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은거괴동 1권(7화)
第二章 은거괴인(隱居怪人) ―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4)
곤히 잠에 빠져 있던 독고천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이포후와 진소화는 이미 잠자리에서 없어진 상태였다.
독고천은 옷을 차려입고는 밖으로 나섰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몸을 간질이자 독고천은 졸음이 확 가시는 것을 느꼈다.
“나왔냐?”
독고천이 나오자 이포후가 씨익 하고 웃으며 손짓했다. 독고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포후와 진소화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독고천은 대련이라는 것을 기대해 보았지만 어느새 몸을 다 풀었는지 진소화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목을 까닥이던 이포후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원기가 왔더구나.”
그 말에 독고천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 한원기가 졸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독고천은 반가워하더니 한원기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반갑습니다.”
“그래.”
졸린지 하품을 하는 한원기를 보자 독고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무림인은 대체적으로 수면 시간이 적은 편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 가며 수련을 하는 탓도 있지만 기라는 것이 사람의 피로를 잠재워 주기 때문이다.
하품을 쩍쩍하는 한원기에게 독고천이 궁금하듯 물었다.
“늦게 주무셨습니까?”
“그래.”
“언제 주무셨는데요?”
“저녁 먹고.”
한원기의 나직한 대답에 독고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치듯 말했다.
“일찍 주무셨네요!”
“아니, 저녁 먹은 후에는 원래 자는 시간이고 점심때 한 번 자야 했는데 못 잤다.”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챈 독고천이 입을 닫았다. 어차피 중요치 않은 문제이기에 대충 넘어간 것이다.
어쨌든 독고천은 한원기가 반가웠는지 연신 입을 쉬지 않고 떠들었다.
이포후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진소화의 무서움 등을 말이다. 뒤에 있던 이포후가 독고천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한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원기를 쫓아가면 당하천을 볼 수 있을 거다.”
“어제와 오늘 감사했습니다.”
독고천이 정중히 인사하자 이포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장비를 챙겨 오고는 인사를 하고 푸줏간 쪽으로 사라졌다.
“난 일 때문에 먼저 가 봐야겠다. 수고해라.”
이포후가 사라지자 한원기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자.”
“그런데 당하천 선배는 어떤 분이십니까?”
독고천이 한원기의 뒤를 쫓으며 묻자, 한원기가 하품을 했다.
워낙 큰 하품이라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입을 닫은 한원기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우선 암기와 독(毒)에 대해서는 이 마을의 최고이시다.”
“암기와 독이요?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암기는 무림에서 비겁한 수법이라고 들었는데요?”
독고천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고천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우선 무림에서 암기란 기습할 때 자주 애용했다.
그렇기에 비겁한 수법으로 인식되어진 것이며, 살수(殺手)들이 자주 사용했기에 그런 인식이 박힌 것이었다.
독고천의 물음에 한원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겁하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독고천이 입을 벌렸다.
자신이 말해 놓고도 뜨끔했던 독고천이었다.
아무리 암기가 비겁하더라도 그것을 쓰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선배가 아닌가.
그렇기에 한원기가 화를 내며 옹호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동조해 버린 것이다.
긍정의 반응을 보이던 한원기가 말을 이었다.
“몰래 던진다면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원기의 말에 독고천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한원기가 나직이 말했다.
“당하천 선배는 암기를 몰래 던지시지 않는다.”
“그럼……?”
“그래, 던지기 전에 말하신다. 어디 쪽으로 암기를 던지겠다고.”
나직한 한원기의 말에 독고천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암기가 왜 위협적인가.
사각지대, 즉 자신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공격해 오기에 암기가 위험한 것이다.
또한 암기는 매우 작기 때문에 육안로 구별하기 어려웠다.
무림에서 알아주는 고수라 할지라도 암기를 두려워했고, 항상 암습에 대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암기를 던지기 전에 미리 알려 준다니?
“그럼 누구든지 피할 것 아닙니까?”
