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은거괴동 1권(6화)
第二章 은거괴인(隱居怪人) ―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3)
그 시선을 의식한 이포후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갑자기 성을 내며 외쳤다.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
“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오히려 이포후가 성을 내자 독고천은 손을 내젓더니 당황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포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이놈아,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나의 포부를 잠시 접어서 가정이 영원히 평화스럽다면 얼마나 좋은 거래냐, 응?”
이젠 연설까지 하려는 기세에 독고천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포후의 의견에 동조했다.
“당연하죠! 선배님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힘을 못 쓰셔서 봐주는 것도 아니고, 가정 때문이라는데 그 누가 선배님을 욕하겠습니까?”
“그, 그렇지?”
“당연합니다. 전 선배님의 그런 깊은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로 안 지 얼마나 됐다고 독고천이 이포후에 대해서 극찬을 떠들자 이포후가 탄성을 내질렀다.
“나도 네놈을 봤을 때부터 네놈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이포후가 감탄한 듯 표정을 지으며 독고천의 어깨를 툭툭 하고 내려쳤다. 마치 그 모습은 전쟁터에서 승승장구해 온 장군을 격려하는 황제 같았다.
잠시 독고천을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이포후가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우선 이곳에 온 이상, 기술을 익혀야겠구나.”
진지한 이포후의 모습에 독고천도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드디어 분위기가 잡히자 이포후가 독고천에게 주었던 식칼을 다시 빼앗더니 자세를 취했다.
몸집이 두툼한 자가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식칼을 앞으로 들이 내민 모습은 강도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포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선 칼을 쥐는 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편한 방법으로 쥐면 된다. 거창하게 손안[手內]이니 뭐니 하고 떠들지만 최고는 단 한 가지다. 자기에게 맞추는 것,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지.”
이포후의 말에 독고천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포후가 식칼을 내려놓더니 바지춤을 움켜쥐며 진지하게 물었다.
“바지춤의 끈은 심하게 얽혀 있고, 넌 변소에 가고 싶다. 어떤 상황이 연출되겠느냐?”
“끈을 풀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렇다. 그럼 그 끈을 소변이 나오기 전에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대한 빠른 손놀림이 필요하겠지요.”
독고천이 거침없이 대답하자 이포후가 탄성을 내지르며 독고천의 어깨를 쳤다.
“크하, 대단하구나. 정확하다. 그런데 만약 그래도 끈이 안 풀린다면? 거기다 당장 쌀 것 같다면?”
“흠…….”
이포후의 되물음에 독고천이 고심에 빠진 듯했다.
그러다 깨달은 듯 외쳤다.
“바지를 찢어 버리겠습니다.”
“정확하다! 바로 그거다. 바지춤의 끈을 최단 시간에 풀 수 있는 빠른 손놀림과 풀어지지 않는다면 바지조차 찢어 버리는 거침없는 손놀림이야말로 바로 칼에 필요한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이포후의 설명에 독고천의 머리가 순간 멍해진 듯싶었다.
언뜻 검(劍)이라는 것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던 독고천이었다.
그런데 이포후라는 자의 가르침은 머릿속에 구멍이라도 뚫었는지 시원스럽게 물밀듯 들어오고 있었다.
또한 비유마저 살이 떨릴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명문정파에 속한 검객들은 자존심을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이포후라는 자처럼 민망한 비유를 할 리가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할런지 의문이었다.
거침없이 말을 토해 내던 이포후가 말을 이었다.
“명가(名家)에서는 머리 아픈 이야기만을 내뱉을 것이다. 무슨 나비의 표홀함이니 뭐니, 태산의 묵직함이니 뭐니, 다 필요 없다. 간단한 것이 최선이자 최고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독고천이었지만 한편으론 의심이 갔다.
명가라는 것은 실력이 인정된 가문들을 뜻한다.
즉 무림(武林)이라는 곳에서 무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명성 또한 높은 자들임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이포후라는 자는 그들의 가르침을 무시할 정도로 뛰어난 고수일까라는 생각이 독고천의 머릿속에 작게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내 말을 의심하는 거냐? 물론 의심되겠지. 뭐 이따위 황소 같은 놈이 무슨 검을 쓴다고, 그렇지?”
이포후의 날카로운 지적에 독고천이 뜨끔해하자, 이포후가 털털하게 웃으며 독고천의 어깨를 내리쳤다.
