉망진창으로 흑살문의 무사들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후.
독고천은 또다시 흑살문의 대문을 두들겼고 몸은 엉망진창이 됐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독고천은 거침없이 흑살문의 대문을 또 두들겼고 이번에는 쫓기기에 이르렀다.
복수는 이미 물 건너가 버렸다. 홀로 문파를 상대할 수 없었고,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원래 복수는 사람마다 다른 편이었다. 복수에 미치는 복수귀가 있는 반면 철저한 계획으로 복수 대상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있다.
독고천은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 뛰어들다가, 벽을 깨닫게 되면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다른 쪽을 모색하는 것이 독고천의 복수 방법이었다.
청승맞게 통곡을 하던 독고천이 하늘을 올려 보았다.
짹짹―
맑은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고 광활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가 보였다. 갑자기 그는 날고 싶어졌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구석에 몰리면 미친 짓을 하게 마련이다.
몸을 일으킨 독고천이 팔을 휘저었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치듯이 팔을 펼친 독고천이 미친 듯이 달렸다.
바람을 몸으로 맞으며 달리던 독고천이 또다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
이번에는 충격이 컸는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심지어 정신조차 몽롱한지 겨우 고개를 들었을 뿐이다. 독고천의 눈에는 큰 바위가 들어왔다.
바위에는 투박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은거괴동(隱居怪洞)
순간 독고천의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마을 이름으로 장난을 쳐 놓고는 킥킥거리며 해맑은 웃음을 터트릴 꼬마들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때였다.
낡아 빠질 대로 빠져 땟국물이 흐르는 의복을 입은 노인이 독고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독고천은 기겁함과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노인이 킬킬거리며 독고천을 훑었다.
독고천은 외치듯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그러나 노인은 침묵을 지킨 채 독고천을 위아래로 재보듯 훑어보았다.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독고천이 울컥했다.
“누구십니까!”
“자네 무림인(武林人)이 아니구먼?”
노인이 나직이 묻자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인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노인은 밝은 표정을 유지한 채 독고천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곳은 무림에서 은퇴한 자들만이 있는 곳이라 무림인이 오는 것은 달갑지 않네.”
“그럼 저는 괜찮습니까?”
노인의 눈은 깊었다. 심해와도 같이 깊었으며 알지 못할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독고천이 묻자 노인은 어깨를 들썩이며 대수냐는 듯이 말했다.
“상관없네. 사실 무림인이 와도 상관없는데 가끔 심마(心魔)에 걸리기에 뒤처리가 귀찮을 뿐이지.”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하던 노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이곳을 어떤 방법으로 찾았나?”
“저…… 사실은 새가 되고픈 마음에 막 팔을 휘젓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이곳이더군요.”
민망한 듯 독고천이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자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뭐가 그리 웃긴지 독고천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러나 의외로 아팠기에 독고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육십 대 노인에게서 나올 것 같지 않은 힘이 느껴졌다.
“하하하, 자네 정말 웃기는군. 이곳에는 허영진이라는 것이 설치되어 있어서 인간은 들어오지 못하는데 자네는 잠시 새가 되어 이곳에 들어온 것이야. 하하하!”
“그렇습니까…….”
즐겁게 웃는 노인을 쳐다보며 독고천이 말하던 도중에 갑자기 혼절해 버렸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혼절해 버린 독고천을 기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노인이 주위를 훑었다.
그러자 인기척이 없던 나무 뒤에서 백의 노인이 슬며시 걸어 나왔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여 있어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지 피부만큼은 젊은이들 부럽지 않게 파릇파릇했다. 걸어 나온 백의 노인의 허리춤에는 의외로 검집이 매달려 있었다.
“청목(淸木)아, 저놈은 어떻게 들어왔냐?”
청목이라 불린 노인이 독고천의 옆구리를 툭툭하고 건들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청목 노인은 고개를 숙여서 독고천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다 손가락으로 눈을 뒤집으며 킬킬거렸다.
눈동자는 맑았다. 마치 깊은 숲 속에 흐르는 냇물처럼 맑아 보였다.
그런 눈동자를 보고는 청목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청목이라 부른 백의 노인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놈이 새가 되어서 날아들어 온 게야.”
“무슨 소리냐?”
청목 노인의 말에 백의 노인이 되묻자 청목 노인이 즐겁다는 듯이 킬킬거렸다.
마치 당과를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백의 노인은 오히려 짜증을 내며 성을 냈다.
“무슨 소리냐고!”
“이놈이 잠시 미쳐서 허영진을 들어올 수 있었던 게야.”
청목 노인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의 노인은 만족하지 못한 듯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청목 노인은 킬킬거리며 독고천의 팔목을 쥐어 잡은 채 백의 노인에게 걸어갔다.
독고천이 땅바닥에 끌리며 작은 신음성을 내뱉었지만 청목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백의 노인이 그제야 만족한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도 끌어 보자.”
“옜다.”
청목 노인은 망설임 없이 독고천의 팔목을 넘겼다. 백의 노인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독고천을 끌면서 은거괴동이라 쓰여 있는 바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지켜보던 청목 노인도 킬킬거리며 그 뒤를 쫓았다. 새소리만이 텅 비어 버린 숲 속에 고즈넉하게 울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