그랬다. 어디론지 날아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독고천, 자신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암기가 어디서, 어디로 날아오는지를 몰라서 당할 뿐이지 모든 것을 안다면야 무용지물이었다.
그것이 독고천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그런데 그분이 무림에서 활동하실 때…….”
웬일로 한원기가 말을 끌었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말을 끌던 한원기가 하품을 한 번 더 하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그 암기를 피한 사람이 없었다.”
“단 한 명도?”
“단 한 명도.”
단호한 한원기의 대답에 독고천이 충격을 받았는지 휘청거렸다.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기인이사(畸人異士)가 많다고 소문난 무림이다.
그 정도로 많은 고수가 즐비했으며 천지(天地)를 진동시키는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림인 중에서 암기를 피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암기술인 것이다.
긴장했는지 독고천이 혀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흥분으로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고수에게 무공을 배울 생각을 하니 독고천의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을 가득 싣고는 독고천이 조심히 물었다.
“그럼 그분은 무패(無敗)십니까?”
“아니, 우선 우리 아버지에게도 한 번 깨졌고, 청목 선배한테도 깨졌고 촌장님께도 깨졌고…….”
한원기가 손가락으로 당하천이 패한 숫자를 세는 듯하자 독고천이 손을 내저으며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분의 암기를 피한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무슨……?”
“암기로 맞춘다고 이기진 않는다.”
시원하고 통쾌한 한원기의 대답에 흥분으로 불타오르던 심장이 팍 하고 식어 버린 독고천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입을 벌린 채 독고천이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요. 하하. 암기로 맞춘다고 이기진 않지요. 하하.”
혼자서 히죽히죽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독고천의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사에 해탈(解脫)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독고천 일행이 잡담을 하며 꾸준히 걸어가자 서서히 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번 보았던 밭이었지만, 밭의 거대한 크기에 독고천이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전에 보았던 청의 중년인은 나무 의자에 척 하니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던 청의 중년인이 독고천 일행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왔구나.”
“안녕하십니까? 전에 한번 뵈었지요. 독고천입니다.”
한원기 뒤에 서 있던 독고천이 정중히 말하자 청의 중년인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청의 중년인의 시선은 한원기에게 향했는데 무언가 반응을 원하는 모습이었다.
무심히 서 있던 한원기가 나직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오오, 원기가 왔구나. 한중석 선배님은 잘 계시고?”
“예.”
한원기가 나직이 대답하자 갑자기 청의 중년인이 헛기침을 했다. 부자연스러웠지만 청의 중년인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험험, 그…… 소연 소저는 잘 계시냐?”
한원기는 늦둥이 막내였다.
우선 한원기에게는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있었다.
그중에서 첫째 누나는 어느새 나이가 사십 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다운 매력이 있고 쾌활한 여인이었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콧대가 높다는 것. 그것이 한원기의 첫째 누나, 한소연이 미혼인 채 사십 줄로 향하고 있는 원인이었다.
청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묻자 한원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누님이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심한 한원기의 말투에 청의 중년인이 진저리를 쳤다. 물론 감정이 있어서 그런 말투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매번 들어 온 한원기의 무심한 말투였지만, 들을 때마다 청의 중년인은 진저리를 치곤 했다.
“우선 며칠 전에 당하천 선배님이 몰래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머릿속에 새겨 놓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훔쳐 간 속곳을 내놓으라고 하시며, 누님께서 소리를 지르시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대충 제가 이해한 만큼 전해 드리자면 야, 이놈의…….”
“잠깐!”
당하천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한원기의 설명을 중지시켰다. 한원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당하천을 쳐다보았고, 당하천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보는 눈이 많았다.
지나가던 노인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독고천 일행을 비롯해 당하천을 흘겨보고 있었다.
말[言]은 말[馬]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손을 내저으며 비굴한 표정을 짓던 당하천이 헛기침을 하더니 점잔 빼며 한원기에게 말했다.
“험험, 우선 누님께 관심을 가져 주신 점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게. 그리고 소식을 전해 준 점 고맙네.”
