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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



은거괴동 1권(3화)
第一章 은거괴동(隱居怪洞) ― 네가 이 마을의 막내다(3)


백의 노인은 계속하여 흥얼거렸고, 독고천은 눈물을 소매로 쓰윽 하고 닦으며 백의 노인이 가리켰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백발이 성한 노인이 독고천을 반겼다.
아니, 반겼다는 말도 무색할 정도로 그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독고천은 안절부절못했고 노인은 그저 흐리멍덩한 눈으로 독고천을 노려볼 뿐이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독고천은 이것을 인내심 시험이라 생각하고 자세를 바로잡고 있었으며, 노인은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역시 무림이란 곳에 살고 있던 무림인이라 불리는 자들은 무언가 다르군.’
흐리멍덩한 노인의 눈빛이었지만 생기가 돌았다.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눈동자라는 것이 살아 있지만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화려한 생동감을 느끼기에는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가부좌를 틀고 있는 노인은 무림인다웠다.
아니, 무림인 중에서도 고수(高手)일 것 같았다.
마치 바위조차 두부처럼 가른다는 무림인처럼.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더 흘러서야 가부좌를 틀고 있던 노인의 입에서 탄식성과 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잘 잤다.”
순간 독고천은 억울한 나머지 눈에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놈의 노인들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눈을 뜨고 자는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물론 노인들은 우대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아니, 사람을 불러 놓고 주무시는 경우는 또 뭡니까?”
독고천이 열을 뻗치며 외치듯 물었다.
그러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노인이 눈을 비비며 되물었다.
“넌 누구냐?”
“전 청목이라는 분에 의해서 이곳에 들어온 독고천이라 합니다.”
독고천이 자신의 소개를 하며 아직도 분을 삭이고 있자 노인이 털털하게 웃었다. 워낙 털털했기에 독고천조차 움찔거릴 정도였다.
마치 자신의 화는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노인이 말했다.
“원래 젊은이들은 혈기(血氣)가 넘쳐 화를 자주 내지.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닐세. 혈기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고, 그것이 일찍 터져서 최대치에 다다르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은 편이지.”
어느새 화를 삭인 독고천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인이 씨익 하고 가볍게 웃었다. 노인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제법 어울리는 미소였다.
웃던 노인이 독고천을 요리조리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이냐?”
“우연찮게 왔습니다.”
독고천의 대답에 노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독고천을 훑었다. 독고천은 노인의 시선을 피하며 침을 삼켰다.
예리한 시선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들킬 것만 같은 느낌에 독고천은 필사적으로 피했다.
노인이 독고천을 주시한 채 말했다.
“그래, 우연도 운명인 셈이지. 그런데 이곳이 무림인의 마을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말하기 편하겠군. 그나저나, 이곳에서 살고 싶나?”
순간 독고천의 머리에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자신을 키워 주신 어머니를 빼앗기고 장원조차 빼앗겼다.
그리고 결국 도망에 이른 패배자일 뿐이다.
돌아간다 해도 받아 줄 사람도 없었고 환영해 줄 사람도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독고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노인이 혀를 차면서 말을 꺼내 독고천의 입을 막았다.
“쯧쯧, 네 녀석의 눈을 보아하니 고난을 겪었구나. 그것도 인재(人災)를 겪었어.”
“…….”
“인재를 겪은 이상 사람이란 편해질 수 없지. 그래, 복수라는 것이 하고 싶겠구나?”
노인의 직설적인 물음에 독고천이 순간 움찔거렸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물었다.
“심지어 그놈을 죽이고도 싶겠지?”
“……!”
독고천은 노인을 직시했다. 떨리는 몸이 진정되지 않아서 독고천은 당황했다. 그러한 모습에 노인이 가부좌를 풀고 독고천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던 노인이 손을 독고천의 어깨에 올렸다.
