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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8화)
第二章 은거괴인(隱居怪人) ― 그래, 나 공처가(恐妻家)다! 불만 있냐?(5)


그리고 기다리던 새벽이 찾아왔다.
새벽이 되자, 아직까지 어두컴컴한 어둠이 즐비했고 그나마 밝은 달이 대지를 내리쬐고 있었다.
당하천의 뒤를 쫓고 있던 독고천이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흠흠, 우선 네 녀석에게 무림의 살벌함을 알려 주고 싶다. 그리고 네 녀석의 순발력과 재치를 알고 싶기에 이런 수련을 하는 것이다.”
당하천의 진지한 모습에 독고천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당하천이 도착한 곳은 폭포였다.
작은 폭포였지만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폭포가 가까워지자 당하천이 독고천에게 손짓하며 조용하라는 시늉을 했다.
독고천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 순간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파직―
“누구야!”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무언가가 날아왔다. 가공할 속도에 독고천은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꽈직―
그것은 암기였다. 독고천 한 치 옆에서 암기가 나무에 박힌 채 떨리고 있었다.
꿀꺽―
독고천은 침을 삼키며 자신의 귓등을 훑었다. 옅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하천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짓했다.
‘조심해라.’
독고천은 생명의 위협을 확실하게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인기척이 느껴졌다.
폭포에서는 여자다운 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독고천이 기겁하며 당하천을 훑었지만, 당하천은 넋을 잃은 채 폭포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황한 독고천이 당하천의 등을 툭 쳤다. 당하천이 짜증을 내며 조용하라는 시늉을 했다.
‘조용히 해!’
‘여긴 도대체 왜 온 겁니까?’
독고천의 시늉을 당하천은 단호히 무시하며 폭포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여인은 폭포 아래서 목욕을 하는 중이었다. 결국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눈이 갔다.
역시 독고천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애써 시선을 당하천으로 옮기며, 당하천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갑자기 당하천이 무언가를 쥐고는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독고천은 깜짝 놀라하더니 헛바람을 들이키며 당하천의 뒤를 급히 쫓았다.
엄청난 당하천의 속도에 독고천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당하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헉헉.”
독고천이 헉헉거리며 멈춰 있는 당하천 앞에 도달했다. 당하천이 무언가를 급히 품속에 집어넣으며 독고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구나. 나를 쫓아오다니. 시험 합격이다.”
“도대체 왜 그곳에 간 겁니까!”
“시험이었다.”
나직한 당하천의 말에 독고천이 눈을 갸름하게 떴다. 그러자 당하천이 헛기침을 하며 짐짓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휴.”
한숨을 내쉬며 독고천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하천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다음 녀석한테 가면 될 것이다.”
“다음 분이요?”
독고천이 묻자, 당하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녀석은 무공 하나는 기가 막히게 가르쳐 주지. 물론 생명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당하천이 마지막 말을 흐리자 독고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히 듣지 못했던 탓인데 당하천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가리킨 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전각 같은 것이 나올 텐데 흑색일 게다. 그곳에서 천선우(穿仙羽)를 찾으면 될 게야.”
“예, 감사합니다.”
당하천이 만족한 미소를 짓더니 배웅했다.
“잘 가라.”
“꼭…… 빨리 사라지라는 말투 같습니다?”
“험험, 그럴 리가? 새로 온 동생 같은 녀석이 하루빨리 무공을 익혔으면 해서 그런 거지.”
독고천의 지적에 뜨끔했던 당하천이 털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증거도 없이 계속 물고 늘어질 순 없어서 독고천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당하천을 훑었다.
그러자 당하천이 슬쩍 움찔거리며 자신의 가슴팍을 손으로 살짝 가렸다.
“아까 넣었던 그건 뭡니까?”
독고천이 무심코 묻자 당하천이 소스라치듯이 놀라며 가슴팍을 움켜쥐더니 외쳤다.
“넌 몰라도 된다! 빨리 안 가?”
그러한 당하천의 반응에 독고천이 피식하고 가볍게 웃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자 당하천은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독고천은 슬쩍 뒤를 흘겨보더니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무림인을 보기만 해도 도망갈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 산다는 무림인들은 오히려 정이 넘쳤고 개성이 뚜렷했다.
심지어 왜 무림인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도망갔었나 하고 독고천이 자문을 해 볼 정도였다.
한때 돈에 미친 적이 있어서 정(情)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독고천이다. 그러한 정이 다시 느껴지기에 독고천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천선우 선배님이라…….”
그리고 독고천은 서서히 숲 속에 녹아들었다. 어느새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고, 나뭇가지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작고 맑은 바람 소리가 침묵으로 뒤덮인 밭을 훑고 지나가자 밭에는 새소리만이 적나라하게 울릴 뿐이었다.
짹짹―

