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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5화)
第二章 은거괴인(隱居怪人) ―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2)


장사를 하다 보면 괴이한 손님들을 만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무공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놈의 멱살을 쥐어 잡은 채 하늘로 날아가 무인도(無人島)에 던져 놓겠다라는 상상 말이다.
매번 그런 상상을 하면서 헤벌쭉하게 웃었던 독고천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준하는 무공을 실제로 익힐 수 있다는 소리를 듣다니!
“정말이시죠?”
“그래.”
“그럼 몇 년이 걸리셨습니까?”
무공에서의 기한이란 매우 중요하다.
무공의 숙련도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세의 신공이라 할지라도 수련이 부족하다면 삼류무공에도 깨지는 것이 무공이라는 것이다.
독고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한원기는 갑작스런 독고천의 돌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직이 말했다.
“십 년.”
“시, 십 년?”
독고천이 말을 더듬자 한원기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이란 말에 독고천이 혀를 내둘렀다.
십 년 동안 쟁반이나 들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그러나 독고천은 몰랐다.
한원기가 펼친 무공을 십 년 안에 익힐 수 있는 방법이 무림에 알려진다면, 모든 무림인들이 달려들 거라는 것을.
십 년이란 말에 흥미가 식은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우는 시간이 적게 걸리는 무공은 없습니까?”
“있다. 하루 만에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있다.”
한원기의 나직한 말에 독고천이 탄성을 내지르며 한원기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오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탄지공(彈指功).”
“그건 뭡니까?”
갸웃거리며 독고천이 묻자 한원기가 손가락을 펼치며 설명했다.
“손가락에서 기운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말과 동시에 한원기가 손가락을 슬쩍 흔들었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굉음이 터졌다.
콰앙―
독고천은 굉음에 놀라며 시선을 급히 돌렸다.
한원기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던 바위가 박살 난 상태였다.
그 모습에 독고천은 입을 쩍 하고 벌린 채 멍하니 있었고, 한원기는 말을 이었다.
“난 아직 정밀하지 못하다. 탄지공의 극성에 다다르면 파괴력과 압축력은 증가하고 범위는 점점 좁아진다고 들었다.”
“저, 저게 탄지공이라는 것입니까?”
“그래.”
한원기가 하루 만에 익힐 수 있는 무공으로 탄지공을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한원기는 무가(武家)에서 태어났다. 또한 그 무가는 전설적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체계적인 심법과 절세고수인 아버지의 교육이 있었다.
그렇기에 탄지공이라는 신공을 쉽사리 익혀 버린 것이다. 만약 탄지공의 원조 격인 소림사(少林寺)가 안다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소림(少林)은 구대문파(九大門派) 중 수위를 차지하는 명문정파였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림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또한 소림의 고수들 중에서도 사대금강(四大金剛)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고수(高手)의 벽으로 자자했다.
한원기의 대답에 바위와 한원기를 번갈아 보던 독고천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걸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다고요?”
“그래.”
“지금 당장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가능하다.”
워낙 시원시원한 대답에 독고천이 정신을 못 차렸다.
독고천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한원기는 손가락을 슬쩍 굽히며 말했다.
“우선 이렇게 손가락을 굽히고…….”
한원기의 말에 멍하니 있던 독고천이 재빨리 흉내 냈다. 그러자 한원기가 손가락을 쭈욱 하고 폈다.
독고천도 한원기를 쫓아서 손가락을 폈다.
그러자 한원기가 말했다.
“단전에 있는 기를 끌어올려서 손가락으로 모아라.”
조용히 한원기의 말을 곱씹던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의 통제란 어려운 편이었다.
가뜩이나 독고천은 기라는 것을 느껴 보았을 리가 없었다.
독고천의 반응에 잠시 고심하는 듯했던 한원기가 진지하게 말했다.
“단전에 있는 기를 끌어올린 후 손가락으로 소변을 본다고 생각해라.”
“소, 소변이요?”
“그래, 한곳에 모은 후 발사하듯이.”
진지한 한원기의 말에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집중했다.
소변을 본다, 소변을 본다 하며 한참 동안 말을 곱씹던 독고천이 짜증내며 외쳤다.
“안 됩니다!”
“잠깐 와 봐라.”
한원기가 손짓으로 오라는 시늉을 하자 독고천이 자세를 접고는 다가갔다. 그러자 한원기가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독고천이 풀밭에 털썩 하고 주저앉자 한원기가 독고천의 목덜미에 손을 대었다.
한원기의 손은 서늘했는데 갑자기 그 손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독고천에게 들어왔다.
