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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화)
第一章 은거괴동(隱居怪洞) ― 네가 이 마을의 막내다(2)


“으음…….”
침상에 누워 있던 독고천이 신음성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숨어 있던 고통들이 바늘처럼 찔러 왔다.
아까는 워낙 급했기에 못 느꼈던 통증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이다.
독고천이 옆구리를 손으로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독고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짙은 약 냄새가 풍겨 오는 것을 보아 의원인 듯싶었다.
그러나 분명 자신은 숲 속에 버려져 있었고, 괴이한 노인을 만난 것까지는 기억하겠는데…….
머리가 아파 오는지 독고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주위를 훑던 독고천은 인기척을 느끼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고도 인기척은 제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독고천이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일어났냐?”
“헉!”
콰당.
순간 독고천이 미친 듯이 놀라며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겨우 몸을 일으킨 독고천의 옆에는 백의 노인이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독고천이 다시 한 번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까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인기척은 이미 눈앞으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독고천이 백의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자 백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니까 괜찮은가 보군.”
백의 노인이 손수 독고천을 일으켜 주며 중얼거렸다. 독고천은 겨우 침상에 올라가서 숨을 고루 쉬었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둔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워낙 놀란 탓에 얼굴도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백의 노인이 킬킬거리며 독고천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말했다.
“자네 재미있구먼. 이제 상처는 나았으니 밖에 나가도 된다네.”
“……그런데 이곳은 어디입니까?”
독고천이 조심스레 묻자 백의 노인이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의원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다 잠시 무언가 아니라는 듯 따지듯 물었다.
“이곳이 의원이라는 것은 압니다. 이곳이 무슨 마을이냐는 말입니다.”
“은거괴동(隱居怪洞)이라네.”
“그럼 은거괴동이라는 곳이 어디 쪽에 있는 마을입니까?”
“당연히 광동에 있네.”
백의 노인이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왔다.
독고천은 당최 백의 노인의 감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웃다가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에 금세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선은 따라야 했다.
비록 은인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무림인은 아니더라도, 은인에게 보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잠시 백의 노인의 표정에 맞추느라 애써 표정을 고치던 독고천이었다.
독고천이 애써 웃자 백의 노인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독고천이 눈썹을 까닥이자 백의 노인도 눈썹을 까닥였다. 이번에는 독고천이 팔을 슬쩍 올리자 백의 노인도 따라 올렸다.
이번에는 독고천이 손가락으로 코를 후볐다.
그러자 백의 노인이 미친 듯이 웃으며 손가락질했다. 노인이 웃다가 졸도할 것만 같았다.
“크히히히,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험험…….”
시험을 하려던 독고천이 오히려 민망해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백의 노인도 애써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을 보아 애써 웃음을 참는 듯했다.
독고천은 뒤통수를 긁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제가 광동에서 태어났고, 광동에서 한평생 자라 왔지만 은거괴동이라는 곳은 생전 처음 들어봅니다.”
“그걸 왜 나에게 얘기하는가?”
“아니, 제 말은…….”
독고천이 손을 내저으며 뭐라 변명하려 했지만 백의 노인의 참고 있던 웃음보가 터져 버리고 말았다.
“크히히히.”
민망해진 독고천은 침상을 내리치며 미친 듯이 웃는 백의 노인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백의 노인의 웃음이 멈췄다. 백의 노인도 이제는 웃음보가 가라앉았는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잡았다.
“험험.”
어느 정도 분위기가 침착해지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 저를 처음으로 발견하신 노인 분께서 무림(武林)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이곳은 무림인들의 마을입니까?”
“엇비슷하다네. 그런데 약간 다르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싫네.”
백의 노인이 또다시 미친 듯이 웃으며 침상을 두들겼다.
한참을 웃던 백의 노인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내며 힘겹게 말했다.
“하아, 이런 농이 제대로 통하는 놈은 처음이라 그렇다네. 이곳의 늙은 놈들은 감정이 메말라서 내 농을 받을 가치도 없지.”
힘겹게 말을 꺼내던 백의 노인이 자세를 바로잡고는 말을 이었는데 꽤나 진지했다.
“우선 이곳은 무림에서 은퇴한 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네.”
진중한 말에 독고천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백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무림에 진저리가 나거나, 무림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거나 등등 많은 이유를 지닌 자들이 이곳에서 은거를 하고 있다네. 원래는 노인들밖에 없던 마을이었는데 점차 노인들 사이에 늦둥이가 생기는 바람에 연령대가 낮아지기 시작했지. 또 중년의 나이에 은거를 하려는 놈들도 있고 말일세.”