“예.”
한원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하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독고천과 당하천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독고천은 가볍게 웃었고, 당하천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 이놈이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깨질 대로 깨진 당하천의 평판이었지만, 그 이상은 곤란했다.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던 당하천이 애써 침착하며 독고천에게 말했다.
“촌장님께 들었네. 비록 힘들겠지만 잘 참는다면 본인과 같은 암기술과 독의 고수가 될 수 있을 걸세.”
자화자찬도 유분수였다. 그러나 당하천은 당당한 표정을 지었고 독고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반응에 당하천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자신의 자화자찬은 상대방의 성격과 됨됨이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픈 마음도 조금 있었지만.
그런데 그러한 시험에 독고천은 아무런 반응 없이 묵묵히 넘어갔다.
예전에 왔던 신입은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서, 신입이 먹는 밥에 몰래 맹독을 뿌려 놓은 적이 있는 당하천이었다.
당하천이 묘한 눈길로 독고천을 지켜보고 있자 한원기가 끼어들었다.
“전 점심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소연 소저께 안부 좀 전해 주고.”
한원기는 고개를 나직이 끄덕이며 서서히 모습을 감추었다. 한원기가 사라지자마자 당하천의 표정이 당당해졌다.
마치 대군을 아우르는 장군처럼 표정은 진중했고 패기가 넘쳤다.
당하천이 품속에서 암기를 꺼내더니 말을 꺼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암기입니다.”
독고천이 쉽다는 듯이 답하자 당하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다른 것을 꺼냈다.
화려한 색을 지닌 적화(赤花)였는데 뿌리째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언뜻 보면 화려한 나비의 날개와도 같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붉은 꽃입니다.”
“반은 맞았다. 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독초(毒草)다. 적접몽초(赤蝶夢草)라고 하지. 마치 나비와 같이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무시무시한 독초다.”
당하천이 으스스하게 말하자 독고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초의 효과는 뭡니까?”
“너는 뭐라 생각하느냐?”
당하천이 되묻자 독고천이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적접몽초를 훑어보았다.
날카로운 봉우리가 현란한 색을 지니고 있었고 봉우리 안에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잠시 적접몽초를 살펴보던 독고천이 당차게 말했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독초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건가?”
“그렇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독고천이 시원스럽게 답하자 당하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워낙 단호한 모습에 대답한 독고천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당하천이 적접몽초를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은 안 하나?”
“…….”
당하천의 물음에 독고천이 침묵을 지키자 당하천이 말을 이었다.
“적접몽초의 봉우리에서 나오는 액을 가공한 후 사람에게 먹이면, 그 사람의 머리 안에 구멍이 뚫려 버린다. 즉 있어 보이는 말로 하자면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빠지게 되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바보천지가 되는 거지.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다. 적접몽초는 독초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최고의 영약(靈藥)이다. 몸을 철(鐵)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어 도검(刀劍)에도 끄떡없을 정도다.”
“무섭군요.”
한참을 듣던 독고천이 신음을 내뱉으며 말하자 당하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천이 다시 한 번 적접몽초를 흘겨보았다.
아까는 단순한 화려한 꽃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무서운 독초로 보였다.
독고천이 적접몽초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자 당하천이 가볍게 웃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러한 독초를 악용하는 자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독초가 민간인에게 해를 끼칠 수 없도록 독(毒)에 대해서 배울 것이다.”
진중한 모습의 당하천의 뒷모습에선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후광(後光)의 효과였을까.
독고천의 시야에는 아까와는 달리 당하천의 모습이 거대해 보였고 한없이 높아 보였다.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당하천이 독고천의 환상을 무참히 깼다. 아주 간단하게.
“참, 소연 소저에 관한 거 비밀이다?”
당하천은 말을 꺼내고도 민망한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부터 가르쳐 주고 싶은데, 오늘은 가야 할 곳이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찾아가 봐야 하는데……. 아니지. 같이 갈래?”
당하천의 물음에 독고천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자 당하천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