푸근한 느낌에 독고천의 떨리던 몸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놀란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그저 다 안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그 복수심을 다스리는 데에는 심신(心身)의 수련만큼 좋은 것은 없다. 마을의 주민으로 받아들이마.”
“그렇다면?”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독고천이 놀란 듯이 되묻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이 마을의 막내다.”
“네?!”
놀란 독고천의 목소리에 노인이 귀를 후비며 인상을 찌푸렸다. 워낙 당연하다는 표정에 독고천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표정을 유지한 채 독고천이 다시 되물었다.
“왜 제가 막내입니까? 언뜻 마을을 돌아다니며 꼬마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막내는 아니지요.”
독고천의 절망 어린 외침에 노인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노인의 막판 뒤집기에 독고천은 따지는 듯한 모양새로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곳 마을에서는 먼저 들어온 자 혹은 태어난 자가 선배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어디 가서 시비 걸 생각 말거라. 이 마을 그 누구도 너보다 아래는 없다.”
단호한 노인의 표정에 결국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모습에 노인이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우선 아까 복수심을 다스린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솔직히 무림인(武林人)에게 불가능한 일이지. 최소한 마을의 주민일 동안 삭이고 있어 주면 좋겠구나.”
독고천은 흠칫했다.
그랬다. 독고천은 이곳에서 심신을 단련한 후 복수할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모두 노인에게 간파되자 움찔거린 것이다.
잠시 식은땀을 흘리던 독고천이 가볍게 웃었다.
‘그때까지만이다. 오 년 정도만 참자. 그 정도면…….’
“이십 년이다.”
독고천의 망상을 깨뜨리며 노인의 말이 울렸다. 그러자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뭐가 이십 년입니까?”
“최소한 그 정도는 수련해야 어디서 굶어 죽지는 않을 것 아니더냐.”
맞는 말이었다. 무공이란 절대로 쉽지 않다.
몇 십 년을 익혀도 고수(高手) 축에도 들지 못한 채 죽어 가는 무림인은 부지기수였다.
당황한 표정의 독고천을 뺨을 치며 노인이 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냐?”
“스무 살입니다.”
“딱 좋은 나이로군. 딱 좋은 나이야.”
노인의 중얼거림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공은 어릴 때부터 익혀야 효과가 큰 법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끈기가 부족하다. 끈기가 부족한 만큼 무공에 흥미를 금방 잃을 수 있으며, 한번 포기했던 것은 다시 시도하기 어렵다.
그러한 말을 항상 주위에서 들어 온 독고천이다.
그런데 노인의 말은 오히려 독고천의 상식을 뒤집고 있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던 노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바깥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독고천은 무의식적으로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마을의 중심부였다.
마을의 중심부를 가리키며 노인이 외쳤다.
“가서 한중석(瀚中碩)이란 놈을 찾아라. 미리 얘기해 놓았으니 알 것이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마친 독고천은 촌장의 집을 나섰다. 냇가에서 발을 담근 채 흥얼거리던 백의 노인은 사라져 있었다.
독고천은 알지 못하게 어딘가 아쉬웠다.
자신의 아버지는 금방 돌아가셨다.
그렇기에 혼자서 상업을 도맡았고 장원을 살 정도로 악착같이 노력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 행복은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흑살문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쫓겨 온 지금, 이상하게도 복수심은 가라앉았다.
오히려 알지 못할 흥분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오던 무공(武功)이라는 것을 배운다고 생각하자 온몸에서 열기가 나왔다.
숲 속을 거닐며 독고천이 주먹을 쥐며 중얼거렸다.
“이십 년? 십 년 아니, 오 년으로 줄여 주마.”
독고천이 혼자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왔다.
순간 짐승인 줄 알고 흠칫했으나 사람인 것을 깨닫고 독고천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십칠 세에서 십팔 세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짙은 청의를 입은 소년이었는데 두툼한 입술에 동그란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눈매가 약간 올라가 있어 고집스런 분위기를 풍겼다.
놀랐던 독고천은 애써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소년을 직시했다.
