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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괴동 1권(24화)
第八章 철검지주(鐵劍之主) ― 가서 무림 좀 뒤흔들고 와라(3)


짹짹―
거목들 틈새로 새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청천(靑天)에는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고 바람이 거셌다.
그러한 숲 속을 걷는 사내들 중에 백의를 입고 있던 사내가 기묘하다는 말투로 물었다.
“무림도 별다를 것은 없군요?”
숲 속을 나직이 걸어가던 독고천이 입을 열자 한원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군.”
“전 무림에 나가자마자 칼부림이라도 나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원기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저 울창한 숲과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그들을 반겨줄 뿐이었다.
아직 무림이라고 하기에는 뭐한 공간이었지만 독고천과 한원기의 입장은 아닌 듯했다.
실망은 했지만 아직까진 눈초리를 빛내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수풀에서 인영이 뛰쳐나왔다.
파팟―
독고천 일행의 길을 가로막으며 거한 두 명이 재빠르게 나타났다.
한 명은 흑의를 입었고 얼굴에 검상이 나 있는 자였고, 한 명은 작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도끼를 짊어지고 있었다.
산적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었는데 의복들이 많이 상해 있었다.
잠시 독고천 일행을 훑으며 자신의 검상을 매만지던 흑의 거한이 물었다.
“돈 좀 있냐?”
“당신은 누구요?”
독고천이 묻자 흑의 거한이 손을 내저었다.
“아아, 그건 알 필요 없고, 돈 좀 있냐고.”
“없소.”
돈이 없다는 말에 흑의 거한을 비롯한 도끼 거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을 살폈다.
말을 한 사내의 허리춤에는 검이 매여져 있었고, 옆에 서 있는 꼬마의 허리춤에도 검이 매여 있었다.
특히 꼬마의 의복은 고급스러워 보였다.
순간 흑의 거한이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도끼 거한에게 질문의 눈빛을 보냈다.
‘고수 같나?’
절레절레.
도끼 거한이 고개를 내저었다.
척 보아도 그들은 무림초출자였고, 설사 고수라 할지라도 경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도끼 거한의 반응에 흑의 거한은 동의했는지 살짝 앞으로 나서며 되물었다.
“그럼 물건 좀 내놓고 가라. 특히…….”
흑의 거한이 말을 흐리며 독고천에게 다가갔다.
독고천은 멀뚱하게 서 있었다.
순간 흑의 거한이 날렵하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흑의 거한은 묵직한 감촉에 만족스러워하며 손을 거둠과 동시에 말을 이었다.
“이런 검 같은 것을 말이…… 응?”
분명 흑의 거한은 검의 묵직한 감촉을 느꼈는데 정작 돌아온 것은 맨손이었다.
도끼 거한도 어이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형님이 누구이던가.
수공(手功)으로 운남 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마흔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 아니던가.
흑의 거한이 손을 매만지다가 털털하게 웃었다.
“하하, 내가 어제 술을 거하게 했더니 이런 실수를 다하는군.”
“어제 너무 취했었습니다, 형님.”
옆에 있던 도끼 거한이 맞장구를 치며 흑의 거한을 치켜세웠다.
잠시 우쭐해 있던 흑의 거한이 재차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흑의 거한에게 돌아온 것은 맨손뿐이었다. 흑의 거한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독고천에게 협박하듯 외쳤다.
“이놈, 본 형님이 진정한 실력을 보여 주지 않은 것이다. 뺏을 수 있지만 그 검만큼은 너의 생명과도 비슷할 것 같아서 봐준 것이다. 대신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의 거한의 손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이번에 독고천이 손을 뻗었다.
독고천의 손아귀에 날아오던 흑의 거한의 손이 붙잡혔다. 그러자 흑의 거한이 미친 듯이 웃으며 도끼 거한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하하, 이놈이 재주 좀 있구나. 본 형님이 드디어 힘을 써야 하나?”
“좋지요. 한번 먹여 주십시오, 형님.”