뭐가 그리 좋은지 뺨을 붉히며 백의 노인이 실실 웃었다.
잠시 웃음을 터트리던 백의 노인이 독고천을 마주 대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한마디로 이곳은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자들의 마을이라 보면 되겠네.”
“무림인이라면 하늘도 날 수 있습니까?”
독고천이 소박하게 그러나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백의 노인이 독고천의 눈동자를 마주 보더니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무림인이라고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닐세. 자네 무림인을 본 적이 없지?”
“본 적은 있습니다만, 정말 무림인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합니다.”
독고천이 기억을 더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하자 백의 노인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침을 삼켰다. 백의 노인은 진중한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말했다.
“무(武)를 입에 담는 순간 그자는 무림인일세. 불확실한 무림인이란 있을 수 없다네. 무림에 발을 담근다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지.”
진지한 말투에 독고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백의 노인이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영원한 무림인일세. 이미 은원관계를 만든 이상 무림이라는 족쇄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 죽기 전까지는 아니, 죽더라도 자손들이 힘들어진다네. 그것이 무림인일세.”
“정말……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독고천이 감동했는지 눈을 흐리멍덩하게 뜬 채로 백의 노인을 경외하듯 쳐다보았다.
그러자 백의 노인이 킬킬거리며 콧날을 높였다.
그러다 갑자기 백의 노인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백의 노인은 기겁하며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점심시간일세!”
“네?!”
“점심이나 먹으러 가세나. 따라오게.”
백의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독고천은 기겁하며 침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백의 노인의 걸음이 빠른지 독고천은 숨을 헐떡이며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의 노인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밭이었다.
아직은 농사 중인지 땅이 파헤쳐져 있었다.
밭에 서서 백의 노인은 손으로 햇빛을 가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독고천도 백의 노인을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백의 노인이 발견했다는 듯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있군!”
“뭐가 보이십니까?”
독고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백의 노인은 뭐가 보이는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저 독고천은 백의 노인의 뒤를 쫓으며 방대한 밭의 크기에 입을 벌릴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백의 노인이 가리킨 곳에서 기합성이 울리고 있었다.
“하압!”
웅장한 기합 소리에 저도 모르게 독고천의 어깨가 주눅 들고 말았다. 알지 못할 서늘함이 다가왔던 탓이다.
강렬한 햇빛 탓에 독고천의 눈살이 절로 찡그려졌다. 흐릿했지만 태양을 등지고 있는 청의 중년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날렵해 보이는 옷차림새와 짙은 흑색의 머리칼은 강렬한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청의 중년인의 움직임이 시선에 들어왔다.
청의 중년인의 허리춤에는 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청의 중년인이 바구니로 손을 집어넣더니 씨로 보이는 것을 한 움큼 쥐었다. 워낙 큼지막한 손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씨들이 붙잡혔다.
그리고 그 상태로 청의 중년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화려한 손놀림을 펼쳤다.
엄청난 빠르기의 손놀림에 독고천이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손 모양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재빨랐다.
청의 중년인의 손에 쥐어 있던 씨들이 엄청난 속도로 땅에 박히기 시작했다.
제멋대로 박히는 것도 아니었다.
밭에 일정한 크기의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정확히 하나씩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독고천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허공에서 씨를 뿌리던 청의 중년인이 백의 노인을 발견했는지 씨를 던지다 말고 백의 노인에게 다가왔다.
청의 중년인이 다가올수록 알지 못할 위압감이 느껴져 온 탓에 독고천은 뒷걸음질 쳤다.
그런 모습에 백의 노인이 청의 중년인을 꾸짖었다.
“예끼, 호월(號越)아! 척 보아도 무림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지 않느냐.”
“흠흠, 몰랐다고 치지요.”
호월이라 불린 청의 중년인이 헛기침을 하며 짐짓 몰랐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독고천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순식간에 소멸됐다.
위압감이 사라진 것을 느낀 백의 노인이 호월에게 재촉하듯 물었다.
“점심은 어디 있느냐?”
“아이고, 농부의 점심을 빼앗으러 또 오셨습니까?”
“농부는 무슨. 네놈의 암기술을 볼 때마다 살기(殺氣)가 넘치는데. 퍽도 씨들이 잘 자라나것다.”