독고천은 어려서부터 동생이 있었으면 했다.
물론 주위의 친구들은 동생은 원수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독고천은 단호했다.
그런데 딱 동생 또래의 소년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독고천은 애써 표정을 밝게 하며 활발하게 말했다.
“안녕?”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네놈은 뭐야?”
소년의 두툼한 입술에서 거친 말투가 나오자 독고천이 울컥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라 보이는 놈이 반말도 모자라서 욕설에 준하는 말투를 내뱉는다?
갑자기 독고천이 거칠게 소년에게로 걸어갔다.
소년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독고천을 올려 보았다. 독고천은 의외로 키가 큰 편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던 독고천이 갑자기 손을 번쩍 올리더니, 꾸짖음과 함께 소년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콰앙―
그러나 비명성은 독고천에게서 나왔다.
“컥!”
소년의 머리통은 바위같이 단단했던 것이다.
주먹이 아파서 신음성을 흘리던 독고천이 소년을 노려보았다. 소년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네가 새로 왔다는 막내냐?”
순간 독고천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랬다. 이 마을에는 자신보다 막내는 없었다.
아무리 꼬마로 보일지라도 자신보다 선배 대우하는 것이 이 마을의 규칙이었다.
독고천의 머리 회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너 이곳에 사니?”
“그래.”
“그럼 선배시군요…….”
“그래.”
소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그러자 독고천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스물다섯이다.”
소년의 말에 독고천이 놀라워했다.
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다. 그런데 겉모습은 젖살마저 그대로인 소년인 상태였다.
동안(童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심하게 어려 보일 줄은 몰랐다.
이 소년이 무공이라는 것을 익혔다고 생각하자 독고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저…… 아프셨습니까?”
“아프진 않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네.”
소년이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서 공포감을 조성하기 충분했다. 독고천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소년의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년이 물었다.
“어디 가냐?”
“예, 한중석이라는 분을 찾으러 갑니다.”
한중석이라는 석 자에 소년이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인데?”
“오, 그렇습니까? 한중석 님은 어디에 계신지요?”
“따라와.”
의외로 소년이 친절하게 앞장서며 말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 내렸다.
소년을 뒤쫓아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중심부에 도착했고 북적거리는 마을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이 대다수였지만 간혹 중년인과 젊은이들도 보였다.
소년이 멈춘 곳은 꽤 커 보이는 건물이었다.
겉은 깔끔했으며 의외로 고풍스런 문양이 시선을 끌었다.
한가객잔(瀚家客棧).
객잔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꽤나 북적거렸다.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활기차 보였다. 소년이 들어서자 점소이가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환영해 왔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아버지 계세요?”
“지금 위층에 계실 겁니다.”
점소이의 말에 소년이 독고천에게 손가락으로 까닥이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지은 죄가 있기에 독고천은 묵묵히 소년의 뒤를 쫓았다.
계단을 올라가자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약간씩 거슬렸다. 말이 좋아 고풍이지, 결국은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층에 올라간 소년이 곧바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그곳에는 낡은 문짝이 버티고 있었는데 소년이 조심스레 두들기며 외쳤다.
“아버지, 아들 왔어요.”
잠시 후 낡은 문짝이 열리며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 반겨 왔다.
“원기가 왔구나.”
뭐가 그리 좋은지 중년인이 몸을 숙이더니 소년에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소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중년인이 몸을 일으켜며 자신의 허리를 가볍게 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이번에 새로 온 막내예요.”
한원기의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돌렸다.
독고천은 자신이 때렸던 일을 소년이 말할까 봐 뜨끔했지만 애써 시선을 직시했다.
잠시 독고천을 훑던 중년인이 독고천의 팔을 만지기 시작했다. 팔을 거쳐서 복부와 다리를 만지작거리던 중년인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정상인 편이군.”
혼자서 턱을 쓰다듬으며 중년인이 중얼거렸지만 독고천은 그저 눈알만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