도끼 거한은 주먹을 휘두르며 흑의 거한을 재촉했다. 그러자 미친 듯이 웃어 젖히던 흑의 거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주었다.
“이까짓 얄팍한 손쯤이야…… 손쯤이야? 으윽!”
흑의 거한이 독고천의 손을 부여잡고 힘을 주었지만 전혀 꿈적도 안 했다. 오히려 흑의 거한의 얼굴이 붉게 변하며 숨을 거칠게 쉬었다.
심지어 잡히지 않은 왼손으로 독고천의 안면을 거칠게 후려치려 했지만 휘두른 다른 손마저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
“크, 크흑. 놔라!”
흑의 거한의 외침에 독고천이 순순히 놓았다. 어느새 흑의 거한의 팔목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한 흑의 거한의 모습에 도끼 거한이 당황하며 다가오더니 급히 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형님?”
“흐음, 괜찮다. 아우는 물러서 있어라. 이것은 사나이의 자존심 문제다.”
흑의 거한이 손으로 도끼 거한을 뒤로 물러서게 해놓고는 목을 매만졌다.
그리고 독고천 앞에 떡하니 섰다.
독고천도 그리 작은 몸집은 아니었지만 흑의 거한과 비교하자 오히려 위축되어 보였다.
독고천과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흑의 거한이 작게 소곤거렸다.
“저…… 고수님.”
그리고는 흑의 거한은 창피한지 잠시 몇 번 다른 곳을 훑어보더니 다시 독고천에게 소곤거렸다.
“제가 하나밖에 없는 아우 놈에게 얕게 보일 순 없지 않습니까.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셨고 하나밖에 없는 아우 놈 열심히 키우는 중입니다. 고수님께서 저를 쉽사리 내치시고 제 머리가 깨지면 아우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건 그렇소.”
독고천이 내심 웃음을 참아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지 도끼 거한이 갸웃거렸다. 그러자 흑의 거한이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덤볐던 것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업종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보는 눈이 좋지 않습니다, 고수님.”
“이해하오.”
독고천의 대꾸에 흑의 거한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 그럼 봐주시는 겁니까?”
“단…….”
“단?”
표정이 밝아졌던 흑의 거한의 안색이 눈에 띄게 가라앉으며 급히 되물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독고천이 나직이 말했다.
“대가가 필요하오.”
한번 상인(廂人)은 영원한 상인이었다.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던 흑의 거한이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당연히 대가를 드려야 하지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고수님?”
흑의 거한이 덩치답지 않게 소곤거리자 독고천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가 흑의 거한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움찔거렸다.
잠시 뜸을 들이던 독고천이 흑의 거한에 귓가에 살짝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곳 지역에서의 최고수가 되시오. 그리고 내가 이곳에 돌아왔을 때 혹은 다시 만났을 때 나의 부하가 되어 주시오.”
“부, 부하 말씀이십니까?”
흑의 거한이 흠칫거리더니 급히 소곤거렸다.
그러자 독고천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나쁜 제의는 아니었다.
보통 고수에게 덤빈 하수의 목이 뎅겅 날아가는 것에 비하면 훨씬 순한 조건이었다.
오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무림에 몸을 담갔던 흑의 거한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제 이름은…….”
독고천이 손을 내저으며 거한의 말을 끊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필요 없소. 다시 만났을 때 당신의 명성만이 필요할 뿐이오.”
순간 독고천과 흑의 거한의 뇌리 속에 동상이몽이 스쳐 지나갔다. 독고천이 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망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중에 이곳에 돌아온 후 최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를 부하로 삼으면, 나의 명성은 절로 올라가게 되고 내기에 유리해지겠지. 그리고 첫 무림행이니 협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흑의 거한의 뇌리 속에도 망상의 세계가 굴러갔다.
‘누가 이곳에서만 사나. 도망가면 되지. 여차, 만난다 해도 그때는 이미 난 네놈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일 것이다. 하하하.’
동상이몽이 끝난 후 흑의 거한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도끼 거한에게로 돌아갔다.