백의 노인이 비꼬며 말하자 호월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누가 본다면 아들과 아버지의 사이라도 믿을 만큼 애정이 넘쳐 보였다.
웃던 호월이 독고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이 청목 선배가 데려온 놈입니까?”
“그려, 무공의 무(武)도 모르니 건드리지 마라. 어허, 침 삼키고!”
백의 노인이 농을 걸자 호월이 피식하고 웃으며 독고천에게 말했다. 자신감이 잔뜩 배여 있는 말투였다.
“난 차호월(叉號越)이라 한다.”
“전 독고천입니다.”
백의 노인에게 차분함이 떠올랐다면 차호월이라는 자에게서는 호탕함이 흘러나왔다.
마치 야생을 돌아다니는 맹호처럼 날카로움과 호탕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낭인 같았다.
잠시 만족한 표정을 지은 채 독고천을 훑어보던 차호월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거 제 것입니다!”
백의 노인이 점심을 홀라당 먹어 버린 탓이다.
물론 차호월은 백의 노인이 올 것을 대비하여 한 끼를 더 가져왔지만 소용없었다.
그마저도 모두 먹어 버리는 바람에 차호월은 맨 그릇을 긁으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다 드시면 어떡하십니까!”
“잘 먹었다. 수고해라.”
그 말을 끝으로 백의 노인이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없는 상황에 독고천은 그저 백의 노인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백의 노인의 발걸음은 무식할 정도로 빨랐다.
독고천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헉헉거릴 뿐이었다. 거대한 밭을 지나고 담아해 보이는 마을이 시선에 들어왔다.
시장 바닥처럼 북적이진 않았지만 하나하나 아담해 보이는 것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마치 인심이 후한 마을을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짙은 미소를 끼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라면 가끔 보이는 자들의 인상이 험악하다는 정도였다.
단순히 험악한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 검상은 물론이요, 심지어 살기까지 등등하게 뿌리고 있으니 독고천은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풍문상으로 들어온 마도(魔道)의 고수들 같았다.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사람의 배를 가른다고 알려져 왔다.
그렇기에 독고천의 어깨는 더욱 떨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백의 노인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예끼, 인상 좀 펴라!”
당장이라도 그자들이 덤벼들까 무서웠지만 의외로 그들은 백의 노인의 말에 억지웃음을 지었다.
독고천은 신기했다.
무림인은 힘으로 말한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강해 보이는 자들이 백의 노인의 말에 주눅이 드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백의 노인을 뒤쫓던 독고천이 나직이 묻자 백의 노인이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되물었다.
“내가 얘기 안 했나?”
“안 하셨습니다.”
“거참, 요즘 치매기가 도는지……. 지금 촌장(村長)한테 가는 중이네.”
발걸음을 옮기며 백의 노인이 말하자 독고천이 놀라워했다.
물론 어디를 가나 대장이라는 것은 있게 마련이지만 이런 곳에도 대장이 있다는 말에 놀라워한 것이다.
보통 무림인은 남을 인정하기를 싫어한다고 들었던 탓이다.
독고천의 반응에 백의 노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겼다.
아담한 마을을 지나고 숲 속에 다다랐다.
숲 속은 하나같이 얄팍한 나무들이 풍성했으며 옅은 바람이 불어와 졸음을 쏟아지게 했다.
또한 맑은 냇물이 가로지르고 있어 당장에라도 빠져들고 싶을 정도였다. 손수 만든 듯 돌다리를 건너자 작은 집이 시선에 들어왔다.
작은 집이라고는 하지만 강풍이 불기만 해도 날아갈 듯 부실해 보였다.
백의 노인이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촌장에게 말해 놓았으니 들어가게나.”
그 말을 끝으로 백의 노인은 발걸음을 돌려서 냇가로 향했다. 독고천은 백의 노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의 노인은 신을 벗고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라서 독고천도 그 흥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청천(淸天)이 높다 하되 강호(江湖)의 긍지보다 높으랴. 장강(長江)이 넓다 하되 강호(江湖)의 긍지보다 넓으랴. 청해(靑海)가 깊다 하되 강호(江湖)의 긍지보다 깊으랴. 그 무엇도 강호를 넘을 수 없으니 강호야말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이로다.

알지 못할 슬픔이 배여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독고천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 자신과는 관련 없는 사람이다.
오늘 처음 보았으며 농이 심한 탓에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돌다리 아래에 앉아 태양을 등지고, 냇가에 발을 담근 채 흥얼거리는 백의 노인의 모습은 신선(神仙)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