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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4화)
第一章 은거괴동(隱居怪洞) ― 네가 이 마을의 막내다(4)


한참을 생각하던 중년인이 손바닥을 마주친 후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뒤적이고서야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것은 쟁반(錚盤)이었다.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제대로 손질만 하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년인은 쟁반을 독고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난 한중석이라 한다네. 우선 촌장님께 대충 들었을 거라 생각하네. 이걸 받게나.”
“전 독고천이라고 합니…… 컥!”
쟁반을 받은 독고천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진 독고천이 몸을 일으키며 쟁반을 들려고 했지만 쟁반은 꿈쩍도 안 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한중석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직 그 쟁반은 무리인가. 그렇다면…….”
또다시 방으로 들어갔던 한중석이 다른 쟁반을 들고 왔다. 한중석은 그 쟁반을 숨을 헐떡이던 독고천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도 독고천은 쟁반의 엄청난 무게에 신음성을 터트렸지만 고꾸라지지는 않았다.
그러자 한중석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딱 좋군. 우선 음식을 나르는 것부터 연습하도록 하게나.”
“이, 이 쟁반으로 말씀이십니까?”
말을 하면서도 힘겨운지 독고천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었다.
한중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한 반응에 독고천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끼며 쟁반을 힘겹게 들고 있었다.
한중석은 언제 가져왔는지 점소이용 의복을 독고천에게 건네주었다.
“우선 이것으로 갈아입게.”
“그럼 오늘 하루는 이것만 합니까?”
독고천이 쟁반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의복을 받으며 묻자, 한중석이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수련을 받고, 이틀에 걸쳐서 두 군데를 더 가야 한다네.”
“두 군데요?!”
“당연하지, 자네 무공을 익히고 싶지 않나?”
한중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독고천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중석이 독고천의 어깨를 툭툭하고 치며 씨익 하고 웃었다.
“무공은 기초가 중요한 법일세. 자, 빨리 움직이게.”
“끄응……. 알겠습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독고천이 힘겹게 쟁반을 들었다. 한중석은 고참 점소이에게 독고천을 맡겨 버린 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년도 놀러 간다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고참 점소이는 날카로운 눈매로 독고천을 훑으며 말했다.
“자, 내가 앞으로 자네를 담당할 탁호(卓浩)라고 한다네. 우선 손님이 오시면 경쾌한 목소리로 ‘어서 옵쇼, 무엇을 드릴깝쇼?’라고 해야 하네. 따라해 보게.”
“어서 옵쇼, 무엇을 드릴깝쇼?”
독고천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탁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괜찮군. 그리고 주문은 정확히 받아야 해. 한가객잔은 정확하고 빠른 것으로 신용을 쌓아 왔거든. 주문을 받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방장에게 말해 줘야 하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경쾌한 외침에 탁호가 만족했는지 눈썹을 까닥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탁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점소이용 백의를 벗더니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독고천에게 말했다.
“난 쉬다 올 테니 열심히 하게나.”
“다녀오십시오!”
탁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독고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천은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앞으로 다가올 고생길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독고천은 두툼한 쟁반을 슬쩍 보더니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 돌아갈까?”



第二章 은거괴인(隱居怪人) ―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1)


“이봐. 신참, 빨리 오란 말이야.”
중년인이 어린아이처럼 투정거리며 외치자 독고천은 고개를 푹 숙이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독고천이 애써 영업용 미소와 함께 쟁반을 옆구리에 힘겹게 걸고는 중년인에게 물었다.
“무엇을 시키시겠습니까?”
“흠, 뭐가 맛있나?”
척 보아도 단골처럼 보이는 중년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애써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한가객잔은…….”
“아, 그냥 소면이나 주게.”
중년인이 말을 끊었지만 독고천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면 한 그릇이요.”
곧바로 독고천이 주방으로 가면서 주방장에게 외쳤다.
“소면 한 그릇!”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주방장이 시원스럽게 외치자,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대기 의자에 앉았다.
손님은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통일된 음식을 시켰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쟁반만이 독고천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었다. 주방장이 어느새 소면을 완성했는지 독고천을 불렀다.
“이봐, 소면 나왔어.”
“예, 갑니다.”
뜨거운 소면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는 독고천이 비틀거렸다. 엄청난 무게에 코를 킁킁거리던 독고천이 힘을 주었다.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걸어가자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킬킬거렸다.
신참 소식은 어느새 은거괴동 전체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빨리 오라니까.”
중년인이 앉은 채 킬킬거리며 독고천을 재촉했다.
독고천은 땀을 닦으며 애써 신난 듯이 외쳤다.
“예, 갑니다!”
그리고 정신없던 아침이 흘러갔다.