“하하하, 다 알고 있다. 나도 말로만 떠드는 놈들을 싫어하지. 직접 몸으로 보여 주마.”
말과 동시에 이포후가 식칼을 쥐며 자세를 낮추었다. 식칼에는 아직 육향이 배여 있어 우스운 모습이었지만 이포후의 표정은 진지했다.
식칼을 쥔 이포후의 오른손이 살짝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표홀했다.
휙휙―
흔들리던 오른손이 갑자기 기가 막힌 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워낙 빠른 속도에 독고천이 기겁할 정도였으며 심지어 이포후의 손이 네 개로 보일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최단 시간에 끈을 풀 수 있는 빠른 손놀림이다! 그리고…….”
힘 있게 외쳤던 이포후가 말을 흐리더니 갑자기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었다. 정적이 주위를 맴돌았다.
아까 이포후가 손님이 많아 가게가 바쁜 척을 했지만, 실상 가게에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마을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위치이기에 돌아다니는 자들도 적었다.
간혹 지나가던 노인들이 ‘쯧쯧, 저놈 또 시작이군’ 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지나갈 뿐이었다.
멈추었던 이포후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쪽은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이었는데 아무리 거한의 이포후라도 맞부딪치면 성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독고천은 뭐라 외치려 했지만 이포후의 묵직한 기운에 절로 입이 막혔다.
미친 듯이 달려가던 이포후가 식칼을 쥔 오른손을 뒤로 젖히더니 힘 있게 바위를 향해 옆으로 휘둘렀다.
스윽―
무언가 스쳐 가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바위를 살펴보던 이포후는 자세를 거둔 채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독고천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거창한 시작과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독고천이 급히 입을 열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두두둑―
멀쩡했던 바위가 비스듬한 횡(橫)으로 갈라지며 반으로 쪼개졌다. 그 앞으로 이포후는 꾸준히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갈라진 바위를 보고는 독고천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걸어오던 이포후가 독고천과 지척에 다다르자 씨익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그 내용은 왜인지 모르게 이 멋진 상황과 안 어울리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지조차 찢어 버리는 거침없는 손놀림이다.”
멍하니 입을 벌린 독고천을 보자 다가오던 이포후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의 무위에 취한 독고천의 반응 때문이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던 독고천이 이포후에게 사정하듯 물었다.
“저, 저도 배울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우선 넌 입문자이니 기(氣)도 익혀야 할 것이고 검에 익숙해져야겠지.”
“기, 말씀이십니까?”
독고천이 되묻자 이포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그래, 사람의 복부 아래에는 단전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기가 쌓이는데 그것을 사용하여 무공의 위력을 높이는 것이지.”
자신의 단전을 가리키며 이포후가 설명하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전 단전에 기가 가득 차 있는데요?”
“하하, 기막힌 농담(弄談)이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포후가 독고천의 등을 시원스럽게 후려치며 말하자, 독고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있다니까요?”
“거참, 사람이란 말이다, 농담도 정도껏 해야…….”
이포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고천이 이포후의 손을 부여잡고는 자신의 단전에 대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이포후가 놀랐지만 아니라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쯧쯧 하고 차려 했다. 그런데.
“응……? 이게 다 뭐다냐?”
보통 무림인이란 혈도를 통하여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단전에 손을 대어 기의 느낌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독고천이 이포후의 손을 자신의 단전을 만지도록 한 것이다.
단전을 만지던 이포후의 눈은 서서히 커져 갔다.
이포후는 넘실거리는 기운을 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장강(長江)과도 같은 세찬 물결이 이포후의 손을 간질이고 있었다. 거셀 뿐만 아니라 정갈했다.
마치 또 하나의 작은 자연(自然)이 독고천의 단전에 자리 잡은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포후가 당황했는지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그러자 독고천이 사정을 말했다.
탄지공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한원기가 자신의 몸에 기운을 넣어 줬다고 말하자 이포후가 갑자기 성을 냈다.
“이놈! 내가 좀 나누어 달라고 할 때는 안 주더니! 크흑.”
그랬다. 한원기의 단전은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의 아버지인 한중석이 한원기를 절세의 고수로 키우기 위하여 소문난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구한 뒤 한원기에게 먹였고, 손수 벌모세수(伐毛洗髓)까지 해 준 일화는 상당히 유명했다.