도끼 거한은 걱정된 표정으로 흑의 거한을 지켜보고 있었고, 흑의 거한은 여유로운 미소를 도끼 거한에게 날린 후 뒤돌아보며 외쳤다.
“오늘은 봐줄 테니. 살펴 가거라.”
척 보아도 자비로운 모습의 흑의 거한에 뒤에 서 있던 도끼 거한이 선망한 눈빛이 흑의 거한의 뒤통수를 찔러 왔다.
흑의 거한의 외침에 독고천과 한원기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노려보던 도끼 거한이 무심코 물었다.
“형님, 저놈들을 왜 놓아주셨습니까? 저놈의 의복은 척 보아도…….”
“어험, 네가 어찌 내 깊은 속을 알겠느냐. 저 녀석이 사정을 하도 하기에 봐준 것이다.”
“전에 어떤 놈도 사정을 하다가 형님에게 멱살을 잡히지 않았습니까?”
도끼 거한이 또다시 묻자 자상스럽게 설명해 주려던 흑의 거한이 갑자기 발을 구르며 화를 내더니 외쳤다.
“아, 봐준 거라고, 봐준 거!”
잠시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흑의 거한이 자상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우야, 알았느냐?”
그저 새소리만이 흑의 거한의 처절함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숲 속에 고즈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짹짹―



第九章 거성출현(巨星出現) ― 이곳을 박살 내려고 왔다(1)


“그자는 뭐였지?”
묵묵히 앞장서던 한원기가 무심코 물었다.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던 독고천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까 그자는 뭐였지?”
질문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 자리에서 급히 반응을 했을 터인데, 한원기는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본보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좋은 말로 아니, 좋은 말로 하더라도 지나친 여유였다. 한원기의 물음에 독고천이 나직이 답했다.
“아, 별거 아닙니다. 제가 무림에 나온 이유가 내기 아닙니까. 내기에 유리해지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군.”
한원기가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다른 이였다면 조금이라도 더 물어볼 텐데 한원기는 이해를 했는지 혹은 알고 싶지 않은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답을 한 독고천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독고천의 눈매는 의외로 매서웠다.
만약 청목 선배가 보았다면 힘주지 말라며 뒤통수를 후려칠 정도였다.
그리고 독고천과 한원기가 걸은 지 몇 시진이 지나지 않아 울창했던 숲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북적거리는 사람 소리는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독고천의 표정은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한원기는 약간 흥분했는지 뺨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웅성웅성.
연신 입을 쉬지 않고 친구와 떠드는 여인.
무거운 보따리를 등에 맨 채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 노인.
땅바닥에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 있는 노점상들.
이 모두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원기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곳이 무림인가…….”
평상시의 독고천이었다면 오랜만에 보는 광동의 풍경에 탄성을 내질렀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독고천의 표정은 더욱 굳어 있었다.
그러나 한원기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독고천을 재촉했다.
“객잔이라는 곳을 가 보자.”
“그러시죠.”
독고천은 무심히 걷고 있었고 한원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한원기가 뺨에 홍조를 띠운 채 주위를 연신 둘러보자 지나가던 여인들이 몰래 한원기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산속에서 살던 꼬마인가 봐.”
“헤헤, 귀여운걸!”
그러나 한원기는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한원기는 답지 않게 신기하다는 눈망울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물론 자신을 힐끗거리며 속닥거리는 여인들의 시선은 전혀 알지 못했다.
광동객잔(廣東客盞).
낡은 현판이었지만 꽤나 커 보이는 객잔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원기는 눈을 빛내며 독고천을 이끌었다.
한원기와 독고천이 객잔 안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반가운 표정으로 반겼다.
“어서 옵쇼. 몇 분이십니까?”
“두 명이오.”
“따라오시죠.”
점소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니 창가 쪽에 있는 자리로 독고천 일행을 안내했다. 아직 중식 시간이 아니었기에 객잔 안은 한가했다.