***

하루 종일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쟁반을 든 채 점소이 일을 한 후 독고천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평상시에 무공을 익혔던 자라면 모르지만 독고천은 무공을 천외천(天外天)이라 생각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선 채로 자신의 다리를 주물럭거리던 독고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은거괴동은 은거한 자들만이 사는 곳이 아니었나? 그런 폐쇄적인 공간에 이런 객잔이 있다니?’
점심때가 되자 밖에 나갔던 탁호와 한중석이 객잔으로 돌아왔다.
후들거리는 독고천을 보고 한중석이 객잔 안을 둘러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탄성을 내질렀다.
“오, 자네 한 번도 쉬지 않았나?”
그랬다. 손님들은 만석이었지만 모두 탁자에 주문한 음식들이 올라와 있었고, 만족한 표정들이었던 것이다.
처음 점소이 역할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철퇴 같은 쟁반을 사용했건만 무공의 ‘무’자도 모르던 서생 같은 자가 모든 일을 소화해 낸 것이다.
“예…….”
독고천은 힘없이 대답하며 의자에 풀썩하고 주저앉았다. 나른한 모습이었다.
다리로부터 찌르르한 느낌이 상체로 오는 것을 느끼며 독고천은 지친 듯이 혀를 내밀었다.
의외로 할 만했다. 우선 까다로운 손님은 그다지 없는 편이었고 쟁반도 계속 사용하다 보니 적응되는 느낌이었다.
잠시 한숨을 고루 내쉰 독고천이 손을 힘겹게 들었다. 그러자 한중석이 눈썹을 까닥이며 물었다.
“뭔가?”
“저, 이 마을은 은거한 분들이 사시는 곳 아닙니까?”
“그렇지.”
한중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재차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폐쇄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이런 객잔이 있을 수 있는 겁니까? 주변을 살펴보니 상점들도 많던데요. 장사가 되긴 됩니까?”
독고천의 지적은 정확했다.
무엇이든지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은거가 목적인 곳에 이런 상점들이 몰려 있다라는 점은 이상했다.
분명 은거기인의 수는 많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고천의 질문에 한중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야 사람이 많으니까 가능한 거지.”
“……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독고천의 반응에 한중석이 혀를 찼다.
“잘 생각해 보게. 은거를 하는 자들 중에 보통 사람이 있겠나? 보통 사람이 뭐가 아쉽다고 은거를 하나. 산전수전 다 겪어 봐야 세상에 질리고, 세상에 질려야 은거를 하지.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은 자들 중에 약한 사람이 많겠나, 강한 사람이 많겠나?”
한중석의 화려한 입담에 독고천이 조심스레 답했다.
“강한 사람이죠.”
“그렇지! 강한 사람은 건강하거든. 건강하면 뭐야? 장수(長壽)의 필수조건이지. 그러니 쉽게 마을 인원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고, 자네 같은 신입들이 요즘 자주 들어와서 인원이 늘어난 것이라네. 이제 좀 알겠나?”
자신의 언변에 만족한 듯 턱을 쓰다듬던 한중석이 뭉툭한 서신 뭉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독고천은 흐릿한 눈을 비비며 서신 뭉치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한중석이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 객잔을 광고하기 위한 광고지(廣告紙)라고 한다네. 우리 같은 업종은 광고만이 살길이지.”
“이 마을의 객잔은 이곳 한 군데가 아니었습니까?”
독고천이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직 마을의 절반조차 보지 못했던 탓이고 또한 중심지부터 들어왔기에 다른 지방 쪽 부분을 놓친 것이 이유였다.
은거괴동은 대(大)라고 하기에는 작은 편이지만, 또 중(中)이라고 하기에는 큰 편이었다.
“그럼 지금 이것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놀란 듯 묻자 한중석이 피식하며 웃더니 말했다.
“당연히 아닐세. 무공도 배우기 전에 죽을 수는 없잖아.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이포후(李浦厚)란 자를 찾아가게. 이곳에서 나간 후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있을 것이야.”
“또 가야 합니까?”
“삼 일 후에 다시 오면 되네. 그럼 삼 일 후에 보세나.”