벌모세수란 무공을 익히기 위해 최적의 몸을 만들기 위한 의식이다.
물론 타인이 해 주어야 하고 그 타인이 최소한 고수(高手) 소리는 들어야 가능한 것이 벌모세수였다.
이포후가 갑자기 성을 내자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자 이포후는 아쉬운 표정을 지은 채 독고천의 단전에서 손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한 모습에 독고천이 물었다.
“그럼 이제 검에 익숙해지면 되겠지요?”
“그렇게 되는구나.”
이포후가 씨익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 갑작스럽게 주위가 어두워졌다. 독고천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붉은 태양이 산에 가려져 있었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한숨 자고, 내일 당하천(唐河泉)이라는 놈에게 찾아가 봐라.”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북서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밭이 나올 텐데,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포후의 설명에 독고천이 탄성을 내질렀다. 커다란 밭에 사는 자라면 처음에 만났던 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자의 이름은 차호월(叉號越)이었다. 당씨가 아니었던 것이다. 독고천이 물었다.
“그런데 그분의 성함이 차호월 아닙니까?”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이포후가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마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러자 오히려 독고천의 호기심이 증폭되었고 이포후는 결국 사연을 말했다.
“그놈의 본명은 당하천이 맞다. 그런데 그놈은 한 달에 한 번씩 이름을 바꾸지. 청목 선배님이야 그놈 취미에 맞춰 주시지만 난 그냥 당하천이라 부르고 있지.”
“그렇군요. 특이한 취미네요.”
“특이 정도가 아니야. 미친 거지.”
이포후가 이를 갈며 당하천을 욕하자 독고천은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포후가 앞장서며 손짓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그렇게 이포후와 독고천은 파리만 날리던 가게를 문 닫고 이포후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독고천과 이포후를 기다리는 것은 푸짐한 밥상이었다.
마치 손님을 고려했다는 듯이 화려했다.
이포후는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었고, 독고천도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푸짐했지만 수는 적었다.
수(數)보단 양(量)이랄까. 독고천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자 어느새 다가온 홍의 여인이 물었다.
“맛이 어때?”
대답을 안 하면 당장 목덜미를 칼로 내려칠 기세였다. 순간 이포후의 말이 독고천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아내가 맛있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맛있다고 해. 안 그러면…… 넌 죽어.’
이포후의 살벌한 말이 뇌리를 스치자, 무난하다고 말하려던 독고천은 순식간에 말을 바꾸며 말했다.
“마, 맛있습니다.”
“그렇지?”
“네.”
긍정의 대답을 듣자 홍의 여인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여인은 진소화(陳蘇華)였다.
이포후의 아내이자, 검객(劍客)이었다. 심지어 이포후의 쾌검술을 능가하는 무서운 검술의 소유자였다.
그 사실을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포후에게 듣고 난 후에는 독고천은 조심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저녁을 먹던 독고천은 그릇을 비우자, 가득 찬 자신의 배를 톡톡 치며 말했다.
“아, 잘 먹었습니다.”
“더 먹어.”
그 순간 또다시 이포후의 말이 독고천의 뇌리를 스쳤다.
‘만약 아내가 더 먹으라고 하면 무조건 먹어. 안 그러면…… 넌 죽어.’
다시 한 번 살벌한 말이 떠오르자, 고개를 내저으려던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발하게 말했다.
“예, 더 주십시오.”
“잘 먹네. 잘 먹어야 우리 남편처럼 듬직해지지.”
진소화가 기분이 좋은지 옆에 있는 이포후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포후는 헤벌쭉하고 웃었다.
독고천은 다섯 그릇을 더 먹고서야 진소화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났다.
모두 잠자리에 들고, 독고천은 침상에 누운 채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다.
생전 모르는 자신을 재워 주고 밥도 먹여 주고, 심지어 무공까지 가르쳐 준다.
은거괴동, 처음엔 이름 때문에 괴이하다고 느껴졌지만 이제는 정이 갈 정도였다.
아직 진정한 무공을 배우진 못했지만 단전에서 요동치는 기운이 독고천, 그의 자신감을 채워 주고 있었다.
문뜩 독고천이 자신의 손을 올렸다.
쟁반을 받치던 손의 피부가 까져 있었다.
또 식칼을 쥐었던 주름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던 독고천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서서히 독고천은 몽마(夢魔)에 빠져들었다.
달은 밝았으나, 유난히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