***

한참을 걷고 나서야 건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전각(殿閣)과도 같은 모습이었는데 아담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절로 탄성이 나올 지경이었다. 독고천은 입을 벌린 채 전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높이 쳐다보던 독고천은 시선 아래가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렸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왜 나타났는지 모를 흑의인(黑衣人)들이 나타나 있었다. 물론 독고천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구십니까?”
“그러는 너는 누구냐?”
대장으로 보이는 흑의인이 무미건조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독고천이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대꾸했다.
자신도 모르게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탓이다.
흑의인들에게서 알지 못할 기운이 독고천을 짓누르고 있었다.
“저, 전 독고천이라고 합니다.”
그때, 독고천의 온몸을 죄어 오던 기운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흑의인이 한쪽을 가리키며 정중히 말했다.
“따라오시죠.”
“아, 예.”
처음과는 생판 다른 반응에 독고천이 어리둥절해하며 흑의인들의 뒤를 쫓았다.
흑의인들의 몸집은 다부졌는데 마치 그들 자체가 잘 벼려진 병기 같았다. 뒤를 조용히 쫓아가던 독고천이 대장으로 보이는 흑의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정중히 나오시는지……?”
별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는 독고천이었지만, 흑의인은 정중히 답했다.
“주군(主君)을 찾아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만약에 제가 침입자였다면……?”
“필살(必殺)입니다.”
나직한 대답에 독고천의 몸이 저절로 떨렸다.
단전은 팽팽했고 탄지공이라는 것을 익혔다고 자만했지만 그것이 한낱 철부지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 대결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량(氣量)과 무공의 고하(高下)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풍부한 경험만이 감당하지 못할 날카로운 검세 속에서 자신을 구해 줄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물론 극과 극일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경험 따위야 불필요하지만 용호쌍박(龍虎相博)일 정도로 무공이 비슷하다면 경험 차이가 그들의 생사를 갈라놓는다.
그것이 무림(武林)이었다.
남들은 피 터져 가며 익히는 것을 독고천은 절로 익혀 버렸다. 독고천 특유의 상인 기질, 즉 바닥을 파악하고 무언가를 빨리 흡수해 버리는 능력이 그를 고수의 길로 한 발자국씩 옮겨 주고 있었다.
별별 생각을 다하던 도중에 독고천은 흑의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도착했습니다.”
“그럼 이곳이 천선우 선배께서 계신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흑의인들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경공술로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져 버린 것이다.
엄청난 무공에 독고천은 혀를 내두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천선우가 있다는 곳은 약간 어두웠다.
처음에는 숲 속이기 때문에 어두운 줄 알았건만 그것이 아니었다.
특유의 어둠이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고천은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며 침을 삼켰다.
워낙 조용했기에 독고천의 발소리가 옆으로 퍼져 나갔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독고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독고천.”
갑자기 낮은 음성이 울렸다.
물음이 아니라 확신에 가득 찬 말이었다.
갑작스런 음성이 울리자 독고천은 흠칫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음성이 낮게 숲 속에 깔렸다.
“앞이다.”
독고천은 곧바로 앞을 직시했다.
그곳에는 흑의를 입은 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는 금(金)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또한 흑의는 말끔했으며 고풍스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처, 천선우 선배이십니까?”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묻자 천선우라 불린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독고천이 더운지 상의를 만지작거리며 천선우 앞에 섰다.
천선우 앞에 서자 독고천은 이마에서조차 땀을 흘리고 있었다.
땀을 흘리던 독고천이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왜 이렇게 덥지. 하하.”
독고천은 애써 웃음을 터트리며 무마해 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포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천선우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독고천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독고천은 한숨을 쉬더니 숨을 고르며 땀을 닦았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천선우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워낙 낮은 음성에 독고천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너는 강자(强者)인가, 약자(弱者)인가.”
갑작스런 질문에, 또한 괴이한 질문에 독고천이 잠시 뜸을 들였다.
이것은 시험일 것이다.
독고천, 자신을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과도 같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독고천은 신중히 답했다.
“전 약자입니다.”
“그런가?”
“예.”
나직한 물음에 독고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선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느릿한 움직임이었지만 독고천은 움찔거렸다.
천선우가 움직일 때마다 알지 못할 기운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고개를 내젓던 천선우가 입을 열었다.
“너는 강자다.”
“……?”
“너의 손으로 원한을 지닌 원수를 죽일 수 있고,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조차 죽일 수 있다.”
천선우의 나직한 말에 독고천이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선우가 말을 이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강자다. 약자는 없다.”
“그럼 강자에게 진 사람은 약자가 아니고 뭡니까?”
천선우가 설명하자 독고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자가 없다면 도태되어 온 사람들은 무엇인가.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기에 독고천은 호기심을 가득 채운 채 물었다.
그러자 천선우가 간단히 대꾸했다.
“도태된 짐승일 뿐이다.”
잠시간의 침묵이 그들을 감쌌다.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독고천을 쳐다보던 천선우가 물었다.
“넌 져 본 적이 있는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 항상 이기는 자란 존재하지 않았다.
무림에서 절대 강자로 이름을 날리던 자도 한때는 목검(木劍)을 휘두르며 나무와 사투를 벌였을 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자와 비무를 해서 져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있습니다.”
독고천이 대꾸하자 천선우의 눈빛이 경멸로 바뀌었다. 경멸이 담긴 눈초리로 독고천을 훑던 천선우가 나직이 물었다.
“강해지고 싶은가? 강해져서 짐승의 굴레를 벗고 싶은가?”
“강해지고 싶습니다.”
독고천이 이를 악물며 말하자 천선우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천선우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넌 오늘부터 가축(家畜)이다. 엎드려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 강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가축 따위가……!”
순간 독고천이 입을 다물었다. 언제 뽑았는지 모르는 천선우의 검극이 독고천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무심한 눈길로 독고천을 훑던 천선우가 물었다.
“넌 강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않은가?”
독고천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천선우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 말을 들어라. 가축이 돼라.”
목젖에 겨누었던 검을 집어넣으며 천선우가 무심한 눈길로 독고천을 직시했다.
부들부들 하고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으며 독고천이 천선우를 흘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