독고천은 놀라며 움찔거렸지만 한원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고천의 몸에 침범한 따뜻한 기운은 독고천의 온몸을 구석구석 들고 나서야 사라졌다.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자 독고천은 내심 아쉬웠다. 포근한 느낌에 잠이 솔솔 왔던 탓이다.
어느새 손을 뗀 한원기가 독고천을 일으켰다.
독고천은 알지 못할 기운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몸 안에서 무언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었고, 한층 상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독고천은 몸이 날아갈 것같이 가벼워짐을 느끼고 놀라며 한원기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한원기가 설명했다.
“내 기(氣)를 주었다. 어느 정도 탄지공을 할 수 있을 거다.”
만약 한원기의 아버지인 한중석이 이 소리를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고혈압에 쓰러질 일이었다.
전설의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구하여 한원기에게 먹였고, 한원기의 피는 그야말로 보약이었다.
또한 단전에는 풍부한 기가 항상 맴돌고 있었고, 웬만한 명문고수(名門高手) 부럽지 않은 순수한 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기가 순백의 상태인 독고천에게 들어온 것이다.
우선 무공수련에서의 시작이란 매우 중요했다.
탁한 기운을 받기 시작하면 수련은 늦어지게 마련이고 기를 통제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물론 나중에 절대(絶對)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고수가 된다면 탁한 기운을 자의적으로 뽑아 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누가 굴러들어 온 복을 마다하리.
앞으로 탁한 기운이 들어온다 해도 한원기의 기운에 의해서 녹아 버릴 것이며, 독고천의 몸은 본능적으로 순수한 기운만을 받아 낼 것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독고천의 단전에서 맴도는 영약의 기운은 앞으로 순수한 기운만을 모을 것이었다.
한마디로 기연(奇緣)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넘치는 감이 있었다. 그러나 독고천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있겠는가. 아니, 알더라도 신경을 쓸지 의문이었다.
한원기의 설명에 약간 어리둥절하던 독고천이 한원기를 믿기로 했다.
독고천이 호사가들에게 무림인에 대해서 들은 것 중에 한 가지가 무림인들은 자신의 기운은 매우 소중히 여긴다고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피붙이에도 안 준다고 소문난 기를 오늘 처음 본 자에게 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처음에는 나이 때문에 선배로 모셨지만, 독고천은 한원기에게서 흘러나오는 대협(大俠)의 풍모에 반해 가고 있었다.
“그럼 해 보겠습니다.”
조용히 몸 안에 흐르는 기를 느끼던 독고천이 조심히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손을 쭈욱 하고 펴고는 손가락을 굽혔다. 손가락을 굽혔던 독고천이 빠르게 손가락을 피며 한원기의 말을 되새겼다.
‘소변처럼!’
콰앙―
굉음과 함께 터지자 독고천의 벌어진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박살 나진 않았지만 바위의 일부분이 깨지며 파편이 주위에 흩날렸다.
놀란 눈으로 바위와 자신의 손가락을 번갈아 보던 독고천이 외치듯 중얼거렸다.
“……이것이 탄지공?!”
“그래.”
용케 독고천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한원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천은 멍하니 손을 떨고 있었다.
희열이라는 것이 이것일까.
워낙 오랜만에 느껴지는 희열 탓에 독고천은 정신을 못 차렸다.
그저 손가락과 파편이 부서진 바위를 번갈아 쳐다보며 탄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조용히 그것을 지켜보던 한원기가 나직이 말했다.
“기를 잘 통제하는군.”
“하하, 그렇습니까?”
허탈한 혹은 기쁜 웃음을 터트리며 독고천이 되물었다. 한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독고천이 정신을 되찾았다. 급히 달려가 깨진 바위를 만지작거리던 독고천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이걸 제가 해낸 거란 말이죠?”
“그래.”
확인 차 내던졌던 질문에 한원기가 긍정의 대답을 내놓자 독고천이 두 팔을 하늘로 추켜올리며 외쳤다.
“하하하, 난 고수(高手)가 되었다!”
미친 듯 광소(狂笑)를 터트리며 웃는 독고천에게 한원기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
“하하, 정말 감사드립니다.”
독고천이 한원기의 손을 마주 잡으며 절까지 하려는 시늉을 했다. 한원기는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연신 손가락을 까닥거리더니 주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환호성을 내질렀던 독고천은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가끔 헛기침을 해 가며 몇 마디 헛소리를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험험, 진정한 고수는 위엄을 지녀야 하는 법.”
“당연하다.”
한원기는 묵묵히 맞장구를 쳤다. 한참 동안을 자화자찬하던 독고천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마주쳤다.
“아, 맞다! 한원기 선배님, 이포후라는 분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그래.”