그 말을 끝으로 한중석과 탁호는 각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탁호는 점소이 의복을 차려입으며 손님들을 맞이했으며 한중석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용히 객잔 안을 둘러보던 독고천은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이포후라는 자를 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어디 가냐?”
청량한 목소리에 독고천이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그곳에는 한원기가 무표정한 채 서 있었다. 그러나 독고천은 어찌나 반가운지 한원기의 손을 마주 잡으며 외쳤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래.”
다른 사람이라면 달라붙지 말라며 걷어차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한원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 무뚝뚝함이 나름 한원기의 매력일 수도 있었다.
독고천과 한원기는 함께 객잔을 나섰다.
원래는 이포후라는 자를 찾아가야 했지만 독고천은 지친 상태였다.
가뜩이나 문무(文武)와 멀리 살았던 존재였는데 갑자기 익숙해질 리가 없었다.
결국 독고천은 한원기와 함께 근처 냇가로 향했다.
촤아―
맑은 물이 흐르며 독고천의 답답한 가슴을 뚫어 주는 것 같았다. 독고천은 풀썩 주저앉으며 한원기에게 말했다.
“선배도 앉으시죠.”
“그래.”
한원기도 따라 앉자 독고천이 피식하고 웃었다. 처음에는 건방진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저 무뚝뚝한 것일 뿐이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독고천은 말없이 냇가를 응시했다.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을 보니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조심스럽게 냇가에 손을 담그자 차디찬 기운이 느껴졌다.
독고천은 머릿속이 상쾌하게 비워지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냇가를 응시하던 독고천이 슬쩍 한원기를 보았는데, 한원기는 그저 독고천의 모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친근하게 말했다.
“선배도 손을 넣어 보시죠. 시원합니다.”
“그래.”
망설임 없이 한원기가 냇가에 손을 집어넣었다.
독고천은 만족한 눈웃음을 지으며 냇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놀라며 외쳤다.
“뭐, 뭐야?!”
한원기의 손을 중심으로 냇가에는 동그랗게 구멍이 생긴 채 물결이 갈라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폭포 중간에 박혀 있는 바위처럼 물결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물이 김을 뿜으며 약간씩 증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陽)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기겁할 일이었다.
단순한 기(氣)로 물을 증발시킨다는 것은 고수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에 속했다.
더군다나 한원기의 손은 꽤나 넓은 지역의 물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독고천이 알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신기에 놀란 독고천이 기겁하며 물었다.
“그, 그건 뭡니까?”
“무공이다.”
“무슨 무공입니까?”
“쟁반신공(錚盤神功).”
무표정하게 한원기가 말을 내뱉자 독고천이 급히 되물었다.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선 우리 집안에는 삼대쟁반이 있다. 백쟁반과 흑쟁반 그리고 현쟁반(賢錚盤)이 있다. 그중에 네가 처음에 들고 넘어졌던 것이 백쟁반이다. 삼대쟁반 중에 가장 가벼운 것이지. 또한 현쟁반을 들기 위한 수련의 과정일 뿐이다.”
오목조목한 한원기의 설명에 독고천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한낱 쟁반을 들었는데 무슨 신공입니까?”
“현쟁반을 들기 위하여 백쟁반과 흑쟁반의 단계를 거치면 저절로 신공이 완성된다.”
그 말에 독고천의 시선이 절로 한원기의 손으로 향했다.
여전히 물은 증발되고 있었고 물결은 갈라져 있었다.
저절로 독고천의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말로만 듣던 무공이라는 것을 보게 되자 흥분한 탓이다. 한원기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던 독고천이 한원기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저, 저도 그걸 익힐 수 있습니까?”
“가능하다.”
나직한 한원기의 말이 독고천의 뇌리를 흔들었다. 한때 독고천은 장사를 해 오면서 이런 상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