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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5화)
第九章 거성출현(巨星出現) ― 이곳을 박살 내려고 왔다(2)


구석에 자리 잡고 죽립을 쓴 채 호리병을 들이키고 있는 흑의인, 그리고 연신 주절거리고 있는 중년인들이 눈에 띄었다.
“소면 두 그릇.”
“조금만 기다리십쇼.”
자리에 앉은 독고천이 나직이 내뱉자 점소이는 밝은 표정으로 엽차를 내려놓고는 주방으로 졸래졸래 사라졌다.
한원기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독고천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중년인의 대화를 본의 않게 듣게 되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지금 무당(武當)이 난리가 났네.”
“천하의 무당이 말인가? 무슨 일이라도 났나 보지?”
반대편에 있던 백의 중년인이 차를 홀짝거리며 놀란 듯이 되묻자 청의 중년인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급히 말을 이었다. 매우 긴급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글쎄, 무당의 신물인 태극검(太極劍) 알지?”
“알고 말고. 그 두터운 바위도 두부처럼 벤다는 절세신물이 아니던가.”
“그래, 그 태극검이 도난 당했다네.”
“뭐라……?!”
차를 홀짝거리던 백의 중년인이 입에 있던 차를 내뿜으며 외쳤다.
그러자 청의 중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심 좀 하게. 그 태극검을 훔친 신투(神偸)는 의외로 복면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이름을 밝히면서 무당에 난입했다는데?”
“허, 뭐 그딴 멍청한 도둑이 있나? 그런데 무당은 쉽사리 도난을 당했고?”
백의 중년인이 고개를 내저으며 묻자, 청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탈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게 또 어이가 없는 일이네. 신투의 엄청난 보법과 표홀한 암기술에 태극각(太極閣)을 지키고 있던 이대제자들이 꼼짝도 못했다는군.”
“엄청난 고수가 등장했나 보군. 왜 하필 그런 힘을 옳지 못한 곳에 소비하는지……. 쯧쯧.”
백의 중년인이 혀를 차며 중얼거리자 청의 중년인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를 홀짝이며 목을 축내던 백의 중년인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직이 물었다.
“그런데 그 신투의 이름은 무엇이던가?”
“황영(黃瑛)이라 자신이 밝혔다고 하더군. 머리는 뒤로 모았고 왼쪽 눈에 검상이 나 있는 자라고 들었네.”
“듣기만 해도 절로 상상이 되는구먼. 그런데 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혔을까……?”
백의 중년인이 홀로 중얼거리자 청의 중년인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해 본 가설이 있네.”
“오, 그것이 무엇인가?”
“복면 쓰는 것을 깜박했던 거야. 그리고 이왕지사 얼굴도 밝혀졌으니 이름도 밝혀서 명성을 얻으려고 한 것이지.”
청의 중년인과 백의 중년인의 눈이 마주치고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청의 중년인을 지켜보던 백의 중년인이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독고천이 중년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중, 점소이가 독고천 일행에게 소면을 가져왔다.
“소면 나왔습니다.”
독고천은 조심히 소면을 받아 들고는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물방울이 젓가락에 맺히며 입맛을 한층 돋웠다. 한원기는 이미 젓가락으로 소면을 집고서는 입에 넣고 있었다.
독고천도 그에 질세라 열심히 소면을 입에 집어넣었다.
꽤나 뜨거웠지만 따스한 국물에 독고천의 골똘한 생각으로 인해 답답했던 속이 절로 풀어지는 듯했다.
후루룩―
열심히 소면을 입으로 빨아들이던 독고천이 순간 시선을 느끼며 눈을 치켜 올렸다.
건너편 탁자에 있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으며 붉고 두툼한 입술, 그리고 오뚝한 콧날을 지닌 미인이었다.
독고천은 순간 저도 모르게 굳었다.
미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인의 눈과 마주친 순간 자신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느꼈던 탓이다.
“헉……!”
독고천이 흠칫 놀라며 급히 여인을 쳐다보았지만, 여인은 언제 보았냐는 듯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음식을 집어 먹던 여인이 독고천의 시선을 느꼈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순간 독고천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 뭐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인은 금세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독고천은 민망한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벌게졌던 얼굴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던 독고천의 표정이 다시 진중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에서는 작은 살기조차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원기는 그것을 느꼈는지 순간 독고천을 흘겨보았지만, 곧바로 신경을 끄고는 소면에 집중했다.
어느새 소면을 다 먹어 치운 독고천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원기에게 나직이 말했다.
“잠시 산책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한원기는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소면에 집중했다. 독고천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객잔을 나섰다.
객잔 밖에서는 독고천과 눈을 마주쳤던 여인이 서 있었다. 깔끔한 백의를 입고 있는 여인이었는데 다시 봐도 미인이었다.
지나가던 사내들이 뒤로 한 번씩은 다시 돌아볼 만큼 엄청난 미인이었다.
그러한 여인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눈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누구십니까?”
“제가 누구라는 것은 중요치 않아요. 단지 그쪽이 좋은 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요.”
알지 못할 아리송한 말에 독고천이 약간 감정을 실은 채 물었다.