“그럼 안내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래.”
옛날의 독고천이었다면 단순해 보이는 한원기를 부려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진정한 선배로서 모시고 있었다.
어렴풋이 독고천은 느꼈던 것이다.
한원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대협의 풍모를.
“따라와라.”
나직한 한원기의 말에 독고천은 그 뒤를 쫓았다.

***

“다음 손님!”
푸줏간 안에서 두툼한 몸집의 소유자인 중년인이 외쳤다. 중년인의 눈썹은 송충이같이 진했고 몸은 살집이 붙어 있어 통통해 보였다.
마치 황소 같았는데 사람이 부딪친다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힘 있는 움직임에 도움이 될 듯싶었다.
“어서 오십, 응? 원기가 아니냐.”
접대용 미소를 지우며 중년인이 청년과 소년을 번갈아 보며 부르듯이 말했다.
그러자 원기라고 불린 소년이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그런데 무슨 일로? 고기를 사러 온 것이 아니라면 빨리빨리 비켜 줘라.”
중년인의 말에 그것을 농이라고 파악한 청년이 웃었다. 그러나 농(弄)이 아니었는지 중년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러자 한원기가 중년인에게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독고천이라는 후배입니다.”
“아, 그 새로 왔다는?”
“네.”
한원기의 말에 중년인이 곁눈질로 독고천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이포후(李浦厚)라고 한다. 보다시피 고기를 팔고 있지.”
“전 독고천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독고천이 정중히 말하자 이포후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앞으로 나한테 일거리를 배울 놈이 이렇게 힘이 없어서야……. 쯧쯧. 다시 외쳐 봐라. ‘네!’ 해 봐.”
“넷!”
힘 있게 독고천이 외치자 이포후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독고천의 어깨를 툭툭 하고 쳤다.
대장부 같은 이포후의 모습에 독고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런데 갑자기 이포후가 들고 있던 식칼을 독고천에게 쥐어 주었다.
식칼은 이포후의 덩치만큼 두툼했으며 날이 잘 서 있었다.
이포후가 입고 있던 작업복까지 벗으며 말했다.
“자, 시작하자.”
“……뭐를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식칼을 쥔 채 멍하니 묻자 이포후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하고 치며 말했다.
“당연히 일 아니겠냐. 자고로 남자라면 게으름이란 없어야 하지. 암.”
자신의 말에 만족한 듯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포후였다. 결국 독고천은 자신의 고생길을 다시 엿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독고천은 근성이 있는 편이다.
또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식칼을 움켜쥐며 외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호, 좋다. 남자답구먼.”
이포후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자신의 가슴을 치며 환호성을 외쳤다. 그러자 푸줏간 옆의 건물에서 갑자기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중년의 향기가 넘쳤고 매력적인 눈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뺨에는 검상이 나 있어 여인치고는 험악해 보였다.
여인의 두툼한 입술에서 상소리가 나왔다.
“야, 조용히 안 해? 저거 또 시작이네.”
여인이 이포후를 노려보며 말하자 독고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이 봐도 험악해 보이는 인상과 멧돼지처럼 커다란 덩치를 지닌 이포후에게 상소리라니.
짧은 만남이지만 이포후의 성격을 파악하고 추측해 보자면, 아마 여인에게 달려들지도 몰랐다.
그러한 생각까지 다다르자 독고천이 급히 이포후를 말리려 했다. 그런데.
“여보, 언제 나왔어?”
이포후가 비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여인이 이를 갈며 외쳤다.
“이그, 저 원수. 저놈은 또 뭐야?”
여인이 갑자기 독고천을 가리키며 외치자 이포후가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 누구야. 새로 온 애인데 독고 머시기라고 해.”
“자, 잘 부탁드립니다. 독고천입니다.”
이포후의 반응에 멍하니 있던 독고천이 급히 인사를 하자, 여인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포후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본 후 여인은 한마디를 남긴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똑바로 해. 지켜보고 있다.”
여인이 들어가자 이포후가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가슴을 살짝 쳤다. 그리고 독고천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러냐?”
독고천은 조용히 이포후의 눈을 직시했다. 그것이 지속되자 이포후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뭘 봐, 빨리 일 안 해?”
“무엇을 할지 가르쳐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독고천의 지적에 이포후가 애써 수습하려 외쳤다.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알아서 해 봐!”
그러나 서서히 독고천의 시선에 이포후의 자존심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곁눈질로 독고천을 흘겨보던 이포후가 여인이 들어간 건물을 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거참, 여보야도 왜 그때 나와 가지고…….”
이포후라는 대장부의 슬픔은 짙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고천의 같잖다는 시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