미인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착해야 한다는 사상을 지닌 독고천이었기 덕분에 가능한 반발이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참, 이제 그곳에 가실 생각이시군요. 조심하세요. 복수란 만만치 않답니다.”
그 말을 끝으로는 갑자기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여인이 모습을 감추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독고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태껏 마음속 깊이 숨겨 놓았던 것을 꺼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독고천은 은거괴동에서의 수련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노력으로 승화시킨 탓에 수련을 버텨 왔고, 뛰어난 성취를 보여 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심이라는 이름을 지닌 감정이었다.
복수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앞도 뒤도 재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는 자와 치밀하게 계획을 짜 놓고는 완벽한 기회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자.
그중에서 독고천은 앞도 뒤도 재보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는 자와 흡사했다.
단지 독고천은 이미 복수라는 벽을 실감한 상태였다.
장원의 재산과 어머니가 사라졌을 때 그는 무작정 흑살문을 찾아갔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상인으로서, 평범한 민간인으로서 무림문파에 홀로 찾아갔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용기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에게 쫓기게 되었고 은거괴동에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독고천은 더욱 복수심을 숨겨 놓았다.
힘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고,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 힘이라는 것을 얻게 되었고, 드디어 은거괴동을 나섰다. 그동안 숨겨 놓았고, 억눌러 놓았던 복수심이 독고천의 몸에서 물씬 풍겨 나왔다.
그런데 그것을 어찌 알고 처음 본 여인이 자신에게 지적한 것일까.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금방 독고천의 뇌리에서 잊혔다.
독고천은 눈을 감고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곳으로부터 오 보 후 우로 일곱 보. 그리고 마흔두 보.’
가끔 사람들과 부딪치며 불만 섞인 탄성이 나왔긴 했지만 독고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히 눈을 떴다. 평범한 장원이 독고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평범함을 넘어서 근처 지방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주택이었다. 대문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대문을 중심으로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을 넘어서 보면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에는 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 어디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장원이었다.
그러나 그런 평범한 장원을 보는 순간 독고천이 울컥했다.
순간 장원을 구입했을 때의 자신과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피땀을 흘려서 돈을 번 후 구입했던 장원이었고 어머니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흑살문이라는 곳에서 행복을 앗아 갔다.
순간 독고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빠드득―
뼈 소리가 울릴 정도로 주먹을 움켜쥔 독고천이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독고천이 작은 나무 막대기를 하나 손에 쥐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훅―
바람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며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졌다. 독고천이 재차 나무 막대기를 휘둘렀다.
스윽―
이번에는 가볍게 허공을 베었다.
잠시 나무 막대기를 만지작거리던 독고천이 연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휙휙―
엄청난 속도였다.
누가 지나가다 본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었다.
한참을 나무 막대기를 휘둘러대던 독고천이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는 호흡을 고루 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생긴 굵은 힘줄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부풀어져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무 막대기를 땅에 꽂은 독고천이 침을 한번 삼켰다.
꿀꺽―
그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와도 같이 비장한 모습이었다.
지나가면서 몇몇의 사람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독고천을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 정도로 독고천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정도로 생계에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흑살문이라고 평범하게 적혀 있는 현판이 눈에 가까워졌다.
흑살문(黑殺門).
대문 앞에는 흑의를 입은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는데 약간 파락호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오던 독고천이 사내들이 지키고 있는 대문 앞에 떡하니 섰다.
그리고는 멍하니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독고천이 그렇게 서 있자 대문을 지키고 있던 흑의 사내가 무심코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입을 열려던 독고천이 순간 입을 닫았다.
평화로 끝낼 수 있던 일이었으면 진작 해결되었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이에는 이, 주먹에는 주먹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이미 뼈저리게 느낀 독고천이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에 흑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냐니까?”
잠시 독고천이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그러자 흑의 사내가 손을 뻗으며 독고천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로…… 컥!”
갑자기 독고천이 일 권을 내질렀다.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복부에 주먹을 맞은 흑의 사내가 대문에 처박혔다.
콰앙―
“크윽!”
그러자 옆에 있던 흑의 사내가 급히 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뽑힌 독고천의 검극이 흑의 사내의 목젖을 겨누고 있었다.
흑의 사내는 검집에 가져가려던 손을 들어 올리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나 그 순간 대문 근처에 서 있던 흑의 사내들이 대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흑의 사내를 노렸던 독고천의 검극이 재차 흔들렸다.
분위기를 눈치챈 흑의 사내가 소리를 지르려 하자 독고천이 검등으로 흑의 사내의 뒷목을 내리쳤다.
“컥!”
흑의 사내는 신음을 내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모습에 뒤늦게 나타난 자들이 독고천을 둘러싸고는 검으로 위협했다.
그러자 독고천이 갑자기 땅을 박찼다.
팍―
흙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흑의 사내들의 시야를 가리자, 흑의 사내들은 당황해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독고천의 검이 움직였다.
파파팟―
먼지가 걷히자 흑의 사내들은 정신을 잃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휘잉―
휑한 바람이 홀로 서 있는 흑의 사내의 머릿결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흑의 사내의 등짝에는 연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독고천의 검극이 햇빛에 반짝이며 흑의 사내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널브러져 있는 동료들을 둘러보던 흑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로 오셨소?”
그러나 독고천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독고천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독고천이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박살 내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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